갓 쓰고 책 읽던 선비들이 칼을 뽑았다. 임진왜란이 터진 것이다. "임진왜란이다!"라는 외침에 따라 갓을 벗고 두건을 매고 허리띠를 차는 장면에서는 긴장감이 최고조에 다다른다. 의령 곽재우를 필두로 합천 정인홍...거창 문위까지 의병장들이 "스승님의 뜻에 따라 나라를 구하겠다!"면서 달려나온다. 특히 붉은 옷을 입은 곽재우가 맨 먼저 달려나와 칼 잡은 오른손을 번쩍 치켜드는 장면은 압권이다.
이 장면에서는 심장이 쿵쾅거린다. 음악도 그렇다. 나도 모르게 흥분하고 감격한다. 마당극이 절정에 이른 덕분이기도 하고, 음악과 연기와 군무가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기도 하다. 눈물마저 어쩌지 못하는 것은, 몸속에 흐르는 어떤 에너지 덕분이 아닐까.
평소 남명 조식 선생은 제자들이 문약(文弱; 글에만 열중하여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나약함)하지 않게, 문무를 겸비하도록 교육했다. '수업 시간'에 무술을 연마하는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다. 왜 남명 조식 선생을 가장 성공한 교육자로 치켜세우는지 알 듯하다. 마당극 <남명>에서는 많은 이야기가 생략되지만, 처음과 중간과 그 끝을 충분히 알 만하다.
이틀 연속 마당극 <남명>을 보았다. 보는 동안 1시간은, 아니 진주에서 출발하여 마당극 보고 돌아오는 서너 시간은 아주 딴 세상을 여행하는 기분이다. 날씨 좋은 주말에 무릉도원을 다녀온 기분도 들고, 요즘 말로 표현하자면 해외여행을 다녀온 것 같기도 하다. 희한한 것은 그 무릉도원에서는 늘 마당극을 공연하고, 그 해외에도 늘 큰들 배우들이 있더라는 것이다.
2021. 5. 23.(일)
시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