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큰들, 코로나19로 예년보다 두 달 늦은 감격의 첫 공연
‘세계 최초의 마루극’으로 관객들에게 새로운 볼거리 선보여
비로 인해 37분 단축 공연에도 아낌 없는 박수ㆍ환호로 화답
손 소독제 비치, 생활 속 거리 두기 등 코로나19 예방도 만점
하동에서 올해 20회 공연…9월에는 <마당극 정기룡> 예정
전 세계에서 마당극을 가장 잘 하는 큰들문화예술센터(대표 이규희)는 5월 9일 오후 2시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서 관람객 60여 명이 생활 속 거리 두기를 실천하며 모여든 가운데 마당극 <최참판댁 경사 났네> 179회째 공연을 성공적으로 펼쳤다.
공연 전날부터 여름을 재촉하는 비가 전국적으로 쏟아지는 바람에 주로 야외에서 진행되는 마당극을 순탄하게 공연할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은 국민의 관심이 쏠렸다. 극단 큰들은 과거에는 공연 준비를 모두 마쳐 놓고서도 비가 오면 공연을 늦추거나 취소하는 등 불편을 겪어 왔다.
큰들은 5월 8일 저녁 비가 가장 많이 오는 시간에 페이스북에 “비가 오면 최참판댁 안채 마루에서 공연할게요. 마당판과는 또 다른 느낌의 공연이 되겠죠.”라는 말로 마당극 팬들을 안심시키면서도 한편으로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전술을 구사하였다.
또한 공연 당일인 5월 9일 아침에는 “이 시간 하동 평사리에는 비가 내립니다....만, <최참판댁 경사 났네>는 예정대로 진행합니다. 오늘 오시는 분들은 지금껏 없던 공연을 보시게 됩니다.”라는 내용의 글을 올림으로써, 비 오는 주말 하동행을 망설이던 고정 팬들을 유혹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같은 글에서 큰들은 “비가 내리는 고즈넉한 고택. 실내 아니고 열린 공간~ 처마 지붕에선 빗물이 떨어지고 빗물 너머 한옥 마루 위에서는 마당극이^^ 오후 2시입니다. 어서오세요~~”라는 감성 묻어나는 문장을 올렸다. 나중에도 전혀 확인 안 될 사실이지만, 이날 공연장을 찾은 관객 2~3명은 “바로 이 글귀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뭉유병 환자처럼 달려왔노라!”라고 말하기도 했다.
극단 큰들의 걸작 마당극 <최참판댁 경사 났네>는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 마련된 토지세트장에서 11년째 공연되고 있다. 이 마당극은 1부와 2부로 나뉘어 있는데 1부는 용이네 집 앞 길바닥에서 진행되고 2부는 최참판댁 안채 마당에서 진행된다. 따라서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공연을 원활하게 할 수 없는 실정이다.
극단 큰들은 이같은 사정을 고려하여 공연 일정을 안내할 때마다 항상 날씨 때문에 공연 일정이 변경될 수도 있으므로 공연을 보러 가기 전에 큰들에 꼭 확인해 달라고 요청해 왔다.
하지만 극단 큰들은 2019년 산청 동의보감촌에서 열리는 상설공연 때에도 비가 오면 마당판 부근 박물관 실내에서 실내 공연을 펼친 바 있는데, 이들은 공연장을 좁은 실내로 옮기면서도 관객들의 만족도를 최대한으로 높일 방안을 강구함으로써 “역시 큰들이다”라는 칭송을 받아 왔다. 그 이후에는 산청 동의보감촌 공연 때 비가 오면 으레 실내에서 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
극단 큰들의 신묘한 재주를 익히 아는 고정 관객들은 이날 최참판댁에서 열리는 공연에서도 일반인이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방법으로 공연을 무사히 해낼 수 있을 것으로 믿는 눈치였다. 고정 관객들은 “큰들이니까!”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데, 무엇이든 언제든 어떡하든 항상 긍정적인 자세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 내는 것을 보아온 때문에 생긴 입버릇이고 믿음인 것이다.
공연이 예정돼 있는 5월 9일 극단 큰들은 산청마당극마을에서 이른 아침을 먹은 뒤 배우가 타는 승합차와 소품을 실은 트럭으로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최참판댁 공연장으로 향했다. 이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봄비는 쉼없이 내렸다고 전해진다.
극단 큰들은 행사장에 도착하자마자 점점 강해지는 빗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품을 이동한 뒤 최종 연습에 돌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산청마당극마을에서 며칠 전부터 빗속 공연에 대비하여 연습에 연습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극단 큰들은 산청 동의보감촌 실내 공연을 성공적으로 이뤄냈던 전력을 바탕으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공연 방식을 선보였다.
결과적으로 이날 <최참판댁 경사 났네> 179회 공연을 관람한 관객들은 마당에서 펼쳐지는 마당극이 아니라 최참판댁 위채 마루에서 열리는 ‘마루극’을 관람하는 희대의 행운을 안게 됐다. 배우는 위채 마루에서, 관객들은 아래채 처마 밑에서 공연을 보는 세계적으로 매우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아래채 처마 아래에서 비를 피하며 공연을 보던 관객들은 배우와의 거리가 좀 멀게 느껴져 불편함을 느낀다면서도 하늘에서 내리는 빗줄기가 마치 오래전 어릴 적 보던 영화의 필름 긁힌 화면 같은 느낌을 자아내게 해 준다며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한 표정을 지었다.
극단 큰들의 마당극 <최참판댁 경사 났네>는 1시간 짜리 작품이다. 최참판댁 집안의 자잘한 일상이 펼쳐지는 부분과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부분으로 크게 구성돼 있다. 하지만 이날 우중 공연은 앞부분만 진행됐다. 최참판댁 안채 마루에서 일제강점기 부분까지 모두 소화하기에는 너무 조건이 좋지 않았던 탓이다. 골수팬 가운데 극히 일부는 “1시간 전편을 다 공연할 줄 알았는데 조금 아쉽기는 하다.”라는 반응을 내놓았다.
이날 공연 내용은 조준구의 간계에 재산을 다 뺏기고 간도로 떠났던 서희가 돌아와 길상과 결혼하는 장면까지였다. 앞부분 길놀이까지 합하면 37분 가량 공연된 것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큰들은 관객 가운데 한 명을 결혼식 장면에 모시는 것을 잊지 않았다. 서희의 신랑으로 지목된 관객이 한사코 사양하는 바람에 세 번째 만에 겨우 신랑을 구하는 아슬아슬한 장면도 관객들에겐 큰 웃음거리가 됐다.
극단 큰들은 공연장 주변에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손 소독제를 비치하여 입장하는 관객들에게 소독을 하도록 안내했다. 또한 관람할 때도 되도록 공간을 띄워서 서도록 요청했으며, 배우들은 관객들이 크게 웃는 장면을 보면서 더 힘을 얻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날만큼은 입마개를 쓴 채 웃어달라고 요청해 또 다른 웃음을 자아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첫 공연으로 기록된 2020년 5월 9일 마당극 <최참판댁 경사 났네>는 첫 마루극이라는 이색적인 기록도 남겼다. 1시간 분량의 작품을 절반만 공연했는데도 극의 완성도와 관객의 몰입도는 전혀 부족하지 않았다는 평가도 남겼다.
코로나19로 인해 큰들은 3월, 4월 공연을 일절 할 수 없었다. 한 배우는 “그동안 공연을 하지 못해 너무 힘들었다.”라고 고백하면서 “어려움을 겪는 극단 큰들에 힘을 주시려면 후원회원이 되어 달라.”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과연 관객 중 몇 명은 즉석에서 후원회원으로 가입하면서 ‘큰들 사랑’을 오래도록 이어가겠다는 말로 화답했다.
극단 큰들은 이날 공연과 함께 올 한해 동안 ‘하동공연’ 일정도 공개했다. 하동에서 11년째 마당극 상설공연을 해오고 있는 큰들은 올해에도 20회 공연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9월 한 달 동안 4회에 걸쳐 <마당극 정기룡>을 공연한다는 점이다. <마당극 정기룡>은 4~5년 전 성황리게 공연되던 작품이지만 최근 몇 해 동안은 공연하지 않았다.
<마당극 정기룡>은 임진왜란 7년 전쟁 동안 ‘63전 63승’이라는 불패의 신화를 이룩한 육지전의 명장 정기룡 장군의 일대기를 극화한 작품이다. 마당극의 주인공 정기룡 장군(1562∼1622년)은 조선 중기 무신으로 하동군 금남면에서 태어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국란에서 나라를 구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인물이다.
<선조실록>에는 정기룡 장군이 없었으면 영남을 지킬 수 없었고, 영남을 지키지 못했으면 조선이 없었을 것이라 기록돼 있다고 한다. 바다에는 이순신, 육지에는 정기룡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장군이 세운 공은 컸으나 아쉽게도 오늘날 장군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의 공적을 생각하면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기룡 장군이 극단 큰들과 만나 어떤 모습으로 우리들에게 등장할지, 오늘날 우리 세대에게 들려줄 전언(메시지)은 무엇일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5월 9일 하동군 평사리 마당극 공연장을 찾은 관광객들은 올해 큰들 마당극 공연 일정을 확인한 뒤 자신의 스마트폰 일정에 하나하나 저장하는 민첩함을 보였고, 특히 <마당극 정기룡>을 오랜만에 만나게 될 설렘에 앞으로 넉 달 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자게 됐다며 이런 고통과 손해는 큰들에서 보상해 주어야 마땅하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극단 큰들 관계자는 “훌륭한 작품으로, 멋진 공연으로 충분히 보답할 것이다.”라고 자신있게 답변하며 “하지만 <마당극 정기룡>은 이전에 공연한 작품을 개작하는 게 아니라 완전히 다른, 완전히 새로운 작품이다.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는 작품이다. 이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보상이 될 것이다.”라고 강조해 매우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했다는 후문이 있다.
마당극, 아니 마루극은 60여 명의 관람객이 환호하고 손뼉 치는 가운데 성공리에 끝났다. 버나놀이에서 버나를 마음껏 던지지 못한 점, 3명의 어른 주민배우가 출연하지 않은 점, 조준구와 홍씨가 망해가는 과정이 압축된 점, 무엇보다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을 공연하지 못한 점 등은 매우 아쉬운 대목으로 남을 것이지만, 악천후 속에서도 기발한 방법으로 코로나19 이후 첫 공연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것이다.
극단 큰들은 올해 첫 공연을 성공적으로 해낸 실력, 판단력, 상황 대처 능력 등을 무기로 하여 5월 10일에는 오전 11시와 오후 2시 2회 연속 공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올해는 하루에 2회 공연하는 날이 여러 번 예정돼 있다. 항상 무엇을 기대하든 그 이상을 보여주고, 언제 어떤 악조건이 주어져도 웃으며 상황을 극복해 내는 극단 큰들에 쏟아지는 찬사와 응원, 그리고 후원회원 가입 행렬이 영원히 이어질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극단 큰들은 공연이 끝난 이날 저녁 페이스북에 “처마 밑에, 의자도 없이 내내 서서 끝까지 함께해 주신 관객분들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말을 올렸다. 큰들은 “큰들 마당극 사상 이런 공연은 처음^^ 비 덕분에(?) 이색 공연을 했네요.”라며 준비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음을 내비쳤다.
또한 큰들은 “내일은 180회째, 181회째 공연입니다. 전국 지자체 상설공연 최장기 연속 공연입니다. 11년째 같은 장소에서 같은 제목의 마당극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물론 내용과 대사는 늘 변화무쌍~ 내일은 비 안 온다니 야외 큰 마당에서 널널하게 공연합니다. 닫힌 실내가 아닌 야외에서 하는 마당극이라 요즘 시국에 그나마 다행입니다. 여러분은 마스크 꼭 준비해 오시고 저희들은 손 소독제 많이 준비하겠습니다.”라고 5월 10일 공연 일정을 안내했다.
진주시 신안동에서 15년 동안 살다가 다른 동네로 이사간 이 아무개 씨는 “큰들 마당극을 다시 만나게 되어 무척 기쁘다. 비록 마루에서 진행된 공연이지만 지난겨울 동안 갈고 닦아온 큰들의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기에 충분했다.”라면서 “비오는 주말 고즈넉한 한옥에서 풍물을 울리며 함께 즐긴 사실만으로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진주시 이현동에 사는 또 다른 듯한 이 모 씨는 “코로나19 때문에 모든 국민이 정신적으로 굉장한 압박(스트레스)을 느끼고 있다. 이러한 때일수록 공연, 전시 같은 문화를 소비할 필요가 있다.”라는 말로 평소의 견해를 밝힌 뒤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생활수칙을 열심히 지키면서 틈틈이 문화적 욕구를 해소하고, 이를 통해 문화예술단체에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진주시 가좌동에 있는 직장을 다니는 한 50대 남성은 이날 마루극을 관람한 뒤 “극단 큰들 공연을 보기 위해 빗속에도 하동까지 찾아온 사람들의 열정도 대단하다.”라면서 “마당극이라는 우리 전통 연희 양식을 좋아하고 큰들의 마당극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응원과 성원 덕분에 오늘과 같은 멋진 공연이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믿음과 응원의 마음이 영원했으면 한다.”라는 말로 극단 큰들에 대한 사랑을 강력하게 표출하기도 했다.
2020. 5. 9.
이우기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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