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4일은 특별한 날이 되었다. 광복절 하루 앞날이다. 택배 없는 날이다. 8월 12일 시작한 나의 여름 휴가 마지막 날이다. 국가적·민족적으로 중요한 날이고 사회적으로 중요한 날이고 개인적·가정적으로 중요한 날이다. 중요한 일이 이렇게 겹치면 그냥 특별한 날이 되는 것이다.
또 한 가지 더 있다. 극단 큰들 배우 가운데 최샛별 씨는 지난해 6월부터 배우로서 활동을 하지 못했다. 아기를 임신하고 태교하고 출산하고 키우느라 마당을 잠시 벗어난 것이다. 그러고서 벌써 1년 하고도 2개월이 지났다. 이날은 최샛별 씨가 다시 마당으로 복귀하는 날이다. 모르는 사람은 통 모르겠지만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 사건은 8월 14일을 ‘더욱’ 특별한 날로 만들어 준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최샛별 씨는 2006년에 큰들에 입단한 14년차 중견 배우다. 최근에는, 그러니까 임신, 출산 등의 이유로 잠시 마당을 떠나기 전에는 극단 큰들의 모든 작품에 출연하고 있었다.
<오작교 아리랑>에서는 윗마을 처녀 꽃분이의 어머니다. <효자전>에서는 둘째아들 갑동이의 동네 친구, 한양 술집 기생, 저승사자 등을 맡았다. <남명>에서는 남명의 제자와 동네 아낙, 의병장 등을 맡았다. <최참판댁 경사 났네>에서는 어른 서희 역을 맡았다. <역마>에서는 광대패, 이야기꾼 등의 역할을 맡았다.
최샛별 씨는 2월 26일 예쁘고 건강한 ‘이세아’를 낳았다. ‘이 세상을 아름답게’ 이런 뜻이다. 그러고 보니 아기의 아버지는 이씨인가 보다. 그가 누군고 하니 바로 극단 큰들의 배우 이인근 씨다. 이인근 씨는 2015년에 큰들에 입단했으니 한참 후배가 된다. 잘은 모르겠는데 최샛별 씨가 나이도 좀 많은 듯하다. 아무튼 이 부부는 큰들이 산청마당극마을로 옮긴 뒤(2019년 10월 25일 개소식) 처음으로 아기를 낳았다. 모두가 축복하고 모두가 사랑했다. 한 아기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데, 극단 큰들은 그런 준비를 이미 다해 놓은 것이다.
최샛별 씨의 연기는 새삼스레 말할 필요가 없다. 개인적인 판단인데, 많은 배역 중 가장 돋보이는 역할이 꽃분이 어머니다. 부모의 허락 없이 결혼을 하려는 아랫마을 남돌이와 윗마을 꽃분이가 있고, 그 남돌이 부모와 꽃분이 부모는 이들의 결혼을 뜯어말리기 위해 결혼식장이 있는 산청으로 달려간다. 그사이에 두 집안 어른들이 좌충우돌 재미있는 사연을 만들어낸다. 자연스럽게 이들 두 부모가 이 마당극의 주인공이 된다. 최샛별 씨는 <오작교 아리랑>의 주연배우이다. 개인적인 판단인데, 최샛별 씨 연기가 두 번째로 돋보인 것은 <역마>에서 이야기꾼으로 나왔을 때이다. 소름이 돋았던 기억이 있다.
남돌이 어머니와 꽃분이 어머니는 마당에 등장할 때부터 허리가 꼬부라진 할머니다. 시종일관 허리를 직각으로 구부린 채 연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공감하는 관객 할머니, 어머니가 많고, 젊거나 어린 관객들도 배꼽을 잡는다. 최샛별 씨는 마당극 내내 매우 인상 깊은 연기를 펼침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드러내 왔다. 우리 어머니와 동네 친구분들을 모시고 공연을 보러 갔다. 공연이 끝나자 어머니네들은 최샛별 씨를 향하여 이구동성으로 “아요, 우찌 그리 잘하요?”, “우찌 그리 잘 떠요?”라고 몇 번이나 물었더랬다.
그런 최샛별 씨가 8월 14일 <오작교 아리랑> 꽃분이 어머니로 복귀한 것이다. 나는 휴가 마지막 날을 가족과 함께 보내기 위해 여수에 가 있었다. 향일암 갔다가 돌아오면서 엠비시경남 신동식 기자께서 추천해 준 ‘동서식당’에서 삼겹살 목살을 구워 먹었다. 고향이 여수인 신동식 기자는 ‘여수’를 짧게 발음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어수’라고 하는 게 맞단다. 저녁 7시 산청 동의보감촌에서 <오작교 아리랑>을 시작할 즈음 우리는 여수 오동도 부근에서 숙소를 잡고 있었다. 첫 복귀작을 함께하고 싶었으나 어쩔 수 없었다. 그건 그렇고 최샛별 씨가 <오작교 아리랑>에 복귀했다고 했는데, 여기에는 또한 오묘한 재미가 숨어 있다.
극단 큰들은 2020년 코로나19로 인하여 공연을 예년처럼 할 수 없었다. 예정돼 있던 각종 행사가 줄줄이 취소되니 그 행사장에서 마당극을 해야 할 큰들에도 큰 영향을 미친 것이다. 다양한 방법으로 극복 방안을 찾던 큰들은 ‘극단 2팀’을 만들어 냈다. 그러니까 원래 이 작품 저 작품을 공연하던 팀을 ‘극단 1팀’으로 밀어올려 놓고 새로이 한 팀을 더 만든 것이다. 알고 보니, 극단 2팀의 탄생은 코로나19 상황에서 궁여지책으로 생각해낸 게 아니라 무려 7-8년 전부터 궁리해 오고 고민해 오던 위대한 과업이었다. 2팀은 ‘막 해내는 공연팀’이라는 뜻으로 ‘막공팀’으로 불리기도 한다.
아무튼 극단 1팀과 2팀은 동시에 두 곳에서 공연을 할 수 있게 됐다. 1팀은 <남명>, <최참판댁 경사 났네>를 도맡아 하고 <오작교 아리랑>은 1팀과 2팀이 공연할 수 있는 체제를 갖췄다. ‘참 대단하다’라는 말은 이럴 때 하는 말이 아닌가. 2팀은 5월 30일 동의보감촌 잔디마당에서 첫 공연을 올렸다. 1팀 배우들은 2팀의 첫 출발을 축하하고 격려하기 위해 동의보감촌으로 죄다 몰려왔다. 당시 나는 “익숙하지만 완전히 다른 <오작교 아리랑>이다.”라고 말했다. 농담을 좀 섞어서 “이제 1팀은 잊어라!”라고 외치기도 했더랬다.
5월 30일 이후로 동의보감촌에서는 극단 2팀이 <오작교 아리랑 >을 공연해 왔다. 그러다가 7월 18일 토요일에는 극단 1팀이 강원도 양구에서, 2팀이 산청 동의보감촌에서 동시에 공연하는, 정말 꿈 같은 일이 현실에서 벌어졌다. 8월 15일에도 산청과 하동에서 각각 <오작교 아리랑>과 <최참판댁 경사 났네>를 공연하려던 것이었는데 하동 쪽 수해 때문에 행사가 연기되는 바람에 하동 공연은 미뤄졌다. 참고로, 극단 2팀은 당분간은 <오작교 아리랑>만 공연한다고 한다.
최샛별 씨는 어느 팀의 꽃분이 어머니로 복귀했을까. 2팀이다. 1팀에서 꽃분이 어머니는 하은희 씨가 호흡을 맞췄다. 이미 1년은 넘었다. 5월말 새로 탄생한 2팀에서 꽃분이 어머니는 작가이기도 한 임경희 씨가 맡았다가 이번에 최샛별 씨에게 자리를 내어준 것이다. 임경희 씨의 색다른 연기 또한 많은 웃음을 던져주었는데 더 여러 번 보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아무튼 그건 그렇고.
최샛별 씨는 극단 2팀의 <오작교 아리랑>에서 꽃분이 어머니로 돌아온 것이다. 8월 14일 복귀 첫 공연 이후 그는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동료들이 꽃다발을 안겨주고 케이크에 불을 붙여 놓고 둘러서서 온 세상 사람이 다 아는 ‘생일축하 곡’에 맞춰 “복귀 축하합니다~!”라고 노래 부르는 가운데 행복에 겨워하는 최샛별 씨는 그예 눈물을 흘리고 만 것이다.
큰들은 페이스북에 “눈물 흘리는 최샛별 단원 ㅠㅠ 임신과 육아로 2년 만에 다시 무대에 선 최샛별 단원이 공연 후 축하 꽃다발을 받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오늘 공연에서 어땠냐구요? ‘명불허전’이 이럴 때 쓰는 말인가요? 마당판에 나오자마자 관객들 웃음 빵빵!!”이라고 올렸다.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을 무엇으로 달랠까 싶었다.
드디어 8월 15일 토요일이 되었다. 나는 여수엑스포 행사장 근처 어느 작은 호텔에서 깨었다. 방 안은 냉방기 덕분에 제법 시원했지만 창 밖 풍경은 아슬아슬했다. 뉴스에서는 폭염 특보, 폭염 경보 같은 말이 쉴새없이 흘러나왔다. 아무리 휴가라고 해도, 아무리 가족끼리 오랜만의 여행이라고 해도 어디를 싸돌아다닐 엄두가 나질 않았다.
순천만으로 향했다. 10시 30분쯤 ‘순천만가든’에서 아점을 먹었다. 전라도 음식의 진미를 만끽했다. 배 터져 죽는 줄 알았다. 식당 주인은 “보통 때 손님이 100명 왔으면 지금은 10명도 안 온다.”라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 집은 <맛있는 녀석들>을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 이 근처 식당 가운데 대표라고 할 만하다는 말이다. 다른 식당 주인님들 오해 없기를 바란다. 우리는 순천만 쪽으로 걸어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입구 근처 생태관 건물 안에서 이리저리 시간을 보내다가 진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는 차가 많았다. 길바닥은 뜨거웠다. 집에서 선풍기 켜 놓고 한 시간 늘어지게 잤다.
이윽고 나는 주섬주섬 옷을 입고 모자를 쓰고 길을 나섰다. 마당극 <오작교 아리랑> 190회째 공연을 보러 가는 것이다. 최샛별 씨의 복귀 두 번째 공연을 보러 가는 것이다. 2017년에 시작한 나의 마당극 관람 행진 92번째를 이어가기 위해 몸을 일으킨 것이다. 약간의 어지러움이 없지는 않았으나, 그것을 충분히 이겨낼 설렘과 흥분이 몸 안에서 용틀임하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마당극을 보러 갈 때의 내 모습을 누군가 본다면, ‘저 사람 꽤 진지하구나!’라고 생각할 것이다.
나는 산청 청소년 수련관 근처에 먼저 갔다. 바로 8월 14일 산청 군민을 비롯한 뜻있는 사람들이 세운 ‘산청 평화의 소녀상’을 뵙기 위해서였다. 평화의 소녀의 얼굴은 평화로웠다. 평화로울 수 없게 만드는 온갖 잡것들의 준동에도 불구하고 소녀상은 평화롭게 앉아 있었다. 왕산과 필봉을 향하여 말없는 말을 수없이 하고 있을 소녀상 앞에서 잠시 묵념하고 돌아섰다. 광복절 태극기는 바람에 힘차게 펄럭이고 있었다. 산청 사람들이 이룬 큰 기적에 목이 멘다.
왕산 아래 동의보감촌은 어느새 시원한 바람이 내려앉고 있다. 잔디는 파릇파릇 뾰족뾰족 잘 자랐다. 주변은 고즈넉했다. 극단 큰들의 마당판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배우들이 호흡을 맞춰보고 있다. 최샛별 씨가 버나 던지기 연습을 하고 있다. 나는 그 옆을 모른 척 지나갔다. 국수 한 그릇이 궁했던 것이다. ‘한수금 식당’에는 큰들 단원 세 명이 앉았다. 빈 자리 하나는 내가 차지했다. 국수와 제육볶음을 나눠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6시 20-30분까지만 해도 주변에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 어디에서 나타나는 건지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나이 지긋한 어른을 모신 젊은이들이 아이들 손을 잡고 나타났다. 3대가 함께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객석을 차지한 사람이 어느새 한가득이다. 더 이상 손님을 받지 못할 정도다. 햇살은 왕산을 넘어갔고 바람은 왕산을 비켜 분다. 공연 시작 전 잠시 최샛별 씨와 마주쳤다. 나는 빙그레 웃어주었다. 어제 못 와서 미안하다고도 했다. 주먹을 가볍게 마주치면서 응원하는 마음을 전했다. <오작교 아리랑>이 시작됐다.
최샛별 씨가 등장했다. 그이의 속사포 같은 ‘궁시렁거림’은 변함이 없다. 관객들의 반응이 예사롭지 않다. 남돌이 어머니(박진묵 씨)가 달궈놓은 분위기를 한층 더 높였다.
양팔을 힘차게 휘젓는 꽃분이 아버지가 말한다.
“그~, 버스 놓치갔어! 날래 오라우!”
허리가 꼬부라진 꽃분이 어머니가 대답한다.
“날래 가고 있지비, 내래 지금 날래 가고 있지비. 아, 내래 날래 가고 싶어도 이 다리가 아파서 날래 갈 수 없는데 저놈의 할바이 자꾸 날래 오라 날래 오라….”
꽃분이 아버지가 다가가 또 말한다.
“아~!, 궁시렁거리지 말고 날래 오라우~!”
꽃분이 어머니가 대답한다.
“궁시렁거리는 기 아이지비. 내래 궁시렁거리는 기 아이고, 내래 날래 갈 수 없는 이유를 날래 설명하고 있는 거인데, 할바이 자꾸 날래 오라 날래 오라….”
꽃분이 아버지가 짜증 섞인 투로 말한다.
“그만 좀 궁시렁거리고 파란불일 때 날래 오라-!”
그러니까 이 두 분은 횡단보도 근처를 지나고 있는데, 파란불이 들어와 사람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갈 때 곧장 건너가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꽃분이 어머니가 또 태연하게 설명한다.
“파란불일 때 가야 되는 건 자알~ 알지만, 파란불이라고 해서리 날래 갈 수도 없고 날라갈 수도 없는데, 저 할바이….” ‘날라갈 수도 없는데~’라고 말할 때는 숫제 양 팔을 새 날개처럼 휘젓기도 한다. 빨리 걸을 수 없는 본인도 답답하고 갑갑하긴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꽃분이 아버지는 평생 동안 들어온 궁시렁거림인지라 복장이 터진다. 가슴을 친다. ‘아이고 답답해!’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저노무 할망구랑 내가 어찌 평생을 살았을까’ 싶었을 것이다. 두 부부가 평생 동안 알콩달콩 살아왔음을 느낄 수 있다.
파란불이 빨간불로 바뀌었다. 길을 건너던 사람은 재빨리 건너가야 한다. 자동차 경음기 소리가 빵빵 빽빽 울린다. 꽃분이 아버지가 외친다.
“임자! 빨간불이야!”
큰일났다. 꽃분이 어머니가 혼비백산한다. 들고 있던 손가방을 옆으로 던진다. 관객들은 조마조마해진다. 이 상황을 어찌할 것인가. 꽃분이 아버지가 “임자, 조심하라!”라고 외치는 가운데 꽃분이 어머니는 땅재주를 번쩍번쩍 두 번 넘는다. 땅재주는 곧 텀블링이다. 꽃분이 어머니는 땅재주를 넘어서 횡단보도를 순식간에 건너간 것이다. 관객들 눈이 휘둥그레진다. 허리가 구부러지고 다리가 발발 떨려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던 할망구가 땅재주로 위기를 순식간에 넘다니!
이 장면은 <오작교 아리랑>에서 볼 수 있는 여러 명장면 가운데 하나이다. 허리가 직각으로 구부러진 할머니가 젊은 사람에게도 쉽지 않은 땅재주를 멋들어지게 선보인 것이다. 관객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손뼉을 친다. 반전에 반전의 묘미가 가득 숨은 마당극에서 조그마한 반전의 매력을 짧은 순간에 보여준 것이다.
이 장면에서 최샛별 씨는 중풍 걸린 할매처럼 머리를 쉴새없이 좌우로 흔든다. 어릴적 동네에서 나이 드신 어른들이 하루 종일 머리를 오른쪽 왼쪽으로 가볍게 흔드는 것을 본 적 있는데 이 모습이 그 모습과 영락없이 똑같다. 최샛별 씨는 머리를 흔드는 가운데 다리 또한 쉴새없이 떤다. 평생 농삿일에 시달리고 자식들 뒤치다꺼리에다 남편마저 웬수 같았던지라 온몸이 성한 데가 없다. 이런 저간의 사정을 한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연기하는 것이다.
최샛별 씨는 극이 끝날 때까지 중풍 걸린 할매 연기를 매우 잘해 낸다. 1팀에서 꽃분이 어머니 역을 ‘하는’ 하은희 씨와, 2팀에서 꽃분이 어머니 역을 ‘하던’ 임경희 씨와 똑같으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다른 최샛별 씨만의 연기가 돋보인다. 참고로 나는 임경희 씨의 ‘가위뛰기’를 처음 보던 날 의자가 뒤로 넘어지는 줄 알았다. 그뿐이랴. 최샛별 씨 대신 하은희 씨가 처음 나왔을 때는, 나는 그가 누군지 한동안 알아보지 못했다. 그들은 변신의 귀재다.
마당극이 끝났다. 배우들이 관객들에게 인사를 한다. 모두 손을 흔들면서 퇴장한다. 동작 빠른 관객들은 기지개를 켜면서 만면에 웃음을 가득 띤 채 일어선다. 이때 어떤 목소리가 들린다. “고맙소! 대한 독립 만세~!” 최샛별 씨 목소리다. 모두가 ‘아, 오늘이 광복절이구나’라고 잠시 생각한다.
아직 끝이 아니다. 배우들이 버나, 버나채 따위 소품을 들고 나가는데 최샛별 씨는 커다란 한반도 지도가 그려진 버나를 돌리던 굵고 긴 채를 들었다. 아직도 허리가 구부러져 있다. 그는 “아이고! 아이고!”라면서 무대 밖으로 나간다. 그에겐 아직 극이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최샛별 씨는 천생 배우다. 최샛별 씨의 연기를 여기저기서 자주자주 보고 싶지만, 우선은 극단 2팀 소속으로 <오작교 아리랑>에만 출연한다고 한다. 사랑스러운 세아도 키워야 하니까.
(이런 마지막 장면은 미리 생각해 둔 것일까, 아니면 즉석에서 나온 것일까. 미리 생각해 둔 것이라면 최샛별 씨 혼자 생각한 것일까, 아니면 연출 등 다른 배우들과 작전을 짠 것일까. 나는 그런 게 좀 궁금해진다. 궁금함은 마당극을 즐기는 또 다른 재미다.)
배우는 무대에 있어야 한다. 거기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할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존재 이유이니까. 큰들 배우로 있으면서 결혼하고 아이 낳고 다시 마당으로 돌아와 혼신의 연기를 다할 수 있는 그이는 무척 행복할 것이다. 최샛별 씨를 비롯해 관객의 환호와 손뼉을 들으며 신들린 듯 연기하는, 모든 큰들 가족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여기서 또 하나 재미 있는 일이 있다. 이야깃거리가 무궁무진하다. 최샛별 씨는 극단 2팀의 <오작교 아리랑>에서 꽃분이 어머니로 돌아왔다. 그러면 꽃분이 아버지는 누구일까. 그는 바로 이전의 극단 1팀에서 꽃분이 아버지를 연기하던 오진우 씨이다. 오진우 씨는 지난해 10월말 어찌어찌하다가 허리를 삐긋하여 한동안 쉬었다. 요양과 치료를 한 것으로 안다. 오진우 씨는 또 누구인가. 최샛별 씨 못지않게 이 작품 저 작품에서 주연급 연기를 해오던 분이다.
(알고 보면 극단 큰들 배우들은 한 작품에서는 주연급, 다음 작품에서는 중간 주연급, 또 다음 작품에서는 조연급, 또또 다음 작품에서는 배역 없음 이런 식으로 조직화해 있다. 대체로 그렇다. 대체로 그렇다는 말은 안 그런 경우도 있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긴 하다.)
오진우 씨는 7개월가량 마당에서 사라졌다가 극단 2팀의 <오작교 아리랑>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앞서 말한 대로 2팀 창단 첫 공연이 열리던 5월 30일 돌아온 것이다. 나는 2017년 큰들 창립 정기공연부터 마당극을 열심히 보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늘 꽃분이 아버지는 오진우 씨인 것으로 알아 왔다. 그러니까 오진우 씨 이외의 배우가 그 연기를 하는 것을 상상해 본 적이 없다. 그러다가 어쩌다가 일이 그렇게 되어 꽃분이 아버지는 이인근 씨가 연기한다.
그랬는데 오진우 씨는 2팀의 꽃분이 아버지로 복귀했고, 임경희 씨와 호흡을 맞춰 몇 번 공연을 했는데, 다시 최샛별 씨가 꽃분이 어머니로 합류했으니, 이전의 부부가 해후를 한 셈 아닌가. 이런 게 나에게는 흥밋거리이고 재미있는 요소이다. 마당극 주제나 연기력 같은 것도 충분히 재미있고 흥미있지만, 배우들이 돌고 돌아 만나고 다시 다른 배역으로 떠나가고 하는 게 무척 재미있다. 배역이 이리 바뀌고 저리 바뀌어도 한결같은 명작을 내놓는 큰들의 내공이 신기하기도 하다.
휴가의 마지막을 큰들과 함께했다. 큰들이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세상에서 놀았다. 배우들이 엮어 가는 웃음과 감동 속에서 편안했다. 밤 8시가 되자 사위가 어두워졌다. 관객들은 서로서로 손을 잡고 마당을 떠났다. 몇몇 관객은 후원회원 가입 원서를 썼다. 아주 특별한 관객 몇몇은 배우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배우들과 연출팀, 그리고 극단 1팀 배우들, 극단 단원들이 의자를 트럭에 싣고 무대를 치웠다. 그들의 빈틈없는 움직임과 빈틈 많은 여유로움 속에서 여름 밤은 깊어갔다. 바람은 제법 시원했다.
산청군 동의보감촌에서 열리는 여름 밤 마당극 공연은 이제 네 번 남았다. 8월 21일(금), 22일(토)에는 <효자전>을 공연한다. 8월 28일(금), 29일(토)에는 <남명>을 공연한다. 저녁 7시에 시작하고 8시에 끝난다. 일찌감치 달려가서 맛있는 한수금 국수 한 그릇 먹은 뒤 공연 재미있게 보고, 느지막히 진주 내려와 삼삼오오 모여 막걸리 한잔하기 딱 좋은 시기이고 시간이다. 9월에는 하동 최참판댁에서 마당극 <정기룡>을 공연한다.
2020. 8. 16.
이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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