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에 서너 번은 부산에 간다. 가는 길엔 꼭 장유휴게소에 들른다. 까닭이 있었다. 화장실 앞 신발가게 신발들이 아주 마음에 든 것이다. 구두도 아니고 운동화도 아닌 요상하게 생겨먹은 신발이 내 마음으로 들어와 버린 것이다. 벌써 3년째 공을 들였다.
신발이 닳아 빗물이 새거나 어쩌다 상갓집에서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꼭 여기서 사리라 마음먹었다. 기존 신발은 뜻밖에 야무졌고 아무도 훔쳐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드디어 때가 왔다.
부산 출장길에 신발 바닥이 쩍 갈라져버린 것을 알았다. 물이 새는 건 알았지만 눈여겨보지 않았다. 느낌이 쎄해서 발바닥을 뒤집어 보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신발 바꿀 때가 된 거였다. 장유휴게소 화장실 앞 신발가게에 가서 몇 가지를 훑어보다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하나를 신고 나왔다. 5만 5000원 줬다.
가볍다. 바닥은 단단하고 위쪽은 부드럽다. 이런 옷 저런 옷 가리지 않고 아무렇게나 신고 다닐 것이다. 양복 바지와 맞춰보기도 하고 운동복과 맞춰보기도 하고 등산복과 맞춰보기도 할 것이다. 어떤 이는 옷과 신발이 모양이나 빛깔에서 짝이 맞아야 한다고 말하겠지만, 나는 다만 내 발만 편하면 그만이다.
늦게 귀가하여 아내에게 자랑 겸 보고를 하고, 아침에 신고 나왔다. 글 쓰다가 생각이 막히면 할 일 없이 신발을 내려다보곤 한다. 어린애가 다시 없다고 한들 소용없다. 좋은 걸 어떡하나. 이 마음이 몇 해 동안 이어지기를 또한 빌어본다.
2019. 6. 6.
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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