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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칠불사에 갔다

by 이우기, yiwoogi 2019. 11. 2.

칠불사에 갔다.

17~18년 전 온 가족이 단풍구경을 갔던 절이다.

그 뒤로 몇 번 더 다녀왔다.

노란 은행나무가 뚜렷이 기억에 남았다.

아주 가끔 꿈에도 나온다.

그때 아버지는 젊으셨다. 환갑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아들은 두 살이어서 볼과 목에 솜털이 뽀송뽀송하던 시절이다.

우리는 열여섯 명이었고 열일곱이었다가 지금은 열다섯 명이다.

해우소 앞 느티나무 아래 옹기종기 모여 앉아 사진을 찍었더랬다.

은행은 저 멀리서 우리들의 환한 웃음을 돋보이게 해주었다.

은행은 더 노래졌고 나는 늙어졌고 아버지는 안 계신다.

 


재첩국수를 먹었다.

재종형이 하는 곳이다. 형수와 조카와 조카사위가 다 함께 일한다.

재첩국수라는 차림은 국내 최초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처음 본 듯하다.

형은 손녀 보는 재미에 빠졌다.

일꾼들이 바쁜 손놀림을 한다. 손님이 많다.

재첩국과 어울리지 않을 듯한 젊은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그들은 쉴새없이 사진을 찍어 누리소통망에 올린다.

비빔국수 물국수 먹고 전병으로 속을 채웠다.

열무김치가 꼭 알맞게 익었다. 막걸리는 끝까지 참았다.

형이 직접 조제한 칡즙 한 병 샀다. 간에 좋을 것이다.

 




마당극을 보았다.

화개장터 주말문화공연으로 열린 <오작교 아리랑>이다.

나로서는 올해에만 여덟 번째 만난 오작교이다.

마당극 전체로 보자면 어느새 서른일곱 번째이다.

바뀐 배역이 몇몇 생겨서 그걸 찾느라 재미있었다.

맨앞에 앉은 꼬맹이들이 유난히 극에 심취했다.

녀석들 덕분에 배우들이 원고에 없던 대사를 좀 해야 했다. 그런 날도 있다.

50~60대 아지매들이 마당극에 푹 빠졌나 보다. 환호와 손뼉이 무척 컸다.

여섯이던 까막까치가 어느새 일곱으로 늘어났다. 들어야 하니까.

내가 본 오작교 공연 중 처음으로 관객배우가 중간에 사라졌다.

하도 웃다 보니 양쪽 볼 근육이 당겼다. 전화기 들지 않은 손으로 주물렀다.

이렇게 재미있게 본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였다. 사실 매번 그렇다.

 




대봉감을 샀다.

악양 대봉감 축제 기간이다. 축제 현장을 비켜나서 싸게 파는 곳에서 흥정했다.

아내가 흥정하는 사이 나는 섬진강과 다압을 보았다. 가을을 보았다.

오후 4시 즈음의 햇살은 느긋하고 가느다랗다.

이런 날 이런 곳에 앉았다는 게 현실같지 않다.

다섯 상자를 주문하여 경기도 안산 처가로 보냈다.

장모님의 대봉감 사랑은 알아줘야 한다. 해마다 이맘때 감 보내는 게 일상이다.

감은 언제 따느냐, 왜 상처가 많으냐 꼬치꼬치 묻는 아내가 사랑스럽다.

그렇게라도 알아야만 어른들께 설명해 줄 수 있다는 것 아닌가.

10월 태풍 때문에 감이 예년보다 조금 부실한지 값도 눅다.

밀린 숙제하듯 감 주문을 마치고 나니 주말 오후가 가볍다.

 



가는 길은 느렸고 오는 길은 더뎠다.

칠불사 이야기하다가 재첩국수 이야기하다가 마당극 이야기하다가

대봉감 이야기하다가 사는 이야기하다가...

햇살 포근히 들어찬 마을 구경하며

저런 곳에 이사하여 살면 얼마나 좋을까, 소박한 꿈도 이야기하다가

돌아왔다. 돌아올 곳이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돌아왔다. 칠불사의 추억도 마당극의 낭만도 대봉감의 사랑도

다 돌아와 옹기종기 모여앉은 인생처럼 웅크리고 있다.

 

2019. 11. 2.

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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