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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큰들 마당극 보러 가기

마당극 <효자전>

by 이우기, yiwoogi 2021. 4. 18.

바람과 미세먼지가 제법 기승을 부렸지만 극단 큰들의 마당극을 방해하지는 못했다. 배우가 준비를 마치자 관객이 어느새 모여들었다. 지난해엔 단원들이 체온을 재고 관객이 직접 주소를 적었는데 좋은 기계를 들여서 무척 편하고 안전하게 바뀌었다. 배우 아닌 단원들이 대부분 나와서 첫 공연을 함께 축복하고 관객들을 챙겼다. 큰들은 늘 그렇다. 

 

드디어 마당극 공연이 시작됐다. 우편배달부가 참 반갑다. 치매 걸린 할매도 반갑다. 갑동이와 어머니의 표정에서 웃음과 눈물이 교차한다. 알게 모르게 조금씩 달라진 내용도 흥미롭다. 배우 한 명이 바뀌었다. 바뀐 배우가 처음 등장하면 긴장할 것 같다. 하지만 큰들은 안 그렇다. 원래 배역이 있고 바뀐 배역이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사실 대사가 조금 바뀌고 배우가 교체되는 건 아무일도 아니다. 

 

갑동이를 쫓는 어머니, 갑동이 머리를 때리며 '지랄한다'고 꾸지람하는 어머니, 갑동이 코를 비틀어 버리는 어머니, 귀남이를 위해 집안의 기둥뿌리를 뽑아주는 어머니, 한양 천릿길을 멀다하지 않고 곶감과 용돈을 갖고 찾아가는 어머니, 목숨과 같은 산삼을 귀남에게 줘버리고 끝내 숨을 거두는 어머니, 죽어 저승을 가면서도 자식들 걱정하는 어머니, 그 어머니에게서 우리 어머니를 본다. 작년 가을 어느날 속절없이 이승을 하직한, 이제는 영영 뵐 수 없는 그리운 어머니를 본다. 눈물이 난다. 

 

고3 시절에 효자전 동영상을 보고 감상글을 썼던 아들이 군인이 되어 휴가에 맞춰 야외공연을 보았다. 점심으로 경상국립대 가좌캠퍼스 앞 삼삼밀면에서 밀면과 만두를 먹었다. 가는 길에 주약동 뚜레주르에서 첫 야외공연 축하 케이크를 하나 샀다. 가는 길의 지리산은 연두와 초록과 파릇파릇과 푸른빛이 오케스트라를 연주했다. 
바람은 그치지 않았다. 배우의 대사가 삼켜졌다. 소품이 흩날렸다. 관객들은 옷깃을 여몄다. 하지만 공연은 멈추지 않았다. 올해 첫 야외공연은 그렇게 시작되고 진행되고 맺어졌다. 박수 소리가 컸다. 50명 남짓 관객들은 한 사람이 서너 사람 몫으로 응원했다. 내일도, 다음 공연에도 큰들은 멈추지 않을 것이고 관객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리 믿는다. 

 

산청-진주 국도는 참 아름답다. 4월과 5월에 가장 아름답고 10월과 11월에도 무척 아름답다. 나무들이 보여주는 빛의 향연은 매력적이고 매혹적이다. 어디 아무 계곡에나 차 세워놓고 경호강에 발을 담그고 싶을 정도다. 6월까지 2주 간격으로 산청으로 마당극을 보러 갈 것이라면, 한두 번은 계곡에 발을 담그거나 주막 마당에 차를 세우게 되리라. 그런 호사도 큰들 덕분이라고 하겠다.

 

2021. 4. 17.(토)
이우기

 

*오늘은 사진을 세로로만 찍었다. 위치가  그랬다.

*아래 사진은 공연 시간 순서가 아니다. 
*감상글을 길게 쓰려다가 다른 중요한 일 때문에 미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