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큰들’이 있다. 전 세계에서 마당극을 가장 잘하는 예술단체이다. 한 해에 마당극을 100회 정도 공연한다. 산청, 하동에서는 주말 상설공연을 한다. 사천, 남해, 진영, 창녕, 진주, 의령 등 경상남도는 물론이고 서울, 경기, 충청 지역에서도 공연한다. 저 멀고 먼 강원도 양구까지 공연을 다녀온다. 제주도에서도 공연한 적 있다. 마당극뿐만 아니라 가까운 지역에 사는 어린이, 어른들에게 풍물을 가르친다. 정월대보름 때엔 진주 중앙시장, 서부시장에서 지신밟기도 한다. 지역의 크고 작은 뜻깊은 행사에 출연하여 여러 가지 문화 공연을 한다. 국내 마당은 좁은 것일까. 일본, 독일, 오스트리아, 라오스로 해외 출장도 간다. 큰들은 그런 단체이다. 우리 고유의 전통 문화를 온 나라에 퍼뜨리고 전 세계에 홍보한다. 참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자랑이다.
큰들은 올해 공연을 몇 번 했을까. 보통 3월에 하동에서부터 주말 상설 공연을 시작했는데 올해는 5월에 시작했다. 코로나19 사태라는 엄중한 상황 속에서도 산청 상설 공연도 시작했다. 다른 해보다 늦게 시작했으나 큰들의 열정이 늦춰진 건 아니었다. 지난해보다, 지지난해보다 더 열정적으로 공연했다. ‘극단 2팀’을 만들어 새로운 볼 거리, 웃음 거리를 선사했다. 2개 극단이 동시에 다른 장소에서 같은 작품을 공연하는 꿈 같은 일도 이뤄냈다. 하지만 올해는 공연 운이 없는 것 같다. 코로나19가 다시 널리 퍼짐으로써 공연 길이 막혔다. 그나마 공연을 조금씩 진행하던 7-8월에는 주말마다 비가 오는 바람에 계획했던 공연을 취소하거나 미루었다. 올해 공연 절반 이상은 날아가 버렸다. 절반이 아니다. 3분의 2 이상은 못하고 있다. <남명>은 한 번도 공연하지 못했다. 8월 22일 산청 동의보감촌에서 열린 <효자전>(239회)이 올해 마지막 공연이 될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엄습한다. 제발 기우에 그치기를 빈다.
큰들은 단원이 35명이다. 자녀들까지 합하면 42명쯤 된다. 이들은 다른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 큰들 활동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큰들이 곧 직장이고 직업이다. 극단 활동에 본인과 가족의 생계를 기대고 있다. 공연을 해야 돈을 벌고 돈을 벌어야 먹고 사는 것이다. 밥 안 먹고 문화예술활동을 할 수 없고 굶어가며 마당극을 할 수 없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시도 때도 없이 공연을 해야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단체 생활도 하고 가정 생활도 한다. 맛있고 영양가 있는 것을 먹어야 공연도 잘한다. 목소리도 크게 내고 연기도 멋들어지게 할 수 있다. 부귀영화를 누리지는 않는다 하더라도(부귀영화를 누리면 더 좋겠지) 우리나라 국민 평균의 삶과 평균의 여유를 누리며 평균 이상의 행복을 느낄 충분한 자격이 있는 그들이다. 그런데 올해 9월부터는 공연 길이 막혔다.
예정대로라면 9월에는 하동에서 새로 만든 마당극 <정기룡>을 공연해야 한다. 9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열흘 동안은 산청한방약초축제장에서 날마다 <남명>과 <오작교 아리랑>과 <효자전>을 번갈아가면서 공연해야 한다. 10월 중순 쯤에는 산청 마당극 마을에서 큰들 창립 36주년 기념 공연도 해야 한다. 그러고서도 하동에서 <최참판댁 경사 났네>를 몇 차례 더 공연해야 하고 산청에서도 상반기에 미처 하지 못한 공연을 더 해야 한다. 이것들 말고도 여기 저기 온 나라 축제장에서 부르면 어디든 언제든 달려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래야 맞다. 그래야만 큰들이다. 그래야만 큰들답다. 그래야만 돈을 벌 수 있다. 그 돈으로 아이들 옷을 산다. 그 돈으로 다 함께 모여 밥을 먹는다. 공연 마치고 돌아온 새벽 서너 시에 둘러 앉아 “아자아자~!” 외치면서 깡통 맥주 하나라도 들이켤 수 있는 것이다, 그래야만. 그게 큰들의 일상이었고 삶이었고 행복이었던 것이다.
어렵다, 어렵다 해도 이렇게 어려운 때는 없었다고 한다. 세월호 사고가 났을 때 많은 공연이 취소되었다. 그러나 코로나보다는 나았다. 메르스 때도 몇몇 공연이 미뤄졌다. 그러나 코로나에 견주면 조족지혈이다. 6·25도 이렇지는 않았을 듯하고 일제강점기도 이렇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막연히 추측해 본다. 참 안타깝고 답답하고 갑갑하다. 큰들은, 올 상반기에는 공연이 없는 날을 이용하여 마당극 마을도 가꾸고 단원들끼리 마음도 더 가까이 모았다. 극단 2팀은 그런 와중에 멋지게 탄생했다. 마당극 마을에 화단을 만드는 모습에서, 예술하는 이들의 여유와 희망을 보곤 했었는데, 이제는 그런 단계를 넘어선 듯하다. 꽃 한 포기 심으면서 활짝 웃고, 논에 볍씨 뿌리면서 장난질하던 것이 바로 어제인 듯 선명히 기억나는데 이제는 그런 여유를 조금은 내려놔야 할 상황인 듯하다. 그래도 큰들은 큰들인지라 늘 씩씩하고 건강하고 여유롭고 밝고 환하다.
큰들은 두 가지 일을 새로 만들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큰들이 아니니까. 그렇다고 주저앉아 하늘만 쳐다보고 있을 큰들이 아니니까. 그렇다고 한숨만 내쉬며 짜부라질 큰들이 아니니까. 하나는 유튜브 ‘큰들마을’을 만들어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올리는 것이다. 유튜브는 8월 28일 시작했는데, 9월 8일 현재 다섯 꼭지의 이야기가 올라와 있다. 구독자는 280명 가까이 된다. 맨 처음 올린 이야기는 1400명이 보았다. 유튜브에서는 코로나19를 이기는 큰들만의 삶의 방식이 하나하나 드러난다. 평소 공연이 많을 때는 엄두도 내지 못한 이야기를 만듦으로써 큰들은 관객, 후원회원, 일반 시민 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그런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웃음과 함께 짠내가 가득 퍼져 나온다. 지금 배우들이 있어야 할 곳은 유튜브 안이 아니라 아직은 파릇파릇한 잔디 위이거나 모랫바람 불어도 따뜻하기만 한 마당판이 아니던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도 위기를 위대한 기회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서 큰들다움을 본다.
다른 하나는 돈벌이 일을 하는 것이다. 원래 직업이던 마당극 공연, 풍물 강습은 당분간 할 수 없으니 새로운 부업을 찾아 나선 것이다. 그중 하나는 어느 커피 회사의 커피 포장 상자 접는 일이다. 예전에 큰들 단원이던 분이 커피 장사를 하는 것 같다. 그 상자 하나 접으면 얼마를 받을까. 큰들 유튜브에는 이 상자 접는 것을 찍어 올린 게 있는데, 실로 어마어마한 양이다. 그것을 배우들, 사무국 직원들이 모두 모여 3일 동안 열심히 접는다. 아이들도 어른을 돕는다. 반복되는 재미없는 일을 매우 즐겁게 일한다. 마치 ‘즐기는 자를 이길 자 없다’는 것을 증명하겠다는 것 같다. 유튜브에는 포장 상자 접으면서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사계>를 부르는 장면도 올려놓았다. 이 사람들 무엇을 하든 꼭 큰들처럼 한다. 너무 사랑스럽고 너무 자랑스러워 눈물겹다.
<사계>를 다 감상하고 나면 임경희 작가의 인터뷰가 나온다. 박정현 씨가 묻는다. “우리 영상이 올라간 것 보셨나요?” 임경희 씨가 답한다. “당연하죠. 둘 다 보았지요.” 다시 묻는다. “어떻습니까?” 다시 물으니 다시 대답할 수밖에. “좀 재미있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좀 슬펐어요.” 그만 물어도 될 텐데 정현 씨는 기자 역할을 포기하지 않는다. “왜 슬프셨어요?” 서로 조금 울먹이는 듯하다. (보는 나도 좀 그렇다) “마당판에서 공연하고 있어야 될 갭포터님(송병갑 상임연출을 가리킴)이 유튜브를 촬영하고 있어서 좀 슬픈 마음도 드네요~.” 마지막으로 묻는다. “보시는 분들에게 한 마디 해 주세요.” 하고 싶은 말이 한 마디뿐이겠는가. “보시는 분들도 다 같이 코로나 때문에 많이 힘드시고 태풍도 올라온다 해서 걱정 많으실 텐데요. 저희 영상 보시고 저희의 ‘함께 하는 그런 기운’ 받으셔 가지고 코로나 함께 잘 이겨 나갔으면 좋겠습니다아.” 이 뭐란 말인가. 이토록 착하고 이토록 바람직하고 이처럼 명쾌하고 이처럼 감동적이어도 된단 말인가. 큰들은 늘 이렇다.
큰들이 하는 부업의 다른 하나는 멸치를 파는 것이다. 어느 단원의 부모가 멸치 유통업을 50년 넘게 하셨는데 이번에 추석맞이 선물용 멸치 판매를 큰들에 위탁했는가 보다. 그 물량이 무려 2000상자라고 한다. 멸치를 팔아야 추석을 쇨 수 있다는 큰들의 이야기를 본 많은 팬들이 하루 만에 240상자를 주문했다. 하지만 9월 8일 저녁 현재 아직 300상자가 남았다고 한다. 이런 소식은 큰들 페이스북에서 만나는 이야기다. 커피 상자 조립에 이어 멸치 상자 조립하는 사진이 올라왔다. 그들은 늘 웃고 있다. 그들은 늘 대화한다. 그들은 언제나 가만히 있지 않는다. 큰들다움이다. 페이스북에 쓴 “극단 큰들인지, 포장 알바단 큰들인지 ㅋ”라는 표현은 현재 큰들이 처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극단으로서도 잘해 왔지만 포장 알바단으로서도 너끈히 한몫 해내겠다는 각오로 읽힌다. 얼른 코로나 사태가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마당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기대한다는 바람으로도 읽힌다.
나는 큰들 후원회원으로서 두 가지를 했다.
하나는 유튜브 ‘큰들마당’에 가서 ‘구독’과 ‘좋아요’를 누르고, 응원하는 댓글도 몇 군데 달았다. 돈 드는 일 아니고 힘 드는 일도 아니다. 그냥 가서 손가락만 꾹꾹 눌러주면 된다. 그것만으로도 큰들은 큰 힘을 얻을 것이다. 큰 힘이 아니라도 좋다. 작은 힘이라도 된다면 그저 그만이다.
다른 하나는 멸치 몇 상자라도 사는 것이다. 추석 맞이 선물할 곳이 있어서 큰들에서 멸치를 주문했다. 그것으로 좀 모자라서 몇 달 치 후원금을 별도로 더 냈다. 미안한 마음이 조금 삭아졌다. 마음으로는 몇 백 달 치를 더 내고 싶으나 그건 로또에 당첨된다면 생각해 볼 일이다. 멸치 몇 상자 팔아주는 것도 큰 힘은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작은 보탬은 되지 않을까 싶다.
○ ‘큰들마을’ 유튜브 가기:
https://www.youtube.com/channel/UCsGSCta6BybrN3o_ocaJdfA
그냥 유튜브 가서 ‘큰들마을’을 검색하면 된다. ‘구독하기’와 ‘좋아요’도 해주면 더 좋겠다. 올려놓은 이야기들 보다 보면, ‘앗~ 마당극만큼 재미있네.’라고 생각될지도 모른다.
○ 큰들 멸치 주문하러 바로 가기: https://forms.gle/iU1PyonTY7mAk4JF6
국물용멸치 450g+볶음용멸치 450g=900g 1상자에 3만 5000원(택배비 3000원 별도)
전화로도 주문 가능: 010-6761-2235(이은숙), 055-852-6507(사무실)
주문 후 돈 부칠 계좌: 농협 302-1168-5109-21(이규희 큰들문화예술센터)
그냥 후원금 한두 달 치 더 보내도 되지 않을까.
그리고 남은 이야기 하나.
큰들만 어려운 게 아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어렵다. 나는 특히 문화예술단체에 눈길을 준 것일 뿐이다. 그중 내가 후원하는 큰들을 눈여겨본 것이다. 모두 코로나를 이겨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가운데, 주변에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았으면 한다. 그런 바람으로 몇 자 적었다. 긴 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유튜브 구독하고 멸치도 사 주신 분들께는 더 크게 감사드린다.
그리고 남은 아야기 둘.
큰들은 빨리 마당으로 달려가시라. <정기룡>을 아직 못 본 사람이 천지삐까리고, 올해 기어이 <남명>을 보겠다고 기대하고 고대하는 사람이 내 주변에만 여럿이다. 코로나 물리치고 얼른 마당에서 만나뵙기를 학수고대한다. 마당극 전문 극단은 마당에서 놀아야 한다.
2020. 9. 8.
이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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