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군대 갔다. 누구나 다 가(야 하)는 군대이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논산이나 멀리 강원도로 간 것도 아니다. 시내버스 타고 갈 만한 금산 공군교육사령부다. 8월 24일 월요일 금산에서 짬뽕 한 그릇 사 먹이고 부대로 태워 갔다. 입소식 같은 걸 기대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행사가 취소됐다. 아쉬운 마음에 돌아와서 한숨을 쉬었다. 토요일이 되었다. 갑자기 저녁 약속이 생겨 튀어 나갔다. 휴대전화에 070-**** 번호가 들어와 있었다. 원래 070은 잡스런 쓰레기 전화이기에 역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다음날 일요일 아내와 점심을 먹고 있는데 이번에는 아내 전화로 070 전화가 왔다. 무심코 받았다. 앗, 그 전화는 훈련소 가 있는 아들이 부대 안 공중전화로 수신자부담전화(콜렉트 콜)를 건 것이었다. 우리는 반갑고 놀란 마음에 서로 ‘어버버버’ 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아들은 조금 울먹이는 것 같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첫 토요일 저녁에 ‘효전화’를 했는데 부모와 통화를 못한 훈련병은 자기뿐이었다고 했다. 전화 올 줄 몰랐고 전화 온 줄도 몰랐지만 몹시 미안했다. 매주 토요일이나 일요일이면 효전화가 온다. 문제는 전화하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하여 하반기 모든 마당극 공연 일정을 미루거나 취소한 극단 큰들이 9월 19일 토요일과 20일 일요일 오후 2시 하동에서 새 마당극 <영웅의 부활 정기룡>을 공연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내 마음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7월 1일 하동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첫 공연을 한 이후 야외에서 처음 공연한다는데 보러 가야 할 이유가 억만 개나 되는 듯했다. 일요일보다는 토요일 공연을 꼭 보고 싶었다. 하지만 토요일은 아들에게서 전화가 언제 올지 알 수 없어서 간다, 못 간다를 결정하지 못하였다. 그러던 중 금요일이 되었다. 훈련소 소대장이 이번 주 효전화는 토요일 오전에 한다고 밴드에 공지했다. 그 공지 내용을 금요일 저녁 늦게 확인했다. 옳다구나. 오전에 통화하고 달려가면 오후 2시 공연을 볼 수 있겠구나 싶어졌다. 페이스북에 자랑스럽게 공연보러 갈 것이라고 썼다.
마음은 아침 눈 뜨자마자 하동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오전 9시부터 12시 사이에 온다는 전화를 받기 위해 병원에 가야 하는 아내와 하동에 가야 하는 나는 외출 준비를 다해 놓고 전화기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내는 “아들아, 제발 10시 30분 이전에 전화하거라”라는 텔레파시를 열심히 보내고 있었다. 5분짜리 짧은 통화를 하기 위해 부모가 서로 눈 끔벅이면서 전화기만 바라보고 있는 꼴이라니. 혹시나 싶어 전화기 소리도 최대로 높여둔 것은 불문가지다. 이날 따라 이런저런 문자와 카톡이 잇따라 왔다. 10시 20분쯤 전화기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내 전화기다. 번호를 보니 070이다. 즉시 받았다. 입대 4주차를 넘어가는 아들의 목소리는 훨씬 안정적이고 담담했다. 첫 주에 울먹이던 아들은 온데 간데 없어졌다. 잘 적응하는 듯하여 마음이 놓였다. 무엇무엇 필요하니 보내라는 건 곧바로 적바림했다. 자, 이제 출발한다.
아내를 병원으로 태워주고 나는 경상대학교로 향했다. 최승제 박사가 페이스북 댓글로 동행을 제안하였던 것이다. 혼자 가면 이런 저런 잡생각을 정리할 기회가 되지만 둘이 가면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세상 돌아가는 것을 잠시 정리할 수 있게 된다. 최 박사는 경상대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는데 비대면 강의 녹음을 하다가 나와 함께 떠나게 된 것이다. 생각이 바르고 행동이 날랜 친구와 함께 느릿느릿 하동으로 가는 날, 하늘은 높고 넓었으며 구름은 하얗게 하얗게 두둥실 흘러갔다. 햇살은 따사롭고 시원했다. 최 박사와 나는 산청 원지에서 열린 목화장터를 함께 구경하고 진주로 온 적 있다. 하동에서, 산청에서 열리는 마당극 공연장에서 자주 만나기도 했다. 지난해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정기공연 때도 함께했다. 앞으로도 몇 번이나 더 마당극 공연장에서 함께할지 모르겠다.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무딤이들은 아직 초록빛이 가득하다. 벼는 고개를 숙이고 있지만 벼베기를 하려면 보름에서 한 달은 족히 기다려야 할 듯했다. 길가 감나무엔 아기 주먹만한 감들이 주홍빛을 햇빛에 반사하며 조랑조랑 매달려 있었다. 감의 동네, 배의 동네, 녹차의 동네, 재첩의 동네 하동은 늘 넉넉하고 푸짐하며 여유롭다.
주차장에 차를 세운 우리는 공연장부터 찾았다. 공연장에 앉아서 볼 수 있는 인원은 최대 80명이다. 미리 가서 앞자리부터 잡자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공연장에는 1시 40분부터 입장할 수 있단다. 박정현, 박정민 씨가 행사장 입구를 지키고 서서 열심히 안내한다. 우리는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공연장에서 가장 가까운 ‘평사리 토지장터주막’으로 갔다. 비빔밥을 시켰다. 밥만 먹으려다가 ‘에라’ 싶어 부추전과 막걸리도 한 병 시켰다. 비빔밥은 고소했다. 부추전은 졸깃졸깃 구수했다. 앞으로는 이 집을 자주 이용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손님은 드문드문 왔다 갔다 했다.
서동하 누님이 친구분과 함께 등장했다. 페이스북 댓글에서 우리보다 먼저 출발한다고 알렸었다.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전화를 했더라면 밥도 같이 먹을 수 있었는데, 순서가 조금 어긋나고 말았다. 그래도 만남의 광장 큰들 공연장에서 조금 싱겁게 상봉했으니 이게 어디랴. 우리는 최참판댁 별채로 이동했다. 최서희의 표독스런 비명이 서려 있는 곳이다. 우리는 마루에 올라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큰들 이야기도 하고 진주 정치 이야기도 하고 나라 돌아가는 꼬락서니도 이야기했다.
1시 30분쯤 되어 다시 공연장으로 갔다. 간격을 두고 줄을 섰다. 몸 온도를 쟀다. 손을 소독했다. 자기 이름과 연락처를 적었다. 한 명 한 명 들어갈 때마다 최선을 다하여 방역을 챙기는 큰들 단원들의 모습에서, 이 시국의 엄중함을 잠시 느낀다. 처음 최참판댁에 도착했을 때는 관광객이 거의 없었다. 3년째 이곳을 열심히 가 보지만, 이날만큼 손님이 없는 날은 없었다. 그런데 공연 시간이 다가오자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80명을 제한하지 않았으면 꾸역꾸역 밀려드는 관객을 어떻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동이 배출한 역사적인 위인으로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정기룡 장군(1562-1622)은 1562년 곤양현 중평, 지금의 하동군 금남면 중평에서 태어났다.
1592년 4월 13일 임란 최초 전투인 거창 전투를 승리로 이끈 후 금산전투에서 혈혈단신 적진에 뛰어들어 조경 장군을 구출하였는데 이를 두고 ‘조선의 조자룡’이라 불렀다. 또한 상주성 전투에 400여 관군을 이끌고 가서 1만여 명의 왜군을 대파하여 상주성을 탈환한 뒤 상주목사의 교지를 받게 된다. 이때 장군의 나이는 33세에 불과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고령현 전투의 승리로 경상우도 병마절도사에 제수되었고, 1617년 삼도수군통제사로 제수되기에 이른다. 1622년 통영 진중에서 직무를 수행하다가 향년 61세의 나이로 순직하였다.
이렇듯 정기룡 장군은 육전의 명장으로 왜적과의 전투에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63전 63승의 불패의 신화를 이루었다. 이에 사람들은 ‘바다에는 이순신, 육지에는 정기룡’이라는 말로 그의 공적을 칭송했다. 현재 하동군 금남면에는 정기룡 장군의 사당인 ‘경충사’와 유물 전시관이 있고 사당 입구에는 장군의 생가가 초가집으로 복원돼 있다. (극단 큰들의 안내글 참고)
마당극 제목은 <영웅의 부활 정기룡>이다. 만든 사람은 예술감독 전민규, 극작 김혜경 임경희, 연출 하은희, 무대디자인 박춘우, 조연출/안무 안정호, 소품제작 박춘우 윤민서, 음악 작·편곡 전찬율, 조명디자인 이금철, 의상디자인 김안순, 의상제작 류연람 박정민, 기획 진은주, 홍보 김세림, 굿즈제작 이규희, 굿즈디자인 무로하라 쿠미, 촬영 임기원 등이다. 출연하는 배우는 김상문 송병갑 안정호 이인근 오진우 김가람 홍수완 조익준 박춘우 김혜경 류연람 김안순 씨이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적어 놓는 것은, 이 작품이 해해연년 관객의 사랑을 받으며 어떻게 변모해 가는지를 눈여겨보기 위해서이다. 극작에 김혜경 씨가, 연출에 하은희 씨가, 소품제작에 윤민서 씨가, 의상디자인에 김안순 씨가, 의상제작에 류연람 박정민 씨가 들어가 있는 게 눈길을 끈다. 맡은 일이 조금씩 바뀌고 섞이는 것을 보면 극단 큰들의 힘을 느끼게 된다. 한 가지만 잘하면 끝이다, 가 아니라 여러 가지를 골고루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극단 큰들의 마당극은 대개 60분짜리 작품이다. 마당극을 초청한 행사의 내용에 따라 아주 조금씩 들쑥날쑥하지만 거의 1시간짜리 작품으로 보면 맞다. 그런데 <정기룡>은 40분짜리로 만들었다. 그 까닭이야 여럿 있겠지만, 보고 나면 아쉽고 뭔가 허전해지는 느낌이 든다. 한 마당을 10-15분씩 구성하여 다섯 마당 또는 여섯 마당으로 제작해야 하는데, <정기룡>은 어쩐지 한 마당이 빠진 것 같다. 앞니 하나가 빠졌다고 할까, 애지중지하던 접시의 이가 나갔다고 할까. 아무튼 올해 안 되면 내년에, 내년에 안 되면 그다음 해에라도 60분짜리로 완성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마당극 <정기룡>에서는 정기룡 장군을 나라를 구한 영웅으로 묘사한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육지에서 63번 싸워 63번 모두 이겼으니 영웅보다 더한 칭호를 붙인다 한들 누구도 토를 달지 못할 것이다. 왜군을 유인하여 함정에 빠뜨림으로써 대승을 거두는 전투 장면에서 그의 지략이 돋보인다. 하지만 극단 큰들은 전투에 능한 지략가 정기룡을 조명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가 백성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보여준다. 농민들이 자갈밭을 일구느라 허리가 빠질 지경에 이르렀을 때 정기룡은 휘하 병사들을 데리고 나타나 일손을 도와준다. 일손을 도와 주어 고맙기는 한데 드릴 음식이 없다고 하자 직접 죽을 끓여 와서 농민들을 먹인다. 지극한 애민정신을 갖춘 장수였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또, 어떤 전투에서 적의 목을 수없이 베고서는 그 머리를 거두었는데 쌀 몇십 가마와 바꾸고 만다. 그 머리(수급)를 갖고 가야 전공을 인정받고 상을 받을 것인데 정기룡은 자기에게 주어질 상과 벼슬을 마다하고 쌀로 바꾸어서 백성들에게 나누어준다. 이에 항의하는 병사들에게 정기룡은 말한다. “백성을 구하는 것이 곧 나라를 구하는 것이다.” 마당극을 보면서 정치가든, 군인이든, 대기업의 경영자이든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은연중 깨닫는다. 그 목표가 아무리 크고 높아도 국민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한낱 신기루에 머물고 말 것임을 알게 해 준다.
극단 큰들은 마당극 <정기룡>에서 정기룡 장군이 하동 출신 불세출의 영웅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관객들을 웃음의 광장으로 불러들이는 것도 놓치지 않았다. 왜놈이 나타나면 “왜놈이다!”를 외치는 민방위대장은 관객 중 한 명이 즉석에서 임명된다. 토요일 민방위대장은 나와 함께 간 최승제 박사가 지목됐다. 일요일 민방위대방은 진주큰들풍물단(진큰풍) 단원 중 한 분이 지목됐다. 민방위대장 덕분에 왜놈들은 혼비백산 쫓겨 달아난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장군은 정기룡이지만 그 전쟁의 승리 뒤편에는 백성들의 위대한 헌신이 있었음을 웃음으로 알게 해 준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5년이 지났다. 나라가 쑥대밭이 되었다. 그런데도 정기룡 장군이 지키고 있는 지역은 비교적 안전하다. 그래서 어떤 아낙은 전쟁이 벌써 끝난 줄 안다. 아직도 전쟁 중이라는 사실을 혼자만 모르고 있던 이 아낙은, 정기룡 장군 부대를 왜 ‘감사군(敢死軍)’으로 부르는지도 자기만 모르고 있다. 이 아낙 행동거지가 약간 아니다. 왜놈들이 이쁜 여자만 잡아간다는 소문이 돌자 “아이고, 이제 나는 죽었네”라며 넉장거리를 한다. 자칭 ‘미인박명’이란다. 이 미인박명의 연기를 눈여겨봐야겠다.
여기서 감사군은 정기룡 장군 부대를 가리키는 말로, ‘감히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부대’라는 뜻이다. 참 멋진 부대다. 그런데 싸움만 잘하는 군대가 아니란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그 공을 인정받는 영예보다는 백성들이 굶주리는 눈앞의 현실을 더 아파하니 정기룡 부대는 백성들의 마음을 모아 만리를 간다. ‘동심만리(同心萬里)’라고 큰들은 설명한다.
정기룡 장군이 적진에 침투하여 포로로 잡혀 있던 조경 장군을 구출해 왔다. 그 장면을 동네 아낙들이 이야기한다. 정기룡 장군이 조경 장군을 구출해 달려나오는데 적의 칼이 조경 장군 손가락 세 개를 잘랐다. 정기룡 장군이 손가락 세 개를 주워 허리춤에 넣은 뒤 무사히 도망쳐 나왔다. 그러고선 손가락 세 개를 떡하니 붙이니 착 붙여지더라는 이야기다. 그다음이 재미있다. 그래서 그 이후로 이 손가락은 왜놈만 나타나면 잘 오무려지지 않는다는 것이 결론인데, 그때 가운뎃손가락을 높이 치켜들어 보인다. 욕하려고 높이 쳐든 것이 아니라 잘 오무려지지 않기 때문이란다.
이런 우스개는 유도 아니다. 자, 이 마당극에서 무대를 디자인하고 소품 제작을 맡았던 박춘우 감독의 연기 변신을 볼 차례다.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다. 그는 마당극을 이끌어가는 말뚝이 역할을 맡았다. 등장부터 괴이쩍다. 엉덩이부터 밀고 들어온다. 꼬부라진 지팡이도 걸작이다. 하회탈 같은 얼굴 표정은 압권이다. 허파에서 바람이 새는 듯한 발성은 아무도 흉내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다가 민방위대장을 교육하는 장면에서는 “왜놈이다~!”라는 외침을 어찌나 속시원하게 내뱉는지 평사리 땅이 흔들릴 지경이다. 이 ‘할매’ 역을 맡은 배우가 ‘박춘우’여서 줄여서 ‘춘매’라고 한다는 말이 들린다. 큰들은 이름을 잘도 붙여준다. 마당극 <정기룡>에서는 춘매를 눈여겨보아야 한다. 한 동작 한 대사라도 놓치고 나면, 다른 사람이 웃을 때 혼자만 멀뚱멀뚱 맹추처럼 되기 십상이다.
이 박춘우 감독이 그렸을 무대(마당극이니 무대라고 하면 안 맞지만 편의상 무대라고 하자) 걸개그림을 보자. 나는 이 걸개그림을 본 순간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지금까지 보아온 그림이 아니다. 지금까지 마당극 걸개그림은 산수화, 십장생도, 소나무 이런 것이었다. 전형적인 동양화였다. 하지만 <정기룡>의 무대 걸개그림은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르다. 처음 느낌은, 왜적과 싸우는 조선군의 창과 칼이 춤추는 것으로 보였다. 다음 순간 그 그림은 섬진강 하구에 자라는 갈댓잎으로 보였다. 고려 때 하동 섬진강으로 쳐들어오는 왜놈들을 향하여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가 일제히 울음을 울어 왜적을 물리쳤다는 전설이 있다. 그 두꺼비들이 울부짖을 때 숨어 있던 그 갈대밭처럼 보였다. 아니다, 그 그림은 정기룡 장군이 왜놈들을 향하여 쏘아대던 화살의 형상이었다. 여러 가지로 해석되는 그림 하나를 두고 나는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해 보았다. 도대체 박춘우 무대감독의 머릿속에는 어떤 상상력과 작전이 자라고 있을까. 다음에 술자리가 마련되면 모른 척하고 그 속으로 들어가봐야겠다.
말이 나온 김에 생각나는 명장면 하나를 덧붙여 본다. 정기룡의 감사군이 마을 사람들에게 죽을 끓여 주었다. 마을 사람들이 죽을 다 먹은 뒤 이제 감사군 병사들도 죽을 한 그릇 먹을 차례다. 바로 그때. 왜적이 쳐들어온다. 조금 전까지 감사군은 괭이를 들고 자갈밭을 일구고 있었다. 그런데 왜적이 나타났다는 소식이 들리자마자 괭이자루에서 칼을 뽑아든다. 아, 백성을 돕는 농사와 백성을 구하는 전쟁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언제나 임전태세를 갖추고 있는 감사군의 모습을 이보다 더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칼을 들고 달려나가는 장군과 병사들을 보면서 마을 사람들은 “우와, 빠르다. 벌써 십 리는 갔겠다!”라며 무한 애정과 신뢰를 보낸다. 괭이가 칼이 되는 장면은 뚜렷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박춘우 감독의 상상력 덕분이다.
극단 큰들은, 마당극에서 절대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은 것이라도 척척 잘도 설명해 낸다. 가령, 정기룡 장군이 왜적과 싸울 계책을 다른 장수들에게 설명하는 장면이 그러하다. 지도를 펴 놓은 뒤 왜적을 유인하고 유인해 가는 곳에 아군이 매복해 있다가 일제히 공격하자는 시나리오다. 말로 설명하면 지루하겠고 그렇다고 아군과 적군을 여럿 출연시켜 이러쿵 저러쿵 연기하는 것도 거추장스럽다. 큰들은 이런 문제를 ‘컴퓨터 게임’이라는 방법을 동원하여 보여준다. 길고 긴 이야기를 간략히 요약하고 불필요한 부분을 과감하게 삭제하면서도 재미와 웃음을 놓치지 않는, 큰들만의 기법이 돋보인다. 그런 연출을 구체적으로 연기해내는 배우들의 연기는 뭐라고 해야 할까.
전쟁 장면을 보여주려면 배우가 수백 명은 되어야 한다. 하지만 마당극은 영화처럼 만들 수 없다. 컴퓨터 그래픽을 쓸 수도 없다. 제약이 많다. 큰들은 화려하면서도 절제되고 힘이 넘치면서도 한없이 부드러운 군무(群舞)라는 형식으로 전쟁 장면을 연출한다. 이것은 익히 보아온 장면이다. 마당극 <남명>에서 남명 조식 선생이 돌아가신 지 20년 만에 임진왜란이 터진다. 이때 남명의 제자들은 스스로 의병장이 되어 전장으로 달려간다. 왜적과 맞서 싸우는 장면은 군무로 갈음된다. 아군의 장군들이 칼을 들고 마당을 휘젓는다. 적군은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배우도, 관객도 의병이 휘두르는 칼 앞에 적의 머리가 뎅강뎅강 잘려나가는 장면을 충분히 상상한다.
<정기룡>에서도 그렇다. 그래서 <남명>에 나오는 군무와 <정기룡>에 나오는 군무가 거의 비슷할 것으로 예상하기 쉽다. 하지만 아니다. 같으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비슷하고 비슷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춤을 춘다. 이것은 직접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따지고 보면 <남명>에 나오는 전쟁이나 <정기룡>에 나오는 전쟁이나 똑같은 임진왜란 아닌가. 그래서 두 마당극에 나오는 군무는 똑같은 게 오히려 사실에 가깝다. 그렇지만 그렇게 되면, 관객에게 주는 재미와 감동이 뚝 떨어지게 된다. 같지만 다르게, 다르지만 같게 하는 재주도 큰들의 장기이다. 본 적은 없지만 <이순신>이나 <진주성 싸울아비> 같은 작품에도 전쟁 장면이 반드시 들어가 있을 것이고 그 작품들 속의 군무도 <남명>, <정기룡>과 다르면서 같고 같으면서 다를 것으로 짐작해 본다.
마당극 <정기룡>의 첫 시작은 정기룡이 태어나는 장면이다. 정기룡 어머니가 자장가를 부른다. “아가야 우리 아가야. / 두꺼비 울음소리 들리니. / 왜구를 물리쳐 나라 구한 섬진강 두꺼비 우는구나. / 너도 너도 얼른 자라 훌륭한 장군님이 되려무나. / 이 나라 백성을 살리는 위대한 영웅이 되려무나. / 위대한 영웅이 되려무나.” 제목은 ‘영웅이 되려무나’이다. 정기룡 장군이 어려서부터 목소리가 우렁차고 기골이 장대했다는 것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섬진강이 왜 섬진강인지를 들려주어 하동이라는 지역이 유사 이래 나라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설명해 준다.
<정기룡>에는 노래가 한 곡 더 나온다. 모두 3절로 된 이 노래 제목은 ‘영웅 정기룡’이다. 이 노래가 주제곡이다. 가사는 이러하다.
<1절>
임진왜란 정유재란 나라가 쑥대밭이 되었네.
임금님은 도망가고 한 번도 이겨보지 못 했네.
그때 말을 타고 나타나서 모조리 왜놈들을 무찔러
백성들을 구하고 사랑하니 이런 분이 또 없으리라.
<2절>
임진왜란 정유재란 나라가 쑥대밭이 되었네.
백성들은 끌려가고 삼천리 왜놈 천지 되었네.
그때 말을 타고 나타나서 모조리 왜놈들을 무찔러
백성들을 구하고 사랑하니 이런 분이 또 없으리라.
<3절>
임진왜란 정유재란 나라를 절망에서 구했네.
63전 63승 불패의 청년장수 정기룡
천둥 번개처럼 나타나서 모조리 왜놈들을 무찔러
백성들을 구하고 사랑하니 이런 분이 또 없으리라.
<후렴>
정기룡- 정기룡- 하동의 아들 용맹한 무사
이 나라의 위대한 영웅 정기룡- 정기룡- 정기룡
실제 마당극 공연할 때는 2절은 생략한다. 시간 제한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주제곡에는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영웅 정기룡 장군의 면모가 잘 드러난다. 곡은 경쾌하고 힘차다. 저절로 손뼉을 치게 만들고 주먹에 힘이 들어가게 만든다. 군가이자 승전곡이자 행진곡이다. 이제껏 심심하면 <남명>의 “백성은 물이요~”를 부르곤 했는데 다음부터는 안 심심해도 “임진왜란 정유재란~ 정기룡~”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다니게 생겼다.
극단 큰들은 마당극 한 편을 만들면서 이모 저모 구석구석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병사들이 든 방패엔 두꺼비가 그려져 있다. 섬진강의 하동이 배경이기 때문이다. 관객들에겐 정기룡 장군 그림이 그려진 부채 모양의 허수아비를 준다. <최참판댁 경사 났네>에서 태극기를 나눠주는 것과 비슷하다. 민방위대장이 “왜놈이다!”를 외칠 때 관객들은 이 부채를 일제히 흔들면서 “우와~!”하고 함성을 질러 왜놈을 쫓아낸다는 원리다. 마당극 <정기룡>만 보고 돌아가기엔 뭔가 아쉬움이 남는 관객들에게는 ‘정기룡 움직이는 메모지’를 판매한다. 하나에 3500원이고 3개를 사면 1만 원이다. 나는 3만 원어치를 사서 함께 공연 관람한 분들에게 선물했다. 최 박사는 민방위대장 역을 한 덕분에 선물로 받았다.
토요일 공연을 보면서 녹화한 영상을 집에서 보고 또 본다. 그것으로 부족하다. 일요일 공연을 다시 보러 간다. 일요일엔 아들 전화 기다리느라 안달복달할 까닭이 없다. 아내가 따라 나섰다. 모처럼 쾌청한 가을 날씨를 누리기 위해서다. 토요일에 갔던 그 식당으로 갔다. 아내는 열무국수를, 나는 잔치국수를 주문했다. 주인 아저씨와 말을 섞게 됐다. 이분도 어제 마당극 <정기룡> 야외 첫 공연을 보았다고 자랑한다. 산청한방약초축제장까지 가서 마당극을 본다고 했다. 어지간한 후원자, 지지자 이상이다. 알고 보니 이분, <최참판댁 경사 났네>에 직접 출연한 마을주민 배우였던 것이다. 김서방 역할을 이전에 했노라고 자랑한다. 우리가 국수 그릇을 비우고 일어서려니까 “공연하려면 아직 한참 남았는데 더 앉았다 가시지않구요?”라는데, 그 말 속에는 ‘큰들’과 관련한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무척 하고 싶은 마음이 묻어 있다.
이틀 연속 마당극을 보고 나니 기분이 개운하다. 실컷 웃었다. 눈가를 촉촉하게 하는 대목도 있었는데 용케 잘 넘어갔다. 가을날의 맑음과 높음과 여유로움을 잘 즐겼다. 틈만 나면 불쑥불쑥 솟아나곤 하던 아들 생각도 마당극 보는 동안에는 잠잠해졌으니 이 또한 마음 다스리기의 한 방편이 된 것 아닐까. 극단 큰들도 오랜만에 공연을 하였기에 근질근질하던 몸이 아주 개운해졌을 것이다. 이제 마당극 <정기룡>은 추석 연휴 끝부분인 10월 3일(토요일), 4일(일요일) 오후 2시에 각각 1회씩 공연한다. 명절에 어딜 가고 오기 조심스러우니 하동 최참판댁에서 널찍 널찍 앉아서 마당극이나 보아야겠다. 그렇게 되기를 빌어본다. 생각은 멈추지를 않는다. 우리 아들도 감사군 같은 부대에 배속되어 정기룡 같은 부대장을 만나게 되기를 빈다. 이런 맹추 같은 생각도 하게 된다.
2020. 9. 20.
이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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