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먹고 느긋하게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저녁으로 제육볶음을 먹었단다. 맛은 ‘그저 그랬다’고 한다. 그저 그런 정도이면 다행이다. 택배로 보낸 쌀국수를 먹어보았느냐 물었다. 아직 먹어보지 못했다. 내일 꼭 먹어보고 그 맛과 느낌을 편지로 써 보내야겠다. 아들이 군대BX에서 가장 즐겨 먹는 음식이라고 하니 기대가 크다. 보내준 책은 맨 앞에 아들이 사준 책이라고 적어넣고 죽 넘겨 보았다.
오늘도 족구를 했는데 1등을 했단다. 몇 주 전부터 주말 경기를 하는데 4등, 3등, 1등을 했다 한다. 족구 말고도 풋살 등 여러 종목을 겨루는데 이 성적을 종합하여 휴가를 하루씩 더 주는가 보다. 그러니 선배, 후배 할 것 없이 최선을 다한다고 했다. 군대란 주말의 놀이나 휴식이나 운동도 전투력 향상으로 연결 짓는 곳 아니던가. 군인에게 ‘휴가증’은 그 어떤 포상보다 멋진 일 아니던가.
동료들에게 방해될까 봐 공중전화 부스에서 전화를 하는 중이라고 했다. 다시 추워진 날씨가 걱정이다. 끊고 내무반(생활관)으로 가라고 했다. 9분 35초 통화했다. 처음엔 혼자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스피커폰으로 바꿔 아내와 공동 통화를 했다. 공군가족 카페에는 1월 4일 입대한 822기 훈련병들이 부모와 5분, 7분씩 첫 효도전화를 했다고 올라오던데, 그것에 견주면 우리는 참 넉넉하고 널널한 편이다.
전화를 끊고 좀 있으니 카톡 문자메시지가 온다. 개인용 스탠드를 하나 산다는 것이다. 저녁 시간이나 주말에 공부를 좀 하고 싶은데 다른 동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란다. 돈이 좀 모자라다고 부치란다. 군대에서도 개인 스탠드를 켜놓고 공부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월급은 8일에 받았는데 이런저런 선물들 사느라 돈을 다 쓴 것일까. 달라는 것보다 좀 넉넉하게 부쳐 주었다. 9시 30분쯤 되니 휴대폰을 반납한단다.
기본군사훈련단 소대장께서 하신 말씀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고, 건강하게 지내라.”라는 말을 남겨 주었다. 아들은, 조금 있으면 818, 819, 820기 후임들이 휴가를 가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 후 병장들이 가고 자기에게도 휴가 기회가 올 것이라고 했다. 언론 보도에서는 아직 그런 소식을 못 봤다. 여기 카페에 와서 보니 어느 분이 군인들 휴가가 2주 연기됐다는 소식을 올려놓았다. 카톡 문자로 이 소식을 알려줄까 생각하다가 그만뒀다. 아들에게 그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2021. 1. 16.(토)
이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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