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극 전문 극단 ‘큰들’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들려주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그들이 마당극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요즘 인기 속에 공연 중인 <오작교 아리랑>, <남명>, <효자전>, <최참판댁 경사 났네>, <역마> 그리고 <정기룡> 같은 작품에서 큰들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작품을 구상하고 창작하고 다듬어 가는 과정에서, 그리고 마당판에서 한판 멋지게 놀면서 그들은 관객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2017년 6월 24일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진주 큰들 창립 33주년 정기공연 <오작교 아리랑>을 보면서 마당극의 묘한 매력에 빠지게 됐다. 그후 2018년 5월 산청군 동의보감촌에서 <효자전>을 보고 나서 그 매력에서 헤어나올 수 없음을 알게 됐다. 그날 나는 속 깊이 울었다. <효자전> 내용을 보고 울었고 이렇게 재미있는 걸 이제야 알게 된 것이 너무 후회스러워 울었다. 깊은 뉘우침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극단 큰들의 마당극 관람 행진이 2020년 8월 15일 현재 92회째를 기록하게 됐다. 어쩌면 올해 안에 100회를 채우지 않을까 싶다만, ‘코로나19’라는 괴물과 ‘비’라는 자연의 방해가 만만치 않아 어찌될지 장담할 수 없다. 물 흐르는 대로, 구름 떠가는 대로 하다 보면 다 제 스스로 되겠지.
다만, 모두가 바라고 큰들이 뜻하는 대로 공연이 순조롭게 열리기를 바랄 뿐이다. 또한 개인 일정도 우여곡절 없이 순탄하여 마음 먹은 대로 공연을 보러 갈 수 있기를 바란다. 공연 보러 갈 때 뜻 맞고 마음 맞는 누군가 함께 가면 좋겠고 혼자 가도 좋다. 그렇게 해온 지 벌써 몇 번째랴. 아, 아흔두 번째라고 했지.
앞서 언급한 작품 가운데 마당극 <정기룡>은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역마>는 꼭 한 번 보았다. 나머지 네 작품은 수없이 보았다. 마당극 작품을 보고 또 보면서 생각이 몇 가지로 모아졌다. 그렇게 모아진 생각은 곧 큰들이 우리 시대 관객들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메시지)가 아닐까 짐작됐다.
그것을 ‘극단 큰들의 마당극에는 ○○이 있다’라는 주제로 묶어볼 결심을 하게 됐다. 공연을 100번쯤 본 뒤 정리해 볼까 하다가, 마음 먹은 김에 휴가와 연휴 마지막 날 오후와 저녁 시간을 할애해 보기로 한다. 하다가 못하면 다음에 이어가기로 한다. 대략 다섯 가지 맥락을 잡았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논평도 아니고 분석도 아니고 비평도 아니고 해설도 아니다. 그저 마당극을 아주 열심히 보는 관객으로서 보고 느끼고 깨달은 바를 두서없이 적는 잡글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글을 굳이 쓰는 까닭은 다른 데 있지 않다.
이렇게 중간 결산 비슷하게 정리해 놓으면, 다음에 보게 될 큰들의 새로운 작품(가령 <정기룡>)을 더 쉽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혹시 모르지. 큰들 마당극을 처음 보러 가는 사람이 이 글을 미리 읽는다면 마당극을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지. 또 모르지. 마당극을 여러 차례 본 사람이라도 머릿속에 안개처럼 아롱아롱하던 것을 이 글을 읽으며 대충이라도 정리해 볼 수도 있을지. 그런 일은 있으면 좋고 없으면 그만이다.
1984년 창립 이후 36년째를 맞이한 큰들이 그동안 창작, 공연해 온 수많은 작품을 모두 드러내놓고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도 없지는 않았으나, 그건 완벽히 불가능한 일이기에 최근 3-4년 동안 보아온 것만을 대상으로 이야기를 풀어가 본다. 이야기의 끝이 어디인지를 나는 모른다.
첫째, 극단 큰들의 마당극에는 ‘역사’가 있다. 극단 큰들의 마당극에는 우리의 역사가 들어 있다. <남명>, <정기룡>은 조선시대 역사 인물을 소재로 삼은 경우이다. 임진왜란 때 남명 조식 선생의 제자 50여 명이 목숨을 걸고 의병장으로 나선 이야기는 매우 유명하다. 마당극 <남명>은 남명 조식(1501-1572) 선생의 일대기를 마당극 특유의 풍자와 해학, 익살 등으로 꾸몄다. 비장미와 엄숙미까지 갖춘 보기 드문 수작이다. ‘안으로는 경, 밖으로는 의’라는 경의사상을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생각하게 하는 명작이다.
큰들은 경의사상을 노래와 춤, 대사 등으로 여러 차례 보여준다. 학문하는 학자들은 강의실에서 토론회와 학술행사를 열어 경의사상을 현창할 수 있을 것이다. 눈빛 맑은 학생들을 앉혀놓고 강의를 하는 방법도 있다. 책을 내어 읽게 해도 좋다. 큰들은 마당극을 만들어 경의사상을 아주 쉽게 설명하여 주고 매우 중요하다고 가르쳐 준다.
우리는 마당극을 보면서 조선시대 이황과 자웅을 겨루던 뛰어난 선비가 우리 지역에서 살았다는 것을 배운다. 우리는 남명 조식 선생의 경의사상이 우리 시대에 왜 더욱 절실한지 스스로 깨닫게 될 것이다. 안으로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경’이요, 밖으로 정의로움을 실천하는 것이 ‘의’임을 마당극을 보는 도중에 부지불식간에 알게 될 것이다. 큰들은 남명 조식 선생의 경의사상이야말로 열심히 배우고 실천해야 할 우리 시대의 삶의 철학임을 웅변하고 있다.
정기룡(1562-1622) 장군은 조선시대 경상우도병마절도사, 울산부사, 삼도수군통제사 등을 역임한 무신이다. 임진왜란 때 바다에서는 이순신, 육지에서는 정기룡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용맹을 떨친 장수이다. 이순신 장군이 23전 23승의 전과를 올렸다면 정기룡 장군은 63전 63승을 기록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선무공신에서 제외된 비운의 무장이라는 기록도 있다고 한다. 마당극 <정기룡>은 아직 한번도 보지 못했다.
정기룡을 보면 알게 될 것 같다. 한 시대 영웅은 어떻게 태어나고 어떻게 성장하는지 느낄 수 있을 것만 같다. 나라가 위태로울 때 목숨을 던져 백성을 구하고자 한 장수에게서 용맹과 인간미를 동시에 느끼게 되지 않을까. 수많은 전공을 올려 나라를 구하고 백성을 살렸으면서도 역사 속으로 사라진 정기룡 장군을 다시 불러낸 큰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최참판댁 경사 났네>에는 일제강점기와 독립운동의 역사가 있다.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를 배경으로 일제강점기 농민들의 한숨이 형상화해 있다.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간도로 떠나는 젊은이들이 있고 그 와중에 일제의 앞잡이가 되어 독립군을 때려잡기 위해 눈에 핏대를 세우는 사람도 있다. 오늘날 우리가 평화와 번영,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니라 일제강점기 때 독립을 위하여 피 흘리며 죽어간 선조들 덕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연속극이나 연극, 영화, 소설은 무수히 많다. 모르긴 해도 마당극도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최참판댁 경사 났네>는 1시간 동안 어른 아이 할것없이 재미와 감동을 느끼며, 다시는 나라를 빼앗기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한다. 나라를 빼앗기는 불운의 시대가 만약 다시 온다면, 우리가 선택해야 할 행로는 어떤 것인지 일러준다. 소설 <토지>를 원본으로 한 마당극 한 편에서 우리는 역사의식과 시대의식 같은 걸 깨닫게 된다. 큰들이 <최참판댁 경사 났네>에서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런 것 아닐까.
<오작교 아리랑>에는 한반도 5천 년의 역사가 배경으로 깔려 있다. 5천년 동안 사이 좋은 이웃으로 살던 아랫마을과 윗마을이 갑자기 터진 총소리 이후 70년이 넘도록 갈라져 있었더라는 이야기는 곧 한반도의 현대사이다. 일제강점기에서 광복하여 민족 대단결의 시대로 접어들어야 했으나 불행하게도 남북전쟁이 가로막았다. 전쟁 이후 우리는 남북으로 대치하며 힘겨루기에 여념이 없었다. 민주 정부는 대화와 화해의 물꼬를 트기 위해 무척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보수 정부는 번번이 훼방을 놓았다.
<오작교 아리랑>은 서로 만나고 소통하고 대화하면 모든 것을 이해하고 풀어나갈 수 있음을 이야기해 주는 작품이다. 역사 속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미래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것을 일러준다. 아랫마을 사람과 윗마을 사람이 서로 만나 버나를 돌리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고 존중하면서 마침내 하나가 된다. 이런 이야기는 어찌 보면 매우 뻔한 이야기 같지만, 우리의 현실에 비춰놓고 보면 큰 교훈으로 다가온다. 관객들은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통일의 염원을 마당극을 통하여 대리만족하게 되고, 70년 넘도록 이뤄내지 못한 통일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작고 쉬운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라는 걸 문득 깨닫게 된다. 큰들이 우리에게 전해 주고 싶은 주제는 이런 게 아닐까 짐작해 본다.
큰들 마당극에는 우리의 역사가 있다. 아픈 역사도 있고 자랑스러운 역사도 있다. 그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역사를 외면하면 아픈 역사, 수치스러운 역사를 되풀이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마당극을 즐기면서 배운다. 그러고 보면 큰들의 마당극을 한 편 한 편씩 보노라면, 우리나라 5000년 역사가 고스란히 다 담겨 있는 것만 같다. 참 대단한 일이고 참 가슴 벅찬 일이다.
둘째, 극단 큰들의 마당극에는 ‘신화’가 있다. 신화란 무엇인가? 흔히 ‘우주의 기원, 초자연의 존재의 계보, 민족의 시원 등과 관련된 신에 대한 서사적 이야기’를 신화라고 한다. 신화는 지어낸 이야기다. 없는 사실이고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신화 속에는 우리들의 삶이 녹아 있다. 권선징악, 덕업상권, 과실상규 같은 활자화한 교훈도 사실 따지고 보면 신화에 다 나오는 이야기다. 민족마다 신화는 있다. 우리는 단군신화를 흔히 들먹인다. 우리 인간들과 다른 절대자를 신으로 상정해 놓고 그를 흠모하고 존중하고 따르는 것이다. 신이 말했다고 하면 무조건 따라야 하고 신이 정했다고 하면 두말없이 지켜야 하는 법이 되는 것이다.
마당극 <효자전>에서는 효심 어린 갑동이를 돕기 위해 지리산 산신령 세 명이 등장한다. 그중 한 산신령이 산삼할매이다. 산삼할매가 갑동이의 효심을 시험해 본 뒤 마침내 산삼을 점지해 준다는 내용이다. 이런 산신령의 등장이 곧 신화적 요소이다. 그 산신령과 함께 등장한 반달곰도 신화적 요소라고 볼 수 있다. 우리 겨레의 탄생신화인 단군신화에는 곰과 호랑이가 나온다. 곰은 마침내 인간이 된다. 곰을 다른 동물과 달리 신령스러운 존재로 인식하는 건 그 까닭이 있는 것이다. 산삼할매와 함께 등장한 곰은 갑동이의 의협심을 시험한다. 산신령의 까다로운 시험을 통과한 갑동이 산삼을 얻는다는 설정은, 우리네 인간사에서 지극정성을 다하면 마침내 하늘이 돕는다는 원리를 설명하는 것과 같다. 진인사대천명이라는 말이다.
또한 <효자전>에서는 저승사자도 등장한다. 저승사자는 죽은 사람의 혼령을 저승으로 이끌고 가는 사신이다. 저승사자가 죽은 혼령에게 “갑시다!”라고 하면 혼령은 꼼짝없이 끌려가야 한다. “이제 저 강만 건너면 저승이오!”라는 말 한마디에 이승의 모든 것을 잊고 강을 건너야 한다. 실제 저승사자를 본 사람도 있다고 주장하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저승사자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저승사자라는 것을 설정해 놓고, 그 저승사자를 하루라도 늦게 만나고자 한다. 저승사자가 무서우니까. 저승사자가 무서운 건, 저승사자를 만났다 하면 그것은 곧 나의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다. 저승사자 뒤에는 염라대왕이 있고 염라대왕은 나를 지옥으로 떨어뜨릴 수도 있고 천당으로 올려보낼 수도 있다. 이승에서 지은 죄가 많은 우리는 염라대왕 만나기를 죽기보다 더 무서워한다. 저승사자가 마당극에 직접 출연한 것은, 큰들이 우리들에게 저승사자 만나는 것도 무서워하지 않을 만큼 이승에서 착하고 성실하게 살라는 것을 일러주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그 착하고 성실함 가운데 으뜸은 효도일 것이다.
큰들은 마당극 <효자전>에 산신령과 저승사자를 등장시킴으로써 우리 인간들끼리 결론 지을 수 없는 선과 악의 시비, 우리가 다다르기 어려운 절대적인 지식과 인식의 경계, 인간 행동의 근본적인 원리 같은 것을 넌지시 보여준다. 효도하면서 착하게 살면 산신령이 도와줄 것이고, 그 반대로 살다간 어느날 저승사자가 우리를 데리러 올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공포 같은 것을 심어주고자 한 것은 아닐까.
셋째, 극단 큰들의 마당극에는 ‘전설’이 있다. 소설가 나림 이병주 선생이 “햇빛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라고 했다는데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 이병주 선생이 가장 먼저 이 말을 한 것인지 중국 고전 어디에 나오는 것을 적절하게 인용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전설은 무엇인가. 사전에서는 이렇게 정의한다. ‘학술적으로는 설화를 신화(神話)와 민담(民譚)과 전설로 분류한다. 전설은 민담과 달리 역사상 사건을 소재로 하고 증거물이 남아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전설은 역사상 사건을 소재로 하고 증거물이 남아 있다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그런데 역사상 사건도 실록에 나오는 게 아닐 수도 있고, 그 증거물이라는 것도 해석에 따라 이랬다 저랬다 하기 일쑤다. 어쨌든 뭔가 근거가 있는 이야기를 전설이라고 해두자.
<효자전>은 작품의 탄생이 전설에 기대고 있다. 산청군 동의보감촌 한의학박물관에 가면 이런 전설을 들을 수 있다. 2층 한구석에 전시해 놓은 모형들 앞에 서면 이런 말이 천장에서 들려온다. “민족의 영산 지리산은 약초의 본고장으로 유명합니다. 옛날 산청 지리산 기슭엔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갑동이라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오랜 병으로 고생하셨고, 효자 갑동이는 열심히 간호했지만 병은 깊어만 갔습니다. 산작약으로 어머니 병을 고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갑동이는 지리산 깊은 곳으로 들어가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마침내 산작약을 찾아냈습니다. 정성어린 효심과 지리산에서 자란 좋은 약초를 드신 어머니는 깨끗이 병이 나았고 어머니는 갑동이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았답니다.”
극단 큰들이 <효자전>을 창작하게 된 배경 전설이다. 큰들은 갑동이, 효자, 산작약(작품에서는 산삼)을 열쇠로 삼아 씨줄과 날줄을 엮어 한 시간 짜리 창작 마당극을 세상에 내놓았다. <효자전>은 우리가 익히 아는 소설 <동의보감>과 비슷한 듯하지만 완전히 다른 작품이다. 큰들 마당극을 보면서 ‘전설’이 어떻게 구체적인 이야기가 되고 그것이 또 어떻게 하여 1시간짜리 마당극으로 확장되는지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마당극 <효자전>에는 또다른 전설이 액자소설처럼 들어가 있다. 갑동이 어머니가 큰 병에 걸리자 갑동이는 산삼을 구하려고 한다. 동네 의원 임뻥아재가 갑동이를 꼬드긴다. 공동묘지 처녀 무덤을 파서 다리를 잘라 오자고 한다. 그 다리를 가마솥에 고으면 산삼이 나온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지금은 방송하지 않지만 한때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전설의 고향>에 곧잘 나오던 소재다.
전설 속 주인공이 공동묘지에 가서 무덤을 파헤친다. 어데선가 여우 울음 소리가 들린다. 무덤을 파고서는 관을 부순다. 그 관 속에 누워 있는 처녀 시신의 다리 한쪽을 자른다. 자른 다리를 옆구리에 끼고 걸음아 날 살려라하며 달려 내려온다. 그런데, 뒤에서 누군가 쫓아온다. 바로 다리가 잘린 처녀 시신이다. 시신이 남은 한쪽 다리로 절뚝거리며 주인공을 쫓아온다. 혼비백산하여 달리고 그 뒤를 바짝 쫓는 추격전이 벌어진다. “내 다리 내놔라!” 주인공은 마침내 집 안까지 도망와서 미리 물을 끓여 놓은 가마솥에 그 다리를 넣는다. 뒤쫓아오던 처녀 시신은 사라졌다. 한참 후 가마솥 뚜껑을 열었더니 그 안에 커다란 산삼이 있더라는 이야기다. 그 산삼 달인 물을 먹은 어머니는 병환이 씻은 듯이 나았다는 이야기가 결론이다. <전설의 고향> 해설자는 어느 지역 어느 마을에 가면 이런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고 구체적으로 일러준다. <전설의 고향> 마지막 해설을 들으면 그 이야기가 정말 실제로 있었던 사건 같이 여겨진다.
<오작교 아리랑>에도 전설이 나온다. 바로 ‘견우와 직녀’의 전설이다. 천상의 견우와 직녀는 어쩌다가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살 정도로 잘못을 저질렀다(옥황상제가 등장하는 것은 신화적 요소이기도 하다). 그래서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견우는 동쪽에, 직녀는 서쪽에 각각 떨어져 살게 됐다. 지극히 사랑하는 사이인 두 사람을 양쪽에 갈라 놓으니 두 사람의 눈물이 마를 날이 없다. 하여 1년에 꼭 한번씩만 만나게 해주는데 그날이 칠월칠석이다. 칠월 칠일 밤이라는 뜻이다.
단, 만나려면 까마귀와 까치가 다리를 놓아 주어야 한다. 견우와 직녀는 까마귀와 까치의 머리를 밟고 건너가야 만날 수 있다. 허황되어 보이는 이 이야기의 끝에 가면 이런 해설을 듣게 된다. “그때부터 칠월칠석 무렵이면 까마귀와 까치가 더 큰 소리로 울어대고, 이 새들의 머리가 벗겨진다. 왜냐 하면 견우와 직녀가 밟고 지나가기 때문이다.” 듣고 보면 실제인 것 같다. 하지만 전설이다.
우리 겨레는 전설을 여러 용도로 활용했다. 대표적인 게 후세의 교훈으로 삼는 것이다. 착한 일을 하면 상을 받고 나쁜 일을 하면 벌을 받는다는 권선징악이 대표적이다. 무덤을 파헤치는 건 유교사상이 근간을 이루고 있는 시대에 있을 수 없는 패악질이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 병구완을 위한 효심의 발로에서 시작된 일이라면 용서받을 수 있다는 뜻이겠다. 그렇다고 실제로 무덤을 파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무덤을 파헤치는 정도로 지극정성을 다하면 하늘이, 또는 산신령이 도와준다는 뜻이겠다. 큰들이 신화에 이어 전설을 마당극의 소재로 끌어온 것은, 재미도 있거니와 우리 겨레의 전설에서 배움직한 것, 교훈으로 삼음직한 것을 찾아보자는 암시는 아닐까.
넷째, 극단 큰들의 마당극에는 ‘문화’가 있다. 큰들의 마당극에는 우리 겨레의 다양한 문화가 곳곳에 숨어 있다. 숨어 있는 게 아닌데 굳이 ‘숨어 있다’라고 말하는 건 문화 자체가 주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문화는 무엇인가.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삶을 풍요롭고 편리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가고자 사회 구성원에 의해 습득, 공유, 전달이 되는 행동 양식’이라고 사전에 나온다. 때로는 사전의 설명이 더 어렵다. 주거문화, 음식문화, 결혼문화 이렇게 이어 붙이다 보면 ‘문화’가 무엇인지 더 잘 이해된다.
<오작교 아리랑>에는 우리 겨레의 전통 놀이문화인 ‘버나놀이’가 등장한다. 아랫마을 남돌이와 윗마을 꽃분이가 버르장머리 없이 부모의 허락도 받지 않고 결혼을 하려고 하자, 남돌이 부모와 꽃분이 부모가 이를 뜯어말리기 위해 혼례식장으로 달려간다. 거기서 양가 어른들은 서로 자기 집안이 훌륭하다며 입씨름을 벌인다. 결국 버나를 누가 더 잘 돌리는지 겨룬다.
아랫마을 부모와 윗마을 부모 사이에 오고 간 ‘버나’는 무엇인가. 아니, 그보다 먼저 양가 부모들이 서로 자기 잘났다고 자랑하며 예술적 재능을 겨룰 때 등장한 이 버나놀이란 무엇인가.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버나를 돌리면서 태어났다는 남돌이 아버지와, 고구려 시대 말 타고 활 쏘던 시절부터 재능을 익혀 왔다는 꽃분이 아버지. 그들이 함께 재주를 뽐내던 이 버나놀이란 무엇인가.
사전에서는 ‘남사당패 놀이의 두 번째 놀이. 쳇바퀴나 대접 따위를 두 뼘 가량의 앵두나무 막대기나 담뱃대 등으로 돌리는 묘기이다. 버나재비와 어릿광대가 재담(才談)을 주고받으며 진행된다.’라고 한다. 일반 사람이 아무데서나 쉽게 보기 힘든 버나를 마당극에서 보는 것도 새롭고 신기한데, 관객들을 신랑댁, 신부댁으로 나누어 버나 이어달리기를 하게 함으로써 버나 체험의 효과도 가져다 준다. 꽃분이가 아리랑을 부른 뒤 버나를 돌리다가 이것을 남돌이 아버지에게 던지고 다시 남돌이 아버지가 꽃분이 아버지에게 던지는 장면이 있다. 70년 동안 서로 등 돌리고 원수처럼 살아온 사람이라도 무엇인가가 가고 오고 하다 보면 쌓였던 앙금이 눈 녹듯 녹게 된다는 것을 잘 형상화하여 보여주는 것이다.
버나놀이는 <오작교 아리랑>의 주제를 형상화해 주는 가장 적절한 전통놀이이다. 큰들은 버나놀이를 보여주고 체험하게 함으로써 ‘우리 선조들은 이렇게 서로 화해하고 소통하는 법을 익히 알고 있었는데 우리들은 왜 이것을 잘 모를까?’라고 묻고 있다. 버나놀이 말고도 차전놀이 같은 것도 있긴 하지만, 마당판에서 제대로 놀아보려면 버나만한 게 없지 싶다. 큰들은 우리 겨레의 여러 가지 자랑스러운 전통놀이, 전통문화 가운데 버나놀이를 매우 적절하게 잘 활용했다.
<오작교 아리랑>에서는 전통혼례문화도 등장한다. 신랑과 신부의 복장도 옛 방식대로 재현한다. 신랑 측에서 함을 보낸다. 함진애비는 신랑 친구들이 맡는다. 함에는 온갖 패물과 오곡들이 들었다는데 실제로는 그런 것은 따로 보낸다. 함꾼들은 신부댁에 냉큼 들어가지 않으려도 실랑이를 벌인다. 혼례 이후 신랑을 매어 놓고 술 내놔라, 신부 노래하라고 재촉하는 동상례도 보여준다. 마당극에서는 신랑 댕기풀이라고 한다. 우리의 전통 혼례 풍습이자 문화가 마당극에서 재연되는 것이다. 이 혼례 장면은 마당극 <최참판댁 경사 났네>에서도 비슷하지만 다르게 변주된다. 전통적인 것을 아끼고 잘 계승하자는 뜻이 담긴 것일까.
<오작교 아리랑>에는 근현대 우리 사회 각종 경기대회에서 등장하곤 하던 응원문화도 녹아 있다. 남돌이 가족과 꽃분이 가족이 버나 이어달리기 경기를 할 즈음에 한쪽에서는 <아리랑 목동>에 맞춰 응원가를 부르고 다른 한쪽에서는 <아빠의 청춘>에 맞춰 응원가를 부른다. 이 두 노래는 청군 백군 나눠 운동회를 할 적에 가장 많이 부른 노래 가운데 둘이다.
<아리랑 목동>은 “야야, 야야야야~”로 시작하는 경쾌한 박자에서 집단의 무의식적인 합일성을 끌어낸다. 그 가사는 응원가와 사뭇 다르다. 나중에 “아리아리 동동, 쓰리쓰리 동동”이라는 대목에서도 응원단은 목청을 돋우게 된다. <아빠의 청춘>도 가사 자체는 응원가와 거리가 멀다. “이 세상에 누구 없으면~”으로 시작하는 대목과 “브라보, 브라보~!”라는 대목에서 응원하는 사람들의 감성을 돋운다. 가사 부분부분을 적당하게 바꿔 부르면(곧 노가바) 훌륭한 응원가로 재탄생한다. 요즘은 이런 노래 부르며 응원하지 않겠지만, 1970-1990년대 즈음에는 이 두 노래가 체육대회 경기장을 뜨겁게 달구기도 했다. 그런 응원문화를 큰들 마당극에서 잠시 기억해 낸다. 매우 유쾌하고 정겨운 추억이다. 마당극 보면서, 열심히 손뼉치며 목청껏 응원가 한 번 부르고 나면 일상의 스트레스가 눈 녹듯 사라진다.
<최참판댁 경사 났네>에서는 농경문화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극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이다. 마을 사람들이 신명나게 한 해 농사를 짓는다. 모심기를 형상화한 듯한 장면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한줄로 늘어서서 모를 심는다. 한 줄을 다 심으면 줄을 넘기는데 그런 장면까지 묘사된다. 농사를 지으며 부르는 노래는 노동요이다. 가사는 다 옮기기 어렵다. “일락서산에 해떨어진다. 어헐럴럴 상사디여~!”라는 대목은 잘 들린다. 그때 한 아낙이 머리에 바구니를 이고 온다. “새참 드시고 하이소~!”라는 대사도 들린다.
우리네는 농삿일을 각각 혼자 짓지 않았다. 두레(농촌에서 농민들이 농사일이나 길쌈 등을 협력하여 함께하기 위해 마을 단위로 만든 공동 노동 조직), 울력(마을사람들이 길흉사가 있거나 일손이 모자라 가사가 밀려 있는 집을 위하여 무보수로 노동력을 제공해 주는 협동 관행) 따위 전통 위에서 다 함께 모여 농사의 고단함을 잊곤 했었다. 그러자니 자연히 한 집에서는 새참을 준비해 오곤 했다. 주로 막걸리와 국수였겠지. 꽁보리밥에 풋고추를 된장에 찍어 먹는 건 점심밥이었을까. 아무튼 어려운 농사를 함께 모여 손발 맞춰 가며 해내는 풍습은, 기계화 영농이 발달한 요즘은 보기 힘든 풍경 아닐까. 이런 장면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끼게 되나. 기계문명이 발달하고 최첨단 시대를 걷는 오늘날 정작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공동체 의식, 이웃간의 정이라는 걸 느낄 수 있는 것 아닐까.
마당극 <역마>에서는 사당패 문화가 눈길을 끈다. 사당패는 ‘조선 후기에 각 지방을 돌면서 노래와 춤을 추던 유랑 예인 집단’를 뜻한다. 잘 모르는 부분이므로 ‘다음백과’를 뒤져본다.
“17~18세기에는 그들의 활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으며 단체의 수도 많았고 예술적 기량도 발전했다. 19세기에 이르러 사당패들의 활동무대는 농촌으로 옮겨졌다. 그 주요 원인 중의 하나는 판소리·잡가 등을 전문으로 하는 자들의 역량이 강화됨에 따라 이들과 예술적으로 기량을 겨룰 수 없었던 탓이다. 사당패들의 공연내용은 당시 유랑민의 처지를 잘 반영하고 있으며 조선 후기 새롭게 대두되는 신흥예술의 양상을 잘 드러내준다. 그들의 활동근거지는 경기도 안성 청룡사, 경상남도 하동 쌍계사, 황해도 구월산 패엽사 등의 절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제의 민족문화말살정책에 의해 활동이 위축되면서 소멸되었다. 지금은 남사당패가 남아 있어 그 잔재된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이런 사당패 문화가 마당극 <역마>에 등장하는 건 우연이 아니다. 바로 하동 쌍계사가 사당패의 활동 근거지 가운데 한 곳이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에 강제로 없어지기 전까지 쌍계사를 중심으로 한 사당패가 전라도로는 구례, 남원으로, 경상도로는 하동, 진주 등지로 진출했을 것이다. 이러한 것을 근거로 하여 마당극 <역마>에서 이야기를 이끌고 가는 주된 무리가 사당패로 설정됐을지도 모르겠다. 큰들은 자신들을 사당패라고 여기는지도 모르겠다. 큰들문화예술센터를, 또는 극단 큰들을 사당패와 같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완전히 다른 것이라고도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마당극 <역마>에서는 이른바 ‘이야기꾼 문화’도 만날 수 있다. 극속 주인공 성기는 역마살이 끼어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어릴 때부터 이를 간파한 그의 어머니 옥화는 성기를 쌍계사에 의탁한다. 하지만 성기는 절에만 붙어 있을 수 없다. 화개장터에 수시로 나타나는 이야기꾼의 이야기에 매료됐다. 그 이야기꾼은 <홍길동전> 같은 소설을 읽어주는 사람이다. 그냥 읽어만 주는 게 아니다. 마치 무성영화 시절 변사처럼 자신이 소설속 화자 또는 관찰자가 되어 이야기를 전달해 주는 것이다.
<역마>에서는 <홍길동전>을 읽어 줌으로써 역마살이 낀 성기의 방황을 부추긴다. 하지만 어찌 홍길동전만 읽어주었을까. 춘향전, 토끼전, 흥부전 같은 판소리 고전소설에서부터 임경업전, 박씨전 같은 위인전도 읽어주지 않았을까. 이야기꾼은 요즘말로 바꾸면 텔레비전이고 라디오이고 영화이고, 어쩌면 인터넷 같은 역할을 한 셈이다. 변화무쌍한 바깥 세상의 이야기를 산간 오지 벽지에까지 속속들이 전달해 주는 매개였던 것이다. 그 이야기꾼의 이야기를 들으며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배우고 나아가 살아갈 바를 깨쳤던 것이다. 선생 아닌 선생이라고 할 만하다. 그런 이야기꾼이 앞서 말한 변사로 바뀌고 소설가로 바뀌어 가지는 않았을까.
다섯째, 극단 큰들의 마당극에는 ‘노래’가 있다. 마당극 <역마>에는 <봄날은 간다>와 <낭랑 18세>라는 노래가 있다. 송창식 노래도 한 곡 있는 듯한데 제목을 잘 모르겠다. 주제곡은 <봄날은 간다>인 것 같다. 맨 처음 옥화가 평상의 먼지를 닦으면서 부르는 노래가 이 노래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한국인의 전통적 정서를 건드린다. 1954년 만들어진 이 노래가사는 <역마>에 흐르는 사랑과 이별, 기쁨과 슬픔의 정서가 그대로 녹아 있다.
처음 <봄날은 간다>는 서럽고 애잔하게 울려퍼진다. 맨 마지막에는 단조곡으로 시작하여 경쾌한 트롯으로 맺는다. 자신들의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희망차게 새 출발하겠다는 다짐으로 읽힌다. 계연이 떠난 뒤 그녀가 좋아하던 엿장수로 변신한 성기가 길 떠나면서 부르는 노래기이도 하다. <봄날은 간다>의 가사와 정서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은 이 마당극을 받아들이는 데 하늘과 땅만큼 다르게 해석할 것이라고 본다. 탁월한 선곡이다.
<낭랑 18세>라는 노래도 나온다. 계연이 할아버지 같은 아버지 체 장수와 함께 옥화주막에 등장할 때다. 계연은 극중에서는 16살로 나온다. 이 노래는 1940년대에 만들어졌다. 계연이 처음 등장할 때 이 노래를 부르는 건 의미심장하다. 여리디 여린 소녀의 감성이 잘 드러난다. “소쩍꿍새가 울기만 하면 떠나간 그리운 님 오신댔어요”라는 가사도 이 극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16년 동안 아버지를 따라 조선 팔도를 유랑한 계연이 16살이나 되었으니 사랑을 기다리는 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 곧이어 만나게 될 성기와 곧장 사랑에 빠질 것임을 예고하는 것 같다. 노래 한 곡에도 복선이 있고 상징이 있는 것 같다. “오신댔어요”를 몇 번 되풀이하는 건 그만큼 간절하다는 뜻 아닐까.
큰들은 마당극에 삽입할 노래 한 곡을 정하는 데도 많은 것을 고려하는 듯하다. 처음 들으면 마당극 주제와 사뭇 다른 것 같은데 결국은 주제와 내용을 더욱 도드라져 보이게 만드는 노래를 고른다. 다른 작품도 보자.
<최참판댁 경사 났네>에서는 조준구가 <내 꺼야>를 부른다. 최참판댁 곳간 열쇠를 뺏어가서 마치 자기 재물인 것처럼 펑펑 쓰면서 “이것 저것 모두 다 내 꺼야!”라고 외친다. 탐욕과 이기심의 극치를 보여주는 노래로 제격이다. <신독립군가>도 부른다. 독립군과 관객들이 다 함께 태극기를 휘날리며 힘차게 부르는 노래다. “신대한의 독립군의 백만 용사야, 조국의 부르심을 네가 아느냐”로 시작하여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독립문의 자유종이 울릴 때까지 싸우러 나가자”로 끝난다. 일제강점기 독립군의 심리와 결의를 이보다 더 잘 드러내는 노래가 있을까. 이 작품에서는 또한 <열일곱 살이에요>라는 노래도 들을 수 있다. 어른 서희와 길상이 혼인하는 대목이다. 실제 서희가 혼인할 때 열일곱 살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혼인을 앞둔 여인의 설레고 부끄러운 감성이 잘 담겼다.
<효자전>에서는 먼저 <뱃노래>가 나오다가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갈까 산으로 갈까”라는 노래로 바뀐다. 개구쟁이 갑동이가 동네 친구들과 함께 물놀이 가는 대목이다. 한양 가서 내의원 시험에 합격한 귀남이가 대감들과 기생놀음을 하는 대목에서는 <황진이>라는 노래가 나온다. 가수 박상철이 2007년에 부른 노래다. 한양에서 내로라하는 대감들이 기생을 끼고 술잔치를 벌이는 대목에서 부르는 노래 치고는 가장 알맞은 곡이다. 곡이 경쾌하기도 하여 마당극 배우들이 신나게 춤을 추는 장면과도 무척 잘 어울린다.
<오작교 아리랑>에서는 제목이 아리랑인 만큼 아리랑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맨 처음과 맨 마지막에는 주제곡이 나온다. “오늘은 칠월칠석 까막 까치 다리 놓아 견우 직녀 만나는 날. 은하수 오작교에 서로 만나 얼싸안고 어화둥둥 좋고 좋네”라는 노래다. 견우와 직녀가 만나듯 아랫마을 남돌이와 윗마을 꽃분이가 만나고, 그것처럼 남한과 북한도 서로 만나 어화둥둥 좋고 좋은 시절을 만들어보자는 염원이 담겼다.
<오작교 아리랑>에서는 꽃분이가 부르는 노래가 또 따로 있다. 극단 1팀은 이전에는 <울릉도 트위스트>를 불렀는데 최근에는 김수희의 <남행열차>를 부른다. 극단 2팀은 조용필의 <여행을 떠나요>를 부른다. 이 곡들은 어떻게 선정됐을까. 단순히 곡이 경쾌하기 때문에 춤추기 좋아서? 각각의 이유로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노래라서?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다.
큰들 마당극을 보면 이미 있던 유행가를 그대로 사용하거나 가사와 곡조를 살짝 바꿔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뿐만이 아니다. 큰들은 마당극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새로운 곡을 창작하기도 한다. <남명>이 대표적이다. 남명에는 <배움의 길>이라는 창작곡 말고도 두 곡이 더 나온다. 가사는 남명 조식 선생의 경의사상을 풀어 쓴 것이다. 좀 길지만 각각 소개해 둔다.
<배움의 길> “백성은 물이요 임금은 배라.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엎을 수도 있다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엎을 수도 있다네. 안으로는 경 밖으로는 의. 청렴하고 정의로운 선비들이 되세. 백성 위한 배움 백성 위한 실천. 백성들의 웃음소리 얼씨구나(좋다).”
<곡명을 알 수 없음> “백성은 물이요, 하늘이라. 나라의 귀한 근본이라. 찰박찰박 배 띄워라. 임금은 물 위에 떠가는 배, 물이 있어 떠가는 배. 물은 배를 띄우지만 엎을 수도 있다네.”
<백성은 물이요 하늘> “가세 가세! 우리들 일어나. 실천과 행동 스승님의 가르침 백성은 물이요 하늘이니 백성을 구하리라. 가세 가세! 우리들 일어나. 남명의 정신 스승님의 뜻 따라 험하고 어두운 이 세상을 우리가 밝히리라.”
<남명>에서는 또 다른 노래 한 곡이 나온다. <앵두나무 처녀>라는 노래인데 마을 아낙들이 우물가에 모여 앉아 빨래하는 장면에 등장한다. 이 노래는 <남명> 작품에서 가장 웃기는 대목이기도 하고, 그래서 가장 비극적인 장면으로 전환되는 부분에 놓여 있다.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 처녀가 바람 났다는데 왜 바람이 났을까. 노래에서는 사랑 찾아 떠나는 바람일 것이다. 하지만 마당극 <남명>에서는 빚 때문에 야반도주하는 백성들의 슬픈 사연이 묻어 있다. 슬프고도 웃기고 웃기면서도 슬픈 대목에 걸맞은 기막힌 선곡이다.
큰들은 마당극을 만들면서 관객들을 웃기고 울리기로 작정한 극단이다. 웃길 때도 울릴 때도 노래가 요긴하게 쓰인다. 우리가 흔히 듣던(들었던) 노래를 마당극의 내용에 맞춰 적절하게 사용함으로써 가사와 곡조를 새롭게 해석하게 해 준다. 잊고 있던 추억이 떠오르기도 하고 생각지도 못했던 교훈을 찾아내기도 한다. 마당극은 배우들의 대사와 몸동작, 그리고 춤이 주를 이룬다. 춤을 출 때는 반드시 노래가 있게 마련이다. 그 노래들이 왜 마당극에 쓰이게 됐는지를 잠시 생각해 보는 것도, 큰들의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극단 큰들의 마당극에는 ‘역사’가 있고 ‘신화’가 있고 ‘전설’이 있고 ‘문화’가 있고 ‘노래’가 있다. 이 외에도 수많은 문화 예술적 기제가 숨어 있다. 주제를 잘 드러내고 이야기를 부드럽게 이어가며 때로는 극적 반전을 위한 장치들이 곳곳에 놓여 있다. 오늘은 대략 다섯 가지만 정리해 놓고자 한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른 시각에서 다시 정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글은 논평도 아니고 분석도 아니고 비평도 아니고 해설도 아니다. 그저 마당극을 아주 열심히 보는 관객으로서 보고 느끼고 깨달은 바를 두서없이 적은 잡글이다.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2020. 8. 17.
사흘 휴가와 사흘 연휴 보내는 마지막 날
이우기 씀
(이 글은 8월 17일 현재 내용을 고치고 더하고 빼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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