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큰들이 2018년 10월 20일 산청군 시천면 한국선비문화연구원에서 처음 공연한 마당극 <남명>은 요모조모 뜯어볼수록 재미있다. 당연하게도 재미를 뛰어넘는 교훈이 있다. 주마간산으로 대충 흘겨봐도 흥미롭고 작정하고 분석해 보면 정말 정교하게 잘 만들어진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남명>은 2018년 경남문화예술진흥원 지역형콘텐츠개발지원사업의 하나로 만들었다. 남명 조식(南冥 曺植; 1501~1572) 선생과 인연이 깊은 산청군에서도 지원했다.
큰들의 마당극 <남명>은 제42회 남명선비문화축제 때 처음 공연한 뒤 여기저기서 공연 요청이 잇따라 11월 2회, 12월 2회 등 모두 4회 더 공연했다. 11월 11일에는 산청군 금서면 동의보감촌 잔디마당에서 공연했다. 이곳은 극단 큰들이 해마다 마당극 <오작교 아리랑>과 <효자전>을 번갈아가며 상설 공연하는 곳이다. 11월 22일에는 산청문화예술회관에서 산청인문학 콘서트의 하나로 공연했다. 12월 13일에는 진주 초전실내체육관에서 대학입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진주지역 고등학교 3학년 학생 1500여 명이 객석을 메운 가운데 네 번째 공연을 올렸다. 12월 24일에는 산청생초초등학교 강당에서 산청중학교 학생 500여 명을 관람객으로 모셔놓고 공연했다. 다섯 번 공연에 4000여 명의 관객을 모았다. 그중 절반 이상은 학생이다. 다른 작품이 처음 탄생한 뒤 얼마마한 기간에 얼마마한 관객을 모았는지 모르겠지만 이만하면 대단히 성공적인 출발이 아닌가 싶다. 아마 2019년에는 <남명>을 찾는 곳이 더 많을 듯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데 2월 1일 하동군에서 공무원을 대상으로 공연한다고 한다. 설 명절을 앞두고 남명 선생의 청렴과 정의를 배우려는 하동군에 큰 손뼉 쳐 드린다.)
나는 <남명>을 첫 공연 때와 두 번째 공연, 그리고 수험생을 대상으로 한 세 번째 진주공연을 보았다. 짧은 기간에 대작 마당극을 잇따라 세 번 관람할 기회를 얻은 건 매우 큰 행운이다. 수험생 부모였던 게 도움이 되었다.
마당극 <남명>은 여섯 마당으로 구성돼 있다. 첫째 마당은 ‘우물이 아니라 윗물이 맑았으면’이다. 극에 나오는 남명 조식 선생의 수석 하인 돌이의 대사 한 마디에 첫째 마당의 주제가 함축돼 있다. “우물 물이 암만 좋으면 뭐해유. 저 윗물이 썩어 있으니까 백성들이 배를 곯는 거 아니것슈?” 12살 어린 명종을 대신해 수렴청정하던 문정왕후 때 백성들의 모습이 드러난다. 죽지 못해 사는 백성들의 곤궁한 삶은 마당극 전반에 흐르는 시대적 배경이다.
둘째 마당은 ‘안으로는 성찰, 밖으로는 실천-경의사상’이다. 제자들이 책에만 빠져 있지 않고 생활속 작은 예절인 비질부터 배우고 실천할 수 있도록 가르친 남명 선생의 철학이 잘 드러난다. ‘성성자’와 ‘경의검’을 항상 지니고 다닌 남명 선생은 성성자 방울소리가 울릴 때마다 자신의 언행을 돌아보고, ‘경의검’으로 부정한 유혹을 단칼에 잘라내는 과단성을 실천했다.
셋째 마당은 ‘빨라도 너무 빠른 사또 회전율’이다. 낮은 벼슬부터 높은 벼슬까지 누구 가릴 것 없이 뇌물을 주고 자리를 사는 것이 횡행하던 시절이다. “사또 회전율이 빨라도 너무 빨라. 한양의 윗대가리들이 돈만 많이 주면 사또 자리를 막 내주니까 그런 것 아니야!”라는 아전들의 탄식은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새로 부임한 사또는 자신이 갖다바친 돈을 벌충하기 위해 백성들에게서 재물 긁어모을 궁리부터 한다.
넷째 마당은 ‘백성은 우물?’이다. “백성들은 그저 퍼도 퍼도 계속 나오는 우물이라는 걸 몰라? 우물!” 이 말은 새로 부임한 사또가 아전들에게 내뱉은 명령이다. 첫째 마당에서 백성들이 우물을 중심으로 모여 맑은 물이 자자손손 끊이지 않도록 빌던 것과 대조된다. 그 백성들은 남명 선생에게 배우기 위해 찾아오는 선비들을 보면서 일말의 희망을 가져본다. 하지만, 결국 사또와 아전들의 횡포 앞에서 “고마 하늘하고 땅하고 팍 붙어삣시고 좋겠다!”는 극한 탄식이 나온다.
다섯째 마당은 ‘목숨 걸고 쓴 사직상소문-단성소’이다. 남명 조식에게 단성현감 벼슬이 내려온다. 남명은 벼슬을 받자마자 사직상소를 올린다. 가렴주구와 폭정으로 엉망이 된 나라와 백성의 현실을 목숨 걸고 고한다. 백성들의 처참한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남명은 을사사화(乙巳士禍)로 죽임을 당한 선비들의 혼령으로부터 ‘지금까지 무엇을 했느냐’는 비판을 받아왔고 그것을 계기로 깨도됐던 것이다.
여섯째 마당은 ‘백성은 물, 임금은 배’이다. “백성은 물이요 하늘이다. 임금은 그 위에 떠 있는 배.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엎을 수도 있다.”는 말은 남명사상의 핵심 중 하나이다. 을사사화 이후 숨죽이고 엎드려 있던 선비들이 남명의 단성소를 보고 감동 받아 너도나도 제자가 되겠다고 천왕봉 아래 산천재로 찾아온다. 남명은 “학문을 하는 자들이 스스로 청렴하고 불의를 보면 떨쳐 일어나야 백성이 평안하다”고 가르친다. 남명이 돌아가신 뒤 20년이 지났다. 임진왜란(1592)이 일어난다. 남명의 제자들은 의병을 규합해 백성과 나라를 구하기 위해 일어선다.
일흔두 살을 살다간 남명 선생의 생애를 한 시간 마당극에 압축했다. 50부작, 100부작 대하드라마로 만들어도 모자랄 큰 삶을 짧고도 재미있게 극화하다 보니 생략과 상징 들이 많이 동원됐다. 관객들에게 강조해야 할 부분은 인상적으로 펼쳐 보여주고 그렇지 않은 부분에서는 긴장의 끈을 늦춰주는 웃음 요소를 곳곳에 심었다. 임진왜란이 터졌을 때 왜 남명 조식 선생의 제자들이 백성과 나라를 구하기 위해 가족과 생이별을 해가며 떨쳐 일어섰는지를 증명해 가는 과정이라고 해도 되겠다. 자주적 교육사가이자 통일운동가인 이만규(李萬珪)가 ≪조선교육사≫에서 우리나라 교육사상 가장 성공한 교육자로 남명 조식 선생을 으뜸으로 꼽는 이유도 드러난다.
극단 큰들은 여러 편의 마당극에서 여러 가지 재주를 보여준다. 인물은 우리 주변에 흔히 있을 만한 사람이 등장한다. 물론 산신령이 등장할 때도 있다. 배경은 역사적이기도 하고 전설적이기도 하다. 이야기는 기승전결, 또는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로 짜여 있다. 어떤 단계는 자세하게, 어떤 단계는 압축해서 보여준다. 배우들의 연기와 대사는 마당극 관객들의 나이와 수준을 고루 감안하여 구성된다. 주제는 구체적인 것이지만 우회하여 들려주기도 하고 정곡을 찌르기도 한다. <오작교 아리랑>, <효자전>, <최참판댁 경사 났네>를 한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이런 분석에 대부분 동의할 것이라고 본다.
마당극에 대해서라면 날고 기는 극단 큰들이 새 마당극 <남명>을 만들면서 다시 한 번 도약한 듯하다. 이 마당극에도 큰들이 갖고 있는 다양한 재주가 곳곳에 묻어 있다. 역사적 인물을 처음 다룬 건 아니지만, 그래도 과연 남명을 어떻게 생동감 넘치는 살아 있는 인물로 구체화해낼 것인가에 대해 의문과 걱정을 가진 사람을 한숨 놓게 만들어 준다. 특히 ‘경의정신’을 주창한 남명의 사상을 어떻게 쉽고도 재미있게 풀어줄 것인가 하는 것은 대단한 관심거리였다. 무대 장치와 배경 그림도 적절하다. 일일이 다 말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몇 가지 관점에서 <남명>을 한 번 더 뜯어본다.
나는 마당극 <남명>을 마당에서 잇따라 세 번 보았고,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동영상을 수도 없이 보았다. 머리가 하도 나빠서 대사를 외우지는 못하겠지만 대강 흐름은 안다. 처음엔 무대 가운데 있는 배우만 보다가 요즘은 그 뒤에 서 있는 배우에게도 눈길을 준다. 처음엔 무심코 듣던 어떤 대사 한마디, 무심코 보던 소품 하나가 치밀하고 정교하게 짜인 연출에 의한 것임을 미루어 짐작한다. 지금부터 내가 보고 느낀 마당극 <남명>을 풀어본다. 돋보이는 점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어볼 참이다. 대략 여섯 가지 실마리를 손에 잡았다.
첫째, 남명 조식 선생의 ‘경의사상’(敬義思想)을 반복적으로 쉽게 풀어서 설명해 준다. 경의사상은 쉬운 게 아니다. ‘경’도 어렵고 ‘의’도 어렵다. 무엇이라고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눈에 보이도록 보여주기란 더욱 어렵다. ‘內明者敬 外斷者義’(안으로 마음을 밝게 하는 것은 경이요, 외부의 일을 잘 판단하고 결단하는 것은 의다)라고들 하고, ‘안으로는 경’, ‘밖으로는 의’라고 쉽게들 이야기하지만 그렇게 호락호락한 철학이 아니다. 물론 한 시간 마당극에서 이것을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주리라고 기대할 수도 없다.
<남명>에서 경의사상은 첫째 마당에서부터 드러난다. 우물물이 아무리 맑아도 윗물이 썩었으면 백성들의 삶이 힘든 법이다. 그 반대로 생각해본다. 우물물도 맑고 윗물도 맑다면 백성들의 삶은 평안해진다. 고을 사또에서부터 조정 대신들까지 모두 깨끗한 상태, 그것이 곧 경의가 실현된 세상이다. 이렇게 넌지시 남명 선생의 철학을 보여준다. 눈치 없는 사람은 좀더 자세히 설명해야 알아들을지도 모른다.
둘째 마당에서는 이러한 경의사상을 노골적으로 설명해준다. 남명의 문하생들이 비질을 하면서 “스스로 물 뿌리고 비질하는 작은 예절도 모르면서 성리학의 이치를 입으로만 줄줄 외우는 것은 공부가 아니다.”라고 한다. 안으로 마음을 밝게 한 경을 밖으로 구체적으로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주장이다. 유생들은 “스승님은 늘 칼과 방울을 지니고 다니신다네. ‘성성자’가 울릴 때마다 자신을 돌아보고 ‘경의검’으로 자신을 유혹하는 모든 부정한 것들을 단칼에 끊어내신다네.”라고 강조한다. 곧 경의사상이다.
경의사상을 구체적으로 좀더 확대해서 설명해주는 핵심은 ‘단성소(丹城疏)’ 부분이다. 남명은 명종이 단성현감 벼슬을 내려보내자 이를 거절하며 소를 올리는데 이것이 단성소이다. 이때가 을묘년이라 하여 ‘을묘사직소’라고도 한다. 남명은 사직소에서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반드시 학문을 통해 마음을 바로잡아 백성들을 새롭게 하는 바탕으로 삼으시고 임금으로서 원칙을 세우십시오. 임금이 원칙이 없으면 나라가 나라답지 못하게 됩니다.”라며 명종의 각성을 촉구한다. 명종 임금이 경의사상으로 거듭날 때라야 백성들의 삶도 평안해진다는 논리다.
경의사상은 실천철학이다. 앎을 실천하지 않으면 알지 못하느니만 못하다. 남명은 유독 실천을 강조한 학자로 손꼽힌다. 둘째 마당에서 제자들은 “우리 스승님은 배우고도 실천하지 않는 것을 제일 싫어하셨네. 그것이 바로 스승님이 늘 강조하시는 경의사상이지. 안으로는 성찰, 밖으로는 실천, 이것이 바로 경의사상 아닌가?”라고 외친다. 여섯째 마당에서 남명은 제자들에게 묻는다. 제자들이 대답한다. “너희들은 공부를 왜 하느냐?” “나를 알고 세상을 알기 위해 합니다.” “왜 알고자 하느냐?” “제대로 알아야 정의를 실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 정의를 실천하고자 하느냐?” “그래야 백성이 평안하기 때문입니다.”
경의사상은 극중에 삽입돼 있는 노래에서도 반복된다. “백성은 물이요 임금은 배라.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엎을 수도 있다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엎을 수도 있다네. 안으로는 경 밖으로는 의. 청렴하고 정의로운 선비들이 되세. 백성 위한 배움 백성 위한 실천. 백성들의 웃음소리 얼씨구나(좋다)” 제목은 <배움의 길>이다. 남명의 시 민암부(民巖賦)로 가사를 썼는데 큰들 단원 공동창작에다 음악감독 전찬율이 작곡ㆍ편곡하였다 한다.
안으로의 경은 청렴과 연결되고 밖으로의 의는 정의와 연결된다. 스스로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 온갖 유혹을 뿌리치고자 하는 일은 청렴이다. 다른 사람이 저지르는 불의와 불법에 눈감지 않고 나서서 바로잡고자 하는 것은 정의다. ‘안=성성자=성찰=청렴=경’, ‘밖=경의검=실천=정의=의’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이 등식을 잘 새기기만 해도 마당극 <남명> 아니, 남명 조식 선생에 대해 기본적인 것은 안다고 해도 될 것이다. 큰들은 이 원리를 되풀이하여 보여주고 들려줌으로써 500여 년 전 인물을 오늘날 마당으로 모셔올 수 있었던 것이다.
둘째, 궁궐과 사또로 대표되는 지배계급과 백성들의 삶을 극적으로 대비하여 보여준다. 문정왕후는 어린 임금 명종을 앞세워 온갖 권세를 누린다. 직언을 하는 신하는 단칼에 베어버린다. 뇌물을 받아 벼슬을 판다. 문정왕후에게 뇌물을 바치고 사또 자리를 꿰찬 신관사또가 부임한다. 처음엔 청렴한 척 엄살을 피우지만 불과 몇 초 사이에 본색을 드러낸다.
신관사또(미스터 션사또)는 문정왕후로부터 취임 축하 화환을 받는다. 화환에는 ‘네 하고 싶은 건 다 하라.’고 적혀 있다. 이 션사또는 그동안의 행태를 뉘우치고 머리를 조아리는 아전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야, 이걸 그렇게 티나게 하면 어떻게 해? 세련되게 해야 될 것 아냐, 세련되게! 잘못 보면 이것 갑질이라고 난리가 나!”라고 소리친다. 한양의 양부자(위디스크 양 회장을 가리킨다)가 갑질하다가 감옥에 갔다는 것도 환기시킨다. “내가 사또 자리 따려고 쓴 돈이 얼만 줄 알아? 강남에 있는 기와집을 세 채나 팔았다 이거야! 강을 팔든 땅을 팔든 아니면 나라라도 팔든 (백성들 고혈을) 짜낼 방법을 말해 보란 말이야, 창조적으로!”라고도 외친다.
션사또는 “백성은 물, 그저 퍼도 퍼도 계속 나오는 우물이라는 거 몰라? 우물!”이라고 선언한다. 물은 백성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그 무엇이다. 백성들은 해마다 우물이 마르지 않고 맑은 물이 샘솟도록 해 달라며 ‘우물굿’을 올릴 정도다(우물굿은 마당극 맨 처음에 나온다). 백성들에게 우물이란 생명줄이다. 마을 사람들의 정서를 이어주는 매개체이다.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이고 믿음이다. 어려운 삶을 살아갈지언정 가끔이라도 시원한 꿈을 꿀 수 있게 해주는 요소이며, 흉년이 들거나 탐관오리의 수탈로 인하여 먹을 양식이 없을 때는 배를 부르게 해주는 밥이고 반찬이다. 그런데 그런 우물을 놓고 션사또는 퍼도 퍼도 계속 나오는 거대한 수탈의 창고쯤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우물을 대하는 인식의 차이는, 당시 양반 사대부와 핍박받는 백성들의 계급의 차이요, 도무지 건너갈 수도 없고 뛰어넘을 수도 없는 높고 두터운 벽이다.
마당극 <남명>에서는 우물을 대하는 두 계급의 인식을 때로는 희극적으로 때로는 비극적으로 보여준다. 션사또의 졸개들이 백성들에게 우물 사용 요금을 과다하게 매기려 하자 백성들은 절대 그럴 수 없다고 맞선다. 그러자 사또는 우물에 뚜껑을 만들어 덮어씌우게 한다. 백성들 삶의 근원인 우물을 막아버리는 것이다. 이를 막아서는 남명댁 수석 하인이 포졸의 육모방망이에 머리를 맞을 찰나, 김서방이 대신 막아서다가 머리를 가격당하고 쓰러진다. 백성들의 분노가 극적으로 치솟는다. 하지만 그들이 직접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 역사에서는 농민항쟁이 여러 차례 일어났고 때로는 왕권을 위협하기까지 했지만, 그것은 조선 중반 이후에서나 가능했던 이야기다.
극단 큰들은 <남명>을 통하여 당시의 문란한 조정과 그 하수인들, 그리고 그들로부터 이중 삼중으로 핍박받던 백성들의 곤궁한 삶을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어려운 시대엔 영웅이 필요한 법이다. 난세에 영웅이 탄생한다. 비록 홍길동이나 임꺽정 같은 의적은 아닐지라도 스스로 위대한 사상가가 되고 제자들을 구국의 의병으로 나서게 키워내는 영웅 남명 조식은 그런 시대적 배경하에서 태어나고 자라나고 성숙하고 마침내 완성되어 갔던 것이다.
셋째, 남명 선생의 ‘깨도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현대인들에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도록 한다. ‘깨도’라는 말은 깨달음이라는 말이다. 북한말이라는 설도 있지만 지금은 표준국어대사전에도 당당히 올라 있는 말이다. 말을 북한말 남한말로 나누는 것 자체가 사실은 바보 짓이다. 김학철의 <격정시대>에서 이 말을 처음 봤는데 ‘깨달음’만큼 상큼하고 깔끔한 말이다.
극단 큰들의 마당극 <남명>에서 남명 조식 선생은 처음부터 성인군자처럼 나온다. 첫째 마당에서는 수석 하인 돌이와 너나들이로 농담을 주고 받는 인자한 사람으로 비친다. 그러면서 “배운 자들이 알고도 행하지 않으니 백성들의 삶이 갈수록 처참하다. 많이 배웠다는 자들이 벼슬에 올라 백성들을 착취하는 꼴이 마치 이리떼와 같지 않더냐? 많이 배울수록 백성들에게서 더 많이 빼앗는다면 도대체 학문은 왜 한단 말이냐? 배운 자들이 청렴하고 정의로워야 백성들이 평안할 것이다. 알겠느냐?” 둘째 마당에서는 짐짓 연극 장면을 꾸며 제자들을 꾸짖는다.
이처럼 완벽해 보이는 남명 선생에게도 내적 갈등이 있다. 문정왕후 집권 이후 돈으로 벼슬을 사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데도 을사사화(乙巳士禍)로 인하여 바른 말 하는 선비는 죄 죽음을 당한 때, ‘나는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것이었다. 남명은 벼슬길에 나아가는 것이 옳은 일인가 나아가지 않는 것이 옳은 일인가 갈등과 번뇌에 휩싸인다. ‘어떻게 하는 것이 백성을 위한 길인지 다만 생각하고, 생각하고….’ 갈등한다.
포졸이 휘두른 방망이에 김서방이 쓰러진다. 백성들은 “우리 보고 어찌 살란 말이냐?” “고마 하늘하고 땅하고 팍 붙어삣시모 좋겠다!” “세상에 어찌 이럴 수가 있노!?”라고 탄식한다. 그것을 본 남명은 절망에 빠진다. “백성들의 눈물을 닦아줘야 할 자들이 어찌 이토록 무자비하게 백성들의 재물을 빼앗는단 말인가? 가죽이 벗겨지면 털은 어디에서 나며 나라의 근본인 백성들이 피폐해지면 나라는 또 무엇에 의지하려 하는가?”라고 탄식한다.
남명은 ‘백성을 위해 무엇을 했느냐.’며 구체적인 실천을 묻는 하늘의 울림, 천왕봉의 꾸짖음을 듣는다. 하늘의 울림과 천왕봉의 꾸짖음은 사실 을사사화로 죽임을 당한 선비들의 혼령이자 굶주려 죽은 백성들의 원혼이다. 원혼들은 남명에게 직접적으로 묻는다. 과도한 세금으로 백성들이 굶어죽는다고 외친 선비도 죽고, 탐관오리의 수탈에 고향을 등진 백성들이 도적이 되고 있다고 외친 신하도 죽고, 전라도 해안 쪽에 외선 70척이 들어와 노략질을 하고 있다고 외친 관리도 죽는다. 임금에게 직언하고 간언하는 모든 선비들은 단칼에 목이 날아간다. 그렇게 목숨을 잃은 선비들이, 신하들이, 관리들이, 백성들이 남명에게 묻는 것이다.
“탐관오리들의 행패가 맹수보다 심하고 오랑캐들의 횡포가 백성들을 할퀴어도 선비 나부랭이들은 경전의 글귀만 꿰고 있구나?”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들 것인가. “성현의 좋은 말씀을 통해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찾는 것이다.”라고 대답하면 그만일까. “자기 목에 칼이 들어와도 이 방향으로 피할까 저 방향으로 피할까 경전을 펼쳐 물어보겠는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어떻게 답할 것인가. “나는 물어보고 또 물어볼 것이다.”라는 말로 대답이 충분치 않다는 것을 남명 자신도 깨달아 간다. “백성들 목을 겨눈 칼이 살을 뚫고 이제는 뼈까지 뚫고 지나가는데도 그 고통을 네가 느끼지 못해서가 아니냐?”라는 힐난에 대하여 남명은 “아니다!”라고 외치지만 이제 그는 무너졌다. “나는 다만 어떻게 하는 것이 백성들을 위하는 길인지 다만 생각하고 생각하고….”라는 남명에게 을사사화로 죽은 선비들은 “생각 말고!”라고 외친다. 남명은 졌다. 아니 다시금 깨달았다. 깨도가 된 것이다.
“생각하고 생각하고….”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남명에게 원혼들은 끊임없이 “무엇을 했느냐? 백성을 위해 무엇을 했느냐?”라고 다그친다. 조선시대에 탐관오리와 오랑캐들이 있었다면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도 탐관오리와 오랑캐가 없으란 법이 없다. 그것들은 겉모습을 달리하고 속셈을 아주 감추고 있을지 모른다. 그런 탐관오리와 오랑캐들이 행패를 짓고 횡포를 부리면, 우리 시대 지식인이자 지성인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역사책 속에서, 철학책 속에서 진리를 찾고 있으면 그만인가. 하루하루가 전쟁 같다. 수없이 많은 사람이 잘못된 제도와 적폐로 인하여 목숨을 잃어가는데 언제까지나 책만 보고 철학만 논하고 있을 것인가. <남명>에서 을사사화로 목숨을 잃은 정직한 선비들은 2019년 오늘날 공직자들에게, 지식인들에게, 경영자들에게 정말 국민을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되풀이하여 묻고 또 묻고 있다.
마당극의 마당은 원래 검은 천으로 덮여 있다. 그 위에서 배우들이 연기를 한다. 하지만 남명이 을사사화로 인하여 죽은 선비들의 원혼의 외침을 듣는 장면은 흰 천으로 덮인다. 저승과 이승의 경계를 무색하게 무너뜨려버린 것이다. 저승과 이승의 경계가 허물어져버린 그 마당에서는 조선시대와 21세기의 시간적 경계도 없어져 버린다. 마당극 <남명>을 보는 관객은 그 순간 전율을 느끼게 된다. 배우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착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자신이 힘없는 국민이라면 그래서 눈물 짓고, 자신이 세금으로 월급받는 공무원이라면 그래서 크게 깨닫고, 자신이 사회지도층이라면 그래서 비로소 깨도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남명 조식 선생이 깨도하는 과정을 우리 시대 우리 사회 모두가 함께 공감하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마당극 <남명>에서 ‘아주 조금’은 지루한 장면이지만 가장 중요한 핵심 지점이라고 본다.
넷째, 남명 제자들이 왜적에 맞서 싸우는 장면을 군무와 노래로 잘 형상화하여 보여준다. 남명 조식 선생 돌아가신 뒤 20년이 흘렀다.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마당극 <남명>은 남명 선생의 일대기이지만, 임진왜란이 터지자 남명 조식 선생의 제자 수십 명이 의병장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빠뜨리면 그의 일생은 결코 완성될 수 없다. 그런 점을 익히 아는 관객들은 임진왜란 전투 장면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 사뭇 궁금해 하게 된다. 의병을 불러모아 전장에 나가기 위해 가족들과 생이별하는 장면을 어떻게 형상화할지 정말 궁금해진다. 수백, 수천 명 단역(엑스트라)을 쓸 수도 없는 마당극에서 말이다.
여기서 큰들만의 이야기 솜씨와 배우들의 다재다능함이 다시 한 번 드러난다. 하얀 머리 남명 조식 선생이 하얀 두루마기를 입은 채 저승길로 떠날 적에 제자들은 스승님을 부르며 울부짖는다. 관객들도 목이 멘다. 그 순간 임진왜란이 터진다. 20년을 건너뛴 것이다. 무대에서 사라지는 스승을 향해 절하던 제자들이 일제히 관객을 향하여 고개 돌리는 장면은, 심장을 쿵 내려앉게 만든다. 그때부터 순식간이다. 책 읽던 선비는 칼 찬 의병이 된다. 음향은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큰들은 칼을 든 의병장과 깃발을 든 의병장들이 마당에서 칼군무를 보여주는 것으로 임진왜란을 멋지고도 극적으로 형상화해 낸다. 그 의병들은 합천 정인홍, 의령 곽재우, 고령 김면, 함양 조종도, 초계 전치원, 산청 오장, 단성 이유성, 진주 이정, 거창 문위이다. 의병들은 무대를 종횡무진 달린다. 그 모습은 흡사 홍의장군 곽재우가 수천 의병을 이끌고 전장으로 달려가는 것 같다. 그 모습은 흡사 합천 정인홍이 적을 수없이 무너뜨리고 승전고를 울리는 장면 같다. 그 장면은 남명의 제자들이 곳곳에서 군자금을 마련하고 의병을 모집하고 적들과 맞서 싸우고 마침내 승리해내는 장엄한 대하드라마 같다. 불과 몇 분 되지 않는 군무 속에서 임진왜란 7년 전쟁의 전부를 보는 듯한 감격을 느낀다. 마지막 칼끝이 향하는 곳은 우리들의 나약하고 나태해진 가슴속인 듯하다. 시원하게 찌르고 가배얍게 벤다. 의병들의 칼은 안으로 곪은 세상을 찌르고 밖으로 썩어빠진 세상을 벤다. 그 뒤로 돌이가 치켜든 ‘경의’라고 적힌 깃발이 나부낀다.
이때 나오는 노래 가사는, 다시 경의사상이다. “가세 가세 우리들 일어나 실천과 행동 스승님의 가르침 백성은 물이요 하늘이니 백성을 구하리라 // 가세 가세 우리들 일어나 남명의 정신 스승님의 뜻 따라 험하고 어두운 이 세상을 우리가 밝히리라” 간결하고 간명하다. 너무 짧고 간단하여 날카롭고 섬칫하다. 험하고 어두운 이 세상을 밝힐 것은 남명 조식 선생의 가르침, 곧 실천과 행동이다. 곧 경의사상이다. 물이요 하늘인 백성을 구할 것은 오로지 스승님의 가르침일 것이다. 노래 제목은 <백성은 물이요 하늘>이다. 큰들 단원이 공동창작했고 전찬율 음악감독이 작곡ㆍ편곡했다 한다. 임진왜란에서 남명의 제자들은 ‘경의’의 위대함과 ‘실천’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달았다.
(사진=이정희, 스마트폰으로 찍은 동영상에서 잡은 장면)
다섯째, 진지하고 무거운 주제를 쉽게 받아들이도록 곳곳에 웃음 함정을 파놓았다. 마당극은 웃음과 해학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는 연희 양식이다. 무겁고 진지하기만 한 주제라도 가볍고 재미있게 공연한다. 연극이나 영화에는 희극도 있고 비극도 있겠지만 마당극에서는 비극도 희극적이게 된다. 그렇게 제작한다.
<남명>은 여러 번 강조하여 말했듯이 무겁고 진지한 주제이다. 역사 속에서 실제 존재했던 위대한 인물이 주인공이다. 큰들은 <이순신>도 마당극으로 만들었고 동의보감의 <허준>도 마당극으로 만들었고 김시민 장군도 <진주성 싸울아비>라는 제목으로 형상화해낸 뛰어난 극단이다. 그렇지만 남명은 그들 역사적 인물보다 풀어내기가 열 배, 아니 백 배쯤 더 어려웠을 터이다. 남명 조식 선생은 직접 임진왜란에 나가 싸우지 않았다. 당연하지. 벼슬도 살지 않았다. 남긴 책은 시와 부 같은 진지한 글뿐이다. 다행히 을묘사직소가 있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중요한 동기(모티브)가 되긴 하지만, 글쎄다.
마당극 <남명>에서 남명 조식 선생은 시종일관 진지하고 엄숙하고 무겁게 나온다. 수석 하인 돌이와 ‘미풍양속’으로 입씨름을 잠시잠깐 하지만. 그 부분을 빼고 나면 남명 선생은 조선시대 남명 모습 그대로(일 것으로 추측)이다. 그 대신 다른 배역들이 남명의 진지함을 누그러뜨리는 연기를 해낸다. 웃음 요소는 극 초반부터 대추나무 사랑 걸리듯 주렁주렁 걸린다.
수석 하인 돌이가 “콩 한 쪽도 나눠 먹는 것이 우리네 미풍 양속 아녀요?”라고 말하니 “먹는 게 부족할 땐 슬쩍 빠져주는 것도 미풍양속이다.”라고 말하던 남명 조식 선생이다. 그런데 불과 몇 분 뒤에는 남명 선생이 반대로 말하자 대뜸 “아이구, 뭔놈의 미풍양속이 샌님 마음대로래요? 엿장수에요?”라고 받아친다. 이에 할말이 없어진 남명은 “이놈이? 아, 정해진 게 어디 있냐? 실사구시하는 거지.”라고 눙치며 넘어간다.
스승 남명 조식 선생의 성성자와 경의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유생들이 “우리도 하나씩 갖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하자 다른 유생이 “이미 배송 중일세. 다섯 개를 주문하니 배송료를 받지 않더군.”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무료배송? 하하하….”라며 웃는다.
갑자기 쳐들어온 왜적들에게 화친을 하겠다는 유생에게 “자네 왜구의 말을 할 줄 아는가?”라고 묻자 “조또!”라고 한다. 하인 돌이가 남명 면전에서 “스승님, 밥 다 됐어요. ‘조식(朝食)’ 드시고 하세요.”라고 말하는 건 요즘 유행하는 아재개그의 전범이다.
백성들의 삶을 몰래 촬영해 놓은 몰래카메라가 등장한다. 백성들은 “몰래 싱카(숨겨) 놓았으니 몰카다”라고 한다. 이때 ‘몰카’라는 대사는 경상도 사투리(숨기다-싱캈다)를 제대로 살려낸 기막힌 조어법이다. 백성들이 물을 많이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거짓으로 꾸며 뉴스로 내보내자 “가짜 뉴스다!”라고 받아친다. 현대의 유행어를 과거 속으로 거꾸로 끌고 들어갔다.
그중 가장 웃기는 장면은 <앵두나무 처녀>라는 노래가 나오는 장면이다. 노래 가사는 이렇다.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 처녀 바람났네 / 물동이 호밋자루 나도 몰래 내던지고 / 말만 듣던 서울로 누굴 찾아서 / 이쁜이도 금순이도 단봇짐을 쌌다네” 여기서 서울은 한양으로 바뀐다. 마을 아낙과 김서방, 수석 하인이 우물가에서 빨래를 한다. 수석하인 돌이의 빨래가 가장 많다. 왜 그런고 하니 남명 선생 문하에 하도 많은 유생들이 몰려들기 때문이다. 마을 처녀는 유생들의 빨래 냄새를 맡아본다. “네는 왜 냄새를 맡고 그러노?”라고 하자 “냄새 아니고 향기 아닙니꺼!”라고 한다(‘냄새’는 낮은 말, ‘향기’는 높은 말인 것처럼 표현하여 썩 내키지는 않지만 퍽 재미있는 장면이다).
그런데 이들에게 포졸들이 나타나 물을 많이 썼으니 물값을 내라고 하고 마을 사람들은 그런 법이 어딨냐고 대꾸한다. “나라땅에 나라에서 세금 붙이는데 나라고 별수 있어?”라는 대사도 요즘말로 아재개그다. 마을 사람들은 얼마 쓰지 않았다고 잡아뗀다. 그래서 이들이 평소 물을 얼마나 썼는지를 몰래 촬영한 몰카가 등장한다.
이제 몰래 찍은 동영상을 되감기하여 다시 살펴볼 차례다. 이방이 “되감기!”라고 외치자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 처녀 바람났네~”라며 나왔던 사람들이 일제히 마당 옆으로 사라졌다가 “큐!”라는 신호에 다시 나오는데 이때는 <앵두나무 처녀> 노래를 빠르게 부른다. ‘빨리감기’를 하는 것이다. 그러자니 자연히 동작도 두 배 빨라진다. 천천히 하던 동작을 두 배로 빨리 하자면 작은 동작 몇 가지는 대충 뛰어넘을 듯한데, 큰들은 그런 것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정말 포복절도할 정도로 웃긴다. 이 장면은 입으로 백 번 천 번 말해도 소용없다. 직접 한 번 보는 게 낫다. 백문불여일견이랬다.
이 장면에 앞서 5분 사또가 등장하는 장면도 빼놓을 수 없다. 관객 중 한 명이 느닷없이 새로 부임한 사또가 된다. 문정왕후로부터 화환이 온다. 취임식을 한다며 기념사진을 찍는다. 신관 사또가 취임사를 한다. 물론 대본이 없으니 그냥 대충하는데 할 때마다 다른 장면이 연출된다. 관객들은 눈요기 귀요기를 제대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5분도 안 되어 다시 신관사또가 등장한다. 5분 만에 쫓겨난다고 하여 5분 사또라는 별명을 얻었는데, 관객과 배우가 하나되어 웃음을 자아내는 명장면이다. 이런 것을 극단 큰들은 일도 아니게 해낸다. 진지하고도 무거운 남명 조식 선생의 일대기는 일대기대로 흘러가고 그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출연자들은 시종일관 재미있고 우습게 만든다.
“남명 조식을 단성 현감에 제수하노라.”라고 말한 승지가 수석 하인에게 “야, 받아라. 이번에는 받아라 해.”라는 대사도 아재개그다. 그렇지만 많이 웃기지는 않는다. 남명이 단성소를 올린 뒤 선비들은 공감댓글을 달겠다고 하고, 어떤 선비는 전체 문장을 줄줄 외운다고 말한다. “이 사람은 목숨이 두 개라도 된단 말인가?” “을사년 사화 이후로 목숨 걸고 바른말하는 선비가 얼마만인가?” “조선 역사에 이런 상소는 처음 보았네.” “탄산수 같은 상소였네!”라는 말이 선비들 사이에 회자된다. 10번씩 필사한 사람도 나온다. 페이스북에 나오는 “좋아요!”도 등장한다. 공감댓글을 달겠다고도 한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쓰이는 유행어가 잇따라 터진다. 그렇지만 극 후반으로 가면 웃음기는 빠지고 진지함과 엄숙함이 뒤덮는다. 곽재우가 “지는예, 산청에 가면 곶감을 꼭 먹어보고 싶었어예. 곶감아 기다려라 내가 곧 감!”이라고 했지만 관객들로부터 큰 웃음을 이끌어내지는 못한다. 음악은 경쾌했지만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진지해진 것이다.
여섯째, 남명과 돌이를 뺀 나머지 배우들은 모두 1인 다역을 능수능란하게 소화해 낸다. 주인공은 남명 조식 선생이겠다. 수석 하인 돌이는 전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말뚝이다. 이 두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가지 역할만 한다. 남명 조식 선생은 나이에 따라 수염과 머리카락 빛깔이 바뀌고 옷도 바뀐다. 하지만 돌이는 처음 등장한 그대로 마지막까지 나온다.
마당극 <남명> 안내책자를 보면 만든 사람은 12명이고 출연배우는 14명이다. 이 14명이 한 사람당 서너 가지 배역을 능수능란하게 소화해 내면서(남명과 돌이 빼고) 극을 완성해 나간다. 신출귀몰이라고 해야 할지 뭐라고 해야 할지 마땅한 표현을 찾을 길 없다.
가령 이방으로 나오는 배우(오진우)를 보자. 처음 우물굿을 할 땐 그냥 마을 청년이다. 어른인지도 모른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둘째 마당에서는 남명 조식 선생 문하의 유생이다. 거짓으로 왜적이 쳐들어오자 개구멍부터 찾는 사람이다. 셋째 마당에서는 앞서 말한 대로 이방이다. 분장에서부터 구부정한 허리, 걸음걸이, 말투 모두 영락없는 조선시대 아전이다. 넷째 마당에서는 남명 조식 선생에게 글 배우러 가는 선비다. 그중에서도 홍의장군으로 유명한 의령 출신 곽재우다. 수염을 바꾸고 옷을 바꿔 입었을 뿐인데 앞에서 백성들에게 횡포를 부리던 이방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표정과 말투, 걸음걸이 모두 완전히 딴 사람이다. 같은 배우라고 여러 번 이야기해 주면 조금 알아들을지도 모르겠다.
첫째 마당에서 문정왕후로 등장하여 “뭬야~!?”라는 인상적인 대사를 던진 배우(최샛별)도 유생이 되었다가 동네 아낙이 되었다가 남명 선생 제자가 되었다가 의병장이 된다. 남녀도 넘나든다. 유생 복장으로 등장하여 “백성은 물이요…”라는 노래를 부를 때 짐짓 임금인 척하는 배우가 “뭬야~!”라던 문정왕후라고 하면 믿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그만큼 인상도 말투도 백팔십도 달라져 버린다. 물론 동네 아낙으로 나올 때도 마찬가지다. 나처럼 몇 번 관람한 사람이라면 몰라도 한두 번 본 관객들은 배우들의 환골탈태하는 연기변신을 절대 다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
중간에 백성들을 감시하는 몰카를 들고 등장하고 우물 덮개를 덮으려 할 때 이를 저지하려는 김서방을 방망이로 내려치는 배우(안정호)는 마지막에 의병장으로 맨 앞에 선다. 합천 정인홍이다. 백성을 괴롭히는 못된 ‘놈’이었는데, 그땐 정말 때려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웠는데, 의병장으로 등장할 땐 구국의 영웅이 되어 있다. 눈빛, 입모양, 말투, 걸음걸이, 손짓, 발짓 모든 것에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신한다.
다른 배우들도 그러하다. 정말 신기할 정도로 몇 분, 아니 몇 초 사이에 전혀 딴 사람으로 변신하여 등장한다. 무대 뒤에서 옷 갈아 입고 수염 붙이거나 떼고 신발 갈아 신고 하느라 혼비백산 정신 없을 텐데, 마당으로 등장하면 불과 몇 분 전에 자기가 무슨 연기를 했었던 것인지 조금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인 양 능청을 떤다. 능청을 떤다는 말은 곧 연기를 잘한다는 말 아닌가. 연기도 잘하지만 의상 등 분장도 그만큼 철두철미하다는 뜻 아닌가. 트랜스포머가 울고 갈 변신의 귀재들, 이게 극단 큰들의 힘 아니고 무엇일까.
이 밖에도 마당극 <남명>은 부분부분 뜯어서 보고 전체를 엎어서 보고 본 부분을 다시 보아도 재미있고 감명 깊고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작품이다. 우물이 되었다가 서재 또는 사무실을 상징하는 책꽂이도 되었다가 하는 우물은 극 시작에서부터 끝날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키며, 무릇 마당극에서 소품이란 무엇인지를 웅변하고 있다. 그런 것까지 모두 완벽에 가까울 만큼 잘 조화된다.
“학문하는 선비들이 청렴하고 사회적 정의를 실천해야 백성이 행복하다”는 남명 선생의 가르침, 즉 전언(메시지)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그렇지만 이런 주제를 듣기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강당에 수백, 수천 명을 모아놓고 훌륭한 강사가 와서 이런 주제로 이야기하면 조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케케묵은 소리라고 외면하거나 꼰대 같은 소리라고 내쳐 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재미있게 풀어나가는 마당극이라면 좀 다를 것 같다.
마침 하동군청에서 설 명절을 앞둔 2월 1일 아침에 공무원들을 모아놓고 <남명>을 관람하게 한 것을 생각해보면 좋겠다. 우리나라 모든 공무원에게 <남명>을 보라고 다그칠 수는 없고 실제로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눈 밝고 귀 밝은 어느 관공서, 지자체나 그 비슷한 기관의 장이 있다면 그 직원들에게 <남명>을 보도록 함으로써 훌륭한 교육의 기회로 삼음직 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잘 만들어진 대작 마당극, 돋보이는 부분이 너무나 많은 마당극을 아주 가까이에서 매우 쉽게 접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축복이다. 천왕봉을 울리는 남명의 외침을 500년도 더 지난 오늘날 우리가 웃으며 듣고 진지하게 마음에 새길 수 있다는 것도 축복이다. 극단 큰들의 마당극 <남명>은 돋보이는 부분이 매우 도드라지는 대작이자 그 자체로 축복이다.
2019. 2. 7.
이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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