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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하늘이 노랗다

by 이우기, yiwoogi 2017. 7. 24.



하늘이 노랗다는 말을 쓴다. 어떤 경우에 쓰는가.
사랑하는 가족이 갑자기 운명하거나 엄청난 사고가 나 정신이 나간 경우에 쓴다.
전날 과음으로 하루 종일 토하고 나면 노란 위액이 나오게 되고 그런 경우 십상팔구 하늘이 노랗게 된다.
하늘이 노래지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죽을 것 같다.

십 년 전쯤 어느 식당에서 매운 고추를 먹었다. 구수한 집된장을 바른, 제법 큰 고추였다. 전혀 맵게 생기지 않았는데, 속았다.
캡사이신이 위에 당도하였을 즈음, 경련이 일어났다. 살며시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십 분 정도 하늘이 노래지는 경험을 했다. 
119에 전화를 할까, 아니 119가 오기 전에 죽을지 모르니 아내에게 마지막 작별인사를 해야할까 판단하기 어려웠다.
신음도 나오지 않았다. 식사 도중 십 분이나 자리를 비웠는데도 아무도 찾으러 오지 않았다. 좀 야속했다. 
그다음부터는 그 집에 가게 되더라도 그 고추 반찬을 먹지 않는다. 쳐다보지도 않는다.

어제 어느 식당에서 꽈리고추볶음을 먹었다. 먹음직스럽게 생겼다. 이 반찬을 좋아한다. 
갑자기 입 안에서 불이 났다. 우리하게 아픈 게 아니라, 날카로운 송곳으로 콕콕 찌르듯 하다가 생살을 찢는 듯하다가, 아무튼 장난이 아니었다. 머리가 아파왔다. 
매운 기운은 식도를 타고 내려가 드디어 위에 도착했다. 경련이 일어났다. 참았다. 물을 마시고 밥을 먹고 된장국을 퍼먹었다. 
배꼽과 명치 중간 즈음의 위 또는 창자가 끊어지는 통증이 이어졌다. 
분위기로 봐서는 아프다는 말도 하지 않아야 하고 신음도 내면 안 되는 것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맵다, 아프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스스로 불쌍해졌다. 그래도 참았다. 
십 분? 이십 분? 아무튼 시간이 지나니까 괜찮아졌다. 하늘이 노래지는 경험을 한 것이다.

살다 보면 하늘이 노랗게 보이는 일을 겪게 된다. 
매운 고추 탓일 수도 있고 과음이 원인일 수도 있고 다른 어떤 이유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사랑하는 가족이 갑자기 죽거나 주변에 엄청난 사고가 일어난 것만 아니라면, 
견디고 참으면 시간이 해결해 준다. 이를 악물고 참으면 살 것 같다는 느낌이 온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을 때가 온다.
하늘은 원래 파랗다는 것을 다시 인식하는 순간, 평화는 찾아온다.

어제 일기다.

2017. 7. 14.


사진 가져 온 곳: https://goo.gl/qj3M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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