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5시 30분쯤 이현동 집에서 출발했다.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고 모자를 썼다. 그럴듯한 색안경도 끼었다. 이현웰가아파트 앞 나불천을 따라 걸었다. 등 뒤에서는 서쪽으로 넘어가는 햇살이 제법 따뜻하고 밝게 비춰주었다. 산책하는 사람들이 발걸음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크고 작은 개를 끌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 개 옆을 지날 때 나는 생각한다. ‘나를 향해 조금이라도 으르렁거리거나 짖으면 쥐어패 줄 것이다’라고. 다행히 개는 주인들을 닮아 얌전했다. 나불천에는 엊그제 내린 많은 비 때문에 흙탕물이 흘렀다. 덕분에 물이 좀 깨끗해지겠다.
이현종합상가 앞에서 길을 건너 나불천 복개도로를 따라 걸었다. 차들은 쌩쌩 달렸다. 신호등이 빨간불이었으므로 나는 기다렸다. 자동차로 이동할 때는 신호가 그렇게 긴 줄 몰랐다. 한번 빨간불에 걸리면 3-4분 기다리는 것 같다. 그 시간이 엄청 길게 느껴진다. 신호등 밑에 서 있다가 재수 없으면 달려오는 차에 부딪힐 수도 있겠구나 싶어 겁나기도 한다. 주황색 등이 켜졌는데도 쌩 달려가는 차도 있다. 모든 차가 확실하게 섰는지 확인한 뒤 비로소 건넌다.
천수교를 건넌다. 천수교에서 바라보는 진주교, 촉석루, 서장대, 망진산 모두 절경이다. 지날 때마다 느낀다. 참 좋은 도시로구나. 천수교에서는 가끔 스스로 삶을 마감하려는 사람들이 소동을 일으킨다. 내려다보면 무서워서 절대 뛰어내리지 못할 것 같은데, 마감하려는 사람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을 것이다. 천수교에서 잠시 동안이라도 동서남북을 둘러보면 ‘이토록 아름다운 것을 두고 왜 세상을 하직하려 했지’라며 갱생의 마음을 먹을 텐데, 그것도 나와 다른가 보다.
망경동 분수대가 있는 공원을 걷는다. 설창수 흉상도 있고 개천예술제 개제 50주년 기념탑도 있는 곳이다. 바닥에 매실이 떨어져 있고 비둘기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으면서 뒤뚱거린다. 역시 개를 안은 사람, 끄는 사람들이 한가롭게 오고간다. 오후 6시를 전후한 시간에는, 직장인들이야 퇴근을 서두르거나 야근 도장을 찍는 시간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산책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 아닌가. 분수대 광장에서는 노인네들의 윷놀이 한 판이 벌어졌다. 마침 그 옆을 지나는데 “개다!”라는 환호성이 들린다. 윷도 아니고 모도 아닌 ‘개’에서 그렇게 큰소리가 나오는 경우는 거의 두 가지 상황이다. 하나는 앞서가는 상대편 말을 잡았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앞에 있던 내 말을 업었다는 뜻이다.
대밭으로 접어든다. 젊은 연인이 팔짱을 끼고 걸어간다. 촉석루가 정면으로 보이는 곳에는 내 나이 또래 아저씨 아지매들이 낮술에 취했는지 히히덕거리며 놀고 있다. 촉석루 바라보며 사진을 좀 찍고 싶었으나 참아야 했다. 그 긴의자는 누구의 소유물이 아니지만, 어쨌든 먼저 자리를 차지하면 장땡 아닌가. 요사이 이 대나무 숲을 좀 줄여서 촉석루를 멀리서 바라보기 좋게 하려던 진주시의 계획 때문에 좀 시끄러웠던 적 있다. 대나무 숲을 그대로 보존하자는 주장과 대나무 숲을 조금만 희생하면 그 멋진 진주성 쪽 경치를 마음대로 즐길 수 있으리라는 계획 사이에서 결론이 어떻게 났는지 모르겠다.
진주교 밑을 지나간다. ‘어린 물고기가 겨울을 나는 곳이므로 낚시를 자제해 달라’는 글귀가 걸려 있다. 그 옆에서 모자를 눌러 쓴 한 젊은이가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 보건대, 그는 고기를 잡는다기보다 말 그대로 세월을 낚는 것처럼 보인다. 그 나이에 그 시간에 낚싯대를 잡고 있는 사람이라면, 물속 고기보다 머릿속 잡념이 더 귀중하고 무거울 터이다. 진주교를 배경으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잘 나올 리 없다. 햇살의 각도가 많이 낮아진 탓이다.
포시즌 예식장에서부터 경남도문화예술회관을 지나는 지점까지는 거의 전쟁이다. 자전거를 탄 사람, 킥보드를 타고 가는 사람, 개를 데리고 가는 사람, 팔짱을 낀 사람, 운동기구에서 허리 운동을 하는 사람, 아이들과 장난치는 사람들이 겉으로 보기엔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자기 일에 몰두하고 있지만 실은 이들 모두 수백, 수천, 수만 마리의 깔따구와 말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크기도 알 수 없고 마릿수도 알 수 없는 깔따구들의 군무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손을 휘저어 본다. 남들이 멀리서 보면 ‘저 인간이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다 대고 왜 저러나?’ 할까 싶어 마치 운동하듯 씩씩하게 휘젓는다. 그 손짓에 깔따구들이 깜짝 놀라 도망이라고 갈 줄 알았지만, 아서라 말어라, 깔따구들의 집단체조는 멈출 줄 모른다. 색안경을 보고 달려드는가 싶어 안경을 벗었다. 이제 그들은 내 눈동자로 달려든다. 눈을 감았다. 발걸음을 멈추었다. 눈앞을 휙휙 손사레친 뒤 눈을 떴다. 깔따구는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여전히 그대로이다. 이놈들은 내가 걸어가면 나를 따르고 내가 멈추면 그들도 멈춘 채 난리 부르스를 떤다.
모자를 벗어 휘저어 본다. 모자는 그래도 손바닥보다 크고 센 바람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움푹 패인 모자 안쪽으로 이놈들을 잡아챌 요량으로 몇 번씩이나 휘둘러 본다. 제깐 놈들도 생각이라는 게 있으면, 제 동료들이 커다란 동굴 같은 모자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걸 본다면, 겁에 질려 냅다 달아나지 않을까 짐작했다. 그건 내 짐작일 뿐이었다. 비록 수십 마리가 갑작스런 태풍에 비명횡사했다고 하더라도 수천, 수만 마리 가운데 조족지혈만한 찰과를 입힌 것일 뿐이어서 전체의 흐름을 뒤틀어놓는 데는 보기 좋게 실패한 것이다.
잠시 발길을 멈추었다. 이것들이 어떻게 하나 두고보자는 심산이다. 그들은 나를 에워쌌다. 아미(방탄소년단의 팬클럽)가 방탄소년단과 단체로 만났다면 이렇게 할까 싶었다. 총알이 오가는 전쟁터에서 아군에 포로된 적군을 이렇게 대할까 싶었다. 이 망할놈의 깔따구 새끼들은 내 앞과 옆과 뒤와 위에서 좀처럼 멀어지려 하지 않았다. 내가 가진 적의를 전혀 느끼지 못한 채 기쁘게 춤추고 절박하게 꼼지락거렸다.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생존 자체를 무너뜨리려는 나의 파괴본능 에너지는 그들에게 전혀 전달되지 않는 것이었다. 뱃속과 머릿속과 마음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온갖 나쁜 기운을, 그들은 맛있게 빨아먹는 게 아닌가 싶었다. 두 주먹을 불끈 쥐어본들 발바닥으로 땅을 걷어차 본들 이 깔따구 새끼들이, 어른들일 수도 있겠구나, 알아채기나 할 것인가.
앞으로 걸어가면 함께 나란히 날아가고 멈추면 마치 빨간신호등을 만난 듯이 딱 멈추어버리는 희한한 군무에 나는 졌다. 남강 둔치에 마치 띠를 두른 듯이 깔따구들이 모여 있는데, 그 중간을 내가 지나가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나를 에워싼 한 무리들이 나를 따라 움직이는 것인지조차 구분되지 않았다. 혼돈이요 아비규환이었다. 심호흡을 하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이 녀석들 때문에 정신줄을 놓아서도 안 되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미친 지랄병 하는 사람으로 오해하게 해서도 안 된다. 천하의 미천한 미물 앞에서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스스로 무너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귀에 꽂은 스피커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이어폰은 집에서부터 꽂았었다. 내 아이폰에는 400여 곡이 저장돼 있다. 대중없이 아무렇게나 저장한 것이어서 맥락도 없고 주제도 없다. 나훈아의 ‘가지마오’, ‘청춘을 돌려다오’에서부터 조용필, 길은정, 이선희를 지나 최신 아이돌 노래도 몇 곡 들었다. 김필이 다시 부른 산울림의 ‘청춘’도 있다. 팝송도 있다. 주로 흘러간 팝송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한국인의 베스트 팝송이라고도 하는 것들이다. 비틀즈도 있고 가제보도 있으며 가수 이름도 모르고 곡 이름도 모르는 노래가 들었다. 켜 놓으면 제멋대로 아무 노래나 들려준다. 거의 모든 노래는 귀에 익숙하다. 귀가 즐겁고 두뇌가 말랑해진다. 숙호산 갈 때도 듣고 잠잘 때도 듣는다.
깔따구와 신경전을 벌일 때는 노래가 들리지 않았다. 어떡하면 이 지옥 같은 깔따구의 구덩이에서 벗어날까 하는 것만 생각했을 뿐이었다. 잠시 길을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고 정신을 수습하자 비로소 음악이 들리기 시작했다. 음악 소리는 오른쪽과 왼쪽으로 나뉘어 친절하고도 감미롭게 들려왔다. 심장 박동이 속도를 늦추고 신경질과 짜증을 일으키는 호르몬이 잦아들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눈을 감았다. 나는 완전히 다른 세계로 달려갔다. 그리 오랜 시간이 아니었다. 채 1분도 되지 않은 시간이다.
다시 생각했다. 나는 지금 어디로 왜 가고 있는가. 칠암동 강변 어느 식당에서 약속이 있으므로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누구와 만날까. 무엇을 먹을까. 어떤 이야기를 할까. 생각은 빠르게 진척되었다. 그들과 마주 앉아 부딪히는 술잔이 떠올랐다. 젓가락으로 집어먹는 고기가 떠올랐다. 상추 위에 깻잎장아찌 한 장 깔고 고기 놓고 된장 찍은 마늘 올려 먹는 장면을 떠올렸다. 소주를 알맞게 붓고 맥주는 더욱 알맞게 부은 뒤 거품을 일으켜서는 단숨에 들이켜는 상황이 총천연색 영화처럼 머릿속에 들어앉았다. 거기에 깔따구는 없었다. 오로지 우리들의 웃음과 즐거움만 가득했다. 음악은 다시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걸었다. 그렇게 이겨냈다. 만물의 영장답게 미물에게 정신을 뺏기지 않았다. 한낱 목숨만 붙은 생명체에 불과한 깔따구 따위에게 지지 않았다. 나는 승리했다. 마침내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땀은 좀 식었고 마음은 좀 부풀었다. 식당에 들어가기 전에 바깥에 놓인 의자에 앉아 몇 글자 적었다. “남강 둔치는 산책하기 참 좋다. 이 망할 놈의 깔따구만 없다면... 내 눈이 더 어두워져도 참겠다. 이 지랄 같은 깔따구를 더이상 보지 않아도 된다면... 좋은 분들과 귀한 자리를 하러 가기 때문에 참는다. 아녔으면 남강물을 다 끼얹든지 불바다를 만들든지 하고 말았을 것이다. 이놈들은 웬 새끼를 그렇게도 까댄단 말이더냐. 여름아 빨리 가고 겨울아 어서 오너라.”라고.
처음엔 이 깔따구가 하루살이인 줄 알았다. 나중에 다시 확인해 보니 하루살이와 깔따구는 다른 것이었다. 하루살이에게 좀 미안해졌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찾은 하루살이에 대한 글을 조금 인용해 둔다. 그러면서 하루살이나 깔따구나 그게 그것이고, 그런 것들에게 이겼다고 우쭐대는 나 자신을 돌아본다. 더 큰 깔따구 같은 인간이 설치는 세상에서 나는 그들을 향해 얼마나 손길질 발길질을 했던가. 끝없이 다시 태어나고 만들어지는 깔따구 같은 인간이 우리의 삶과 영혼을 지배하고 있을 때 나는 종주먹질이라도 제대로 해 봤는가. 좀 부끄러워졌다. 이 글은 그 부끄러움의 기록이다.
“하루살이는 오해를 많이 받는 곤충입니다. 여름에 강이나 하천을 걷다 보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곤충들이 얼굴로 마구 날아드는데요. 보통 하루살이로 알고 있지만 깔따구입니다. 하루살이는 깔따구보다 훨씬 커서 1센티미터쯤 되고 삼각형 모양으로 생긴 두 쌍의 날개와 두세 개의 긴 꼬리를 갖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하루살이에게 씌워진 오해는 해충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나 반갑잖은 불청객이기는 해도 해충은 아닙니다. 2급수 이상의 수질에서 유충으로 서식하는 수질지표종이니 하루살이를 볼 수 있다면 물이 오염되지 않았다는 좋은 증거지요.
저녁에 하루살이가 떼 지어 날아다니는 것은 하루살이 생애의 처음이자 마지막 비행입니다. 하루살이의 수컷들은 황혼 무렵, 일제히 하늘로 날아올라 큰 무리를 지어 군무를 춥니다. 이때 암컷이 군무 속으로 뛰어들어 직선으로 날아가면 수컷이 잡아 멀리 날아가며 혼인비행을 합니다. 그런 후에 평균 천오백 개에서 3천 개 가량의 알을 낳는데, 물 표면에 떨어뜨리는 종부터 일부러 물속에 들어가 알을 숨겨놓는 종까지 다양합니다. 이렇게 산란한 후에 하루살이는 바로 죽습니다. 단 하루 동안 관혼상제를 다 치르는 격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살이가 결코 하루살이가 아닌 까닭이 있습니다. 하루살이가 낳은 알이 유충이 되어 물속에 사는 기간은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3년, 유충은 열 번에서 서른 번에 걸쳐 탈피 한 후에 주로 봄부터 여름 사이에 성충이 됩니다. 그런데 성충에게는 입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먹지 못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오래 살 수가 없지요. 물속에서 2~3년 동안이나 애벌레로 살다가 겨우 껍데기를 벗고 성충이 되어 물 위로 날아올랐지만 주어진 시간은 짧게는 한 시간에서 길게는 이삼 일. 매미보다 더 기막힌 생을 살다 가는 곤충이 바로 하루살이입니다.
그러니 하루살이를 하루살이라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성충으로서의 삶을 뜻합니다. 전체의 삶을 보면 결코 하루살이가 아니었습니다.”
(<다음 백과> 문득, 묻다 ‘하루살이는 정말 하루만 살까’에서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58XX74400059)
2019. 5. 29.
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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