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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안부

by 이우기, yiwoogi 2021. 5. 2.

 

거기는 편안하신가요? 코로나도 없고 노동도 없는 저승에서는 무엇으로 하루를 보내시는지요? 텔레비전도 없고 경로당도 없는 그곳에서는 시간이 참 지루하겠습니다. 진주경로당 마당엔 잡초가 제법 무성할 테고 장대동 놀이터 정자엔 수제비 배달 오토바이가 왔다 갔다 할 터인데. 그래서 궁금하기는 하겠지요. 할매들 할배들 치아는 건강하신지 노인연금은 다들 잘 타 쓰시는지 공공근로는 안 빠지고 잘 다니시는지 조금은 궁금하실 테지요.

 

거기는 어떠하신지요? 거기도 논갈이 밭갈이 하고 고사리 미나리 뜯어야 하는지요? 아지랑이 가물가물한 들녘에서 허리 만져가며 마늘 부추 배추 상추 심어야 하는 건 아닌지요. 먹지 않아도 배 고프지 않은 세상 같지만 그래도 입에 무얼 넣어 오물거려야 심심하지는 않을 터인데요. 각자 집집마다 곳간이 있고 밥솥이 있고 가스렌지도 있을지 궁금하네요.

 

거기는 괜찮으신가요? 혹시 어디 아프면 약을 먹고 어디 다치면 병원에라도 가야 하는 건 아닌지요? 담배를 피우면 폐가 아파지는 것과 심부전증이 심각해져 폐렴이 생기기도 하는 게 이승과 닮았는지요. 병원에 가면 환자가 많고 교도소에 가면 나쁜 놈이 많고 법원에 가면 억울한 사람이 많은 것도 이곳과 비슷한지 좀 궁금하네요. 그래도 거기는 저승이라서 사뭇 다르겠지요.

 

그래서 안녕하신지요? 이따금 찾아와 잡초 뽑고 절 세 번 하고 술 두 잔 부어드리는 게 만족스러우신지요? 심어 놓은 녹차나무가 시들시들하다가 살아나고 뿌리째 없어진 줄 알았던 잔디가 어느새 넓게넓게 번져나가고 아무도 돌보지 않았던 고사리가 여기저기 돋아나는 게 보이시는지요. 사시사철 찾아와 지저귀는 저 새들의 노랫소리도 들리시는지요. 보이고 들리신다면 몇 마디 말씀이나 해 주시지요.

 

그래서 괜찮으신지요? 천만 다행스럽게도 자식들 각처에서 밥 벌어먹고 사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요. 제 할 일 하면서 때로 아프기도 하고 때로 슬프기도 한 삶을 그럭저럭 버티고 이겨내고 있으니 이것도 복이라 하겠지요. 그래서 저승에서 바라보는 이승의 자식들이 괜찮아 보이시는지요. 걱정 없이 근심 없이 시름 없이 평안하고 즐겁게 잘 보내시는지요.

 

대답 없을 안부를 여쭙고 갑니다. 나지 않았으면 하는 풀을 좀 뽑았습니다. 저마다 나고 자라는 까닭이 있을 터인데, 오늘은 싹 무시하고 뿌리째 뽑아보았습니다. 어떤 건 예쁜 꽃이 달려 있어서 잠시 머뭇거렸습니다만, 별수 없이 베고 뽑았습니다. 그래서 좀 시원해졌는지요. 가려운 등짝에 효자손 들이밀듯 좀 개운해졌는지요. 또 찾아뵙겠습니다. 오늘은 혼자지만 여럿이 오는 날엔 핑계삼아 낮술이라도 한잔하고 지난날 추억하며 그 힘으로 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21. 5. 2.(일)

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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