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스마트폰으로 날씨 알림이 온다. 어느 언론사에서 보내주는 것이다. 오늘 아침엔 ‘일요일 아침 기온 뚝…중부·경북 내륙 영하권’이라고 떴다. 이런 문자를 보면 간담이 서늘해진다. 일요일 일하러 사무실 나와야 하는데 옷을 두껍게 입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충주에서 마지막 일주일을 보낼 아들이 생각나서이다. 상강도 지났으니 서리가 내리지 않을까.
이론·실기 시험은 다 마쳤지만, 마지막까지 장비 훈련은 계속한단다. 굴삭기(포클레인), 로더, 그레이더, 도저, 덤프 따위 장비를 자유자재로 운전하도록 가르치고 또 가르치는가 보다. 실제로는 부사관들이 운전하고 병사들은 옆에서 거들어주는 정도라고도 하는데, 그래도 배울 건 배워두어야 할 것이다. 주말과 휴일에는 좀 쉬겠지. 쉬는 동안 친구들과 대화도 많이 나누고 입대 이후 두 달 동안을 좀 되돌아보았으면 한다.
처음 ‘굴삭기, 로더, 그레이더, 도저, 덤프’ 이런 장비 운전을 배운다고 했을 때 로더, 그레이더가 무엇인지 몰라 검색해 보았다. 이름만큼이나 생김새도 낯선 이런 물건들 다루는 법을 어떻게 배울까 걱정도 많이 했다. 그러다가 이내 생각을 바꾸었다. 817기에 이르는 동안 수많은 선배들이 이 길을 걸어갔고 앞으로도 수많은 후배들이 또한 이 길을 걸어갈 것이므로, 그 과정에 있는 한 명의 군인으로서 제 몫을 충분히 해내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어제 아들과 통화했다. 굴삭기 면허 시험에서 아깝게 떨어졌다고 했다. “그럼 그만이지”라고 해 주었다. 다음에 기회가 다시 주어지면 도전하면 되고, 주어지지 않으면 그만 아닌가. 그런 저런 점으로 인하여 자대를 원하지 않는 곳으로 갈지 몰라 걱정하는 것 같았다. “그것도 그럼 그만이지”라고 해 주었다. 거기가 어딘들 우리나라 땅 아닌 곳 없는 것 아닌가. 물론 휴가 나오자면 좀 멀 것이고 면회 가자면 좀 피곤하긴 하겠지만 그래봤자 이제 19개월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받아들이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다. 모든 게.
내무반 청소하다가 관물대에 머리를 부딪쳐 좀 찢어졌다고 했다. 피를 많이 흘린 듯했다. 며칠 머리를 감지 못한다고 한다. 물을 사용하지 않고도 머리를 감을 수 있는 게 있다던데 나는 모르겠다. 제 어머니는 그 말을 알아듣고 구해서 보내준다고 했다. 월요일 택배를 부쳐도 수료하여 자대로 떠나기 전에 받아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래도 서둘러 보내는 것까지는 부모의 몫인 것 같다.
군대생활이 자신에게 잘 맞는 병사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직업군인의 길을 걸어가겠지. 자신에게 잘 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거의 모든 병사들은 이해하며 적응한다. 짧지도 않고 길지도 않은 복무기간 동안 이런저런 사건·사고들을 만난다. 무엇을 잘 못하여 꾸지람을 듣기도 하고 무엇을 잘하여 포상휴가도 간다. 그런 사람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자신이 그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전역날짜가 다가오게 돼 있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세월은 잘 간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시간은 더디 간다. 무엇을 끊임없이 추구하고 그 속에서 보람과 즐거움을 찾도록 노력해야 한다. 책을 열심히 읽든, 글을 열심히 쓰든, 자격증을 부지런히 따든, 제각기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지속적으로 하다 보면 시간은 금방 간다. 우리 모든 아들들이 이런 평범한 진리를 스스로 터득했으면 싶다.
817기로 입대한 친구들은 이제 각자 갈 곳을 찾아갔다. 전국 방방곡곡 공군 부대 있는 곳마다 ‘817’이라는 깃발이 펄럭일 것이다. 동기가 여럿이면 좋을 것이고 자기 혼자만 가는 친구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무더운 여름날 머리 깎고 함께 입대한 친구들 1500여 명이 곳곳에서 정신적으로 연대해 있다는 생각을 가진다면 마음 든든할 것이다. 그 든든함을 듬직하게 어깨에 지고 부디 모두들 무탈하게 군 생활 잘 하기를 빈다. 2022년 5월 23일이 지나면, 그래서 길가다 친구들 만나면 씩 웃으면서 소주 한잔씩들 하는 그런 친구들이기를 빈다.
817기 아들들 일병 긴급을 축하한다. 이제 19개월 남았다. 남은 군대생활 동안 아프지 말고 다치지 말기를 빈다. 선임들에게 사랑받고 그 받은 사랑을 후임에게 베풀어 주면서 멋진 군인으로 성장하기를 빈다. 모두들 건강하기를 빈다.
2020. 10. 25.
이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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