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산소에 가서 녹차씨를 주워 왔다. 2011년 겨울에 심은 녹차나무가 제법 많은 씨를 흩어놓았다. 겨울 추위에 얼어 죽을 뻔한 적도 있고 봄 가뭄에 말라 죽을 뻔한 적도 있지만, 그래도 꿋꿋이 살아남은 녹차나무들이다. 크지 않는 녹차나무 사이를 헤집으며 한 알 한 알 씨를 주웠다. 손가락 끝이 마비될 정도로 시렸고 허리는 욱신거렸으며 장딴지와 허벅지도 쥐가 내릴 정도로 아팠다. 1시간 동안 열심히 주웠다. 어떤 건 씨알이 제법 굵고 어떤 건 싹을 틔울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중 몇몇은 지난해 떨어진 것도 있을 것이다. 씨앗들의 부모는 우리 아버지 산소를 지키고 있고, 조부모는 다솔사 와불 등을 긁어주고 있다. 몇몇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고 몇몇은 의령으로 날아갈 것이다. 긴 인연이 또 시작하는 것이다.
2020. 2. 2.
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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