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서 마당극을 가장 잘하는 극단 큰들이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최참판댁에서 상설 공연하는 작품 <최참판댁 경사 났네>의 몇 가지 특징을 알아본다. 이 글은 학술적인 글도 아니고 전문적인 글도 아니다. 그저 마당극을 수십 번 보다가 대충 알게 된 잡스런 정보라고 할 만하다. 이맛살 찌푸리며 들여다볼 이야기가 아니다. 혹시 마당극 <최참판댁 경사 났네>를 보러 가는 사람이 이 글을 미리 읽는다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싶긴 하다.
1. 원작이 있다.
극단 큰들이 현재 성황리에 공연 중인 작품은 <최참판댁 경사 났네>를 비롯해 <오작교 아리랑>, <효자전>, <남명>이 있다. <역마>도 볼 수 있다. 이들 작품 가운데 <최참판댁 경사 났네>와 <역마>는 원작이 있다. 눈치 빠른 사람은 벌써 알아보았겠지만 <최참판댁 경사 났네>는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가 원작이다. 200자 원고지 4만 장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소설을 1시간짜리 마당극으로 만들어 냈다. <역마>는 김동리의 단편소설 ≪역마≫를 마당극으로 만든 것이다. ≪토지≫를 읽은 사람이든 읽지 않은 사람이든 <최참판댁 경사 났네>를 보면 소설의 전체 내용을 감지할 수 있을 만큼 절묘하게 잘 압축했다는 평가를 듣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하동군이 소설 ≪토지≫의 내용대로 꾸며놓은 세트장에서 공연하는 이유가 있다. 전국의 문학 모임, 문학 기행 모임 회원들이 일부러 날을 잡아 하동으로 마당극 보러 오는 데도 그 까닭이 있는 것이다. 나머지 마당극은 극단 큰들의 작가가 창작한 작품이다. 그중 <효자전>은 배경이 되는 전설이 있다.
2. 1-2부로 나누고 공연 장소를 옮겨간다.
극단 큰들이 공연하는 작품들은 대개 5~6마당으로 나뉘는데 한 장소에서 공연한다. 자리잡고 앉은 관객을 이리저리 이동하게 하면서 공연하지 않는다. 적게는 200명에서 많게는 500명쯤 되는 관객을 이동하게 하는 건 애당초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최참판댁 경사 났네>는 크게 1-2부로 나누어 공연하면서 1부를 마치고 나면 장소를 옮겨가서 2부를 공연하는 작품이다. 1부는 평사리 마을 사람들의 평소 일상을 보여주는데 최참판댁 세트장 용이네 집 앞 길에서 공연한다. 길놀이와 버나놀이 등으로 관객을 모으는 역할을 한다. 2부는 최참판댁 안채로 옮겨가서 공연한다. 최씨 집안의 이런저런 내력과 일제강점기의 시대상 등을 보여준다. 1부 공연을 본 관객들이 2부가 이어지는 안채로 이동해야 한다는 배우의 설명을 들으면, 서로 좋은 자리에 앉으려고 벌떡 일어나 달려간다. 1부에서 관객의 궁금증과 흥미를 충분히 불러일으켜 주기 때문이다. 1부 공연을 본 관객들이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궁금해 미치겠다는 표정으로 2부 공연이 열리는 곳으로 농악대와 함께 이동하는 장면은 그 자체가 볼거리이다. 대단한 기획이다.
3. 고정 주민 배우가 있다.
마당극 <최참판댁 경사 났네>에는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주민이 배우로 출연한다. 고정 출연이다. 전 마을 이장도 등장하고 아주머니 배우도 2명 등장한다. 어린 서희 역할은 악양초등학교 학생이 출연한다. 이들의 연기를 보는 재미도 무척 쏠쏠하다. 극단 배우와는 한눈에 구별되는 듯하면서도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매력들이 있다. 관객의 웃음을 자아내는 톡 쏘는 대사도 눈길을 끈다. 극단 큰들은 마당극을 제작하면서 관객을 마당으로 불러들여 한 가지 역할을 하게 하는 기법을 구사하는데, 아예 공연장이 있는 마을의 주민을 고정 배우로 맡긴 것은 이 작품이 유일무이한 듯하다. 누가 주민 배우인지를 찾아보면서 마당극을 즐길 수 있다.
4. 사방에서 볼 수 있다.
원래 마당극은 마당에서 공연하는 것이다. 동서남북 사방에서 볼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여러 가지 여건상 그렇게 하기는 어렵다. 주로 마당 정면에는 걸개그림이나 병풍이 걸려 있다. 그 뒤에서 배우들이 의상을 갈아 입거나 다음 배역을 기다릴 동안 쉬기도 한다. 관객들은 정면을 제외한 나머지 세 방향에서 극을 관람한다. 하지만 <최참판댁 경사 났네>는 그렇지 않다. 용이네 집 앞에서 진행되는 1부는 물론이고 최참판댁 안채에서 펼쳐지는 2부도 관람하는 방향에 제한이 없다. 최참판댁 위채 마루에서 앉아서 보는 사람, 부엌 쪽에서 보는 사람, 헛간 쪽에서 보는 사람, 대문 쪽에서 보는 사람 등 모든 방향에서 마당극을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배우들은 한곳으로 사라지고 한곳에서 등장하지 않는다. 사방으로 사라졌다가 전혀 엉뚱한 곳에서 나타난다. 배우들의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일제히 고개를 돌리는 관객들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만약 한 사람이 여러 번 <최참판댁 경사 났네>를 보러 간다면 방향을 바꾸어 가면서 감상해 보는 것도 별미일 것이다. 배우들의 옆모습, 뒷모습 들을 세심하게 관찰하면서 마당극을 즐길 수 있다. 이 또한 <최참판댁 경사 났네>의 한 특징이라고 하겠다.
5. 같은 관객 배우가 여러 번 등장한다.
극단 큰들은 마당극에서 그날 공연을 보러 온 관객 한 명을 즉석에서 뽑아 단순한 배역을 하나 맡긴다. <오작교 아리랑>에서는 결혼식 장면에서 남돌이를 맡긴다. 남돌이는 작품 속으로 세 번 들어간다. 결혼식 장면, 부모가 나타났을 때 인사하는 장면, 맨 뒤에 화합의 잔치가 펼쳐지는 장면 등이다. <남명>에서는 5분 정도 등장하는 사또를 맡긴다. 관객 사또는 5분 정도 등장한다고 하여 ‘5분 사또’라는 별명을 얻는다. <효자전>에서는 관객에게 역할을 맡기지 않는 대신 첫머리에서 배우(갑동이)가 관객 속으로 달려들어간다. <역마>에서도 관객은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최참판댁 경사 났네>에서는 한 명의 관객이 최참판댁의 머슴(기타 등등)이 되었다가 서희의 가짜 신랑이 되었다가 독립군(등등 동지)이 된다. 사람은 같은 사람인데 세 가지 배역을 하게 되는 것이다. 다른 작품과 뚜렷이 구별된다. 처음 기타 등등이라는 머슴으로 지목돼 얼떨결에 연기를 하게 된 관객이 그다음에도, 또 그다음에도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어서 더욱 웃기고 재미있다.
6. 모든 관객이 한마음 한뜻으로 참여할 기회를 준다.
마당극을 보면 관객들은 함께 웃고 운다. 동시에 손뼉 친다. 배우들이 웃기고 울리는데 배겨낼 재간이 없다. <최참판댁 경사 났네>에서는 모든 관객들에게 태극기를 나눠준다. 모든 관객이 일제강점기에 조국 광복을 위해 노력하는 독립군이 된다. ‘독립군가’ 반주에 맞춰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든 관객이 태극기를 힘차게 흔들며 노래를 합창한다. 이런 장면을 볼 때마다, 함께 태극기를 흔들 때마다 감격에 젖게 만든다. 태극기는 관객들에게 소중한 기념품이 된다. 마당극이 끝나면, 특히 아이들은 손에 손에 태극기를 들고 집으로 돌아간다. ‘독립자금이 부족하여’ 태극기가 몇 개 모자란 일이 생기는데(관객이 너무 많이 오는 날이 그렇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양보한다. 모든 관객이 한마음 한뜻으로 참여하게 하고 모든 관객에게 작으나마 기념품을 주는 작품이 <최참판댁 경사 났네>이다.
마당극 <최참판댁 경사 났네>는 토지문학제 10주년 행사 중이던 2010년 9월 25일 첫 공연을 올린 이후 2020년 5월 9일 179회 공연을 앞두고 있다. 마당극 여러 작품을 보면 극단 큰들이 가진 다양하고 폭넓은 재주를 느끼게 된다. <최참판댁 경사 났네>에는 큰들이 가진 여러 가지 재주가 농익어 있다. 주제의식도 뛰어나고 배우들의 연기는 두말할 나위 없다. 음악과 음향, 소품도 완벽하다. 따라서 관객들의 반응이 폭발적이다. 원고지 4만 장 분량을 1시간으로 압축했으면서도 이야기의 대강을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연출력도 대단하다. 그런 작품의 몇 가지 특징을 미리 짐작하고 본다면 한층 더 재미있을 것이다. 쓰고 나서 보니 한두 가지 더 특징이 있는 듯한데, 이만하면 됐지 싶다.
2020. 5. 7.
이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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