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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어머니 생신

by 이우기, yiwoogi 2019. 9. 2.



어머니 생신은 음력 81일이시다. 1941년생이시다. 올해 일흔아홉이시다. 양력으로 830일 금요일이 생신이셨는데, 이틀 미뤄 일요일 저녁에 가족이 모였다. 창원 사는 작은형은 추석 때 뵙기로 하고 나머지 모든 가족이 한자리에 모였다. 보통 생일을 앞당겨 쇠는데, 마침 벌초 일정과 겹치는 바람에 늦추게 됐다.

 

큰형은 토요일 욕지도로 갔다. 돌돔인지 줄돔인지 나는 잘 모르겠는 물고기를 제법 많이 잡아왔다. 큰형이 도착하기 전에 형수가 시장 횟집에서 회를 썰어 왔다. 전어는 알겠는데 나머지 고기는 잘 모르겠다. 물고기보다 뭍고기를 더 좋아하는 아이들을 위해 돼지고기 두루치기도 샀다. 아내와 나는 미리 시장에 가서 깻잎과 배춧잎을 샀다. 도토리묵도 한 모 샀다. 그 사이 동생네 가족이 왔다. 큰형의 아들 둘, 우리 아들, 동생네 아들과 딸 다 합하여 12명이 모였다.

 



동시에 한자리에 모여지지 않아 도착하는 대로 회도 먹고 고기도 먹고 묵도 먹고, 배고픈 이들은 밥을 먼저 먹었다. 횟집에서 얻어온 뼈다귀들을 오랫동안 고아 맑은탕을 만들었는데 인기가 높았다. 좀 늦게 도착한 큰형의 전리품은 동생이 장만했다. 회칼로 능수능란하게 잡도리하는 걸 보면서, 나는 죽었다 깨어도 못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욕지도 앞바다에서 잡은 돔들은, 시장 횟집에서 떠온 회보다 훨씬 맛있었다. 왜 자연산을 노래하는지 알 만했다. 네 마리가 금세 동났다. 나머지 고기들은 큰형수가 칼금 내고 소금 뿌려 집집이 몇 마리씩 나눴다. 내다버릴 내장과 매운탕거리 뼈들도 따로 정리했다.

 



술이 없을 수 없다. 소주와 맥주를 댓 병씩 꺼내놓고 혹은 맥주만 혹은 소주만 혹은 소맥으로들 입을 축였다. 어머니는 소주 넉 잔을 드셨다. 과음이다. 갈 길 바쁜 동생네가 먼저 나서고 뒤이어 우리도 출발했다. 큰형은 대리운전기사를 불렀다. 집에 와서 보니, 돔 네 마리에다 참기름 한 병을 비롯해 갖가지 먹거리들이 한가득이다. 시장에서 산 것도 있고 어머니께 얻은 것도 있고 농협마트에서 일하는 제수가 준 것도 있다. 어머니 생신 덕분에 모두 모여 즐겁게 놀고 맛난 음식들 나누고 보니, 사는 재미는 다른 데 있지 않음을 알겠다.

 

2019. 9. 1.

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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