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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큰들 마당극 보러 가기

내 직장으로 배달 온 마당극 한 판

by 이우기, yiwoogi 2018. 12. 2.

내 일터에서 매주 수요일은 야근을 할 수 없다. 이른바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 일찍 퇴근하는 날이다. 문화가 있는 날이라고 해도 되고 가족 사랑의 날이라고 해도 되겠다. 정말 일이 많아서 어쩔 수 없이 야근을 해야 한다면 소속 부서의 장 외에도 총무과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매달 마지막 수요일은 온 국민이 다 아는 문화가 있는 날이다. 이날만큼은 일찍 귀가하여 가족과 함께 문화생활을 하라는 뜻이다. 영화도 보고 연극도 보라는 뜻이다. 바쁜 일에 치여 극장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는 직장인들에게 조금 억지로라도 문화가(文化街) 근처로 밀어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문화단체도 좀 먹고 살도록 해주자는 것이다. 전국 곳곳에 크고 작은 문화단체가 많은데 대부분 경영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연극을 하거나 무용을 하거나 노래를 하거나 판소리를 하거나 기타를 치거나 대부분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그러니 일주일에 한번쯤은 가족과 함께 또는 직장 동료와 함께 문화를 즐기면서 서로서로 삶의 질을 높여보자는 취지다.

 

참 좋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려면 이러한 일은 더 크고 넓게 펼쳐나가야 한다고 본다. 모든 국민이 문화 향유 기회를 제대로 누리게 된다면, 그것을 일러 문화민족이라고 할 것이다. 우리가 문화민족이라면 대부분의 대학생이 공무원이 되려고 하는 잘못된 세태는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문화 단체에 소속되어 활동하더라도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는 나라라면 얼마나 좋을까.

 

백범 김구 선생은 백범일지나의 소원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도진순 주해 백범일지431)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가 있는 날은 국민이 일상에서 문화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매달 마지막 수요일과 주말에 다양한 문화혜택을 제공하는 사업이라고 한다. 20141월부터라고 하니 5년 가까이 되었다. 일단, 문광부에 손뼉 쳐 드린다. 문화가 있는 날에는 영화관을 비롯해 공연장, 미술관, 박물관, 고궁 등 전국 주요 문화시설을 할인 또는 무료로 즐길 수 있다고 한다. 문광부에 다시 한 번 손뼉 쳐 드린다.

 

직장문화배달은 평일, 외부 문화활동이 어려운 직장인을 위해 매달 마지막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에 전국에 있는 근무지로 직접 찾아가 문화 향유 기회를 제공하는 맞춤형 문화 체험 프로그램이다.


문화가 있는 날인데도 불구하고 문화를 향유하지 못하는 사람도 뜻밖에 많을 것이다. 까닭이야 여러 가지겠지만 아무튼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는 문광부가 직장문화배달이라는 기상천외한 사업을 생각해 냈다. 직장문화배달은 평일, 외부 문화활동이 어려운 직장인을 위해 매달 마지막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에 전국에 있는 근무지로 직접 찾아가 문화 향유 기회를 제공하는 맞춤형 문화 체험 프로그램이다. 다시 한 번 손뼉 크게 쳐 드린다. 문광부가 할 일을 제대로 했다.

 

2018년 올해는 40개 문화단체가 음악, 전통예술, 연극, 무용, 강연, 미술, 생활예술, 융복합 분야에서 직장문화배달을 해오고 있단다. 40개 문화단체에도 손뼉 쳐 드린다. 직장에서 이러저러한 절차를 거치면 문광부에서 문화단체를 직장으로 보내준다. 비용은 문광부가 댄다. 직장인들은 그저 배달 온 문화를 즐기면 된다. 짜장면 배달해 먹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돈을 문광부가 내어준다는 점이 좀 다르다. 문광부가 돈 내어준다면 짜장면뿐만 아니라 군만두, 탕수육도 한 접시 시켜 먹음직 하지 않는가.

 

우리 진주 지역을 중심으로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며 마당극 공연으로 주가를 높이고 있는 극단 큰들이 725일 인천 송도소방서에 직장문화배달 다녀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큰들은 당시 강당에 걸려 있던 ‘first in, last out’이라는 글을 보면서 눈물이 핑 돌았지요. 사고 현장에 가장 먼저 들어가서 가장 나중에 나오시는 119 소방대원분들에게 공연으로나마 시원한 웃음을 전해 드릴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라고 했다. 직장문화배달이 직장인에게는 문화를 즐기는 기회이지만 큰들 단원들도 한두 가지씩 느낌을 가져가게 되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다.

 

이 직장문화배달이 내가 일하는 곳으로도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올해는 이미 정해진 곳이 있을 터이니 내년에 어떡하든 신청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다짐했다. 큰들 마당극을 꽤 여러 번 따라다니며 보아온 나로서는 나의 일터 동료들도 마당극을 보면서 크게 손뼉 치고 더 크게 웃으며 잠시마나 스트레스를 풀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또한 공연이 끝난 뒤에는 진한 감동과 여운, 그리고 마당극이 다루는 주제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싶었다. 하지만 그런 기회는 2018년에는 오지 않을 줄 알았다.

 

10월초 극단 큰들에서 나에게 연락이 왔다. 나에게 연락한 것은, 내가 큰들의 '좀 남다른 데가 있는' 후원회원이어서 친분이 두터워졌기 때문이다. 상세하게 의논하려면 일단 담당자부터 알아야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문광부의 ‘()지역문화진흥원 문화가 있는 날 사업단에서 시행하는 직장문화 배달사업(찾아가는 문화 공연)을 경상대에서도 할 수 있겠는지 물어왔다. 나는 우리 경상대도 다달이 마지막 주에 직장교육을 하는데, 그 직장교육 시간에 마당극을 공연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직장교육을 맡고 있는 총무과 담당 팀장과 과장에게 큰들의 뜻을 전했다. 긍정적으로 검토해 달라고도 했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했다. 답변이 왔다. “좋다!”

 

큰들의 명품 마당극 <오작교 아리랑>을 드디어 경상대에서 공연하였다. 1129일 목요일 오후 2시 국제어학원 파이어니어 오디토리엄에서 경상대 교수, 직원, 학생과 소문 듣고 찾아온 일반인 등 대략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역사적이고 기념비적인 마당극 공연이 펼쳐졌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오작교 아리랑> 경상대 공연에 기껏 극단과 대학의 양쪽 담당자 연락처를 알려준 것 정도밖에 한 일이 없는 내가 왜 그렇게 가슴이 벅차던지.

 

9시쯤 큰들 배우들과 따뜻한 차 한 잔하면서 성공적인 공연을 기원했다. 여러 번 만나온 분들이라 가족처럼 반갑고 정겹다. 표정들이 밝고 환하다. 그런 에너지가 전달된다. 


이른 아침 출근한 나는 그 시간에 해야 할 기본적인 일을 끝낸 뒤 교직원들만 볼 수 있는 내부 게시판에 직장교육의 하나로 진행하는 극단 큰들의 <오작교 아리랑> 관람을 부추기는 글을 올렸다. 직장교육이기 때문에 대부분 참석하겠지만 그래도 깜빡하거나 바쁜 일 때문에 놓치는 직원도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부 게시판에 글 올리는 일은 잘 하지 않는 것인데, 이날은 꼭 그러고 싶었다.

 

안녕하세요? 오늘(1129) 오후 2시 국제어학원 파이어니어 오디토리엄에서 열리는 직장교육은 극단 큰들의 마당극 <오작교 아리랑>으로 진행됩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이 공연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직장문화배달사업의 일환으로 마련됐습니다.

 

마당극을 가끔 보신 분도 계실 것이고 한번도 못 보신 분도 계시겠지요. 이번 기회에 한번 보십시오. 정말 재미있고 유쾌합니다. 즐거움이 넘칠 겁니다. 가슴 찡한 감동도 있습니다. 올 한해 개교 70주년 관련 여러 가지 행사와 사업을 진행하면서 심신이 지쳐 있을 우리 경상대학교 가족들에게 선물 같은 공연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 작품을 올해에만 11번 보았습니다. 지난해 1, 오늘 1번을 합하면 13번 보게 됩니다. 극단 큰들은 이 작품을 201552일 처음 공연하여 우리 대학교에서 134번째 공연합니다. 그만큼 인기 있는 작품이고, 그런 만큼 작품의 완성도도 높으며 관객들의 반응도 폭발적입니다. 보시면 압니다. 마당극 <오작교 아리랑>과 극단 큰들에 대한 자세한 소개는 총무과에서 올린 공문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직장교육이라고 하면 의무적으로참여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고 딱딱하고 따분한 교육이라고 생각하기 쉽지요. 하지만 오늘은 아닙니다. 긴장 풀어 놓고 편안하게 앉아서 손뼉 치고 웃고 떠들면 됩니다. 수첩, 볼펜 던져두고 그냥 즐기려는 마음만 가져가시면 됩니다. 제가 이렇게 한번 더 마당극 관람을 권유하는 이유는 정말 정말 재미있기 때문이고, 제가 극단 큰들의 후원회원이기 때문입니다^^

 

어때요? 우리 대학교로 배달 온 마당극 한 그릇 함께하지 않으실래요?

그리고 팁 하나! 마당극은 무조건 앞에서 봐야 재미있습니다.”


 

남돌이와 꽃분이 부모가 버나를 돌리는 장면은 <오작교 아리랑>에서 갈등을 풀어가는 중요한 순간이다. 이들의 버나 돌리기 솜씨는 흠잡을 데가 없다. 


오전 8시쯤 큰들 기획실장에게 카톡을 보내니 9시쯤 공연장에 도착한단다. 나는 840분쯤 달려갔다. 공연장에 열풍기를 켜 놓았는지부터 확인하였다. 부지런한 국제어학원 윤창희 선생이 일찌감치 스위치를 올려놨다 한다. 감사드린다. 국제어학원 행정실에 들러 따뜻한 물을 끓여줄 수 있는지 물었다. 낮 기온은 제법 따뜻할 것으로 예보했지만 아침엔 입김이 허옇게 나오던 것이어서 배우들 몸부터 데워주고 싶었다. 메밀차, 녹차, 커피 따위 차들은 내가 미리 준비해 갔다.

 

9시 정각에 각종 소품을 실은 트럭과 배우를 태운 버스가 도착했다. 국제어학원 주차장에서 반갑게 인사 나누고 공연장으로 안내했다. 기획실장, 연출가, 무대감독 들이 이미 다녀간 뒤였으므로 특별히 안내랄 것도 없다. 큰 강당이다 보니 냉기가 가득했다. 뜨거운 물에 차를 타 한잔씩 돌렸다. 국제어학원 김선숙 선생이 도와주었다. 감사드린다. 큰들은 전문가들답게 전기선을 어떻게 연결하고 소품은 어디에 배치할지 따위 여러 가지 일들을 능수능란하게 진행했다. 그 어디든, 어떤 조건에서든 마당극을 공연해낼 만한 경륜과 눈썰미와 솜씨를 자랑하는 큰들이다. 손발이 척척 잘도 맞는다.

 

사무실로 돌아와 밀린 일 몇 가지를 더 처리하고 1130분 다시 국제어학원으로 갔다. 이날 배우와 스태프 17명 점심은 내가 사기로 했다. 교직원 식당에서 먹으면 거리가 멀지 않아 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으므로 부담되지 않았다. 후원회원으로서 당연한 도리이다. 마당극을 내 일터에서 열게 된 것만 해도 가슴 벅찬 일인데 까짓 점심쯤이야. 35명 단원들 모두 왔으면 더 좋았으련만.

 

마침 큰들 후원회원 중 우수후원회원이랄 수 있는 강경향 팀장이 와서 함께 식사했다. 강 팀장은 배우들 점심을 본인이 사려다가 한발 늦었다며 식사 후 커피를 샀다. 개인 취향대로 종류별로 골고루 시켰다. 한 명 한 명 챙겨주고 한마디 한마디 인정스레 말하는 강 팀장의 큰들 사랑도 알아줘야 한다.

 

큰들 배우들은 시간을 매우 철저히 지켰다. 오전 820분 큰들에 집결, 9시까지 경상대로 이동, 1030분까지 무대 세팅, 1130분까지 무대 연습, 1230분까지 점심식사, 오후 130분까지 분장, 이후 2시까지 의상 준비하고 대기, 2시부터 1시간 공연, 5시까지 정리 등 짜여진 일정엔 빈틈이 없었다. 어느 것 하나 시간이 어긋나면 뒤이어 자꾸 시간이 어긋나게 되고 그러면 배우들이 필요 없는 에너지를 낭비하거나 준비 시간이 부족해 긴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34년 동안 전국을 돌면서 공연해도 작은 사고 하나 일으키지 않는 큰들만의 시간관리법인 셈이다. 꼭 배울 점이다. 점심시간엔 총무과 인사팀장, 총무팀장 등 몇 분이 공연장을 찾아 준비 상황 점검 겸 격려 응원을 해주고 갔다. 

 

배우들이 분장하는 동안 나는 다시 사무실로 갔다. 본공연을 시작하는 시간이 다가오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공연하려면 30분 더 기다려야 하는데도 공연장을 찾았다. 홍보실에서 국제어학원을 세 번 갔다 왔다 한 것이다. 모든 준비는 완벽하게 끝났다. 공연장에 30번 가까이 가 본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음향을 담당하는 진은주 기획실장과 임경희 작가가 음향기기(콘솔) 앞에 앉아 있고 무대 근처에 사람이 아무도 안 보이면 준비가 끝났다는 뜻이다. 교직원들이 하나둘 나타나고 드디어 공연이 시작되었다.

 

남돌이와 꽃분이 부모가 버나 돌리기를 한 뒤 한 동작 한 몸짓으로 보여주는 이 장면은 관객들의 눈과 가슴 속으로 파고드는 큰들의 긍지이자 자랑이다. 나는 그렇게 해석한다. 


다달이 한 번씩 하는 경상대 직장교육은 말 그대로 교육이다. 공무원으로서 갖춰야 할 여러 가지 덕목을 어떤 것은 반복해서 교육하고 어떤 때는 새로운 지식이나 제도를 교육한다. 교육은 즐거운 시간이 아니다. 오죽하면 피교육생 3대 특징이란 말도 나왔겠는가. 피교육생 3대 특징은 춥고(여름엔 덥고), 배 고프고, 잠온다이다. 어떤 교육이든 그러하다. 몇 년에 한번쯤은 좀 웃기고 좀 유쾌한 교육이 있긴 하겠지만 교육이란 결코 기꺼운 자리가 아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많은 직원들이 객석 뒤쪽에 앉았다. 공연 시작 전에 총무과 팀장이 앞쪽으로, 가운데로 모이라고 안내해도 소용없었고 공연 시작 후 인사말하러 나온 배우가 다시 한 번 마당극은 무조건 앞에서 봐야 재미있다고 그렇게 말해도 겨우 5명이 자리를 옮길 뿐이었다.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마 다음에 한번 더 마당극 공연할 기회가 생긴다면 서로 앞자리 차지하려고 달리기할지도 모르겠지만.

 

드디어 공연이 시작됐다. 처음 5~10분 정도는 간간이 손뼉 소리가 나오긴 했지만 공연장 분위기는 대체로 차분했다. 마당극이라는 것을 많이 접해보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본격적인 웃음 요소는 좀 뒤에 나오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오골계의 맹활약으로 서서히 긴장을 풀고 감정 무장을 해제하던 직원들은 셋째 마당 함 사시오에서 완전히 자신을 내려놓았다. 싱싱한 생선 한 마리가 먹음직스런 회로 둔갑하고 뒤이어 매운탕용 뼈다귀만 남게 되는 소품의 현란함에 , 이것이로구나!’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남돌이 부모가 등장할 때 입을 헤벌쭉 벌리고 있던 경상대 직원들은 뒤이어 꽃분이 부모가 등장하자 큰 웃음을 토해냈다. 꽃분이 어머니의 궁시렁거리는 소리를 알아듣고는 죽으라 웃어제쳤다. 극의 긴장이 최고조에 이른 것은 여섯째 마당 이 결혼 반대다이지만, 관객들의 웃음이 최고조로 오른 것은 다섯째 마당 불안한 혼례이다. 왜냐? 바로 이 대목에서 우리 교직원 가운데 한 명이 남돌이 역할을 하기 위해 마당으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을 잘 알고 있는 나는 과연 어느 직원이 남돌이로 낙점될까 몹시 궁금했다. 드디어 한 명이 남돌이로 찍혔다. 제길수 선생이다. 제대로 잘 짚었다.

 

134번째 남돌이로 무대에 오른 제길수 선생은 제법 연기를 잘했다. 신부 꽃분이와 춤추는 장면도 멋졌다. 결혼 기념으로 찍은 사진은 공연 마친 뒤 인화하여 액자에 넣어 기념품으로 주었다. 두고두고 화제와 추억이 될 것이다. "제길수 선생 최고로 멋졌어요~!"


제길수 선생은 처음엔 어안이 벙벙하다는 표정이었다. 왜냐하면 이 장면은 배우들과 관객이 짜고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자연스럽게 극을 진행하다가 오골계와 남돌이 친구가 객석에 앉은 남자 관객 중 한 명을 선택하는 것이다. 제 선생은 요란한 손뼉 소리를 받으며 마당으로 나갔다. 그때부터 교직원 관객들은 허리를 잡고 웃거나 배꼽을 잡고 웃거나 아무튼 웃음과 재미의 도가니로 빠져들었다.

 

제길수 선생은 동료 교직원들의 간절한 바람을 외면하지 않았다. 배우들이 요리조리 이리저리 이끄는 대로 큰절을 하고 발바닥을 맞고 신부와 춤을 추었다. 춤추는 장면은 두고두고 많은 사람들에게 화제가 될 것이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자신을 내려놓은 채 열심히 공연에 참여한 제길수 선생에게 아낌없이 손뼉을 쳐 드린다. 134번째 남돌이는 경상대에서 탄생하였다.


 

남돌이 가족과 꽃분이 가족들의 버나 이어달리기는 <오작교 아리랑>이 관객과 하나되는 중요한 장면이다. 모든 관객이 고개를 돌려 버나가 어디쯤 갔는지, 과연 누가 이길지 보느라 정신이 없다. 그런 와중에도 응원의 손뼉은 계속된다.(사진=총무과 이민윤) 

 

남돌이 가족과 꽃분이 가족으로 나뉜 우리 직원들은 버나 이어달리기에서 응원도, 버나 돌리기도 정말 최선을 다하였다. 마치 초등학교 시절 운동회에서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응원하던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처음엔 꽃분이 가족이 이겼다. <아리랑 목동>에 맞춰 승리에 도취했다. 그러나 이건 연습경기. 다시 벌어진 본경기에선 남돌이 가족이 이겼다. 결과적으로는 무승부이지만, 승패는 엄연한 것. 환호하는 남돌이 가족과 탄식하는 꽃분이 가족은 극명하게 대조되었다. 관객들이 마당극 내용 속으로 완전히 빠져 들어간 것이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도록 이끈 큰들 배우들도 대단하고, 처음 차분하고 얌전하던 태도에서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배우가 되어버린 우리 직원들도 대단하다.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경상대 교직원 모두 크게 손뼉 쳤다. 공연 시작할 즈음 객석 가운데로, 앞으로 자리를 옮기라고 했을 때 무거운 엉덩이를 무기로 끝내 자리를 옮기지 않았던 많은 분들은 아마 크게 후회하였을 것이다. 나는 국제어학원 무대에서 배우들과 사진을 찍었다. 물론 큰들 후원회원인 강경향 팀장, 이정희 학예사, 지난여름 산청 공연 때 우연찮게 남돌이가 되었다가 후원회원이 된 한길영 팀장, 홍보실 동료 빈선옥 전문관 등 여럿이 함께 배우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영원히 잊을 수 있는 기념비적인 공연의 뒤끝은 흥분과 감동과 기쁨이었다.



공연이 끝난 뒤 배우들과 기념촬영했다. 큰들 배우와 찍은 기념사진이 제법 많아졌다. 내 일터에서 이런 사진을 찍는 날이 오리라고는 정말 꿈에도 몰랐다. 소중한 추억과 행복이 나날이 쌓여간다. 

 

모든 게 끝난 뒤 무대와 객석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좀 쓸쓸하였다. 누구는 소풍 마친 뒤의 기분이라고 했다. 총무과는 멋진 공연을 해준 큰들 단원들에게 저녁식사를 대접하였다. 총무과 직원들은 모두 너무나 바쁜 날이어서 내가 대신 큰들 단원들과 저녁을 먹었다. 밥 먹는 내내 고맙다는 말과 멋졌다는 말이 반찬처럼 오고 갔다.

 

다음날 나는 총무과장, 팀장, 담당 주무관에게 다시 감사 인사를 드렸다. “덕분에 공연 잘하고 저녁까지 잘 먹었다며 큰들에서 인사 전해 달라고 하더라고 말씀드렸다. 정중하고 예의 바르게 고개 숙여 절했다. 진심이었다.

 

총무과장은 다른 대학에 전화하여 직장교육으로 큰들을 초청하라고 하였다고 했다. 문화배달이 아니라 예산을 편성하여 초청하자면 좀 어렵지 않겠나 싶긴 하지만, 어쨌든 감사한 말씀이다. 총무과 인사팀장도 정말 훌륭한 공연이었다, 머리 아프게 앉아서 받아 적고 하는 교육보다 몇 배 낫다. 내년에는 예산을 편성하여 상하반기 두 번씩 초청해야겠다고도 했다.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서로 버나를 던지고 받기로 했다. 관객들은 멀찍이서 높이 던질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분들은 요롷게 쪼그려앉아 살짝 주고받는다. 남돌이 아버지가 "이 사람 아주 센스가 만점이구만"이라고 하자 꽃분이 아버지가 "아주 재치가 있구만요"라고 한다. 얼었던 마음이 봄눈 녹듯 녹는다. 뒤에 섰던 까마귀와 까치가 환하게 웃는다. 오작교가 제 구실을 잘했다. 


 

담당 주무관은 홍보실에 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대학교 예절교육관 마당에서 공연해도 좋겠다고 하였고, “해마다 예산을 편성해서 직장교육으로 해도 좋겠다고도 하였고, “사무국장이 못 보신 게 아쉽다고도 하였고, “지역의 공기업 등과 협력해서 지역문화사업으로 해도 좋겠다고도 말했다. 내가 바라던 바이다.

 

나는 공연 결과가 궁금하여 몇몇 직원에게 물어보았다. 칭찬 일색이었다. 내 생각이 들어맞았다. “역대 최고의 직장교육이었다는 말이 나왔다. “한 시간 동안 정말 실컷 웃고 손뼉 치다 보니 스트레스가 다 날아갔다고도 했다. 내가 수십 번 마당극 공연을 보러 다니는 줄 아는 동료들은 그럴 만하다고 했다. 다들 좋아할 것이라던 기대가 어긋나지 않았던 것이다. 몇몇 직원은 새 후원회원이 되었다.

 

한 가지 더 생각한다. 아랫마을과 윗마을이 버나를 주고 받고 아리랑을 부르면서 화해하고 소통하게 되었듯이 경상대라는 직장에서도 부서 간에 소통하고 협력해서 한 곳을 바라보고 어깨동무하기를 기대한다. 앞뒤 꽉 막혀 실마리가 풀리지 않는 일이라도 대화하고 의논하면 못해낼 게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한번 더 깨달았으면 좋겠다. 아랫마을과 윗마을은 5000년을 함께 살고 고작 70년을 떨어져 살았다고 했는데, 경상대 교직원들은 1948년 개교하여 올해까지 70년 동안 한 배를 탄 운명공동체로 살아왔다. 운명공동체인 우리 직원들이 마당극 한 편을 보면서 서로 비슷한 감정과 마음을 나누었으면 좋겠다. 다들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직장교육에 임하지 않았을까.


아랫마을과 윗마을이 버나를 주고 받으며 소통하였듯이 우리 직장 경상대에서도 부서 간에 커피라도 한잔 주고받으며 벽 없이 소통하고 화합할 것이다. 그런 생각이 났다. 문화배달로서도 최고였고 직장교육으로서도 최고였다. 

 

극단 큰들의 직장문화배달은 대성공으로 끝났다. 내년에도 배달시킬 수 있을까 벌써부터 기대감을 가져 본다. 내년 산청, 하동에서 열리는 상설공연장에 경상대 교직원을 더 모시고 가야겠다고도 다짐해 본다. 내년에는 새 마당극 <남명>을 우리 대학교에서 공연할 수 있기를 또한 빈다. 공연이 가능하도록 배려하고 도와주고 애써준 총무과장, 인사팀장, 담당 주무관께 감사드린다. 

 

2018. 12. 2.

시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