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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청춘

by 이우기, yiwoogi 2020. 10. 26.

몇 해 전 동네 허름한 막걸리집에서 파전 안주 삼아 한잔했습니다.

마주앉은 열 살 아래 동네 동생이 산울림의 ‘청춘’을 틀었습니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목이 메어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막걸리를 연거푸 두 잔 마시고 나서 겨우 말했습니다.

“야, 그 노래 좀 틀지 마라! 나 죽겠다.”

 

산울림의 ‘청춘’이라는 노래는 언제나 숨을 못 쉬게 합니다.

전주가 나오자마자 2-3초 만에 김창완 목소리가 나옵니다.

김창완 목소리는 무미건조합니다. 기름기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의 수많은 노래에서 느끼는 경쾌함도 박력도 없습니다.

그저 인생을 다 살아낸 사람의 넋두리만 잔잔히 전해져 옵니다.

 

‘청춘’을 들으면 머릿속은 삽시간에 20-30여 년 전으로 물듭니다.

대학 국어국문학과에서 열심히 술 먹고 노래 부르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데모가 벌어지면 멀찍이 서서 열심히 손뼉치던 철부지가 생각납니다.

학점은 3.5를 겨우 넘겼고 어렵사리 지역 언론사 기자가 되었습니다.

온갖 폼 잡고 싸돌아다니며 술집에서 젊음을 낭비했습니다.

 

산울림의 ‘청춘’을 처음 부를 때는 몰랐습니다.

이 노래가 나온 게 1981년이니까 중학교 1학년 때입니다.

고등학생, 대학생 시절 부르면서 그저 감미로운 음악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40대 후반을 넘어가면서 목울대가 따가워져 노래를 부를 수 없었습니다.

50을 넘어가면서 ‘청춘’을 들으면 밑도 끝도 없이 눈물이 납니다.

 

그 젊음의 시간을 더 열심히 보내지 못한 나를 봅니다.

더 건강하고 진지하고 다정하고 너그럽지 못했던 나를 만납니다.

푸르른 이 청춘도 언젠가는 가고 말 것이라는 진리를 외면했습니다.

가고 없는 날들을 잡으려 빈손짓을 해도 소용없다는 걸 몰랐습니다.

50대 중반에 서서야 그렇게 세월이 간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됩니다.

 

같은 잘못을 우리 자식들은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자기 인생을 더 치열하게 살기를 빕니다. 감사하며 살기를 빕니다.

건강하고 씩씩하게, 그리고 자기의 운명을 받아들일 줄 알았으면 합니다.

군대에 가기 전에는 이런 말을 해줄 기회가 없었습니다.

옆에 없으니 내가 아들에게 해주어야 할 말들이 자꾸 떠오릅니다.

 

청춘의 피는 거대한 함선의 기관과 같이 거침없이 뛰놀지만

젊음은 잘 다스리고 제대로 누려야 하는 것임을 이야기해 주고 싶습니다.

이 세상엔 영원한 것은 없지만 순간으로만 점철되는 것도 없습니다.

앞날을 내다보며 미리 준비하여야만 비로소 인생을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런 평범한 진리를 보초를 서면서 조금씩 깨달아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는 “데모하지 마라”라고 윽박질렀습니다. 그런 세대였습니다.

저는 “데모해야 한다면 열심히 하라”고 일러주겠습니다. 이런 시대입니다.

아버지는 “네가 알아서 네 인생 살아라”고 했습니다. 당연했습니다.

저는 가르쳐주고 일러주면서도 간섭은 하지 않을 겁니다.

자기 인생길에서 방황하면 희미하나마 등대가 되어 주고 싶습니다.

 

‘청춘’을 들으면 오만 가지 잡념이 떠오릅니다. 숨을 멈춥니다.

가사를 음미하다가, 곡조를 흥얼거리다가 끝내 눈물을 떨굽니다.

가을이라서가 아닙니다. 낙엽이 져서가 아닙니다.

‘청춘’을 들으면 헛되이 보낸 지난날이 사무치게 후회됩니다.

내 아들뿐만 아니라 모든 20대 청춘들은 이렇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2020. 10. 26.

이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