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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과 글을 보는 내 눈

하트세이버

by 이우기, yiwoogi 2020. 4. 16.

며칠 전 함양소방서가 소방서 소속 대원 두 명에게 ‘하트세이버’ 인증서를 주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이 소방대원들은 2019년 11월 17일 함양읍 용평리에 있는 한 가정집에 심정지 환자가 생기자 재빨리 응급처치하여 환자의 심장을 되살렸다고 한다. 함양소방서장은 “위기의 순간에 빠르고 정확하게 응급처치하여 소중한 목숨을 구한 구급대원들에게 감사한다.”라고 말했다.

 

국회의원 총선거와 코로나19 사태로 어수선하던 가운데 매우 반갑고 고마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마침 소방공무원이 지방직에서 국가직으로 전환됐다는 소식을 들은 터여서 더욱 눈길을 끌었고, 그들의 가없는 희생과 봉사 정신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생각이 들어서 몇 자 적는다. 위험에 빠진 사람 목숨을 구한 훌륭한 소방대원에게 주는 인증서 이름이 ‘하트세이버’라고 하는 게 영 마음에 걸린다.

 

소방대원이 미국 사람도 아니고, 그들이 구한 사람이 미국 사람도 아닌데 왜 미국말로 된 인증서를 우리나라 소방서가 주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하트세이버’ 인증서는 어느 한 소방서에만 있는 제도가 아니라 전국 모든 소방서에서 운영하는 제도인 듯하다.

 

검색해 보니, 서울 은평소방서에서도 얼마 전에 이것을 주었다 하고, 경남소방서에서는 중증환자를 살린 ‘하트ㆍ브레인 세이버’ 37명을 인증했다는 이야기도 보인다.

 

‘하트세이버(Heart Saver)’는 심정지 또는 호흡정지로 위급한 상황에 놓인 환자에게 심폐소생술 등 재빨리 응급처치하여 소중한 목숨을 구한 사람에게 수여되는 인증서라고 한다.

 

‘심장=하트’, ‘구한 사람=세이버’. 이렇게 생각한 모양이다. 우리나라에서 먼저 만든 말이라기보다 외국에서 쓰는 말을 그대로 가져왔을 가능성이 높다.

 

심정지 또는 호흡정지된 사람을 심폐소생술로 살렸으니 ‘심장’을 먼저 떠올릴 만하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구해낸 건 결국 그 사람의 목숨 아닌가. 심장에 방점을 찍더라도 ‘심장 구한 사람 인증제’라고 하면 되겠고, 결국 목숨을 구한 것이니 ‘목숨 구한 사람 인증제’라고 해도 되겠다. ‘목숨 구한 영웅’이라고 해 되겠고 ‘심장 되살린 영웅’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하트세이버 인증을 받은 사람이 인증서를 자랑스럽게 집에 걸어 놓았다고 치자. 그의 나이 많은 부모님, 조부모님이 이 말을 얼른 알아볼까. 그의 나이 어린 자녀나 조카들이 이 말을 제대로 알아볼까. 자랑스러운 인증서를 줬는데도 자랑할 데가 얼마 없을지 모르겠다.

 

하트세이버 인증이라는 말을 다른 알맞은 말로 바꾸었으면 좋겠다. 어린 아이에서부터 나이 많은 어르신들까지 한눈에 알아보고 자랑스러워할 만한 말로 바꾸었으면 좋겠다.

 

2020. 4. 17.

이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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