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콘서트> ‘아무말 대잔치’는 느닷없이 사람을 웃게 만드는 재미가 있다. 일요일 늦은 저녁에 드러누워 보고 있으면 저절로 웃음이 배어 나온다. 혼자 키들키들 웃기도 하고 어떤 땐 큰 소리로 하하하 웃기도 한다. 다음날이 월요일이라는 것만 생각지 않는다면 밤새도록 ‘아무말 대잔치’를 해 주면 좋겠다고 여긴 적도 있다. 짧은 것은 1~2초 만에, 긴 것도 10초 이내에 그렇게 사람을 웃게 만드는 재주가 부럽기도 하다. 그렇게 생각하며 보다가 한 번은 뒤통수를 한 대 세게 얻어 맞았다.
왕비가 백설공주에게 사과를 팔러 갔다. 왕비가 뭐라고 했는지 대사는 생각나지 않는다. 백설공주도 뭐라고 대꾸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그 왕비가 사과를 들고 백설공주에게 내밀면서 뭐라고 했고 백설공주도 뭐라고 대답을 했는가 싶은데 왕비가 우스개를 한 방 날려 준다. “나 네일 아트 했다!” 관객도 웃고 나도 모르게 웃었다. 그러니까 못된 왕비가 독이 든 사과를 백설공주에게 건네고 있는 게 아니라, 사과를 든 채 자기 손톱에 장난질한 것을 자랑하고 있던 것이다. 손톱은 소 간도 꺼내 먹을 만큼 길었고 색깔은 정말 간을 꺼내 먹은 것처럼 시뻘갰다.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 그 우스개에서 관객들은 반전의 묘미, 예상하지 못한 결말의 허탈함을 동시에 느낀다.
나는 ‘네일 아트’라는 말에서 입맛이 싹 가시고 말았다. 동화 백설공주의 배경이 된 시대에도 그런 말을 썼는지 모르겠지만, ‘네일 아트’라는 말이 범람하는 홍수가 되어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 때문이다. 이 말을 맨 처음 들은 게 10년은 더 된 듯하다. ‘네일’이라는 말을 ‘내일’로 이해했다. ‘아, 내일 즉, 미래에 더 각광받을 아트 즉, 예술을 말하는구나.’ 이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석해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네일 아트 숍’이라는 말도 그렇고 ‘네일 케어’라는 말은 더욱 어색했다. ‘네일 아트’는 무엇일까 생각다가 나중에 우연히 알게 되었다.
‘네일 아트’는 무엇인가. 위키백과에서 찾아본다.
네일 아트(Nail art)는 손발톱에 하는 화장이다. 네일 아트를 하는 가게를 네일살롱이라 하며, 그 기술자는 네일 아티스트라고 불린다. 네일 분야 중 아트는 가장 흥미로우며 독창적인 분야이다. 손톱의 작은 공간에 창조적인 그림을 그려 놓을 수도 있고 인조 보석이나 장식들을 달 수도 있으며 이미 완성된 스티커 형태로 디자인 된 것 등을 붙일 수도 있다. 네일 아트는 5000년 전 고대 이집트와 중국에서 신분을 나타내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그 당시에는 매니큐어가 없었기에 사람들은 관목에서 추출한 해나를 신분이 높을수록 진한 적색을 나타내게 발랐고 낮을수록 연하게 발랐다. 본격적으로 네일 아트가 시작된 건 19세기 초 매니큐어 전문회사에서 손톱을 관리하는 기구를 내놓음으로써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의 첫 네일살롱은 1988년에 만들어졌는데 이태원에 그리피스라는 이름으로 네일살롱을 연 것이 처음이라고 한다.
손발톱에 하는 화장을 네일 아트라고 한다. 손발톱에 그림을 그려넣거나 인조 보석, 장식 들을 달면서 예쁘게 치장하는 것은 무척 오래된 일이다. 그것으로 신분을 나타내기도 했다 하니 그 유래와 의미를 짐작할 만하다. 기술이라고 할지, 예술이라고 할지 아무튼 이러한 것을 우리나라에서도 1988년쯤 들여왔다고 하니 30년은 넘은 것 같다. 그 사이 우리 사회에서 화장의 한 종류 또는 예술의 한 분야로 착실히 뿌리내린 듯하다. 장래 희망으로 네일 아티스트를 꿈꾸는 젊은이도 아주 많다.
이 네일 아트를 ‘손톱 화장’, ‘손발톱 화장’, ‘손톱 예술’, ‘손발톱 예술’이라고 하자면 많이 어색할 것이다. 그렇다고 ‘손톱 아트’, ‘네일 예술’이라고 하기에도 어색할 것이다. ‘손톱 미용’이라고 하면 덜 어색할까. ‘네일 아트’가 우리 사회에 두루 널리 쓰이게 되었는데 거기에다 ‘손톱’, ‘발톱’이라는 말을 들이대면 어색하다 못해 지저분해 보일지도 모른다. ‘네일’은 가꾸고 다듬고 분칠하여 예쁘게 치장할 수 있는 몸의 한 부분으로 여겨지지만, ‘손톱’은 때가 자주 끼기 때문에 깎아 버려야 할 그 무엇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처음 ‘네일 아트’라는 말을 쓸 때 ‘손톱 예술’ 또는 ‘손톱 미용’이라고 하지 않은 탓이 크겠는데 지금 와서 나무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손톱과 예술은 ‘미녀와 야수’처럼 조화롭지 않다는 인식이 너무나 큰 때문이겠다.
그러다 보니 그냥 손톱이라고 할 것도 모조리 네일이라고 한다. ‘손톱 관리’는 ‘네일 케어’라고 한다. ‘케어’는 참 널리 쓰인다. ‘손톱 미용실’은 ‘네일숍’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은 ‘샵’이라고 하는데 꼭 쓰려면 ‘숍’으로 써야 한다. ‘손톱미용사’는 ‘네일 아티스트’라고 한다. 이 정도 되다 보니 ‘네일 아트’ 분야의 국가자격증도 생겼나 보다. ‘네일 아트’가 얼마나 널리 쓰이는지 더 찾아 본다.
∙ 포쉬네일, 네일아트 힐링 프로그램 진행 (머니투데이)
∙ 높은 네일아트 국가자격증 합격률로 경쟁력 증명하는 강남 네일아트학원은? (파이낸셜뉴스)
∙ 호산대, 네일아트 창업 우수 기업 선정 (노컷뉴스)
∙ 건국대 글로컬 여대생, 네일아트로 창업신화 쓴다 (중부매일)
∙ 한화 김민우, ‘팬들 위한 네일아트’ (오에스이엔)
∙ 안양9동, 어르신에 ‘네일아트’ 봉사 (수도권일보)
‘네일’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책을 찾아 본다.
∙ 집에서 간단! 셀프 네일 아트
∙ 젤 네일아트의 모든 것 : 기초편과 응용편
∙ 셀프 네일 아트
∙ 2018 2주 완성 미용사 네일 필기시험문제
∙ 기초네일케어
어느 대학에는 ‘네일아트학과’도 생겼다고 한다. 여기서 잠시 정태춘, 박은옥이 부른 <봉숭아>라는 노래를 들어본다. 가사는 이러하다.
“초저녁 별빛은 초롱해도 이 밤이 다하면 질 터인데
그리운 내 님은 어딜가고 저 별이 지기를 기다리나
손톱 끝에 봉숭아 빨개도 몇 밤만 지나면 질 터인데
손가락마다 무명실 매어주던 곱디고운 내 님은 어딜 갔나
별 사이로 맑은 달 구름 걷혀 나타나듯
고운 내 님 웃는 얼굴 어둠 뚫고 나타나소
초롱한 저 별빛이 지기 전에 구름 속 달님도 나오시고
손톱 끝에 봉숭아 지기 전에 그리운 내 님도 돌아오소”
그리운 님을 기다리는 사람의 안타깝고 애절한 마음이 부부 가수의 예쁘고 구수한 목소리를 타고 흘러나온다. 첫눈이 올 때까지 손톱 끝에 봉숭아 물이 남아 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를 하며, 들으며 자란 사람이라면 이 노래를 듣다가 눈물을 흘릴지 모른다. 손톱에 물든 봉숭아 물을 바라보며 사랑하는 님을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 손톱이 네일이 되었다. 손톱이라고 하면 손목, 손등, 손가락, 손바닥, 손때, 손금으로 이어지는 ‘손’과 연관되는 말들이 줄줄이 나오게 되지만 그 손톱을 네일이라고 하고 보니 뒤따르는 말이 없다. 손톱을 네일이라고만 배우고 알고 써 버릇하다 보면 손톱은 사라지고 네일만 남을지도 모른다. 설마 그렇게 되겠는가 싶지만 말이란 쓰지 않으면 없어지기도 하는 것이니 꼭 그러지 말란 법도 없다. 손목, 손등, 손가락, 손바닥, 손때, 손금은 그대로 남아 있는데 손톱이라는 말만 없어진다면 참으로 난감할 것이다.
‘네일 아트’라는 말을 당장 버리자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손톱 미용’이라거나 ‘손톱 예술’이라고 하지 못할 까닭이 없고 그렇게 하지 않은 게 못마땅하고 아쉽지만 당장 돌이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손톱’은 좀 지저분하고 없어 보이는데 ‘네일’이라고 하니 고상하게 있어 보인다고 여길까 봐 적잖이 걱정된다. 아무리 그래도 정태춘, 박은옥이 부르는 노래 <봉숭아>의 가사 “손톱 끝에 봉숭아 지기 전에 그리운 내 님도 돌아오소”를 “네일 끝에 봉숭아 지기 전에 그리운 내 님도 돌아오소”라고 부르지는 않겠지. 설마….
2017. 12. 10.
*사진: http://blog.daum.net/speedeun3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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