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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아들에게서 카카오톡 그림말(이모티콘)이 왔습니다

by 이우기, yiwoogi 2020. 11. 3.

 

아들에게서 카카오톡 그림말(이모티콘)이 왔습니다. 퇴근하던 차 안에서 보았습니다. 바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070으로 걸려오는 수신자부담전화(콜렉트콜)로 통화하던 것 말고는 무려 72일 만입니다. 어찌나 반갑던지요. 어제 보내준 우체국 택배를 하루 만에 받은 모양입니다.

 

충주에서 긴 특기학교 교육을 마치고 10월 29일 경상남도 사천 제3훈련비행단 공병대대로 배속되어 왔습니다. ‘왔습니다’라고 말하는 건, 사천은 우리 집이 있는 진주와 붙어 있는 도시이기 때문입니다. 승용차로 가면 신호가 막히는 것까지 고려하더라도 30분이면 충분한 거리입니다. 그러니 ‘왔다’라고 하는 게 맞겠죠.

 

운전 중이라서 길게 통화하지 못했지만 한결 여유로워진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목소리를 듣고서는 “잘 있느냐?”, “밥은 잘 먹느냐?”, “어디 아픈 데는 없느냐?”, “잠자리는 편하느냐?” 따위의 기타등등 안부 인사는 생략할 수 있었습니다. 입대 후 첫 효전화에서 떨리던 목소리는 봄눈 녹듯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공병장비운전이라는 낯선 특기를 받은 뒤 듣던 불만 섞인 목소리도 가을바람에 날아가 버렸습니다.

 

이제 군대생활이 제법 익숙해진 덕분일 겁니다. 그사이 제가 편지를 여러 번 쓰면서 마음을 다스리고 특기를 익히라고 해준 덕분일 것인데, 그런 조언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이곳 카페에서 보고 배운 여러 가지 마음과 태도, 정보 덕분입니다. 못마땅해 하던 특기도 시간이 지나면서 적응했을 겁니다. 세상 모든 건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 좋아지게 마련이니까요.

 

무엇보다 앞으로 남은 군대생활을 해나갈 자대(배속지)가 사천이라는 점이 크게 마음을 놓게 해주었을 겁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집과 거리가 멀지 않기 때문입니다. 집과 부모와 친구가 가까이 있다는 것은 큰 위안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충주나 그 위쪽보다 덜 춥기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경남 사천은 남해안 해안도시이니까요.

 

그리고 공병장비운전 같은 특기를 가진 동기 4명이 한꺼번에 발령 받은 것도 큰 의지가 되었을 겁니다. 운좋게 사천 제3훈비에 티오(TO)가 있었던 덕분입니다. 넷이 마음 맞춰 서로 의지하고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18개월 남짓 남은 군대생활을 재미있게 해 나가지 않을까 짐작해 봅니다.

 

군인이 휴대전화를 소지하는 것에 대해 좀 의아하긴 합니다. 아무리 일과시간 이후에만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가령 비상상황이 벌어져도 휴대전화를 보느라고 출동을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20세기식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거지요. 그래서 물었습니다. “야, 이 녀석아,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나라는 누가 지키냐?”라고 했더니 대뜸 대답합니다. “헌병이 지키겠죠.” 헌병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아직 모르는가 봅니다.

 

8월 24일 부모는 차에 탑승한 채, 아들은 납치당하다시피 입대했죠. 아쉬웠습니다. ‘그럴 줄 알았으면 부대 밖에서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뭉개다가 들어갈 걸’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9월 24일 특기를 배정받고 군수2학교로 갔을 때도 걱정은 이어졌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바라지 않던 특기니까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0월 6일 충주까지 교육 받으러 갔습니다. 아무리 담담한 척하려고 해도 걱정이 없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와 아내는 이제 완전히 마음을 놓습니다. 전화기까지 안겨놓고 보니 대학생들끼리 모꼬지(MT)를 간 것처럼 느껴집니다. 원하는 때에 곧바로 통화를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문자 메시지나 카카오톡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게 이렇게 좋은 것이라는 건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제 이번주 금요일이면 첫 휴가를 나온답니다. 2박 3일이라고 하는데 그게 어딥니까. 다른 동기들 대부분 한번씩 휴가를 다녀갔을 터여서 비교적 늦은 편이지만 이게 어딥니까. 휴가 나오면 물어보고 싶은 게 많고 들어줄 이야기가 섬진강 모래알처럼 많을 테지만, 내버려 둘까 합니다. 친구 만나러 가서 한잔하고 와도 내버려 둘까 합니다. 먹고 싶은 것을 말하면 무엇이든 해주거나 사주지만 말 안하면 내버려 둘랍니다. 단 사흘 동안 만이라도 제 맘대로 놀고 쉬고 즐기고 들어가도록 해줄랍니다. ‘들어가야 나오니까’, 들어갈 때도 담담히 보내줄 겁니다. 이렇게 저도 공군 일등병 아들을 둔 부모로서 익숙해지는가 봅니다.(병원에 계신 할머니 문병은 꼭 시킬 겁니다.)

 

딴에는 태어나서 한번도 부모 곁을 떠나본 적 없으니 좀 먼 곳으로 가서 군대생활을 해도 좋겠다고 생각한 적 있습니다. 외로움을 이기는 법을 배우고 휴가 나오고 들어가며 한반도 지리를 좀 익혔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 것은 나중에 사회생활할 때 소중한 자산이 될 테지요. 먼 데 있는 아들 면회 가면서 우리 부부가 재미있게 데이트를 하고 싶은 생각도 솔직히 있었죠. 이제는 그런 생각은 접어 두고, 그저 주어진 조건과 환경 속에서 아무 탈 없이, 아프지 말고 다치지 말고 건강하게 잘 생활해 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군대로 찾아가는 운명의 여신과 잘 사귀기를 바랄 따름입니다. 그저 모든 것이 감사합니다.

 

2020. 11. 3.(화)

이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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