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극단 큰들 마당극 보러 가기

<오작교 아리랑> 대아고 공연

by 이우기, yiwoogi 2019. 4. 23.

1990년대 중후반의 일이다. 진주에 있는 남자고등학교(진주고, 동명고, 대아고)들은 깊이와 넓이를 알 수 없는 자존심 경쟁을 벌였다. 어디에서건 흔히 있는 일이다. 서로 자기 학교가 명문고라고 자랑하는 일은 나쁜 게 아니다. 서울에 있는 유명 대학에 어느 고등학교가 더 많이 들어가는가 하는 것은 사활을 걸고 싸우는 일이었다. 이 또한 권장할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무랄 수도 없는 일이다. 은근히 경쟁하고 대놓고 비교하면서 구성원들, 특히 학생들의 자존심을 건드린다. 그것으로 인하여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뜻임을 모르지 않는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도 있었다. 해마다 4-5월에 벌어지는 총동문회 체육대회에서 서울에서 활동하는 유명 가수들을 경쟁적으로 불러오던 것이 그것이다. 한 고등학교 총동문회에서 가수를 불러온다고 하면 다른 고등학교에서는 가수를 부르고, 또다른 고등학교는 가수를 부른다. 노래 두 곡 부르는데 몇백만 원을 줬네, 몇천만 원을 줬네 하는 소문이 진주시내 술집에서 퍼져나갔다. 다른 고등학교 동문회보다 더 비싼 가수를 불렀다는 사실에 쾌재를 부르는 사람도 없지는 않았을 것이나, 대부분 돌아서서 혀를 끌끌 찼다.

 

기껏 노래 한두 곡 들으려고 피같은 동문들의 돈을 물쓰듯 하는 것도 문제려니와 텔레비전만 켜면 날이 날마다 나오는 가수를 굳이 동문회 행사장에서까지 봐야 하느냐는 지적도 없지 않았다. 당시 경남일보에서는 이런 상황을 비판하는 기사를 다루었다. 그 기사와 관련한 뒷이야기도 있으나 그건 관두고, 아무튼 쓸데없는 데 돈을 낭비하면서 서로 경쟁만 부추긴다는 지적은 매우 타당한 것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런 출혈 경쟁은 많이 누그러졌다.

 

총동문회 체육대회에 가수를 부르는 전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제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가수를 많이 불렀다. 일반 사람은 잘 모르지만 업계에서는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이 학교 저 학교를 휩쓸고 다니면서 노래와 얼굴을 알리곤 했다. 참 괜찮은 시도라고 생각했다. 돈도 그리 많이 드는 편이 아니어서 동문의 비판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래도 뭔가 공허하고 허전하고 아쉽고 안타깝다는 마음마저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십삼년 전쯤 대아고등학교 총동문회 체육대회를 주관한 우리들도 그런 점에 대해 고민을 했었다. 한발짝 떨어져 있었던 나는 의사결정 과정에 대해 기억나는 게 없고, 결정적으로 행사하는 날 처제 결혼식을 하는 바람에 딴 데 가 있었다. 아마 우리들도 지역의 가수를 불러 노래 몇 곡 하게 하고, 각 기수별 한두 명씩 무대로 불러 올려놓고 노래를 시켰을 것이다. 재치 많은 사회자는 분위기를 들었다 놨다 하면서 좌중을 웃겼을 것이다. 노래를 잘한 사람은 잘한 대로, 못한 사람은 못한 대로 선물 하나씩 받아들고 희희낙락 즐겼을 것이다. 대부분 그렇게 하고 그게 당연한 줄 안다. 나쁜 일도 아니고 부도덕한 일도 아니다. 친구들과 옛 추억을 더듬으며 마주보고 웃을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된다. 그건 동문회 체육대회의 추억이 된다.

 

올해 마흔세 번째 개최하는 대아고의 오민축제는 좀 다르게 진행했다. 축구, 족구, 배구를 통하여 기수별 단합된 힘을 과시하게 하는 건 똑같고, 어차피 체육대회이므로, 아이들 놀이터를 만들어주는 것도 똑같다. 대신 오후에 마련되는 초청가수 공연을 극단 큰들의 마당극 공연으로 꾸민 것이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다. 그렇게 하자니, 동문회 행사에서 노래 솜씨를 뽐내고 싶어하던 동문들이 섭섭해 할 듯하여 기발한 생각을 해냈다. 트럭에 노래방 기계를 싣고 운동장을 한 바퀴 돌면서 기수별로 한두 명이 노래를 부르도록 기회를 준 것이다. 전체 동문이 다 모인 데서 노래자랑을 한다고 해도 어차피 동기들끼리 어울리는 것이므로, 이 방법은 과연 획기적이었다. 진행을 맡은 이의 말솜씨와 재치도 한몫했고.

 

총동문회 체육대회에서 마당극을 무대에 올린 것은 기억할 만한 발상이 아닐까 싶다. 나는 개인적으로 극단 큰들의 마당극을 여러 번 보았다. 2018년 한 해에만 서른 번 넘게 보았고, 한 작품을 열너댓 번씩 보았다. 마당극이라는 연희 형식이 가진 장단점도 나름대로 분석해 보았고 그 내용을 여러 차례 글로 써 보았다. 그러면서 극단 큰들이 언제 어디에서 공연을 하는지도 유심히 보게 되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큰들은 각급 학교의 동문회 행사에도 제법 공연을 가는 것 같았다.

 

어떤 동문회는 호텔 뷔페에서 좁다란 무대를 만들어 놓고 <효자전> 공연을 관람했고, 어떤 동문회는 문화예술회관 같은 큰 공연장을 빌려 놓고 마을 주민까지 초대하여 <오작교 아리랑>을 관람하게 했다. 대단한 발상의 전환이었다. 직접 그런 행사장까지 가서 본 것은 아니지만 전해 듣기로는 동문들의 반응이 폭발적이라는 것이었다. 가수 노래 몇 곡 듣는 것 이상으로 반응이 좋았고 동문회에서 노래 한곡 하려고 노래방비깨나 날린 분들도 군소리 없이 즐겼다는 것이었다. 옳다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대아고 오민축제를 준비하는 주관기 후배에게 연락했다. 문화행사를 어떻게 준비하는지 물었고 마당극을 무대에 올리는 방법도 있다고 한마디만 해줬다. 자기들끼리 의논해 보고 추진하든지 말든지 그것은 오로지 주관기가 판단할 문제이고, 더 크게는 총동문회 선배들의 승낙을 받아야 하는 일 아닌가. 그래놓고 나는 그 일을 잊고 있었다. 이번에는 거꾸로 주관기 후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큰들 관계자를 만나 보겠다고 했다. 나는 연락처를 서로 알려주고 알아서 의논해 보라고 했다. 마당극 광팬인 나로서는 기대하는 바 매우 컸다. 솔직히 모교 운동장에서 명품 마당극을 보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후배들의 추진력은 거침이 없었다. 전해 듣기로는, 총동문회 회의에서는 반승낙을 받았고 큰들과의 일정만 맞으면 되겠다는 것이었다. 초청비용도 조율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뿔싸. 조선 팔도 곳곳에서 서로 오라고 초청을 하는 유명짜한 큰들인지라 올해 공연 일정은 거의 지난해 말쯤 짜여 있었다. 대아고 총동창회 하는 날에 다른 곳 공연이 이미 잡혀 있었던 것이다. 나는 적잖이 아쉬웠지만 내년을 기약해야겠다 싶었다. 다른 데서 또 보면 되니까. 나는 충분히 많이 보아왔고 올해도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지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그런데 웬걸. 주관기 후배는 포기하지 않았다. 수십 년 동안 해오던 문화행사, 즉 초대가수 공연을 올해는 한 번 바꿔보고 싶은 마음을 버리지 않은 것이다. 어찌어찌 하여 공연 일정을 조절하게 된 것이다. 대단한 후배다. 그렇게 하여 421일 일요일 열린 대아고 총동창회 오민축제 마당에서 극단 큰들의 마당극이 펼쳐지게 된 것이다.

 


행사가 시작됐다. 본격적인 개회식도 하기 전에 족구와 축구 예선, 준결승이 벌어졌다. 1030분에 개회식을 했고 12시부터 점심시간이었다. 마당극 공연은 130분에 예정돼 있었다. 시간이 불리했다. 쉴새 없이 이어지는 체육행사가 시간에 맞춰 끝날 것인가 하는 것도 조마조마했고, 서울이나 부산 등 멀리서 온 동문들은 대개 2시쯤 되면 슬슬 자리를 뜨기 때문이다. 이들을 붙들어줄 매개체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마당극 공연을 할 것이라고 공지해 놓았고 이 날도 아침부터 틈틈이 공연을 예고했던 터라 마음을 조금 놓긴 했으나, 예측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아침 9시께부터 몸을 풀고 있는 배우들을 찾아가 눈인사와 손인사를 나누었다. 길게 이야기할 겨를은 없었으나, 오늘 특별히 공연을 잘해 주십사 하는 마음을 전했다. 그 시간에 도착하여 몸을 풀려면, 그들은 몇 시에 일어났을까...

 


마당극 공연 시간이 되었다. 주관기 홍보국장이 마이크를 들고 동문들을 마당극이 펼쳐질 무대 주변으로 불러모았다. 큰들 배우들은 운동장을 한바퀴 돌면서 관객 동원에 나섰다. 쉽지 않았다. 길놀이를 하면 대개 아이들이나 술꾼들이 줄래줄래 따라붙기 마련인데, 이 날은 그렇지 않았다. 멀찍이서 바라보는 나는 애가 탔다. 18회 동기회 사무국장인 나는, 우리 동기들만이 20명 넘게 모였으니 어서 공연을 보러 가자고 독촉했다. 목이 쉬도록 고함을 질렀다. 우리 친구들을 대거 데려가지 않으면 그것이 꼭 나의 잘못이기라도 한 듯이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친구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직전에 족구 결승전에서 8살 아래 후배들을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하고 돌아온 승전병들은 목을 축이고 무용담을 늘어놓느라 내 말을 듣지 않았다. 그것도 그러하려니와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짧은 행사 시간 동안 제 할 말을 다 하지 못하면 또 1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잘 아는 까닭에, 마당극 따위가눈에 귀에 들어갈 리 없었을 것이다. 나는 평소에 재미와 감동으로 가득한 극단 큰들의 마당극을 되도록 많은 사람이 함께 즐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해왔다. 그래서 체육대회 마당까지 찾아온 마당극을 외면하려는 친구들을 어떡하든 설득하고 싶었다. 그런 마음이 있었다. 역부족이었다. 

 


시간이 되었는데도 무대 앞 객석은 썰렁한 듯했다. 멀리서 바라보는 내 마음은 바비큐그릴에 놓인 참숯덩이처럼 타들어갔다. 그 유명한 마당극 공연을, 그렇게 어렵사리 유치해 놨는데 막상 공연을 하려니 동문들이 호응을 해주지 않는구나. 총동문회 체육대회 하는 날 무대 공연은 과연 무리일까.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다른 친구들은, 다른 선후배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잡담과 음주에 빠져 있었다. 야속한 시간이 흘렀다.

 


주관기 후배들이 작전을 짰다. 행사 마지막 즈음에 풀어놓을 예정이던 아주 많은 다양한 경품을 내놓은 것이다. 사람을 불러모으기 위한 묘수였다. 공기청정기, 자전거, 믹서, 쌀 등등 온갖 종류의 경품을 두고 쉽고도 재미있는 놀이를 통하여 선물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우리 동기들 예닐곱 명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마당극은 좀 있다 보더라도, 우선 경품을 걸고 벌이는 재치 넘치는 무대도 꽤 볼 만했다. 사람들이 서서히 모여들기 시작했다. 나의 기대에는 많이 미치지 못했지만 마당극을 펼쳐놓을 만한 정도가 되었다. 애초에는 130분에 시작하겠다던 공연을 150분쯤 시작했다. <오작교 아리랑> 첫 무대를 장식하는 까치와 까마귀가 달려 들어와 춤을 춘다. 나는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 일단 시작만 하면, 아이 어른 할것없이 모든 관객이 푹 빠져들 것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극단 큰들이 파 놓은 웃음 함정에 풍덩풍덩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손뼉 소리가 요란했고 웃음 소리가 울려퍼졌다. 맨 앞줄에 앉았던 내가 힐끗 뒤를 돌아보니 조금 전보다 더 많은 동문과 가족들이 빙 둘러 앉고 섰다. 그들은 서서 팔짱을 낀 채, 다리를 꼬고 앉은 채, 짙은 색안경을 낀 채 마당극을 즐기고 있었다. 즐긴다는 것을 어떻게 아느냐 하면, 우리 동문들과 가족들은 거의 대부분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몰랐기 때문이다. 푹 빠졌다는 뜻이다. 아랫마을 남돌이와 윗마을 꽃분이의 결혼식 날, 갑자기 사라진 남돌이를 대신하여 관객 중 한 명을 불러올리는 대목에서는 박장대소 요절복통이 이어졌다. 쭈삣쭈삣하던 대아고 출신 남돌이는 울릉도 트위스트라는 노래에 맞춰 신부 꽃분이와 호흡을 맞춰가며 신나게 몸을 흔들었다. 남돌이 부모들은 우리 남돌이가 대아고 출신이라서 예의도 바르고 어쩌고 저쩌고하면서 주최측을 치켜세웠다. 오민축제, 오민교육 할 때 나오는 오민이 무엇인지도 이야기해 준다. 그 정도 서비스는 어딜 가든 기본으로 들어가는 양념 같은 것 아닐까. 참고로 오민은 민족, 민생, 민권, 민성, 민복을 가리킨다.

 


중간에 나를 긴급히 찾는 전화가 오는 바람에 나는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가야 했다. 그렇지만 운동장 어느 곳에서도 다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크게 번져가는 마당극 대사와 음향들 덕분에 극이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 나는 훤히 알 수 있었다. 관객들의 웃음 소리도 먼데까지 퍼져나갔다. 공연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공연 직후 시상식이 이어졌고 모든 행사가 마무리되었다.

 


공연을 본 우리 친구들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명불허전이라고 입을 모았다. 여러 경로를 통하여 극단 큰들의 존재와 실력을 알고 있던 친구도, 다른 지역에서 모처럼 모교를 찾아온 친구들도 모두 이구동성이었다. 어지간한 가수 몇 명 부르는 것보다 몇 배 낫다거나 최고의 공연을 보았다거나 역대 체육대회 행사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공연이었다거나 하는 칭찬들을 해주었다. 행사가 끝난 뒤 누리소통망(SNS)에서도 마당극 공연을 기획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는 칭찬이 자자했다. 까닭 없이 기뻤다. 까닭이 없는 건 아니다. 나는 큰들 후원회원이니까.

 


총동문회 체육대회는 먹고 마시고 노는 행사이다. 간단한 운동 경기를 통하여 선후배들 간에 화합을 도모하고 한 학교를 졸업했음을 추억하는 날이다. 같은 선생님께 배웠음을 기억하고 공유할 만한 별명 같은 걸 주고 받으며 일상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날이다. 그리고 집으로, 직장으로 돌아가면 그 체육대회의 기억과 친구들과의 우정이 힘이 되고 밥이 되어야 한다. 체육대회 날 술로써만 즐기지 말고 노래로써만 스트레스를 풀지 말고, 뭔가 의미 있고 보람되며 오래도록 간직될 만한 그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 까닭이다. 그것이 마당극이면 어떨까.

 


마당극은 원래부터 시장바닥이나 타작마당 같은 데서 펼쳐지는 우리 전통 공연 양식이다. 관객과 배우가 호흡하면서 웃기고 울리는 놀이판이다. 잘 짜여진 대본과 무대장치가 필수이긴 하지만, 그리고 그것을 능수능란하게 풀어나갈 배우의 연기력이 뒷받침되어야 하지만, 때로는 그런 것 저런 것 던져놓고 즉석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도 있고 관객이 배우처럼 무대로 뛰어들기도 한다. 적당히 술에 취한 관객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객담을 던지기도 하고, 멀쩡한 관객이 마당으로 불려나가 마치 대본에 따르는 것처럼 능청스럽게 연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변수들이 다른 관객들을 더 즐겁게 해준다. 실내 무대에서 이뤄지는 정통 연극과는 사뭇 다르다. 그래서 체육대회 행사가 벌어지는 학교 운동장에서도 넉넉히 치러낼 수 있는 공연인 것이다.

 


한 해에 한 번씩 하는 총동문회 체육대회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동문 선후배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해 주고 싶다면, ‘열린음악회에 나오는 가수를 부르는 것도 좋지만 걸판지게 신나게 한판 놀아볼 수 있는 마당극 공연을 올려보는 건 어떨까 싶다.

 


가령 극단 큰들을 초청하여 남남북녀의 결혼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좌충우돌 소동을 다루면서도 남북화해나 통일을 생각해 보게 하는 <오작교 아리랑>, 지리산 약초골에 사는 두 형제의 지극정성 효도 이야기를 다뤄 보는 이들의 눈물을 쏙 빼놓는 <효자전> 같은 공연을 체육대회 하는 날 보는 것도 가히 멋진 추억이 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그곳이 실외여도 좋고 실내여도 좋은, 어디에서든 그 장소에 걸맞게 척척 소화해내는 명배우, 명연출, 명감독 들이 있으니 무엇이든 가능하지 않겠는가 싶은 것이다.

 


무엇보다 극단 큰들은 우리 지역에 뿌리를 두고 있는 전통문화예술단체 아닌가. 뿌리는 진주와 사천에 두고 있지만, 전국을 주유하며 전통과 문화를 즐겁게 퍼뜨리고 있는 보배로운 단체 아닌가. 이들의 멋진 공연을 친구들과, 선후배들과, 가족들과 함께할 수 있다면 훨씬 더 뜻깊은 체육대회가 될 것 아닌가


그리고 꼭 알아야 할 두 가지 사실. 하나는 극단 큰들의 마당극을 초청하려면 미리미리 기획해야 한다는 것이고(큰들은 한 해에 100회 이상의 공연을 온 나라에서 펼치고 있으니까), 다른 하나는 공연에 따르는 보상도 충분히 해 주어야 한다는 것(마당극 한판이 벌어지려면 큰 트럭과 작은 버스 두 대 분량의 소품과 배우와 연출팀이 따라가야 하니까).


오민축제에서 마당극 공연이 가능하도록 추진한 주관기 29회 후배들과, 그런 후배들의 열정과 소신을 믿어준 총동문회, 그리고 명불허전의 공연을 멋지게 펼쳐준 극단 큰들, 또 그리고 그 공연을 함께 즐겨준 모든 대아인과 가족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2019. 4. 23.

시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