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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주말 보낸 이야기

by 이우기, yiwoogi 2021. 4. 4.

하루 종일 집에 틀어박혀 있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저 먹고 자고 텔레비전을 보았을 뿐이다. 아침, 점심, 저녁을 차렸다. 아침엔 어제 먹다 남은 김치찌개를, 점심엔 즉석 칼국수를, 저녁엔 고등어를 굽고 분홍소시지에 달걀옷을 입혔다.

 

'천녀유혼'을 보았다. 왕조현은 예쁘지 않았고 장국영은 어렸다. 잠이 쏟아졌으나 끝까지 보았다. 그땐 그렇게 열광했더랬는데 지금은 그런 감정이 없다. '나는 자연인이다'도 한 편 보았다. 그렇게 살고 싶다.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서는 오페라 '명성황후' 연습장면과 공연모습을 보여주었다. 좀 울컥했다. 1박2일도 모처럼 재미있게 보았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저녁 먹고나서 긴 소매 셔츠를 7장 다렸다. 한두 번씩 입으면 봄은 정말 다 갈 것이다. 옷 다리는 동안 시비에스 라디오 '김현주의 행복한 동행'을 들었다. 대체로 내 마음에 쏙 드는 노래를 틀어준다. 김광석 노래는 언제 들어도 심금을 울린다.

 

어제는 형님, 동생과 함께 삼형제가 부모님 산소를 찾았다. 9시에 모여 절 세 번 하고 일을 좀 하려는데 비가 시작한다. 야속도 하지. 동백씨 몇 알 심다가 돌아왔다. 큰형님 집에서 도다리회를 시켜 먹었다. 멍게와 미역국과 머위장아찌와 음나무순과 물김치가 입맛을 부추겼다. 장식용 하수오 술을 거의 비웠다. 창 밖에는 비가 하염없이 왔다. 빗소리가 잘 들리는 큰형님 집 거실은 나에겐 천국이다.

 

토요일과 일요일이 덧없이 다 가 버렸다. 다시 내일이 토요일이면 좋겠다. 월요일을 기다리는 설렘, 다음 일주일의 기대, 내 앞에 놓일 일을 요리하는 즐거움 같은 건 요즘은 없다. 그저 커다랗고 무거운 월요병이 대문 밖에 웅크리고 앉아 있을 뿐이다. 자연인은 말했다. "긴 휴가 중이다."라고. 나도 셔츠 다리지 않아도 되는 자연인이고 싶다.

 

2021. 4. 4.(일)

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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