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5분 걸어가면 <하연옥>이 있다. 냉면으로 이름을 날렸다. 지금도 그렇다. 손님이 많아서 여름철엔 번호표를 뽑아야 한다. 이 집에 대여섯 번 갔는데 그때마다 별관에서 먹었다. 길가에 차를 세웠다가 주차위반 딱지를 받은 적 있다. 한 시간 반 기다리다 되돌아간 날이다. 화가 났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난해 '지리산흑돼지맑은곰탕'이라는 새로운 밥을 개발했다고 들었다. 길가에 붙여 놓은 펼침막 사진을 보고 군침을 흘렸다. '지리산'이라는 이름도, '흑돼지'라는 이름도, '맑은'이라는 이름도, '곰탕'이라는 이름도 죄다 눈길을 끌었다. 작명을 잘했다. 한번 먹어보고 감상을 적어보리라 마음먹었다.
드디어 8월 28일 저녁 아내와 갔다. 7시 넘어 산책하듯 살랑살랑 나불천 바람 맞으며 걸어갔다. 손님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가족, 친구끼리 밥상을 앞에 놓고 입맛을 다시는 분들이 제법 되었다. 우리는 본채 맨 안쪽에 자리 잡았다. 하연옥 본점 본채에서 처음 밥 먹는 날이 되었다.
지리산흑돼지맑은곰탕은 긴 이름만큼 오래 기억에 남을 음식이다. 대패삼겹살 닮은 고기는 부드러웠다. 밥알은 조금 단단했다. 퍼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국물은 곰탕다웠다. 새우젓과 다진양념으로 간을 맞추었더니 천상의 맛이 되었다. 이걸 왜 이제서야 먹는지 후회되었다. 하연옥에서 냉면만 먹던 일이 바보스러워졌다. 소주 한 병을 시켜 아내 한잔 먹고 나머진 내가 다 마셨다.
아내는 냉면을 먹었다. 그 맛이 바뀌지 않았으니 다행이라 여겼다. 밥 한 숟가락만 떠 먹자던 아내는 맑은곰탕에 담긴 밥을 제법 여러 숟갈 떠 먹었다. 냉면 남긴 건 내가 해치웠다. 둘이 이것도 먹고 저것도 먹었더니 배가 불렀다. 요즘 배가 너무 튀어나와 걸어다니는지 굴러다니는지 잘 모를 지경이어서 웬만하면 밥을 좀 줄이려고 했는데, 결국 실패했다. 부른 배 만지며 집으로 돌아왔다.
2020. 8. 29.
이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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