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큰들의 걸작 마당극 <최참판댁 경사 났네> 올해 첫 공연하는 날이다. 지난주 3월 1일 삼일절 100돌 특별공연은 <최참판댁 경사 났네> 내용 가운데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 부분만 따로 떼어서 공연한 것이다. 그러니 3월 9일 오후 2시에 열린 공연이 올해 첫 공연이다. 10년째 이어가고 있는 <최참판댁 경사 났네> 162번째 공연을 기다리는 마음은 ‘설렘’이라거나 ‘기대’라거나 하는 한마디로 말해질 수 없는 것이다. 이 작품은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2019년 상설 문화 관광 프로그램으로 선정되었다. 축하부터 드리고.
금요일 점심, 저녁에 먹은 온갖 잡것들이 탈을 일으켜 아침부터 화장실을 전세내다시피 하던 터라 조금 망설여졌다. 그냥 드러누워 흰죽이나 끓여 먹을까 싶다가, 아니지 그래도 가봐야지, 아니지 내가 안 간다고 공연 안하는 것도 아닌데 뭘, 아니지 올해 첫 공연이잖아, 아니지, 아니지…를 몇 번하다가 길을 나섰다. 머리 감고 세수만 했다. 면도는 하지 않았다. 한들 안한들 알아봐줄 사람 아무도 없으니. 11시쯤 나서려던 것을 또 마음 바뀔까 봐 10시 20분에 시동을 걸었다.
하동은 ‘슬로 시티’라고 한다. 느린 도시다. 참 잘 지은 이름이다. 모든 게 속도 경쟁이고 모든 게 실적 경쟁인 시대에 느린 것을 추구하기로 한 것이다. 지리산 계곡에서 제 아무리 거센 물살이 몰아쳐도 섬진강은 느릿느릿 하구로 흘러간다. 하동읍에서 구례로 가는 국도는 몇 해 전부터 4차로로 넓어졌는데도 제한 속도는 시속 60km이다. 보통 4차로이고 중앙분리대가 있으면 80km씩 달린다. 그렇게 달리다 보면 섬진강 모래에 부딪히는 햇살도 못 볼 것이고 강 건너 광양 다압마을에 차 밀리는 것도 못 볼 것이고 악양 너른 들판에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피는 것도 못 보게 될 것이어서, 느리게, 천천히, 차분히, 넉넉히 지나가라고 슬로 시티이다, 라고 생각한다.
진주에서 하동 가는 국도도 새단장했다. 진주에서 큰들 사무실 있는 완사 지나고 다솔사 입구까지는 4차로이다. 80km로 달린다. 그런데 새로 만든 길이 겨우 2차로이다. 제한 속도는 60km이다. 원래 있던 2차로도 죄다 4차로로 넓혀가는 세상에서 어쩌자고 올해 개통한 새 국도가 2차로인가. 자동차 열 대, 스무 대가 비엔나 소시지처럼 줄지어 간다. 구불구불한 데가 하도 많아 앞지르기도 어렵다. 그렇게 속절없이 앞차 꽁무니만 바라보고 하염없이 기어서 간다. 그렇게 가는 곳이 하동이다. 느린 도시로 가는 사람의 마음자세는 느림과 천천히와 느릿느릿과, 그리고 여유여야 한다.
하동은 슬로 시티라고 내세웠고 그런 때문인지는 몰라도 곳곳에 느림의 미학이 드러난다. 자동차가 느리게 달릴 수밖에 없도록 제한한 게 가장 돋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하동이 제 아무리 느린 도시이고 제 아무리 속도를 제한하여도 오는 봄은 어쩔 수 없다. 봄은 남해 바다에서 섬진강을 타고 올라오는지 아니면 남해 보리암에서 지리산으로 케이블카를 타고 날아오는지 알 수 없다. 하동은 온통 봄이다. 봄에게 점령당한 하동은 화려하고 아름답고 곱고 따뜻하고 넉넉하고 밝았다. 그리고 넓었다.
참고: 슬로시티(Slow City)는 ‘느리게 살기 미학’을 추구하는 도시를 가리킨다. 2009년 2월 6일 이탈리아의 감파니아주 카이아죠시에서 열린 슬로시티 국제조정이사회에서 하동군 악양면이 단독으로 상정되어 우리나라 다섯 번째의 슬로시티 인증을 받았다.
극단 큰들 마당극을 보기 위해 지난해 하동을 찾았을 때는 다른 것 다 제쳐놓고 공연장으로 직행했다. 오늘은 최참판댁 들머리에 있는 동정호과 악양루부터 찾았다. 먼발치에서만 보던 부부송에게도 가까이 가 보았다. 만개한 매화에 둘러싸인 부부송에게서 높은 기품과 깊은 사색의 운취를 느꼈다. 봄기운이 물씬물씬 묻어나는 악양들, 무딤이들에 서서 한참 동안 현기증을 느꼈다. 무딤이들 소개글에는 이렇게 써 놓았다.
“협곡을 헤쳐 흐르던 섬진강이 들판을 만들어 사람을 부르고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촌락을 이루고 문화를 만들어냈다. 박경리의 소설 《토지》가 이곳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 그 기둥을 세운 이유 3가지 중의 첫 번째가 이곳 평사리들이다. 만석지기 두엇은 능히 낼 만한 이 넉넉한 들판이 있어 3대에 걸친 만석지기 사대부 집안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모태가 되었다. 생전 박경리 선생은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소리로 세 가지를 얘기하셨는데 그중 하나가 ‘마른 논에 물 들어가는 소리’였다. 그렇듯 이 넉넉한 들판은 모든 생명을 거두고 자신이 키워낸 쌀과 보리로 뭇 생명들의 끈을 이어준다. 섬진강 오백 리 물길 중 가장 너른 들을 자랑하는 평사리들(무딤이들)은 83만여 평에 달한다.”
매화도 찍고 자두꽃도 찍고 동백도 찍고 생강나무꽃도 찍고 목련꽃도 찍고 새순 돋아나는 나무도 찍고 하늘도 찍고 들판도 찍고 산도 찍었다. 따뜻한 햇살 받으며 평사리 상평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하동이 만들어준 느림의 미학을 느끼며 하늘이 내려준 포근함의 미학을 즐기며 큰들이 초대해준 감동의 순간을 기다리며 주말 낮시간을 오로지 나를 위해 소비하였다. 잡념은 머리를 흔들었고 집념은 입맛을 떨어지게 했지만, 그러한 것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애쓰는 만큼 시간은 나의 편이었다.
이윽고 2시가 되었다. 어데선가 풍물 소리가 들린다. 나는 그 소리가 어디에서 나는지 익히 알고 있으므로 당황하지 않는다. 극단 큰들 배우들이 공연 시작을 알리는 풍물을 울리고 있다. 근처 가겟집 주인 아지매들이 어깨춤을 춘다. 관광객들이 사진기를 꺼내든다. 풍물은 용이네 집 앞으로 올라간다. 많은 사람이 줄줄 따른다. 미리 알고 온 사람도 있고 우연히 알게 된 사람도 있다. 바퀴의자(휠체어)에 앉아 보는 사람도 있고 길바닥에 주저앉아 보는 사람도 있고 서서 팔짱을 낀 채 보는 사람도 있다.
큰들은 1부 공연에 많은 변화를 주었다. 10주년을 허투루 넘기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버나놀이를 하는 배우가 한 명에서 두 명으로 늘었다. 쿵짝이 짝짝 맞아 돌아간다. 관객과 함께하는 버나놀이도 달라졌다. 짧은 시간에 관객들의 이목을 꼼짝달싹 못하게 묶어두는 재주는 늘 신통방통하다. 1부 공연에서 2부 공연으로 이어가는 재주도 타고났다. 처음 공연 시작할 때 100명 될까 싶던 관객이 어느새 서너 배로 늘어났다.
나는 늘 맨 앞 가운데 자리에서 관람했었다. 오늘부터는 좀 다른 위치에서 감상해 보자 하는 심정이 없지 않아 자리에 연연해 하지 않았다. 다른 각도에서 보노라니, 많은 색다른 점이 보였다. 배우가 연기를 하면서 뒤돌아섰을 때 표정도 볼 수 있었고 마당 뒤쪽에서 달려나올 때 어떤 표정인지도 보였다. 다음 연기할 때 필요한 소품을 아무도 몰래 슬쩍슬쩍 가져다 놓는 것도 보인다. 물론 안 봐도 되는 것들이다. 악사들이 얼마나 진지하게 공연에 집중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악사는 한두 명이 맡는 게 아니라 모든 배우들이 자신의 역할이 없을 때 악기가 있는 곳으로 다가와서 필요한 부분만큼 악기를 두드린 뒤 다시 연기하러들 간다. 한 명이라도, 잠시라도 딴 생각을 하다간 경을 칠 정도로 정교하고 치밀하다.
그런데 나는 오늘 1부에서 2부로 옮겨갈 때, 정말 감동적인 장면을 보고야 말았다.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지금 말하려는 이것을 말하기 위해서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1부에서는 평사리 마을 사람들이 농사를 짓고 아낙들끼리 싸움을 벌이고 그것을 뜯어말리는 장면이 나온다. 그 와중에 최참판댁 재산을 가로채려는 조준구와 그의 부인 홍씨가 등장한다. 조준구와 홍씨가 먼저 2부 공연을 하게 될 최참판댁으로 향하고 마을 사람들도 관객들과 함께 자리를 옮긴다. 여러 번 보아온 장면이어서 특별한 게 없었다.
배우들이 풍물을 치며 소품을 들고 자리를 이동하는 동안 한 배우가 생수 병을 곁의 배우에게 건넨다. 큰 소리 지르고 힘껏 뛰어다니느라 벌써 땀이 샘솟고 목이 말랐을 것이다. 먼저 생수를 한 모금 마신 뒤 미처 물 마실 시간이 없었던 배우에게 건네는 것이다. 물병을 받아 한 모금 마신다. 더없이 정겹고 아름다운 장면이다. 나도 모르게 “헛!” 하는 탄성이 나왔다. 처음 물을 건넨 배우는 다음 배우에게 물 마실 것이냐고 묻는다. 말 없이 손짓으로 묻는다. 자기는 괜찮다고 한다. 또 다음 배우에게 묻는다. 물병을 받아 한 모금 들이켠다. 그 짧은 시간을 나는 보았다. 그들 뒤를 아무 생각없이 따라가다가 그런 장면을 본 것이다.
큰들은 올해 창립한 지 35년째 되는 예술 공동체이다. 오래된 단원은 30년 넘었을 것이고 가장 최근에 들어온 단원은 1년 정도 됐을 것이다. 나이로는 20대 청춘에서부터 50대 청년까지 있을 것이다. 그들이 이루어 가고 만들어 가고 다듬어 가고 쌓아 가는 것들은 작은 게 아니어서 엄밀하고 엄정하고 냉정하고 치밀해야 할 것이다. 그러자면 자연히 힘들고 지칠 만할 것이다. 힘들어하는 동료를 일으켜 세우고 막연해 하는 동료를 이끌어 가며 타성에 젖는 동료를 떠밀어 가는 힘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 적 있다.
큰들이 만들어 놓고 이룩해 놓은 자긍심과 자부심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엄청난 것이지만 그것 자체는 밥이 아니다. 큰들을 향한 관객과 후원회원들의 지지와 성원과 응원과 손뼉은 더없이 감사한 것이지만 그것 자체는 목마름을 해결해 주지 않을 것이다. 밥은 밥솥 안에 있고 갈증을 해소해 줄 물은 물병 안에 있다. 누군가 밥을 퍼 주어야 비로소 배가 부르게 되고 누군가 물병을 건네주어야 속이 시원해지는 것이다.
동료를 향한 말 없는 사랑, 동료 배우를 위한 본능적인 행동, 목마른 동료들에게 손짓으로 건네어지는 한 병의 물. 35년 동안 극단 큰들이 전국 방방곡곡은 물론 해외로까지 뻗어나가는 보이지 않는 힘이 아닐까. 내가 목마르면 다른 사람도 목마를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은, 사실 생각해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그런 것이 잘 안 된다. 이건 책에서 가르쳐주는 것도 아니고 강의실에서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그냥 무심코,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냥’ 그렇게 되는 것이다.
마당으로 향한 수백 개의 눈동자들에 배우들의 몸동작과 손동작과 노래와 춤이 빨려들어가고 있다. 북, 장구, 징을 치는 악사들의 풍물소리가 배우들의 연기와 환상의 호흡을 맞추며 관객들의 귓속으로 날아 들어간다. 마을 주민 배우들도 한몫 톡톡히 해낸다. 극단 큰들의 마당극 <최참판댁 경사 났네>가 10년 동안 162회 공연을 성공적으로 해올 수 있었던 힘, 똑같은 대본으로 똑같은 배우들이(조금씩 바뀌긴 했을 것이다) 연기하는 데도 항상 다르게 보일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올까. 수십 년 동안 동고동락하면서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고 소통하면서 이뤄내는 화합의 힘이 아닐까 생각된다. 물병 건네는 손, 그 물병 받아 한모금 마시면서 목을 가다듬는 마음. 그 마음 영원하길 빌어본다.
하동에서 최참판댁까지 시속 60km로 달리면서 강 건너 광양시 다압마을을 보았다. 가는 것인지 선 것인지 모르겠는 자동차가 빽빽하다. 그 차들 너머로 매화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눈이 온 것인지 모를 지경이다. 정말 대단한 광경이다. 그 속에 푹 빠진 전국의 관광객들이 좋은 날씨와 멋진 풍경 속에서 대단한 하루를 보내었을 것이다. 매화 가지들이 장원급제한 선비의 머리에 꽂은 어사화처럼 나를 유혹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그 정도 유혹에 넘어갈 내가 아니다. 나는 갈 곳이 분명하였고 가서 할 일이 뚜렷하였으며 돌아온 뒤에도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명백하였으므로 곧장 최참판댁으로 갈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행복할 수 있다. 돌아오는 길은, 그래서 더 행복하였다.
2019. 3. 9.
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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