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일요일 단상

by 이우기, yiwoogi 2021. 1. 24.

일요일 단상

 

[1]

수요일 늦은 밤 큰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같은 날 오전에는 당숙모도 돌아가셨다.

사흘 동안 빈소를 갔다 왔다 하였다.

장례 끝난 후 집에서 엎치락뒤치락거렸다.

간밤엔 꿈자리가 사나웠다.

등장인물도, 내용도, 주제도 모르겠는 대하드라마가

베갯잇에서 밤새도록 쉼없이 펼쳐졌다. 머리가 무겁다.

집안 어른들이 한 분 두 분 돌아가신다.

이제 우리가 집안의 어른이 되어간다는 뜻이다.

 

[2]

사무실 나온 김에 미뤄 둔 연말정산을 해 보았다.

직장생활 28년 만에 가장 큰 금액을 물어내게 생겼다.

그사이 아내가 임시직이긴 하지만 일하러 나간다.

나는 올해는 병원에 간 일이 거의 없다.

군대 간 아들 1학기 등록금은 장학금으로 제법 돌려받았다.

남을 위하는 기부금은 지난해보다 좀 줄었다.

그러니 세금을 더 내는 게 당연하다.

물어내는 게 아니라 마땅히 내어야 하는 것이다.

올해 작전은, 세금을 미리 더 내고 기부금을 늘리는 것.

 

[3]

아들에게서 카톡 메시지가 시시때때로 온다.

부대에 코로나 확진가가 나온 뒤 걱정이 많아졌다.

어제는 역학조사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가까운 대대에서 유증상자가 여럿 나왔다고 했다.

걱정하지 말라고, 아무 일 없을 것이라고 말하며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 걱정이 없을 수 없다.

그렇지만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국군을 믿고 공군을 믿고 3훈비를 믿는 것밖에 없다.

부디 아무 일 없기를, 더 확산하지 않기를 빈다.

 

[4]

며칠 비가 오거나 구름이 끼었지만 바람은 포근하다.

열흘 뒤면 입춘이고 좀더 있으면 우수이다.

길다고 여긴 겨울은 그 끝자락에 서 있고

오지 않을 것 같은 봄은 저만치서 손짓한다.

지리산 넘어와 조금 흩날린 눈을 겨울이라 이르고

출퇴근길 잠시 불던 찬바람을 추위라고 불러줄게.

코로나 쫓겨간 자리에서 우리 아들들 마음껏 고함 지르게

겨울아, 너는 할일을 다 하였으니 이제 물러가거라.

봄아, 어서 오너라. 네 할일이 여기저기 널렸단다.

 

2021. 1. 24.

이우기

'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무 일 없는 일요일  (0) 2021.03.14
차마 하지 못한 말  (0) 2021.01.25
어떤 하루  (0) 2021.01.14
남해 나들이  (0) 2021.01.12
100일  (0) 2020.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