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쟈들은 형제간 아이가? 똑 닮았다야!”
최샛별 배우와 박정민 배우를 보고 하는 말씀이다.
“아입니더예. 나중에 시작하모 배우로 나올 낀데 잘 보이소예.”
“이 사람은 딱 봉께 감독인가 뭐인가 거긴가 보네.”
“우찌 알았십니꺼? 저 분이 무대감독인데예, 저기 있지예? 저 그림하고 저기 있는 산 모양 있지예? 저거 하고 그리고 만들고 다 한다 아입니꺼. 그란데 우찌 그리 한눈에 딱 알아봅니꺼?”
“키가 작아도 해댕기는 폼 봉께 딱 알긋네. 하하하...”
박춘우 무대미술감독 겸 배우를 두고 하는 말씀이다.
공연 시작 1시간 전에 도착하여 일찌감치 자리잡고 앉아 오가는 대화가 재미있다.
4월 28일 일요일 오전 10시에 진주 옥봉 본가에서 출발한다. 어머니와 어머니 친구와 어머니가 ‘성님’이라고 부르는 아지매(이분은 내 친구의 어머니다)가 동행했다. 네 명이 한 차를 타고 봄나들이를 한다.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지만 한참 망설였다. 하늘은 우중충했다. 연방 비가 쏟아질 폼이다. 날씨알림에서는 오후부터 비가 시작하여 다음날까지 계속될 것이라 했다. 어제 미리 약조한 것이어서 어쩔 수 없었다. 비 때문에 공연을 못하게 되면 거기 맛있는 집을 찾아가 메기매운탕이나 먹고 오자 하는 심산이었다. 출발하기 전에 비가 들었다.
원지를 지나자 어머니도 아주머니들도 부시럭부시럭 뭘 꺼낸다. “새참 물 때가 됐네.”라며 쑥떡을 꺼내고 예쁘고 크게 깎은 배를 내민다. 운전 중이라 한사코 거절하는 나에게도 자꾸 권한다. 옆에 앉은 어머니는 검은색 옷에 노란색 쑥떡가루가 떨어지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고 잘도 드신다. 어른들을 모시려면 맞춤한 간식도 준비해야 하고 간식을 드실 즈음엔 알맞은 휴게소에라도 들어가야 했는데, 미처 그것까지는 계산하지 못했다. 홍화원휴게소에서 시원한 음료를 사 드렸다. 드시지 않는다.
출발할 때 차 앞유리에 제법 흩뿌려지던 비가 보이지 않는다. 비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 것과 동시에 도로가 뽀송뽀송하게 맑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하늘도 희끄므레하게 벗겨져 가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참 묘한 일이다. 보통 지리산, 덕유산으로 가까워질수록 비가 거칠어지는 법인데 오늘은 그 반대였다. 천우신조라고 할까. 공연은, 어쨌든 하겠구나 싶었다. 다행도 이런 다행이 없다.
생초 마을 귀퉁이에 대충 주차하고 꽃잔디축제가 열리는 국제조각공원으로 향했다. 내가 알고 있는 유명세와 날씨를 감안하여 대강 추측한 인원의 몇백 배는 될 듯한 인파가 몰려다녔다. 그동안 이 멋진 축제를 나만 모르고 있었나 하는 부끄러운 마음이 생겼다. 큰들 마당극 덕분에 이제라도 찾아온 게 어디냐며 스스로 위안했다. 부끄러워하고 위안하는 게 내 맘대로다. 사실 지난해부터 큰들 마당극 공연을 여러 번 찾아다녔는데, 가는 곳마다 축제의 현장이었다. 축제도 고맙고 마당극도 고마운 일이다.
비탈길을 느릿느릿 걸어올라가면서 꽃 구경을 한다. 아지매들은 놀라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세상에 이렇게나 이쁘게 해놨네!”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기에 정신이 없다. 스스로 찍고 상대를 찍고 경치를 찍고 꽃을 찍고 마음을 찍으면서 활짝 웃는 표정이 꽃잔디보다 훨씬 예쁘고 사랑스럽다. 이윽고, 마당극 공연을 할 큰들의 천막이 먼발치에 보인다. 반갑다. 어머니께 “저깁니다!”라고 말씀드리는데 괜스레 목이 멘다.
4월 26일 금요일 저녁 충남 아산에서 <이순신>, 27일 토요일 충주에서 <효자전>을 공연하고 돌아온 배우들과 연출들이 공연장을 다듬으며 연습을 하고 있다. 목요일 출발하여 연 나흘째 강행군하고 있는 배우들답지 않게 생기가 넘치고 표정이 밝다. 주변의 꽃 덕분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고 오고가는 관광객들의 눈길 덕분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고 오려던 비가 그치고 말갛게 드러나는 하늘 덕분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들은 원래 그랬던 것이다. 언제나 발랄하고 어디서나 즐겁고, 그래서 늘 유쾌한 극단 아닌가. 주고 받는 인사가 정답기 그지 없다.
평균 나이 80을 훌쩍 넘은 아지매들은 꽃구경은 뒷전이다. “올라오면서 다 봤는데 뭘 또?”라고 말하는 ‘성님’의 한마디에 “그럼 마당극 구경할 자리부터 잡읍시다”라고 대꾸할 수밖에. 사진을 좀 찍자고 해도 “아이고 마라, 다 늙어서 쭈글쭈글한 사람을 찍어서 뭐하끼고?”라신다. 큰들 기획실장이 다가오셔서 커피 한 잔 하시려느냐 여쭈니 반색이다. 제법 ‘시원한’ 날씨였던지라 따뜻한 커피가 반갑고 고맙다. 인정스런 큰들이 오늘따라 더 고맙다. 마칠 땐 단술도 한 병 준다. 종이컵까지 챙겨주는 세심함... 주차하고 올라오는 길가에 이것저것 파는 포장마차가 많았는데도 나는 공연장부터 확인하여야 한다는 일념으로, 어머니와 친구들이 배가 고픈지 목이 마른지 생각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이렇게 빚을 진다.
배우들은 마이크를 시험하고 동작을 맞춰 본다. 관광객들은 저게 무엇하는 것인가 싶어 팔짱을 끼고 섰다가 “공연은 12시에 시작한다”는 안내말씀을 듣고는 꽃밭으로 발길을 돌린다. 눈치 빠른 관객들은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엉덩이를 들지 않는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준비는 끝났다.
구상 시인의 ‘꽃자리’라는 시 낭송을 감상한다. “앉은 자리가 / 꽃자리니라 // 네가 시방 /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 너의 앉은 자리가 // 바로 꽃자리니라.”라는 시 내용은 참 좋았다. 낭독도,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아주 좋았다. 꽃가루를 뿌리는 연기도 괜찮았다. 이런 시 낭송이 익숙지 않은 몇몇 관객만 더 협조적이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기왕 하려면 한 편 더 낭송하지 않고 앙코르도 없이 끝나버린 것은 아쉽다.
217번째 공연한 마당극 <효자전>은 효도에 관한 이야기이다. 지리산 약초골에 형제가 산다. 큰아들은 귀남이다. 이름부터 남다르다. 둘째 아들은 갑동이다. 귀남은 공부를 열심히 하여 한양에 의사면허 시험(내의원) 치르러 간다. 갑동은 서랍안에 든 어머니 돈을 훔쳐 친구들과 고기잡이 간다. 어머니는 한양에 시험 보러 가는 아들을 위해 집안의 기둥 뿌리를 뽑아 준다. “큰아들이 잘 돼야 집안이 잘 되는 기라” 이 한 마디에 모든 게 담겼다. 그것을 동의하기 힘든 갑동은 반발하지만 어머니와 형님을 이길 수 없다.
한양 갔던 귀남에게서 편지가 온다. 편지를 읽으려는데 온 마음과 온몸이 떨린다. 귀하디 귀한 아들,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내의원이 된 아들에게서 온 첫 편지에는 뭐라고 적혀 있을까. 모두가 궁금하다. “어머니 돈!” 그렇다. 한양에서 의사 노릇하자면 돈이 많이 필요할 것이다. 어머니와 갑동은 있는 돈 없는 돈 다 긁어모아 한양으로 간다. 마침 대감과 기생집에서 놀던 귀남은 어머니와 동생을 “모르는 사람이다”라고 외면한다. 갑동이 제 형에게 “어머니 몸도 안 좋은데 형님이 의사이니까 진맥이나 좀 해보라.”라고 한다. 하지만 귀남은 그것마저 뿌리친다. 산청에서 바리바리 싸 간 보따리를 팽개치자 그가 평소 그토록 좋아하던 곶감이 쏟아진다.
어머니는 지병에다 홧병이 겹쳐 쓰러진다. 산청을 지키고 있던 의사인 임뻥아재가 침을 놓지만 어머니는 회복하지 못한다. 갑동은 임뻥아재와 함께 어머니 병에 특효라는 산삼을 구하러 지리산으로 간다. 천신만고 끝에 갑동은 산삼을 구해 돌아온다. 산신령의 도움이 있었다. 세자의 병 구완에 필요한 산삼을 구하기 위해 산청으로 내려온 귀남이 그때 등장한다. 귀남은 마땅히 어머니께 드려야 할 산삼을, 세자 병구완에 갖다바침으로써 제 출세에 이용하려 한다. 갑동과 귀남이 산삼을 사이에 두고 실랑이를 벌인다. 어머니는 갑동을 제지한다. 산삼을 귀남에게 건넨다. 어머니 환갑 때 돌아오겠다고 약속하고 돌아간 귀남은, 그러나 믿었던 대감에게 배신당하여 산삼도 뺏기고 벼슬도 잃고 만다. 같은 시간 산청에서는 어머니가 절명한다.
효도란 무엇인가. 첫째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기쁘겠는가. 부모는 자식의 어떤 모습에서 가장 큰 기쁨을 느끼는가. 정답 없는 물음표이다. 공부를 열심히 하여 입신출세하는 것은 부모를 기쁘게 할 것이다. 큰 벼슬을 얻어 나랏일을 하면서 집안을 일으키는 것은 부모에게 효도일 것이다. 고향에서 부모를 모시고 살면서 혼정신성(昏定晨省)하는 것은 어떤가. 고향과 선산을 지키는 등 굽은 소나무처럼 부모 곁에서 아침저녁 문안하는 자식은 부모를 기쁘게 하지 않겠는가. 위급한 상황을 당하여 쓰러지기라도 한다면 당장 업고 병원으로 달려갈 자식은 효자가 아닌가. 누가 더 효자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 더 큰 효라고 할 것인가.
마당극 <효자전>에 정답이 있다. 병마에 쓰러져 목숨을 다한 어머니는 어디로 가는가. 사람보다 키가 두 배나 큰 저승사자 뒤를 따른다. “이제 저 강만 건너면 저승이요!”라는 저승사자 뒤에서 아무말도 하지 못하는 어머니. 마침 거지나 다름없는 몰골이 되어 귀남이 등장한다. 산삼을 뺏긴 탓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여기는 갑동이 가만 있을 리 없다. 형제가 한판 싸움을 벌인다. 초상집에서 형제간 다툼은 그렇게 낯선 풍경이 아니다. 저마다 살아가면서 가슴에 품은 애달픈 사연이 하나둘씩은 있게 마련이니까. 귀남과 갑동이 대판 싸움을 벌이자 저승사자 뒤에서 꼼짝도 못하던 어머니가 청천벽력 같은 호통을 친다. 귀남은 귀남대로 엉덩이를 몽둥이로 얻어맞고 갑동은 갑동대로 넉장거리를 한다.
저승행 명부를 잘못 읽은 저승사자 ‘덕분에’ 어머니는 생환한다. 염라대왕 면전에서 되돌아 온 것이다.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라는 어머니 앞에서 귀남은 “어머니, 저도 이제 어머니 곁에서 효도하며 살겠습니다.”라고 다짐하고 또한 갑동이는 “엄마, 저도 이제 말 잘 들을게요.”라고 약속한다. 환자의 상징처럼 머리에 두르고 있던 흰 띠를 벗어던지는 어머니는 활짝 웃는다. 언제 환자였던지 언제 저승길을 가던 사람이었던지 모르게 되살아난다. 환갑날이 초상날이 될 뻔했던 어머니는 이제 다시 환갑잔치를 하게 됐다. 오냐 오냐 하며 잘못 키웠다 싶던 귀남도 새 사람이 되었고 항상 속만 썩이던 갑동이도 새롭게 다짐했다. 부모는 자식의 그러한 모습을 보고 기뻐하는 것이다. 그것이 동네에서 자랑이 되고 소문이 옆동네로 퍼져나가면 그 부모는 어깨가 어쓱해지는 것이다. 자식으로 인하여 자연스럽게 기쁨을 누리고 칭찬을 받으면 그 자식들이 효도를 한다고 할 것이다. <효자전>은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올해 <효자전>을 처음 보았다. 임뻥아재 의사복장이 새것으로 바뀌었다. 지리산 산신령이 등장할 때 구름과 나무들도 몰라보게 달라졌고 부쩍 자란 듯했다. 나름대로 약간의 변신을 시도했다. 내의원 대감과 낮술판을 벌이는 기생은 한 명 줄었다. 키 큰 저승사자 뒤에 명부전을 들고 따르는 저승사자 졸개(?)도 두 명에서 한 명으로 줄었다. 짝이 안 맞다는 느낌이 들지만 연기로서도 충분히 갈음된다. 처음 보는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그런 것도 눈에 들어온다. 원래 마당극에는 정답 같은 원본은 없는 법이다.
“저승사자 키가, 음메 뭐 그리 커노?”
“그래야, 죽은 사람이 꼼짝 못하고 끌려갈 것 아입니꺼?”
“야, 저 사람들 다 뭐하고 사노?”
“예? 저 사람들은 저기 지 직업입니더? 참말로 잘하지예?”
“재미있게 잘 봤다. 잘하네.”
어머니는,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중 절정 대목에서 자리를 비웠다. 갑자기 아랫배가 아프다고 하여 한참 먼 화장실을 다녀왔다. 따라가려니까, “됐다. 니는 저기나 봐라!”라시며 혼자 잘 다녀오셨다. 어머니 친구는 “제일 중요한 대목을 못 봐서 우짜노?”라며 놀린다. “다음주에 또 하는데 제가 모시고 가면 됩니더. 같이 가입시더.”라고 하니 어머니는 “나는 작년에 본, 거 머이고 남남북녀 결혼 이야기, 그기 더 재밌더라.”라고 하신다. “그것도 합니더. 5월달에 같이 한번 더 가입시더?”라니 돌아오는 대답은 엉뚱하다. “오늘은 덕분에 잘 오고 잘 먹었는데... 노인이라고 무시하지 마라이. 다음엔 우리가 밥 살게!” “하하하, 안됩니더. 그건 안됩니더.”라고 내가 쐐기를 박았다.
생초 국도 변에 늘어선 식당 가운데 한 곳에 들어가 은어튀김과 메기매운탕을 먹었다. 소주나 막걸리를 권했지만 모두 고개를 흔들었다. 마당극을 본 후배 부부가 마침 같은 식당으로 찾아와 옆 자리에 앉았다. 나는 중간에서 이쪽 대화에도 끼이고 저쪽 대화도 간섭했다. 꽃잔디축제 이야기도 하고 마당극 이야기도 하고 메기탕 이야기도 하다 보니, 바깥 하늘은 더욱 파랗고 길 가 나무들은 더욱 푸르러 보였다. 봄나들이 치고는 제법 근사한 하루였다. 벌써 5월 4일과 5일이 기다려진다. 이사한 집 거실에 널브러져 있는 책들도 좀 정리해야 하는데, 주말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어머니들은 돌아오는 차 안에서 별 말씀이 없었다. 주무시는가 싶어 뒤를 얼핏 돌아보니 무슨 생각들을 골똘히 하고 계신다. 설마 그 무서운 저승사자를 자꾸 떠올리시는 건 아니겠지... 어른들을 동네에 내려 드리고 본가에 가서 고추장과 된장을 얻었다. 마늘쫑볶음도 주신다. 주차장에 내려와 시동을 거는데 “야야, 콩 볶아놨는데, 담아놓고도 까먹었다”라는 전화가 온다. “그건 또 가지러 갈게예”라며 뒷날을 기약했다. 집으로 돌아와 차 안을 정리하는데 뒷자리 검은 비닐 봉지 안에 묵직한 게 들었다. 잘 삶은 옥수수 네 개, 오늘 아침에 찧었다는 쑥떡, 내가 사 드린 음료 깡통 세 개가 그대로 들었다. 참... 그것 참...
2019. 4. 28.
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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