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모기 행장

by 이우기, yiwoogi 2017. 8. 8.

지은 지 오래된 아파트여서 베란다 섀시가 어글어글했다. 모기장 창틀에도 구멍이 군데군데 뚫려 있었다. 모기는 쥐새끼 풀방구리 드나들 듯 우리집을 제 마음대로 쏘다녔다. 베란다에는 거실과 안방으로 침투하기 위해 대기 중인 모기로 가득했다. 거실, 안방, 아이방, 화장실, 주방 곳곳에 모기들이 천장에 달라붙어 작전 개시 지시만 기다렸다.

 

불을 켜 놓았을 때는 견딜 만했다. 어쩌다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는 몇 마리가 카미카제 특공대처럼 우리에게 달려들었으나 거의 모든 경우 실패했다. 그런 실패 경험은 출동 대기 중인 다른 모기에게 전파됐다. 어쩌다 대여섯 살 사랑스러운 우리 아이의 살집을 물었다가는 동족이 멸망당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불을 끈 다음에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모기와의 전쟁이 시작됐다. 살이 야들야들 보들보들한 아이와, 모기라면 기겁을 하던 아내를 지키기 위한 한 가장의 전쟁은 엄숙하고도 치열하고 처절했다. 불을 붙여 연기를 내는 모기향은 기본이고 전기 콘센트에 꽂아두는 모기향도 물론 설치했다.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자다가 모기 소리 때문에 벌떡 일어나 불을 켜고 파리채를 든 채 이러저리 설치기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른다.

 

, 그러나 모기들은, 대한민국 육군 유격훈련보다 더 혹독한 육체적 훈련과 정신교육을 받아왔던 것이었으니. 분명 불을 끄면 모기 소리 요란한데 불만 켰다 하면 어디론가 사라지고 보이지를 않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가족을 지켜야 하는 절체절명의 사명을 부여받은 내가 쉽사리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 안방문을 닫고 창문도 닫았다. 모기를 가둔 것이다. 파리채를 이리저리 휘휘 휘두르며 천장과 장롱 틈새와 옷들 바짓가랑이 사이를 뒤졌다.

 

모기는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데서 튀어나왔다. 방구석에 처박혀 있는 양말통, 그중에서도 검은색 양말 틈에서 웽~하고 나타났고 장롱 손잡이 안쪽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도 한 마리 날아올랐고, 천장과 벽을 이어주는 검은색 몰딩에도 몇 마리 주렁주렁 매달려 있기도 했다. 어떤 놈은 약삭빠르게도 조금 전 내가 베고 자던 베개의 베갯잇 사이에 붙어 있기도 했다. 이런 놈들을 다 찾아내어 박멸하고서야 나는 잠을 청할 수 있었는데, 그러자면 짜증도 나고 피곤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미물인 모기와 한판 전쟁을 치른 내가 지쳐 쓰러져 잠들고 나면 이놈들은 또 어데선가 나타나 우리 가족을 범할 것이다. 창틀을 새것으로 고치기 전까지 해마다 오뉴월부터 가을이 다 가도록 나와 모기의 전쟁은 하루도 멈출 날이 없었다. 하루에 열댓 마리씩이나 잡은 적도 있다. 모기는 나를 원수로 알 것이다.

 

이런저런 일로 서울 출장을 갔다. 사오 년 전이다. 이곳저곳을 방문하는 일정을 모두 마친 뒤 인사동에서 저녁을 먹었다. 피로를 달래고 객창감을 돋우느라 맥주도 한두 잔 했다. 걸어서 인사동을 구경하였고 그 근처에 숙소를 잡았다. 여인숙보다는 좀 나았고 호텔이라고 부르기엔 민망한 시설이었다. 싼값에 현혹되었다고 생각한다. 열두 시쯤 되어 숙소에 들어간 나와 동료는 곧 곯아떨어졌다. 장거리 운전에다 낮동안의 긴장, 그리고 약간의 음주는 우리의 숙면을 재촉했다.

 

새벽 두세 시쯤이었을까. 나는 지붕이 날아가는 큰소리에 놀라 벌떡 잠이 깼다. 옆 침대에서 자던 동료가 모기를 잡느라 침대에서 천장으로 날아올라 손바닥으로 천장을 두들겼다. 천장 베니어합판과 보꾹 사이가 진동했다. 다시 방바닥으로 내려와 옷장문을 힘껏 갈겼다. 그런가 싶더니 벽쪽으로 돌아서서 두 손으로 손뼉을 쳤다. 잠시 침대에 걸터앉았는가 했는데 다시 용수철처럼 천장으로 솟아올랐다.

 

그의 손은 핏자국으로 얼룩져 있었다. 그는 지금 모기와 한판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내가 깨었을 때 열 마리쯤 잡았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나는 그렇게 모기가 많은 줄 몰랐다. 둘 중 내 피가 덜 맛있었던가 보다. 이전에 우리 집에서 나를 원수로 삼던 모기들의 정보가 다행히도 서울에까지는 전달되지 않았나 보다.

 

그날 우리는 열여덟 마리를 잡았다. 핏자국을 하나하나 세어 본 것이다. 마치 전리품을 감상하듯이. 천장과 벽과 옷장들에는 모기 피가 보기 흉하게 얼룩졌다. 모기는 어디로 들어온 것일까. 그사이 주인에게 찾아가 모기향을 얻어와서 향을 피우고 뿌리고 했으나 우리들의 서울밤은 힘겹고 지겹고 따분하고 간지럽기만 했다. 하얗게 새웠다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이다.

 

모기들은 그날 밤 인사동 지역 반상회를 우리 방에서 했던 것일까, 그랬다면 방 주인을 너무 몰라본 것이다. 우연히 열려진 창문이나 방문을 그들이 발견했던 것일까, 그랬다면 그들은 스스로 운명을 재촉한 것이다. 우리가 떠난 그 방에 그다음 날 누군가 투숙했다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까. 모기를 생각하면 그날밤 핏빛 난무하던 그 전쟁이 떠오른다. 여관 주인은 모기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장사하기 애저녁에 글러먹었을 것이다.

 

모기들은 어디에선가 특수훈련을 받고 있다. 밤과 낮을 구분하는 법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사람을 공략할 때는 얼굴보다는 뒷목, 손등보다는 겨드랑이, 발등보다는 장딴지를 공격하도록 훈련을 받는다. 그런 훈련은 먹고사는 문제이고 생존과 직결된 것이기 때문에 결코 허투루 하지 않는다.

 

특히 애벌레를 낳아야 하는 암컷의 경우 각종 전투 개념, 침투 훈련, 도주로 확보, 위장, 은폐, 엄폐, 치고 빠지기, 연합작전 같은 것을 게을리하는 법이 없다. 종족 보존이라는 지엄한 명령 아래 암컷들은 온힘을 다하여 여름을 정복한다. 여름 한철 농사로 일년을 버티고 그로하여 장구벌레라고 하는 이름도 고상한 자손을 퍼뜨려야 하는 것 아닌가.

 

그들에게 색깔 구분은 아주 중요해서 검정색, 갈색이 자신의 목숨을 지켜줄 것이고 흰색, 노란색 계통 밝은 색은 섶을 지고 불구덩이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는 이치를 배운다. 사물의 앞과 뒤를 배우고 위와 아래를 익힌다. 사람들이 사는 일반 주택과 아파트의 구조를 눈감고도 그릴 수 있을 만큼 살핀다. 어디로 침투해서 어디에서 작전개시를 하고 어디로 도주할지 도상훈련을 실시한다. 고층 아파트를 올라갈 때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 하고, 아무리 낯익은 집이라도 천적 동물 거미라는 게 있을 수 있음을 몸으로 익힌다. 어떤 으리으리한 식당에 잘못 들어간 조상 몇몇은 냉방장치가 너무 잘되어 있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동태가 되고 말았다는 전설도 듣고 산다. 소대와 중대와 대대 개념은 없지만 어떻게 하면 천적인 새떼들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며 어떻게 하면 소수의 먹잇감으로 다수가 포식할 수 있을지도 배운다.

 

무엇보다 모기들은 모기향과 향수의 냄새를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다. 타고난 후각 덕분이기도 하지만 장구벌레 시절부터 부모로부터, 삼촌숙모이모로부터 배우고 익힌 교육 덕분이다. 인간들이 제아무리 새로운 모기약을 개발한다고 해도 모기들은 한눈에 딱 보면 안다. 첨병 역할을 맡은 모기들은 전국에 산재해 있는 모기약 개발 회사에 침투하여 정보를 빼내기도 하고 어떤 병사 모기는 일반 가정에 무심히 침투하여 새로 개발한 모기약 텔레비전 광고를 모르는 척하며 훔쳐보기도 한다.

 

그런 정보들은 자신들의 생존권과 종족 보존을 책임진 중앙관제센터로 보내진다. 그러니 한심한 인간들이 그 어떤 새 모기약을 개발해도, 비록 몇몇 전사들이 그 약으로 인해 장렬하게 전사하기는 하지만, 대체로 일 년도 못 가서 그것을 이겨낼 비책을 모기들은 알아내곤 한다. 그러니 모기를 이길 방법은 없다, 인간들은.


 

아침 출근하여 사무실 문을 열고 신문을 펼친다. 모기 한 마리가 달려든다. 나는 모기들이 언제 어디에서 나타날지 대체로 짐작을 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모기들의 습속과 훈련 양태를 오래 전부터 염탐해 온 덕분이다. 처음 왼쪽 귓불 뒤에서 엥엥거리는 것을 모른 척해 준다. 허점을 보여주는 전략이다. 모기는 멀찍이 달아난다. 선풍기 바람을 타고 날아가기 때문에 날갯짓하느라 에너지를 소비할 이유도 없다.

 

나는 그놈이 다시 나타날 것을 짐작한다. 나의 짐작은 아주 오래된 통찰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틀릴 일이 거의 없다. 아니나 다를까. 다시 목 뒤에 나타난 모기가, 내 주의력의 정도를 확인하기 위해 얼굴 앞으로 아주 빠른 속도로 날아든다. 눈빛이 흐리멍덩하거나 졸고 있거나 아니면 전혀 다른 생각 때문에 모기 따위엔 신경을 쓸 수 없다고 판단되면 그놈은 나를 공략할 것이다. 그걸 내가 모를 리 있나?

 

아주 잠시 잠깐 내 눈앞에 나타난 놈을 나는 전광석화와 같은 손동작으로 잡아챈다. 손아귀에 잡으려고 하면 안 된다. 손바닥을 파리채인 양 휘두르는 게 낫다. 거대한 공기 폭풍을 일으켜 0.1초 정도 모기 날개를 꼬이게 하거나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게 바람직하다. 바람 폭풍을 맞은 모기는 자기도 모르게 바닥에 툭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면 모기를 잡을 수 없다. 번개보다 빠른 동작으로 다시 한 번 모기를 덮친다. 손바닥이 얼얼할 정도로 세게 내리쳐야만 확고부동하게 죽어 나자빠진 모기의 시체를 볼 수 있다. 그러나 만약 그놈이 이미 다른 데서 헌혈의 축복을 맞이한 뒤라면 피칠갑 된 손바닥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다년간 이 종목에서 괄목할 만한 기량을 축적해 온 나는 적당한 속도와 세기로 모기를 제압한다. 비틀거리는 녀석에게 썩은 미소를 지어 보내주며 나는 카메라를 꺼낸다. 자기가 죽어가는 모습을 잔인하고도 비열한 표정으로 촬영하는 인간의 모습을 본 뒤라면 다시는 지구의 평화와 사무실의 평온과 한 가정의 안락함을 파괴하려 달려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죽어가는 그 순간, ‘이우기라는 놈에게는 절대 덤비지 마라, 그는 모기 잡는 선수다. 조심하라라는 무전을 동족들에게 보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사무실에는 모기가 감히 다시는 침투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컴퓨터를 켰다. 밝은 컴퓨터 화면을 배경으로 모기 한 마리가 날아든다. 이놈은, 조금 전 죽어가던 제 동족이 조심하라고 한 게 누군지 전혀 파악이 안 되는 놈이다. 아니면 그의 죽음을 앙갚음하기 위해 다시 투입된 카미카제이던가. 나는 이번에도 모른 척 딴전을 피운다. 제아무리 교육받고 훈련받은 놈이라 할지라도 제깐 놈이 모기이지 인간보다 나을 수야 없잖은가. 감히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능멸하려 들다니.

 

눈앞에서 알짱거리던 그 놈은 양손을 맞부딪치는 바람 폭풍에 휘말려 정신을 잃고 비틀거리다가 내 책상 위 흰 종이 위에 쓰러졌으니, 아서라 말아라, 다시는 우리 사무실 침투조는 파견하지 말거라. 우리 사무실은 너희들과 전쟁을 치르느라 시간을 허비할 만큼 한가한 곳이 아니란다. 더구나 여긴 각자 집에 돌아가면 귀염받고 사랑받고 존경받고, 요즘 쓰는 말로 애정받는사람들이 일상의 행복과 조직의 발전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곳이란다.

 

모기는 모기과에 딸린 곤충이다. 전염병을 옮기는 해충으로 몸길이는 5~15mm, 몸 색깔은 갈색이나 검은 갈색이다. 머리에는 한 쌍의 겹눈과 한 쌍의 더듬이가 있다. 입술은 피를 빨기 좋게 대롱 모양의 바늘로 되어 있다. 가슴은 세 마디로 되어 있고, 각 마디에 한 쌍씩의 다리가 있으며 다리는 9개의 마디로 되어 있다. 가슴의 제2마디에 한 쌍의 날개가 있다. 배는 여덟 마디로 되어 있고 끝에 꼬리가 있다.

 

모기는 4~11월에 활동하고 완전 변태를 한다. 피를 빠는 것은 암컷이며, 수컷은 피를 빨지 않고 꽃의 꿀 등을 빨아먹는다. 괴어 있는 물이나 시궁창에 한 번에 300~400개의 알을 낳는다. 알은 2~3일이면 깨어 애벌레(장구벌레)가 된다. 전 세계에 1500여 종이 분포하며, 말라리아를 옮기는 학질모기, 뇌염을 옮기는 뇌염모기 등이 있다.(다음 백과사전)

 

2017. 8. 8.

'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명석 막걸리를 사게 된 사연  (0) 2017.09.03
배려란 이런 것-2  (0) 2017.08.09
올리고당과 카놀라유  (0) 2017.08.05
이우기의 포토북  (0) 2017.07.31
강남빈대떡  (0) 2017.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