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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편지를 쓴다

by 이우기, yiwoogi 2020. 10. 23.

 

아들(굳이 ‘아들’이라고 쓰지 않아도 되지만 어차피 여기는 다 아들 이야기니까 괜찮겠죠)이 8월 24일 입대했다. 공군 817기다. 기본군사훈련단에서 4주 있었고, 군수2학교에서 1주 있었고, 충주 91전대에서 4주 있다. 훈련과 교육이 긴 편에 속한다. 55111(공병장비운전) 특기를 받았는데,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요즘도 통화할 때면 여전히 “힘들어요.”라고 말한다. 그래도 나름나름 잘 적응하고 있는 듯하다. 이제 1주일 뒤면 자대 배치받아, 남은 군대 생활을 할 ‘집’으로 간다. 자대도 원하는 곳으로 가게 될지 아닐지 모른다. 그동안 쌓아온 노력과 운이 합쳐져서 결정될 것이다.

 

그동안 아들에게 25통의 종이 편지를 썼다. 기훈단과 군수2학교에 있을 때 인터넷 편지를 26번 썼다. 아내는 종이편지를 2번 썼고 인터넷편지를 열댓 번 썼다. 편지를 쓰는 이유는 군대에서 외롭지 말라는 뜻이었다. 다른 전우들이 가족에게서 친구에게서 여친에게서 편지가 오는데, 혼자만 아무런 편지가 오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기훈단으로 보낸 마지막 편지는 되돌아왔다. 수료한 뒤에 배달된 모양이다. 공병장비운전 교육을 받고 있는 충주로 7통 보냈는데, 엊그제 물어보니 1통만 받았다고 했다. 문서수발이 더딘 모양이다. 특기학교 수료하기 전에 모두 받아보기를 기도할 수밖에.

 

편지에는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썼다. 모두가 힘든 생활이니 참고 견디라는 말을 가장 많이 했다. 처음엔 더웠다가 지금은 추워졌는데, 날씨에 따라 건강 유의하라는 말도 많이 했다. 특기가 마음에 안 들더라도 기쁘게 받아들이라고 했고 사회에서 써먹을 자격증 같은 것도 따 보라고 했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잡다한 소식도 몇 가지 전했다. 유명한 위인의 유명하지 않은 일화도 적어 보냈다. 집안의 크고 작은 일들도 세세히 적었다. 앞으로 벌어지는 갖가지 상황을 담담하고 당당하게 받아들이고 이겨내라는 격려도 많이 썼다. 편지는 컴퓨터로 입력했고 이런저런 가족 사진들을 편집해 넣었다. 편지를 받아 읽는 동안만이라도 고단함과 외로움을 잠시 잊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했다.

 

어제 충주 특기학교로 보내는 마지막 편지를 부쳤다. 제발 교육 수료하기 전에 받아보기를 바라면서. 앞으로 전역할 때까지 몇 번 쓸지는 모른다. 목표는 100통인데, 잘 모르겠다. 자대 배치받고 두어 달마다 휴가를 나오면 사무침도 애틋함도 엷어져서 편지를 그만 쓸지 모른다. 아무튼 아들이 전역할 때까지 부지런히 편지를 쓰려고 노력할 것이다. 마주앉아서는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기 쉽지 않으니, 평소 하고 싶은 말을 하나씩 풀어놓을 참이다. 어떤 아들이 되었으면 하는지, 어떤 군인이 되었으면 하는지, 어떤 사회인이 되었으면 하는지를 내 생각대로 편안하게 쓸 것이다. 그러고서 나중에 전역할 때쯤 그 편지를 모아서 책처럼 묶어 놓을 것이다. 아들이 가장 힘들게 보낸 21개월의 기록을 모아둘 생각이다. 물론 잘 될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목표를 정해 놓으면 절반 정도는 달성하지 않을까 싶다.

 

날씨가 많이 차가워졌다. 내일은 더 추울 것이라 한다. 이제 가을이라는 말조차도 바스락거린다. 이곳 진주보다 훨씬 더 추울 충주의 밤공기를 생각한다. 우리가 편히 잠잘 때 깨어 있을 모든 아들들의 건강을 염려한다. 하루는 길지만 한 달은 짧고 일년은 더 짧게 느껴지기를 기대해 본다. 그런 날들이기를, 어디에라고 할 것 없이 빌어본다.

 

2020. 10. 23. 이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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