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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고 김종찬 형

by 이우기, yiwoogi 2019. 6. 19.



 

알고 지낸 건 수십 년 됐지만 가까이 만난 건 5-6년쯤 된다. 주로 술자리였다. 다변이었고 달변이었다. 두보보다는 이백에 가까웠다. 시 한두 편 암송하고 노래 한두 곡 부르는 건 예사였다. 동서고금 무불통지였다. 마산 어느 학원 강사로 뛴다고 했다. 버스터미널에서 잔술 마시며 오고갔다고 했다. 일자리는 안정되지 않았다. 삼천포나 남강에서 잡은 고기 몇 마리와 막걸리를 바꿔먹었다.

 

술 냄새 풍기며 사무실 찾아온 적도 많다. 술병 난 줄 알고 일부러 멀리했다. 한동안 소식이 뜸하면 드러누웠거나 입원했거나 둘 중 하나였다. 제일병원 문병 갔을 때 환자답지 않게 환하게 웃었다. 아들과 아들친구들에게 맛있는 음식 요리해 줄 때가 가장 행복한 듯했다. 책과 음악과 사랑으로 가득했던 집이 오히려 갑갑했을까. 바깥바람이 더 시원한 듯했다.

 

주로 페이스북에서 안부를 알았다. 고향 삼천포 어머니 무릎 아래 엎드려 가료 중인 줄 알았다. 실제 어머니 밥 먹으며 많이 회복됐다고 들었다. 작년엔 웬 책을 한 권 사 왔다. 답례로 내 책을 드렸다. 간간이 들리는 소식은 반가웠지만, 연락하지 않았다. 말짱한 모습으로 돌아오길 바랐다.

 

어제저녁에 유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슬프다. 안타깝다. 석달 전까지만 해도 삼천포 어시장에서 온갖 물고기 이름을 외고 있었는데. 언제나 한결같아서 오히려 이상한 형의 말투와 글솜씨가 귀와 눈에 생생한데. 이제 형을 이 세상 사람 아니라고 한다. 믿기 어렵다. 꿈만 같다. 잘 가시라는 인사도 전하지 못했는데

 

한 시대를 질풍노도로 살았고 또 한 시대를 엄정함과 책임감으로 살았으며 마지막 한 시대를 노래와 술로 이겨낸 젊은 천재가 이렇게 가셨다. 부디 저세상에서는 평안하시길 빈다.

 

2019. 6. 19.

이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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