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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 대한 내 생각

트로트

by 이우기, yiwoogi 2020. 2. 29.

 

형제가 함께하는 단톡방이 있다. 목요일이면 “난 벌써 홈입니다. 좀 있다 미스터트롯”이라거나 “ㅎㅎ 나도 미스터트롯 보려고 채널 예약하고 티브이 보고 있다”, “역쉬 탁이 잘하네요”라는 말이 올라온다. 하동 출신 정 아무개는 ‘신동’이라는 호칭까지 듣는다. 무슨 탁인가 하는 친구는 우리 형제들에게 인기가 높다. 설날 차례 지낸 후 유튜브 틀어놓고 <막걸리 한잔>을 다함께 감상하기도 했다.

 

여차 저차하여 몇몇 출연자의 노래를 들었다. 잘 부른다. 신동이라는 이름도 아깝지 않다. <신라의 달밤>을 부르는 이에게는 푹 빠졌다. <용두산 엘레지>를 부르는 여성 가수에게도 아낌없이 박수를 보낸다. <미스터트롯> 뿐만 아니다. 여기저기 트로트가 대세다. 대단한 인기다. <미스터트롯>을 방송하는 종합편성채널은 종편 역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고 난리다.

 

몇 가지 생각해 보았다. 첫째, 트로트가 대세를 이룬 데는 뛰어난 가창력을 자랑하는 보배들의 등장에 힘입은 바 크다. 송 아무개 여성가수에서부터 조 아무개, 정 아무개, 임 아무개, 전 아무개 등 내로라 하는 가수들이 빛을 내고 있다. 목소리, 박자, 음정 들에서 빈틈이 없다고들 한다. 무대에서 몸동작도 기성 가수 뺨친다. 정 아무개는 색소폰을 멋드러지게 불러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여기 저기서 몇몇 자료를 들추어 보니 이들은 벌써 오래 전부터 두각을 나타내었다. 가령 하동 정 아무개는 전국노래자랑 같은 대중 가요 경연에 등장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강원 출신 조 아무개도 곳곳에서 벌써 자기 존재를 증명해 왔다. 이런 보석 같은 이들을 찾아내어준 방송이 고맙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때부터 꾸준히 실력을 갈고 닦아온 이들이 더 고맙다.

 

 

둘째, 이들이 부르는 노래 가사가 마음을 움직인 열쇠가 되었다. 요즘 한창 인기를 끄는 트로트 가요는 <신라의 달밤>, <사랑은 눈물의 씨앗>, <이별의 부산 정거장>, <대동강 편지>처럼 꽤 오래된 곡이다. <보릿고개> 같은 노래도 떴다. 이 노래들은 가사가 매우 서정적이다. 듣는 이들이 단숨에 빠져들게 되고 눈물을 흘리게 된다. 마음속 눈물보를 툭 건드리는 데는 이런 트로트만한 게 없다. 정 아무개가 부른 <우수>를 듣다가(가사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아이돌 노래들은 곡은 경쾌하지만 가사는 알아듣기 어렵다. 방탄소년단이 ‘우주대스타’가 되었다고 온 세상이 호들갑이지만 가사는 여전히 어렵다. 오죽했으면 곡을 듣고 가사를 알아맞히는 방송 <놀라운 토요일-도레미 마켓>에도 방탄소년단 노래가 나왔겠는가. 그 방송에 20대 아이돌 가수와 배우들이 나왔는데도 가사를 못 알아들어 한참이나 헤맸다. 이런 와중에 가사가 귀에 쏙쏙 꽂히는 트로트는 많은 이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기에 충분했다.

 

셋째, 조금 다른 생각도 해본다. 하동 출신 정 아무개는 올해 14살이다. <용두산 엘레지>를 부르는 전 아무개는 15살 중학교 2학년 나이다. 아직은 어리다. 그가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 기교는 최고조이지만 감성은 아직 얕다. 10년, 20년 지나면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가수로 성장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나는 14~15살 나이의 학생은 학교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학교에서는 국어, 영어, 수학도 배우지만 친구들과 잘 지내는 방법, 규칙을 지켜야 하는 이유, 선생님을 존경해야 하는 까닭 같은 것도 배운다. 역사도 배우고 과학도 배운다. 이런 건 그가 나중에 자라 무엇이 되든 꼭 갖추고 있어야 할 기본적인 것이다. ‘신동’이라는 말에 도취되어 기본적인 것을 놓치지 않도록 주위에서 잘 이끌어 주기를 진정 바란다. 연예인들이 맞춤법도 알고 역사도 잘 알았으면 좋겠어서 하는 말이다.

 

 

넷째, 내가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단도직입으로 말해 ‘트롯’이라고 쓰면 틀렸다. 말과 글을 틀렸다고 말하는 건 좀 조심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따른다. 사전에서는 “‘트로트’(trot): 우리나라 대중가요의 하나. 정형화된 리듬에 일본 엔카(演歌)에서 들어온 음계를 사용하여 구성지고 애상적인 느낌을 준다.”라고 한다. 반면 ‘트롯’(trot)은 ‘승마에서, 말의 총총걸음을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완전히 다른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바르게 표기하는 게 옳다고 본다. ‘미스터트롯’을 방송하는 종편이 바꿔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지만 아무튼 그렇다. ‘트로트’면 어떻고 ‘트롯’이면 어떻냐고 말하면 할 말이 없지만, 아무튼 그렇다. 신문, 방송, 잡지 같은 매체들은 특별한 경우를 빼고 되도록 표준어를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외래어, 외국어도 표기법을 따르는 게 옳다고 본다. 국민들의 언어생활에 혼란을 주지 않는 게 좋다고 본다.

 

2020. 2. 29.

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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