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큰들은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최참판댁에서 박경리 선생님의 대하소설 ≪토지≫를 1시간 짜리로 각색한 마당극 <최참판댁 경사 났네>를 상설 공연하고 있다. 2010년 5월 8일 토지문학제 10주년 행사의 하나로 처음 공연한 이후 햇수로 10년째이고 횟수로 160회 가까이 된다. 줄잡아 한 해에 15회 남짓 공연을 올린다.
그림 하나 없이 깨알같은 글씨로 440쪽 넘는 소설책이 16권이다(1993년 솔출판사 기준).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현재 나와 있는 우리나라 소설 가운데 가장 많은 분량일 것 같다. 소설 ≪토지≫를 다 읽은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읽다가 중간에 포기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서너 번 시도했다가 번번이 포기했다. 소설 ≪토지≫는 위대한 근현대사이자, 하동과 진주를 중심으로 하여 전국으로 간도로 번져나간 독립투쟁사이며, 수많은 민초들의 생존기라고 알고 있다.
소설 ≪토지≫를 1시간 남짓 되는 시간으로 압축한다는 것은, 그것이 연속극이든 영화이든 오페라이든 뮤지컬이든 연극이든, 그리고 마당극이든 애초에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줄거리를 다 좇아갈 수 없고 인물을 다 소개할 수 없고 갈등구조를 다 보여줄 수 없고, 더구나 소설만이 갖고 있는 묘사와 설명을 다른 양식에서는 구현해낼 수 없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기보다 불가능 그 자체이다.
극단 큰들이 어쩌자고 이 무모한 일에 도전했는지 모르겠다. 큰들의 실력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겠지만, 얼핏 겉으로 보기엔 정말 무모한 도전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시작하여 10년째 마당극 <최참판댁 경사 났네>를 공연하고 있다. 그것도 아주 성공적으로. 그래서 올해도 상설공연을 또 하게 됐다. 큰들도 큰들이지만, 그런 큰들을 진작 알아보고 멋진 문화공연을 연중 개최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하동군의 문화적 안목도 알아줘야 한다.
공연장에 가 보면 알겠지만, 참 신기한 일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7월, 8월 섭씨 35도를 오르내리는 땡볕 아래 큰들 단원들은 마당을 펼치고 있다. 공연 시작 시간이 한참 남았는데 관객들 앉을 돗자리를 깐다. 배우들이 분장을 한다. 분장은 곧 흘러내리는 땀에 의해 망가진다. 관객은 안 보인다. 그런데, 기적이라고 할지, 공연을 시작하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던 사람인지 모르겠는 관객들이 하나둘, 삼삼오오 몰려든다. 나중에 보면 공연장이 비좁다. 정말 신기한 일이고 신비로운 일이다.
날씨가 제법 싸늘해진 10월 마지막 주말 <최참판댁 경사 났네> 마지막 공연을 할 즈음이다. 바람이 차가웠다. 진눈깨비 같은 게 흩뿌렸다. 진주에서 하동으로 가는 길에 ‘어쩌면 공연을 포기할지도 모르겠다’고 여겼다. 그런데 웬걸. 공연 20~30분 전까지만 해도 궂었던 날씨가 막상 공연 시간이 임박하니 그런대로 괜찮아지는 게 아닌가. 지리산의 심술이자 섬진강의 훼방이라고 생각하던 것에서, 천우신조로 바뀌는 순간도 경험했다.
3ㆍ1 만세의거와 마당극 <최참판댁 경사 났네>는 무슨 상관인가. 마당극 <최참판댁 경사 났네>에서 어린 최서희는 삼촌과 숙모의 간계에 쫓겨난다. 어린 서희 역은 실제 악양초등학교 학생이 맡는다. 삼촌 조준구는 각종 사업을 벌이다가 최 씨 집안 재산을 거덜낸다. 간도로 갔던 최서희가 종이던 김길상과 돌아온다. 조준구가 탕진한 재산은 알고 보니 최서희가 다 챙겨갔다. 김길상과 최서희는 결혼한다. 몰락한 최 씨 집안의 비운의 딸에서 집안을 부흥시키는 ‘카리스마’ 넘치는 신여성으로 부활한 것이다. 그리고 나라가 망한다. 그 사이에 을사늑약이 있었고 한일병탄이 있었던 것이다.
일본군 장교와 병사가 마을에 나타난다. 독립군이 된 김길상을 잡기 위해 눈에 핏대를 세운다. 장교와 병사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오히려 긴장을 풀고 박장대소한다. 일본군을 희화화한 덕분인데 실제 그러하였을 것으로 추측해도 될 만하다. 독립군은 긴박한 음악에 긴장한 표정으로 등장하고 퇴장한다. 관객 중 한 명이 독립군(등등 동지)이 되어 사격술을 시범 보인다. 관객들은 가슴에 품은 권총을 꺼내 일본군을 향하여 일제히 사격한다. 배우와 관객이 하나 되는 명장면이다. 독립군은 모든 관객들에게 태극기를 나눠준다.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태극기를 휘날리며 ‘독립군가’를 합창한다. 관객이 휘날린 태극기는 각자 기념품으로 가져간다.
최 씨 집안 재산 가로채기에 실패한 조준구는 일제강점기를 살아갈 잔꾀를 얻었다. 일본군 앞잡이가 되어 김길상 체포에 협조한다. 하동 최 씨 집을 뒤지다가 간도로 갔다가 온갖 방법을 동원하지만 결국 놓치고 만다. 독립군의 신출귀몰한 작전과 그 뒤를 맹렬히 쫓는 일본군의 모습은 극적으로 대비된다. 음악과 연기와 주제가 잘 어우러진다.
일제의 탄압은 극에 달한다. 마을 처녀들은 모조리 잡아간다는 흉흉한 소문이 돈다. 김길상이 일본군에 잡혔다는 소식이 들어온다. 마을 처녀인 임이도 잡혀간다. 임이 손목을 끌고 가려는 일본군과 임이의 다른 손을 붙잡고 죽어도 놓지 않으려는 임이 엄마와 강청댁의 모습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눈시울을 붉히게 만든다. “조선 사람 단 한 명이 남아 있는 한 독립은 이루고 말 겁니다.”라고 힘주어 말하는 김길상에게 박수를 보내지만, 그 당시에 그것은 한낱 기대이고 소망일 뿐이었을 것이다.
일본군은 자기들이 시작한 세계대전에서 연전연승한다며 축포를 올린다. 축배를 든다. 하지만 히로시마ㆍ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지고 일왕이 무조건 항복한다. 그런 소식을 전하는 일본 병사의 대사는 “천황 폐하께서 원자폭탄을 원샷하셨스무니다. 우리 일본이 무조건 항복했스무니다.”이다. 광복이 된 것이다. 숨죽여 엎드려 있던 조선 겨레들이 거리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손에 손에 태극기를 들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친다. ‘대한독립’이라고 적힌 태극기를 들고 풍악을 울린다. 마당극은 그렇게 끝난다. ‘막이 내린다.’라고 하고 싶은데, 마당극엔 ‘막’이 없다.
배우들이 관객 한 명을 등등 동지로 임명하여 사격 연습을 하게 하고, 모든 관객과 더불어 독립군가를 부르는 장면은, 시기적으로는 3ㆍ1 만세의거 이후일 것이다. 그렇더라도 하동에서 일어난 3ㆍ1 만세의거의 한 장면으로 미루어 짐작해도 될 듯하다.
하동은 3ㆍ1 만세의거가 전국에서 가장 가열차게 일어난 지역으로 손꼽힌다. 경남일보는 ‘만세시위가 규모와 횟수 면에서 타 지역보다 월등히 높다는 것은 하동 사람들의 애국정신을 높이 평가해야 할 대목이다.’라고 보도했다. 하동은 3ㆍ1 만세의거 당시 지방에서 유일하게 독자적으로 독립선언서를 만들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동군민의 독립의지와 저항의지를 보여준다. ‘최후의 1인과 최후의 일각까지 폭동과 난거(亂擧)는 행치 말고 인도와 정의로 독립문으로 전진합시다. 어허라, 대한 광복과 동양 친목과 세계평화가 금일로부터 실현되얏소. 분기하고 맹진하라. 우리 반만년 신성한 역사와 삼천리 금수(錦繡)의 강토를 유(有)한 우리의 동포여.’(경남일보)라고 적혀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다. 하동에서는 제2의 3ㆍ1 만세의거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영호남지역에서 1919년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시위로 평가되고 있다. 하동군과 경남독립운동연구소는 1927년 하동에서 제2의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46명의 수형기록을 3ㆍ1운동 100년 만에 찾아 정부에 서훈을 신청했다고 한다. 1919년 기미년 만세의거 8년 뒤인 1927년 하동에서 제2의 3ㆍ1 만세의거가 일어난 사실이 새롭게 밝혀진 것이다. 이처럼 하동지역은 전국 그 어느 지역보다 항일의식이 높았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경남일보는 ‘하동은 영호남을 잇는 지리적 요충지로 일찍이 동학 농민운동과 영호남 의병들이 상시 활동했던 곳이다.’라고 분석하며 ‘하동사람들의 나라를 향한 애국심은 당시 초등학생들도 만세시위에 가담해 일본경찰을 놀라게 할 정도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소설가 박경리 선생님이 ≪토지≫에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비중있게 다룬 것이나, 극단 큰들의 마당극 <최참판댁 경사 났네>에서 독립운동하는 김길상 동지들의 활약을 재미있고도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은 그 까닭이 있는 것이다. 마당극에서 특히 일제 강점기 하동에서 있었음 직한 장면을 묘사한 것은, 우리 겨레에게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준 뒤 제대로 반성하고 사과하지 않는 일본에 대한 우리들의 공통적인 감정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뜻일 것이다.
비록 모든 관객이 이러저러한 저간의 사정과 역사적 진실을 꿰뚫어보면서 마당극을 관람하는 것은 아닐 테지만, 어렴풋이 대강 짐작만으로라도 하동 지역이 일제 강점기 때 나라를 위해 목숨을 지푸라기 던지듯 내팽개치고 분연히 떨쳐 일어선 분들이 많은 곳이라는 것을 느끼지 않을까. 아니, 하동뿐만 아니라 나라 잃은 시대에 수많은 조선인들이 나라의 독립을 되찾기 위해 해외로 밀항을 하고 다시 내 조국에 잠입하여 위태로운 상황을 극복해 가면서 일제에 맞서 싸웠다는, 엄연한 사실을 깨닫지 않을까.
마당극 한 편을 보면서 참 많은 역사적 진실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 역사적 진실의 정점은 3ㆍ1 만세의거가 될 것이고 또다른 하나의 정점은 8ㆍ15 광복이 될 것이다. 3ㆍ1 만세의거 100돌을 맞이하여 극단 큰들이 <최참판댁 경사 났네>를 특별한 내용으로 구성하고자 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해 보인다. 그럴 것이라고 미리 짐작하고 기다린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3월 1일 오후 2시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최참판댁에서 열리는 마당극 <최참판댁 경사 났네> 공연에 함께할 이유가 많다. 경남도민일보는 ‘3·1절 100돌을 맞아 올해 첫 공연으로 3·1절에 관객도 배우들도 크게 한판 만세 운동을 재현해 보자는 취지로 준비했다. 다만, 마당극 특유의 신명과 재미가 함께할 예정이다.’라고 보도하면서 ‘<최참판댁 경사 났네>는 1, 2부로 나누어서 진행하는데, 1부는 길놀이와 함께 평사리 최참판댁으로 가는 길목에서 펼쳐지는 놀이가 중심이고, ≪토지≫ 속 내용이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2부는 관객과 배우들이 그대로 최참판댁 안채 마당까지 걸어가 자리를 잡은 후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길놀이에 이어 1부 공연이 끝나고 최참판댁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관객과 배우들이 태극기를 들고 평사리 토지 세트장 곳곳을 독립 만세를 외치며 행진한다. 각종 만장과 대형 대한독립기, 태평소 연주자를 포함한 40여 명의 풍물패가 함께한다. 중간에 일본 헌병으로 분장한 배우들이 만세 운동을 진압하는 장면도 연출된다. 독립 만세 행렬이 최참판댁 앞마당에 도착하면 다 같이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태극기를 흔들며 3ㆍ1절 노래를 부른다. 이어 2부 공연이 계속된다.
관객은 평소 풍물에 관심이 있다면 이날 직접 악기를 가져가도 되고 아니면 현장에서 나눠주는 소고를 받아 풍물패에 참여해도 된다고 한다. 태극기만 흔들어도 괜찮을 것이다. 모두 하나 되는 날이니까. 모두 함께 100년 전의 그날을 기억하는 날이니까. 모든 우리가 특정한 한 사람이 되는 날이니까. 작은 개개인이 모여 커다란 우리가 되었던 날, 그날의 함성을 듣고 그날의 행진을 보는 날이니까. 태극기 들고, 북 들고 나도 함께 그 행진 대열 속으로 달려 들어가는 날이니까. 그렇게 행진을 하다 보면, 100년 전 그날 나는 어쩌면 최참판댁 하인이었을지도 모르고 강청댁이었을지도 모르고 임이네였을지도 모르고 이서방이었을지도 모르고, 모르지, 최서희였을지도 김길상이었을지도….
2019. 2. 27.
이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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