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 영화 <김복동>을 보았다. 보는 내내 답답하고 갑갑했다. 미안하고 슬펐다. 같은 하늘 아래 살면서도 할머니의 삶과 싸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못한 게 미안했다. ‘주권’ 있는 나라의 국민이 그토록 처절하게 싸우고 있는데도 명색 정부라는 데서 앞장서 나서지 않는 게 슬펐다. 한 분 한 분 저세상으로 가고 계신 데도 남의 일인 듯 모른 척하는 사람들, 특히 이 문제를 해결할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는 정치인들이 미웠다. 수많은 김복동을 전장으로 끌고 가 성욕에 눈이 뒤집힌 일본 병사들의 성노예로 삼아놓고는, 채 피어보지도 못한 어린 꽃을 그토록 무자비하고 참혹하게 망가뜨려 놓고는 이제 와서 그런 일 없다고 뻔뻔스런 낯짝을 쳐드는 일본 정치인들이 죽이도록 싫었다.
김복동이라는 이름 앞에는 여성인권운동가, 평화운동가라는 멋진 꾸밈말이 붙는다.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는 말도 늘 따라다닌다. 사실은 위안부 피해자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 앞 꾸밈말을 붙인 것이다. 피해자이지만 피해자로만 살지 않은 할머니의 큰 삶을 나타내고 있다. 1992년부터 올해 1월 저세상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매주 수요일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아흔이라는 나이에 미국과 독일과 프랑스를 다니며 외국에서라도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 달라고 외쳤다. 같이 활동하는 사람의 부축을 받아가며 때로는 바퀴의자에 앉아서 전 세계를 돌아다니던 김복동 할머니의 품은 생각에 공감했다. 눈물이 났다.
증손자뻘 되는 평화나비 네트워크 학생들이 김복동 할머니들을 모셔놓고 노래를 불렀다. 사랑합니다 외쳤다. 박근혜 정부 때 만든 ‘화해ㆍ치유 재단 이사장 기자회견’ 하는 곳을 쳐들어가 소리 높여 외쳤다. 평화소녀상을 찾아가 목도리를 둘러주고 그 정신과 뜻을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다시는 이런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김복동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약속해야 할 사람은 대한민국 국민이다. 가해자인 일본 사람도 다짐하고 약속해야 한다. 이 세상에 전쟁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전쟁으로 인한 피해자의 인권을 생각하는 사람 모두 다짐하고 약속해야 한다.
영화 <김복동> 누리집에 올려놓은 김복동 할머니의 발자취를 옮겨둔다. 잊지 않기 위해서이다.
‘김복동 할머니’의 발자취
1926년 경상남도 양산에서 출생
1940년 만 14세에 일본군 '위안부'로 연행.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
일본군의 침략경로를 따라 끌려 다니며 성노예가 됨
1945년 싱가포르에서 일본군 제16사령부 소속 제10 육군병원에서 간호사로 위장 당하여 일본 군인들 간호 노동 후 버려짐. 미군포로수용소에 수감
1947년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지 8년째 되던 22세에 귀향
1992년 3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 공개 후, 여성인권운동가이자 평화운동가로 활동 시작
1992년 8월 제1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에서 증언
1993년 6월 오스트리아 비엔나 세계인권대회에 참석해 ‘위안부’ 피해 사실 증언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에 원고로 참여, 실상을 문서로 증언
2011년 3월 일본 동북부대지진 피해자 돕기 모금 제안, 1호로 기부
2012년 3월 8일 한국정신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과 함께 전시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나비기금 설립
2012년 7월 30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글렌데일 시의회로부터 용감한 여성상 수상
2012~16년 유엔인권이사회, 미국, 영국, 독일, 노르웨이, 일본 등 매년 수 차례 해외 캠페인을 다니며 전쟁 없는 세상,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이 생기지 않는 세상을 위해 활동
2013년 7월 30일 해외 첫 평화의 소녀상 설치. 미국 캘리포니아 글렌데일시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 참석, 활동
2014년 3월 7일 베트남 한국군 성폭력 피해자에게 사죄와 지원 메시지 영상으로 알림
2015년 5월 국경없는기자회, AFP가 "자유를 위해 싸우는 세계 100인의 영웅"에 선정
2015년 6월 25일 전쟁•무력분쟁지역 아이들 장학금으로 5천만 원 나비기금에 기부
2015년 12월 10일 대한민국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2015 대한민국 인권상 국민훈장 수상
2017년 7월 6일 재일조선고등학교 학생 2명에게 김복동 장학금 전달
2017년 8월 사후 남은 모든 재산 기부약정
2017년 9월 26일 서울특별시 명예의 전당에 선정
2017년 11월 23일 한국 포항지진 피해자 돕기 1천만 원 후원
2017년 11월 25일 정의기억재단으로부터 여성인권상 수상
2017년 11월 27일 여성인권상금 5천만 원을 무력분쟁지역 성폭력 피해자 지원 및 활동을 위해 '김복동평화상' 제정, 정의기억재단에 기부(1회 수상자: 우간다 내전 성폭력 생존자, 인권운동가 아칸 실비아 선정)
2017년 12월 10일 국제여성인권단체가 '성평등 유산의 벽'에 김복동 할머니와 정대협 선정
2018년 6월 9일 일본 도쿄 사단법인 희망씨앗기금 주최 집회 참석, 발언 재일조선학교 학생들에게 김복동 장학금 수여
2018년 12월 10일 '김복동의 희망' 명예회장 취임
2018년 11월 22일 재일조선학교 지원을 위해 5천만 원 '김복동의 희망'에 기부
2019년 1월 2일 제1회 바른의인상 수상, 상금 5백만 원을 재일조선학교를 위해 '김복동의 희망'에 후원
2019년 1월 28일 1년여의 암 투병 끝에 94세를 일기로 별세
더 알아두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019년 생존자 단 21명(2019년 7월 18일 기준)
평화의 소녀상
김복동 할머니가 일본이 사죄할 때까지 전 세계에 세우겠다고 다짐
전국 112개, 그중 단 32개만이 공공조형물로 지정돼 관리
수요집회
매주 수요일, 일본 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정기집회
1992년 1월 시작돼 2019년 8월 14일 1400회
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10억 엔의 위로금으로 박근혜 정부 - 아베 정부 사이에서 이뤄진 합의
진정한 사죄를 원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배제해 물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매년 8월 14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고, 피해자를 기리는 국가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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