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은 이제 인류 역사는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라고 말한다. ‘코로나19’의 원래 이름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었다. 이 무서운 바이러스는 이름조차 길고 어려웠다. 서양에서는 ‘코비드19’라고 줄여 불렀고 우리나라에서는 ‘코로나19’로 바꿔 불렀다. 이름을 바꾸고 나니 모든 국민이 쉽게 알아듣게 됐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새롭게 떠오른 말이 있다. ‘드라이브 스루’는 차를 탄 채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검사한다는 말이다. 이전에는 즉석음식 회사에서 주로 쓰던 말이다. 차에 탄 상태에서 책을 빌리는 ‘드라이브 대출’도 등장했다. ‘승차 진료’, ‘승차 대출’이라고 할 만하다. ‘코호트 격리’라는 말도 알게 됐다. 병원이나 요양원 등 한 건물에서 환자가 집단으로 발병할 것으로 의심되는 경우 건물 전체를 격리한다는 말이다. ‘동일 집단 격리’라고 바꿔 쓴다. ‘비말’이라는 말도 자주 언급됐다. ‘침방울’이라는 말이다.
처음 ‘드라이브 스루, 코호트 격리, 비말’이라고 쓰던 신문들이 어느새 쉬운 우리말을 쓰게 됐다. 국립국어원에서 재빨리 순화어를 권장한 덕분이다. 어려운 말을 쉬운 말로 바꾸자 ‘코로나19’가 무섭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정부는 ‘사회적 거리 두기’, ‘생활 속 거리 두기’라는 말을 사용했고 국민 누구나 쉽게 알아듣고 열심히 실천했다. 전문가의 말과 그것을 전달하는 보도용어가 같아지자 불필요한 오해가 생기지 않았고 정부 발표 내용을 잘 못 알아들어 우왕좌왕하지 않았다.
코로나19 사태는 신문·방송 등 언론의 보도용어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언론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전 국민을 상대로 한 공공언어이다. 공공언어는 정확해야 하고 국민과 소통하기 쉬워야 한다. 공공언어의 단어는 정확한 용어 선택, 순화어 사용, 어문 규범 준수 등의 기본원칙을 지켜야 한다. 보도용어도 공공언어이기 때문에 이 원칙을 지켜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비대면’이라고 해도 될 것을 ‘언택트’라고 한다. ‘코로나 우울증’이라고 해도 될 것을 ‘코로나 블루’라고 한다. ‘코로나 이후’를 가리키는 말로 ‘포스트 코로나’라고 쓴다. 코로나 이후 새롭게 등장한 생활양식을 ‘뉴노멀’이라고 하는데 국민 모두 이 말을 알아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신문을 넘겨 보면 낯선 외국어가 곳곳에 똬리를 틀고 앉아 있다. 신문사 기자들은 잘 알겠지만 그 신문을 읽는 독자는 잘 모르는 말이 많다. 어떤 말은 지방자치단체나 기업체 등에서 보내주는 보도자료에 나온 말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다. 국민과 소통하기를 바라지 않는 지자체, 기업체와 이를 비판없이 받아들인 언론 때문에 국민들이 정보로부터 소외당하게 된다.
언론사는 가장 앞자리에서 공공언어를 다루는 기관이다. 따라서 스스로 불필요한 외국어를 쓰지 말아야 한다. 쉽고 간결한 보도용어를 구사함으로써 독자들과 더 가까워져야 한다. 또한 보도자료에 쓸데없이 사용한 외국어나 국적불명어가 있으면 마땅히 이를 지적하고 비판해야 한다. 그 보도자료에 나오는 말이란 결국은 행정기관 등에서 지어낸 정책, 조례, 기관, 기구, 건물, 제도 등의 이름일 테니까.
이우기(경상대 홍보실장)
<경남신문> 2020년 6월 18일
http://www.knnews.co.kr/news/articleView.php?idxno=1327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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