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장에 가면 사진기 든 사람이 대장이다. 대통령도, 도지사도, 총장도 오른쪽으로 가라는 사진사의 손동작에 쭈삣쭈삣 발을 옮길 수밖에 없다. 웃으라 하면 억지 웃음이라도 지어야 하고 손을 들라 하면 “아자~!”라고 외쳐야 한다. 소리가 작다 하면 더 크게 고함 질러야 한다. 눈을 감았다고 한번 더 찍겠다 하면 꼼짝없이 서 있어야 한다. 사진기를 든 사람은 흔히 ‘찍사’로 낮춰 불리기도 하지만 대단한 완장을 찬 사람이다.
어데선가 본 글 가운데, ‘행사 마치고 파이팅 하면서 사진 찍는 것 좀 하지 말라.’라고 한 게 있다. 꼰대 예방법 가운데 하나라던가. 파이팅을 하지 말라는 건지 사진을 찍지 말라는 건지 좀 알송달송하지만 수긍할 만한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찍사는 좀더 일찍 퇴근할 수 있으니까. 그 사진을 기다리는 또다른 사람(가령 언론사)도 일찍 일을 마칠 수 있으니까.
기록용 사진 찍는 일은 늘 불안과 동거한다. 큰 행사를 앞둔 날이면 꿈자리도 사납다. 200장은 기본이고 심지어 1000장 넘게 찍은 사진 가운데 쓸 만한 게 하나도 없을 때도 있다. 정말 마음에 든다 싶은 사진을 골랐는데, 다른 건 다 좋은데, 한 가운데 앉은 분이 눈을 감은 경우도 있다. 실내와 실외를 오가다 보면 둘 가운데 하나를 망칠 때도 있다. 행사 주관한 사람은 이제 끝났다고 하품할 때 사진사의 긴장과 고민은 비로소 시작한다. 그런 걸 사진사 아닌 사람은 잘 모를 것이다.
사진 한 장을 갖고 노닥거릴 때도 있다. 이렇게도 찍어보고 저렇게도 찍어본다. 가로 사진을 세로로 만들기도 하고 세로 사진을 가로로 만들기도 한다. 배경 처리가 애매할 때다. 희미한 사진을 진하게도 하고 어두운 사진을 밝게도 한다. 사진 갖고 장난 치는 게 예사로 가능한 세상이다.
그런 가운데,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찍힌 이런 사진은 참 고맙다. 이 사진은 원본이다. 물론 찍는 사람이 조명(플래시)을 바꾸고 렌즈도 바꾸긴 했지만 어디 하나 손 댈 데 없이 마음에 든다. 찍는 것만 하다가 찍히는 것도 재밌다는 걸 또 배운다. 다른 분들이 보기엔 어떨지 싶어 올려본다. 고마워요, 김동주 샘~!^^
2019. 12. 2.
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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