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사랑’ 창립 취지문
넓고, 깊은 공부로 경의지학(敬義之學) 높이 쌓았네.
해와 달을 품은 학문으로 숙성시킨 경의사상 「신명사도(神明舍圖)」에 오롯이 담겼어라.
지(知)는 행(行)의 준비요, 행은 지의 완성이니
홀로 높은 실천유학의 경지는 구름 위에 우뚝 솟은 천왕봉이로구나.
훈척이 발호하는 치란(治亂)의 시대에 조정이 백성을 돌보지 않으매
백성은 물이요 군왕은 배라며 민암부(民巖賦)를 지었고,
‘백성’을 일곱 번 적는 단성소(丹城疏)로 왕도정치를 주창하며 암군을 훈계하였더라.
왜구의 침노와 서리(胥吏)의 망국 미리 알렸으니, 남명의 혜안 어느 재상이 따를 수 있으랴.
그래서 선조는 남명의 제자(小子)를 자처하였구나
그래서 광해는 한 가닥 실낱같은 운명의 조선을 구한 어른으로 숭모하였구나.
그래서 영조는 당대에 남명 같은 인재가 없음을 한 숨 쉬어 한탄하였구나.
그래서 정조는 “우리 동방에 태어난 남명, 깨끗한 성품에 우뚝한 기상”이라 찬탄하였구나.
아! 이 무슨 역사의 농간인가?
학문의 바다 넓고 깊은 줄 모르던 주자학당(朱子學黨)이 이욕에 눈이 멀어
조선의 운명을 구하려던 광해와 정인홍에게 폐모살제를 둘러 씌워 몰아내고 죽였으니.
아하, 그리하여 남명과 정인홍이 조선역사에 금기어가 되었구나.
인조반정의 주체들아, 무슨 억하심정으로 죽은 남명까지 구축하였더냐?
시간은 참으로 힘이 세다. 모든 것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주자말류들이 그렇게 흙을 덮어서 묻고, 발길질 하듯 남명을 폄훼하였건만
맘과 눈이 맑고 밝은 학자들이 갸륵한 노력으로 덮인 흙을 걷어 내었다.
400년 만에 남명이 햇살 속으로 나와 ‘민족의 스승’이요 ‘선비정신의 표상’이 되었네.
그러나 잊혀졌던 긴 세월 때문이리라.
우리 국민들은 남명을 거의 모른다. 몰라도 너무 모르니 참 억울한 일이다.
저들의 저열한 농간을 짚어서 왜곡을 바루고 오해를 벗기는 일을 이제 누군가 해야 한다.
남명을 정확하게, 널리 알리는 일도 오늘의 누군가가 힘써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이 뜻깊은 일을 함께 할 주체들을 널리 모시고자 하노라.
2019년 12월 일
남명사랑 창립 준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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