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방송 브이오디(VOD)에서 돈 내고 영화 <기생충>을 보았다. 그 느낌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겠다. 2시간 내내 긴장해서 허리가 아플 지경이다. 생각지도 못한 사건 전개에 머리는 어지럽다. 까끌까끌한 뒷맛 때문에 오래도록 잔상이 남을 듯하다. 이 세상에 드리워진 보이는, 보이지 않는 차별이 사람 마음에 얼마나 큰 상처로 남는지 짐작할 만하다.
짜파구리를 먼저 끓여먹고 영화를 본 건 다행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다 먹지 못했을 것이다. 짜파게티 하나와 소고기라면을 섞었다. 짜파게티 양념은 다 넣고 라면 양념은 반만 넣었다. 소고기 채끝살이 없어 장조림을 넉넉히 넣었고 매운 고추를 잘게 썰었다. 달걀 구이도 얹었다.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적당히 섞어 끓여 먹는 짜파구리는 그냥 재미이고 조금은 별미이고 간혹 장난이다. 그저 그럴 뿐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제 짜파구리도 빈부를 구분해 주는 도구가 된다는 것을 알겠다. 그냥 무심코 먹는 음식 하나, 생각없이 내뱉는 말 한 마디도 어떤 사람에겐 살을 찢을 듯한 고통을 줄 수 있다.
한 사회가 아무런 문제 없이 톱니바퀴 돌아가듯 착착 잘 돌아간다, 고 생각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톱니바퀴에 매달려 바둥거리며 살아가는 기생충이 있다. 녹을 먹고 이끼를 먹고 먼지를 먹으며 생명을 연장한다. 녹이 많이 끼면 톱니바퀴가 멈추고 이끼가 무성해지면 톱니 전체를 덮을지 모른다. 그러나 적당한 먼지는 톱니를 긴장하게 한다. 그렇게 잘도 돌아간다.
적당히 익은 김치가 있었고 맑은 막걸리가 있었기에 짜파구리는 잘 넘어갔다. 달걀의 미끌거림 덕분에 뻑뻑한 면발은 보드랍게 변했다. 만약 채끝살을 넣었더라면,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나는 토했을지 모른다. 재미나 장난으로 끓여 먹는 라면 하나도 어떤 이들에겐 과시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2020. 2. 11.
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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