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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명석 막걸리를 사게 된 사연

by 이우기, yiwoogi 2017. 9. 3.



어머니 사시는 동네에 경로당 이름은 <진주경로당>이다.
토요일마다 할머니, 할아버지 여남은 분이 모여 점심 식사를 하신다.
어머니는 41년생 일흔여섯 살인데도 거의 막내로 대접받는다.
매주 청소하고 밥 짓고 반찬 만들고 밥 차리고 설거지하는 당번이시다.
연세 많으신 분들이 서로 의지하며 서로 위로하며 재밌게 사신다.
주말 본가에 가면 그날 있었던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그 동네에 고등학교 친구 한 명이 있는데 그의 아내는 내 대학 동기다.
친구는 경로당 어르신들 드시라고 막걸리 한 말씩을 자주 사 준단다.
술뿐만 아니라 고기나 과일 같은 것도 시시때때로 사 준다.
그의 어머니는 우리 어머니처럼 중앙시장에서 푼돈을 모아 자식을 키웠다.
그의 어머니는 우리 어머니보다 대여섯 살 많지만 경로당에서는 식사 당번이시다.
한 말이면 토요일 두세 번 넘길 만큼 된다고 하니 어른들 주량도 만만찮다. 
 
나도 어디 시골에 가서 막걸리 한 말 사드리겠다고 말씀드렸다.
명석도 있고 금곡도 있고 금산도 있을 것이기에 한 시간만 투자하면 된다.
어머니는 그럴 필요 있겠느냐면서도 그래 주면 좋다고 하셨다. 
 
토요일 오전 11시쯤 명석 가서 한말 사다 갖다 드리면 점심 때 흡족하게 드실 수 있겠다 싶었다. 
명석 양조장을 인터넷에서 찾아내어 전화를 걸었다.
주말에도 문 여는지, 카드로도 결제할 수 있을지 확인했다. 
 
그런데 웬걸, 10시쯤 어머니께서 전화하셔서 내 친구가 벌써 술을 사놨다고 이번주엔 관두란다. 생각해 보았다. 
명석 양조장 주인은, 내가 꼭 가겠노라 예약한 건 아니지만, 은근히 기다리지 않을까 싶어진 것이다.
하여, 특별히 바쁜 일도 없으니 일삼아 한번 가보기로 하고 차를 몰았다.
양조장 위치도 확인할 필요가 있었고, 무엇보다 이참에 한두 병 사먹어 보자 싶은 것이었다. 
 
주인 아주머니에게 전화한 사람이 나라고 말씀드리고 오늘은 말술을 사지 못하게 된 사연을 설명해 드렸다. 다음에 살 일이 있을 때 꼭 다시 오겠노라 약속했다.
그러고서 됫병에 든 술 다섯 개를 샀다.
꼭 누구에게라고 정해둔 것도 없이 다섯 병을 사서 집으로 오다 보니 한 병씩 나눠주고 싶은 사람이 자꾸 떠올랐다. 스무 병을 사도 모자라겠구나 싶었다. 
 
아무튼 이러저러하게 세 병을 배달하고 두 병은 내 몫이다 여기고 있었다.
토요일 어제 일이다. 오늘 다시 누군가 또 한 병 구해 달라기에 전해 주기로 했다.
술이란 것이 원래 임자를 정해두고 만들어진 게 아니므로 누구든 먼저 보고 먼저 마시면 곧 임자인 것이다. 
 
참고로, 진주 경로당(晋州 敬老堂)은 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건축물이다. 2004년 10월 21일 경상남도의 문화재자료 제359호 진주 옥봉경로당으로 지정되었다가, 2015년 11월 5일 진주경로당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2017.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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