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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큰들 마당극 보러 가기

3ㆍ1 만세의거 100돌 기념 특별공연

by 이우기, yiwoogi 2019. 3. 2.



 

3월 첫날은 따뜻했다. 봄이 내 곁에 바짝 달라붙었다. 아지랑이는 현기증을 일으켰다. 바람은 느릿느릿 흘렀다. 아침 일찍 일어나 태극기를 꺼냈다. 100년 전 온 백성이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 날 아침 아무 생각 없이 일장기를 꺼냈을지 모른다. 100년 전 선각자들이 상하이에서 임시정부를 세워 나라를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 아침에 황국신민의 서사를 외우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한글을 쓰고 우리말을 하고 애국가를 부른다. 태극기를 매만지는 기분은 참 뜨겁다.

 

하동으로 가는 길은 새롭다. 가족들을 태우고 진양호에서 정형상 형님을 모시고 함께 하동으로 간다. 하동으로 가는 길은 새 길이다. 올해 초 진주에서 하동까지 가는 길을 새로 뚫었다고 들었는데, 과연 검정색 포도가 진하다. 가운데 노란선도 양쪽 가장자리 하얀선도 끊김 없이 끝없이 이어진다. 하동으로 가는 길은 늘 정겹다. 새 길이 뚫렸지만 낯선 풍경은 하나도 없다. 벌써 몇 번째 나들이인가. 눈에 보이는 나무는 봄을 입었고 눈에 보이는 꽃들은 나뭇가지에 얹혔다. 창문을 닫자니 갑갑하고 열자니 좀 추운 정도이다. 봄인 것이다.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최참판댁에서 ‘31운동 100주년 기념 특별공연이 열리는 날이다. 이곳에서 10년 동안 161회째 <최참판댁 경사 났네>라는 마당극을 공연하고 있는, 마당극을 전국에서 가장 잘하는 극단 큰들이 특별한 공연을 한다. 이 날을 맞이하여 진주시를 비롯하여 경남지역 곳곳, 전국 방방곡곡에서 31 만세의거 100돌 기념 특별행사를 벌이는데, 나는 하동으로 가는 것이다. <최참판댁 경사 났네>31절에는 어떻게 할지, 무엇이 특별할지 궁금해서 참을 수 없던 것이다.

 

하동은 31 만세의거가 전국에서 가장 치열하게 일어난 지역으로 손꼽힌다. 경남일보는 만세시위가 규모와 횟수 면에서 타 지역보다 월등히 높다는 것은 하동 사람들의 애국정신을 높이 평가해야 할 대목이다.’라고 보도했다. 하동은 31 만세의거 당시 지방에서 유일하게 독자적으로 독립선언서를 만들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동군민의 독립의지와 저항의지를 보여준다.

 

뿐만 아니다. 하동에서는 2의 만세의거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영호남지역에서 1919년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시위로 평가되고 있다. 하동군과 경남독립운동연구소는 1927년 하동에서 제2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46명의 수형기록을 3·1운동 100년 만에 찾아 정부에 서훈을 신청했다고 한다. 이처럼 하동지역은 전국 그 어느 지역보다 항일의식이 높았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경남일보는 하동은 영호남을 잇는 지리적 요충지로 일찍이 동학 농민운동과 영호남 의병들이 상시 활동했던 곳이다.’라고 분석하며 하동 사람들의 애국심은 당시 초등학생들도 만세시위에 가담해 일본 경찰을 놀라게 할 정도였다.’고 설명한다.

 

악양 양조장으로 가서 막걸리 한 말과 작은병 다섯 병을 샀다. 말통은 극단 큰들 배우들에게 드릴 것이고 작은병 다섯 개는 일요일 어머니 댁에서 형제들과 나눠 마실 것이다. 막걸리는 이 날 아침에 거른 것이라고 했다. 한두 모금 하고 싶은 유혹을 끝내 뿌리쳤다. 평사리로 올라가 차를 세우고 식당을 찾았다. 경상대 이정규 교수님도 합세하여 다섯이서 비빔밥과 메밀국수와 메밀전병으로 배를 채웠다. 손님이 많았다. 이상하게 내가 가는 곳에는 늘 손님이 들끓는 것 같다. 기분 탓이겠지.

 

공연을 시작할 장소를 확인했다. 마당에 일찌감치 검은 천을 깔아놓았다. 이전에 1부 공연을 하던 곳보다 아래쪽이다. 더 많은 사람이 처음부터 함께하도록 하기 위한 작전 같다. 찻집으로 옮겨 햇살 따뜻한 바깥에서 커피를 한잔씩 한다. 세상 이야기, 큰들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극단 큰들 단원들이 공연장으로 옮겨간다. 멀찍이서 손짓으로 인사를 나눈다. 126일 거창 공연 때 보고 거의 석 달 만이다. 반갑다. 다들 건강하고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어서 더욱 반갑다. 일본군 복장을 한 배우도 지나가고 장구를 맨 배우도 지나간다. 못 보던 몇몇 분은 이번 공연을 위해 특별히 불러온 모양이다. 진주큰들풍물단원, 창원큰들풍물단원들 같다. 지난 겨울 연기캠프에 참가했던 젊은 친구들도 대여섯 참여한 것으로 안다. 그렇게 사람 불러모으는 데는 신통방통한 재주를 지녔다.

 

이윽고 140분쯤 되어 공연이 시작되는 마당으로 내려갔다. 벌써 많은 사람이 진을 치고 있다. 대부분은 미리 공연 정보를 알고 찾아왔을 것이고 일부분은 우연히 최참판댁을 찾았다가 특별 공연을 보는 횡재를 하게 됐을 것이다. 경남도민일보 이서후 기자가 취재를 왔다. 큰들 공연장에서 자주 뵙는다. 엠비시경남 신동식 기자도 보이고, 고강훈 후배도 가족과 함께 왔다. 낯익은 배우들과 손을 잡으며 인사를 나누었다. 배우 아닌 단원들은 목에 스태프라고 영어로 쓰인 명찰을 단 채 동분서주하고 있다. 귀에 꽂은 무전기로 서로 통화를 하면서 공연 준비에 온 정신을 쏟는다. 35명 단원이 각자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빈틈없이 조화롭게 해나가는 것을 보면, 도대체 큰들이란 공동체는 어떻게 탄생했으며 어떻게 이끌어가며 그 종착역은 어디일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다. 같이 간 형상 형님도 몇 번이나 큰들은 정말 연구대상이다라고 할 정도였다.

 


버나놀이로 바람을 잡는다. 관객의 눈과 귀를 끌어들이는 데는 이만한 게 없다. 제법 분위기가 달아오르자 본 공연이 시작된다. 하동 사람들의 일상이 펼쳐진다. 임이네와 강청댁이 싸운다. 강청댁 남편 이서방을 향하여 임이네가 냄새를 피운 때문이다. 동네 싸움으로 번진다. 그러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원래 공연에서는 이때 최참판댁 재산을 가로채려는 조준구와 부인 홍씨가 나타난다. 하지만 이 날은 최참판댁의 소소한 내부 사정은 삭제하고, 바로 일제 강점기로 넘어간다.


조준구가 일본군 장교를 이끌고 하동에 나타난 것이다. 일본군은 어린 여학생 한 명을 끌고 온다. ‘유관순을 상징하는 게 아닐까. 그 여학생이 든 태극기를 조준구가 뺏는다. 여학생이 두 눈 부릅뜨고 독립 만세를 부르자, 조준구가 주먹질을 한다. 조준구는 일제 강점기 때 일본놈보다 더 악랄했던 조선인 순사 같다. 이런 장면을 보던 어린이들이 몇 마디씩 한다. 산 교육이 따로 없다. 가족과 함께 공연장을 찾은 수많은 관객들은 순식간에 일제 강점기 하동 장터로 시간 이동, 위치 이동을 한 듯하다.


 

 

일본군과 조준구가 독립 만세 시위를 벌이는 학생들을 잡으러 가자, 나머지 하동 사람들이 독립 만세 시위를 벌이기로 한다. 손에 손에 태극기가 전달된다. 태극기에는 대한 독립이라는 한자가 씌어 있다. 이번 공연을 위해 큰들에서 직접 제작한 것이다. <최참판댁 경사 났네> 상설 공연 때도 활용하는 소품이다. 나중에 관객들에겐 기념품이 된다. 마이크를 든 배우가 크게 소리친다. “대한 독립 만세!” 모든 관객들이, 모든 하동 주민들이 일제히 고함을 지른다. “대한 독립 만세~!” 커다란 태극기를 앞세우고 대평소를 불며 북과 꽹과리를 울리며 행진을 시작한다. 대형 태극기를 든 사람 가운데 한 명은 정형상 형님이고 한 명은 아들이다. 즉석에서 섭외되어 큰 역할을 맡은 것이다. 평사리 좁은 골목이 만세 시위를 벌이는 하동 사람으로 꽉 찬다. 어린이에서부터 연세 많은 노인에 이르기까지 가릴 것이 없고 나눌 것이 없다.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다.

 


만세 시위 행진은 평사리 골목과 논두렁길을 골고루 지나간다. 일본군들은 욱일기를 세워 놓고 만세 시위대를 기다리고 있다. 총으로 무장을 하긴 했지만 그들은 노도처럼 밀려드는 시위대를 감당할 수 없다. 끝도 없이 밀려드는 대한 독립 만세 시위를 이겨내거나 막아낼 재간이 없다. 두려움에 벌벌 떨던 조준구가 도망 가고 뒤이어 일본 장교도 꽁무니를 내뺀다. 욱일기는 구겨진 채 사라진다. 일본군을 물리친 조선 백성들의 행진은 더욱 힘차다. 태극기를 힘차게 휘두르며 한 발 한 발 앞으로 전진한다. 산수유 노란 꽃잎도 향기를 피우고 매화 꽃잎도 향기를 뿜는다. 광복을 향하여 독립을 향하여 미래를 향하여 힘차게 내딛는 하동 사람들의 독립 만세 시위를 응원하고 부추긴다.

 


드디어 최참판댁 대문 앞 본 공연장이다. 이미 많은 사람이 좋은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다. 동작 빠른 사람은 앞자리에 앉고 마당극은 무조건 앞에서 봐야 재미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앞에 앉고 사진이라도 좀 찍고 싶은 사람도 앞에 앉았다배우들이 마당에 섰다. 대한독립기를 배경으로 대한독립선언서를 낭독한다. 대한독립선언서는 전국에서 거의 유일하게 하동지역 인사들이 따로 만든 선언서이다. 그 내용은 간결하고 결연하다.

 

대한 독립 선언서

 

하늘이 주시고 신령이 도우시어 세계 평화의 회의가 열림에 즈음하여, 민족 자결의 여론이 함께 일어나니, 이제 좋은 시운이 왔도다. 울부짖노라! 십여 년 세월을 남의 쇠사슬에 묶여, 아픔을 참고 신음하던 우리 대한 동포여!

 

흔들리지 않은 정신을 쏟아 신속히 손을 들어라! 때가 오고 운이 돌아왔네. 주저하지 말며 바라만 보지 말고, 우리의 할 일을 우리의 힘으로 결단합시다! 우리의 매서운 뜻과 날카로운 주장은 저들의 긴 창과 대포보다 뛰어나니, 한뜻 한몸으로 광복의 땅으로 나아갑시다!

 

최후의 한 사람, 최후의 일각까지 폭동과 난행은 행하지 말고, 도리와 정의로 독립을 향해 전진합시다!

 

오호라! 대한 광복과 동양 친목과 세계 평화가 오늘부터 실현되었오! 힘차게 일어나 전진하자! 반만년 신성한 역사와 신성한 금수강산을 가진 우리 동포여!

 

단기 4252318

박치화, 정낙영, 정인영, 이성우, 이범호, 박종원, 이병홍, 정희근, 김응탁, 이보순, 황학성, 김두순

 



그러고는 삼일절 노래를 제창한다. 삼일절 노래는 정인보 선생이 작사하였다. 정인보 선생은 일제 강점기의 한학자역사학자작가이며, 대한민국의 언론인정치인작가이다. 대한민국 정부의 초대 감찰위원장이었으며, 1950년 한국 전쟁 때 납북되었다. 정인보 선생은 삼일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등 한글날을 제외한 5대 국경일 노래의 노랫말을 작사했다. 한글날 노래는 최현배 선생이 지었다. 곡은 박태현 선생이 지었다. 박태현 선생의 둘째 형은 일제 강점기 매국노 이완용 저격사건에 가담했다가 체포돼 7년간 옥고를 치르고 순국한 독립운동가 박태은이라고 한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삼일절, 제헌절, 광복절, 한글날, 개천절 같은 국경일 기념식을 학교에서 개최했다. 따라서 이들 기념노래를 배우고 외우고 불렀다. 그런데 요즘은 잘 가르치지 않는 것인지 배우고서도 익히지 않는 것인지 따라 부르는 사람이 많지 않다. 따라 부르는 사람도 목소리가 작고, 뒤로 갈수록 자신 없는 목소리로 바뀐다. 안타깝다. 나는 가사는 기억하겠는데 곡은 자신이 없다. 입만 벙긋거린 셈이다. 해마다 한번밖에 부르지 않는 노래이지만 가사라도 기억해야겠고 되도록 곡도 익혀야겠다. 겨레를 말하고 나라를 말하고 역사를 말하려면 말이다.

 

삼일절 노래는 이렇다


기미년 삼월 일일 정오 /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 독립 만세 / 태극기 곳곳마다 삼천만이 하나로 / 이 날은 우리의 의요 생명이요 교훈이다 / 한강물 다시 흐르고 백두산 높았다 / 선열하 이 나라를 보소서 / 동포야 이 날을 길이 빛내자.”


 

 

2부 공연이 시작되었다. 원래 작품에서는 조준구와 홍씨가 나타나서 집안을 둘러보고 하인들을 불러보고 기타 등등도 부르는 게 순서인데, 이 날은 특별 공연이라서 최 씨 집안의 여러 가지 잡다한 사연은 모두 묻어 두었다.

 

곧장 등장한 일본군들은 독립군 김길상 잡느라 혈안이 되어 있다. 김길상은 용케 감시망을 피해 동지들과 함께 사격연습을 한다. 일군에 붙잡힐 위기에서는 도시락 폭탄을 이용하여 모면한다. 그 이후 이야기 전개는 원래 공연 내용과 같다. 일본군은 날이 갈수록 흉포해지고 강압 통치의 강도는 세진다. 김길상이 끝내 붙들려 가고 마을 처녀 임이도 잡혀 간다. 임이를 잡아 끌고 가려는 일본군과 그런 임이를 놓치지 않으려는 임이네와 강청댁의 줄다리기 명장면도 나온다. 일본 국왕이 핵폭탄주를 원샷하고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다. 광복이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김길상이 돌아오고 천신만고 끝에 임이도 고향을 찾아온다. 일본 앞잡이 조준구는 임이네의 발길질에 꼬꾸라진다.

 


광복은, 떠난 사람이 돌아오는 것이다. 죽었던 것이 살아나는 것이다. 헤어진 것이 다시 만나는 것이다. 광복은, 목이 터져라 불러보는 노래다. 아무리 바라보아도 지겹지 않은 미남미녀다. 아무리 먹어도 물리지 않는 밥이요 술이다. 광복은, 어느 골짝에나 어느 마을에나 고요히 풍부히 골고루 쏟아지는 햇살이다. 그리하여 광복은 우리들의 삶이고 노래이고 춤이다. 광복은, 빛이고 다시 빛이다.


 

독립군가를 부를 때는 배우와 관객이 함께 태극기를 휘날리며 목청껏 부른다. 관객들은 대한 독립 만세!라는 말이 나올 적마다 태극기를 흔든다. 태극기 흔드는 건 어린 아이들이 더 열심이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마당극을 보면서 태극기의 소중함을 알고 나라 잃은 시대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던진 투사들이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 독립군들 덕분에 우리가 우리말을 하고 한글을 쓰고 31절 아침에 태극기를 게양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젊은 남녀가 보였다. 아빠 엄마 손 잡은 아이들도 보였다. 연세 지긋한 부모님을 모시고 온 효자 효녀도 보였다. 31절 연휴의 첫날 하동은 후끈했다. 자발적으로 참여한 수많은 관객들 덕분에 특별공연이 아주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멋진 공연을 놓치지 않고 사진기에 담으려는 많은 찍사들이 상하좌우로 종횡무진 뛰어다녔다. 나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내가 찍은 사진은 770여 장이다. 역대 가장 많이 찍었다. 건질 만한 건 별로 없다. 늘 이 모양이다. 하늘엔 드론이 소리 없이 날고 있었다. 멀찍이서 망원렌즈를 들이대고 명장면을 포착하려는 전문 찍사도 여럿이었다. 그렇게 찍은 사진은 여기저기로 옮겨 다니며 하동과 큰들을 소문내겠지. 사진의 여행은 영원할 것이다. 하동과 큰들도 영원하겠지. 

 

평사리 주변은 관광객들로 넘쳤다. 자동차 세워둘 곳이 모자랐다. 공연을 마치고 진주로 향했다. 먼저 핀 매화 꽃 향기가 뒤따라왔다. 온 나라 사람들의 뜨거운 열기가 자동차를 밀었다. 섬진강 끼고 달리는 차 안에서 우리는 큰들의 위대함을 이야기했다.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주제는 마당극이었다. 사천시 곤명면 작팔리에 있는 큰들 사무실에 들렀다. 막걸리를 내려놓기 위해서였다. 공연을 하는 날에도 보통 사무실에 한두 명은 남아 있는데, 이날은 아무도 없다. 그러니까 이번 특별 공연을 위해 모든 큰들 식구들이 총출동한 것이다. 톱니바퀴 돌아가듯 수레 양 바퀴 굴러가듯 아귀가 착착 맞아 돌아가던 것에는 다 까닭이 있는 법이다.

 



멋진 공연을 아주 성공적으로 준비하고 실행하고 마무리지어 준 큰들에 감사한다. 그런 기회를 베풀어준 하동군에도 감사한다. 윤상기 군수님 지나갈 때 고개 숙여 인사 드렸는데, 군수님은 그냥 그런가 보다 하셨겠지만, 나는 진정 감사하는 마음으로 인사를 올렸다. 앞으로도 최참판댁에서 재미있는 공연 계속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십사 부탁 올리는 심정이었다. 올해 <최참판댁 경사 났네>를 최소한 절반 이상 보러 가는 게 목표다

 

2019. 3. 2.

이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