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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큰들 마당극 보러 가기

남명을 배우는 시간, 위대한 스승을 만나는 시간

by 이우기, yiwoogi 2018. 12. 13.


 

2018년 1115일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진주시내 고등학생들이 한달 뒤인 1213일 오전 진주시 초전동 실내체육관에 모여들었다. 한창 유행인 롱패딩으로 무장한 아이들이 삼삼오오 체육관으로 빨려들어갔다. 진주시와 진주문화원이 공동으로 마련한 수험생을 위한 마당극 <남명> 공연을 보기 위해서다.

 

공연장 한쪽 면에는 진주시가 유네스코 공예민속예술 창의도시 가입을 추진한다는 내용을 알리는 펼침막이 걸려 있다. 오늘 공연의 주인공인 고등학생들을 미래의 남명 후예들이라고 깨치는 글귀도 적혀 있고, ‘여러분 모두가 자랑스러워요.라는 응원 글귀도 적혀 있다. 


 



공연에 앞서 조규일 진주시장과 김길수 진주문화원장이 인사말을 했다. 마당극 공연을 앞두고 기관장이 인사말을 하는 건 그다지 아름다운 그림이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오늘 조규일 진주시장의 인사말은 매우 인상 깊었다.

 

강의’, ‘수업같은 것과 담을 쌓고 있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에게 조규일 진주시장은 이번 공연의 의미를 짧고도 쉽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설명했다. 형평운동, 진주농민항쟁, 임진왜란 진주성 전투 등이 가능하도록 한 진주정신의 뿌리가 남명 조식 선생의 실천유학에 있음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해 주었다. 역사와 교육과 충절의 도시 진주시장다웠다.

 

김길수 진주문화원장도 대입 성공을 위해 땀흘려 온 수험생들을 격려하면서 진주가 문화도시로 발전해 가는 데 관심을 가져 달라고 당부했다. 깊은 인상을 남기는 짧은 인사말을 해준 두 분이 고맙다. 공연의 의미를 환기하는 시간이 되었다.

 

공연장을 가득 메운 고등학생들은 손에 쥐고 있던 스마트폰을 잠시 주머니에 넣고, 많이 느슨해진 정신을 가다듬어 1시간 동안 공연에 집중했다. 마당극이라는 공연 양식에 익숙지 않은 그들은 중간 중간 웃음과 손뼉으로 배우들의 명연기에 화답했다. 200-300명 정도 둘러앉았으면 집중도가 더 높았겠지만, 2000명 정도가 함께 보는 마당극도 매우 성공적이었다.

 

 


극단 큰들은 주 관객이 고등학생, 그것도 일생일대의 중요한 시험을 치른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3학년임을 감안, 중간 중간에 그들의 감성과 언어감각에 맞춘 대사를 끼워넣는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남명 조식 선생이 살았던 명종조는 조선시대 중 백성들이 가장 어려운 시기를 견딘 시기이며 특히 을사사화로 인하여 뜻있고 미래가 창창한 선비 수백 명이 유명을 달리한 시기이기도 하다. 먹고살 길이 아득해진 백성들이 이웃과 땅을 버리고 산으로 도망가던 때이기도 하다. 의적 임꺽정이 실제 활동했던 시기가 명종조이다.

 

마당극 <남명>을 본 고등학생들은 과연 남명 조식에 대하여 잘 알고 있을까. 이날 공연을 통하여 위대한 겨레의 스승 남명 조식 선생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까.

 

우리 학생들은 마당극 <남명>에 나오는 여러 가지 상황 설정과 대사를 제대로 받아들였을까.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게 되는 이치를 들었을까. 백성의 눈물을 닦아줘야 할 자들이 오히려 백성들의 고혈을 짜면 어떻게 되는지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꼈을까. 백성의 눈물을 닦아야 할 윗물이란 옛날에는 임금으로 불렸고 사또로 불렸지만 지금은 대통령으로 장차관으로 시장군수로 불린다는 평범한 사실을 가슴 깊이 새겼을까.

 

수많은 고등학생 가운데 장차 정치인이 될 학생도 있을 것이고 행정관료가 되려는 학생도 있을 터인데, 그들은 <남명>을 보면서 마음속 깊숙한 곳에 경의정신을 새겨 넣었을까. 경은 무엇이고 의는 무엇인지, 안으로는 성찰하고 밖으로는 그 성찰한 것을 실천하라는 울림을 느꼈을까.

 

불의한 정권에 맞서 목숨 걸고 단성소를 올리던 남명의 기개를 배웠을까. 일생을 두고 한번도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으면서 청렴하고 정의로운 말만 해온 남명을 통하여 그들의 인생 길을 비춰보기도 했을까.

 

남명 조식 선생이 사망하시고 정확히 20년 뒤 임진왜란이 터졌을 때 읽던 책을 접어 놓고 가족과 생이별하며 의병장이 된 남명의 제자들의 면면을 우리 학생들은 기억해 줄까. 의령 곽재우, 합천 정인홍, 고령 김면, 함양 조종도, 초계 전치원, 산청 오장, 단성 이유성, 진주 이정, 거창 문위의 이름을 기억할 일이다.

 

수험생들은 1시간 동안 마당극 <남명>을 보면서 남명 조식 선생의 사자후를 제대로 들었을 것이다.

 

 


백성은 물이요 임금은 배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엎을 수도 있다는 준엄하고 엄중한 목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왜 알고자 하는지, 왜 정의를 실천해야 하는지 묻는 남명의 질문에 우리 학생들도 스스로 대답해 보았을 것이다. 국민이 평안하기 위해 배운 자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깨달았을 것이다.

 

역사를 배우는 것은 과거의 아름답고 추했던 흔적을 더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거울 삼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몸으로 마음으로 깨닫는 과정이라는 것을 배웠을 것이다.

 

임금이 원칙이 없으면 나라가 나라답지 못하게 된다는 남명의 단성소는 나중에 우리나라의 지도자가 될 우리 학생들의 뇌리에 뚜렷하게 각인되었을 것이다.

 

 


한 시간은 짧았지만 학생들이 배우고 느끼고 기억하고 다짐하는 시간은 길었으며, 남명 조식 선생의 제자들처럼 자신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고자 결심하는 시간은 더 길었을 것이다. 그렇게 믿는다. 


해마다 이맘때쯤(수능 끝나자마자) 지역의 수험생들을 '모셔놓고' 교육적으로도 훌륭하고 시간 보내기로도 안성맞춤인 마당극을 펼쳐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수능시험을 치른 고3 아들과 아내와 함께 가족 여행을 가기로 했다. 그 첫날은 극단 큰들과 함께 조선시대를 다녀왔다. 여행길을 마련해 준 진주시와 진주문화원, 극단 큰들에 깊이 감사드린다. 수험생 부모된 자격으로 함께 공연을 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이제 자동차에 기름을 가득 넣은 만큼 바퀴 굴러가는 어디든 달려가서 놀고 웃고 즐길 것이다. 추운 연말을 서로 마주보며 따뜻하게 보내 보련다. 가는 길 오는 길 대화가 끊어지면 다시금 <남명>을 이야기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2018. 12. 13.

시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