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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거북정에서 거북처럼 엎드리다

by 이우기, yiwoogi 2017. 7. 10.

거북정은 전남 보성군 회천면 봉강리에 있다. ‘보성 정씨고택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때 정씨는 누굴까. 이곳 봉강리는 영광 정씨 세거지다. 고택은 임진왜란 당시 국가 위기를 잘 수습하여 선무원종공신 1등 등에 책봉받은 정경달 후손의 집인데 15대째 살고 있다. 안채는 400여년 전 정손일이 초가로 건립했으며 이후 정손일의 9대손인 정각수가 1890년 초가를 헐고 그 위치에 기와로 새로 지었다고 한다그 후 민족주의 운동(근로인민당 중앙위원, 재정부장)과 교육사업(양정원 설립,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 설립자금 기부)을 한 정해룡이 중건했다.(정씨고택 누리망 홈페이지(www.정씨고택.kr) 소개글 참조)

 

정씨고택의 주인인 영광 정씨 가족들의 역사는 비극이다적어도 현재까지는. <한겨레>에 실린 영광 정씨 고택 지킴이 정길상 님의 인터뷰 기사 제목은 아부하고 고개 숙여 정승 판서 나오면 뭐하냐이고곽병찬 대기자가 쓴 칼럼 제목은 잠들 수 없는 거북정-비밀의 정원이다여기서 그 내용을 일일이 설명하긴 어렵다한 가문의 흥망성쇠를 몇 마디 필설로 갈음할 자신이 없어서이다다만 그들의 가훈이 물위역사죄인(勿爲歷史罪人)’ 즉 역사에 죄인이 되지 말자라는 것임은 적어놓아야겠다.

 

진주에서 가자면 2시간 정도 걸린다. 보성나들목을 빠져나가 호젓한 국도를 20분 정도 달리면 이런 곳에 이런 곳이 있었나할 정도로 넓은 들판이 나오고, 들판 끄트머리 일림산 아래에 고택이 자리하고 있다. 고택 담벼락은 기왓장을 이용하여 예쁘고도 멋들어지게 쌓았는데 뎡거북이라고 글자까지 만들어 놓았다. 거북정이라는 이름은 여기에서 비롯하였던가 보다. 담벼락을 허물지 않는 한 이 뎡거북은 영원할 것이다. 고택은 조선시대 양반가옥인데 안채, 사랑채, 사당, 문간채, 곶간채 등을 두루 갖추었다. 대농 가옥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이 고택 지킴이로 있는 후배를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섰다. 김향진은 20년 전쯤 진주청년문학회에서 글을 썼다. 그가 쓴 글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가 살아온 정직하고 반듯한 삶은 대개 알고 있다. 사천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을 하면서 당차고 야무진 일처리로 신망을 받은 줄 알고 있다. ‘알고 있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그 당시엔 자주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많이 없었기 때문에 들리는 소문으로, 가끔 보도되곤 하는 언론 기사로 알게 됐다는 이야기다.

 

그러던 중 언제부터인가 옛 진주청년문학회 회원(또는 옛 대학 시절 울력문학회 회원) 너덧 명이 가끔씩 만나 추억을 안주삼아 정담을 나누게 되었다. 옛날 이야기, 정치권 욕하기, 지방 권력 욕하기, 지금 살아가는 팍팍한 삶 넋두리하기, 먼 미래 꿈꾸기, 어쩌다가 문학 이야기 들로 취하곤 했다. 향진이는 가끔 진주에서 모이는 진주청년문학회(또는 울력문학회) 동인들과 한잔씩 하는 자리에 참석하곤 했다. 김향진은 몇 해 전 전라도 보성으로 삶터를 옮겼다. 두 아들을 데리고 낯선 곳으로 옮겨간 그의 뜻과 지향점을 다 안다고는 할 수 없다. 울력문학 동인 몇몇이 찾아가 갑자기 내린 눈을 방호막으로 삼아 들어앉아 재미진 이야기를 하고 돌아왔다. 나는 가지 못했다.

 

그 사이 김향진은 다시 집을 옮겼다. 정씨고택 사랑에 세들어 살면서 관리를 맡게 된 것이다. 그렇게 된 인연은 아주 우연이라고 하겠지만 정직하고 반듯하게, 당차고 야무지게 살아온 그의 인생에 대한 보답이 아니었을까 짐작된다. 올해 3월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선 한번 가보고 싶어 안달이 났다. 거북정이라는 이름도 신기한데다 영광 정씨 일가의 역사를 신문에서 읽고 나서는 더욱 궁금해졌다. 날짜를 고르고 함께 갈 사람을 모아 드디어 78~9일 네 명이 차 한 대로 떠나게 된 것이다.

 

비는 제법 많이 내렸다. 장마철이어서 예상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진주에서 쨍쨍하던 하늘은 섬진강을 건널 즈음 잔뜩 흐려 있었고 벌교대교를 지나자마자 차 앞 유리에 얼룩이 지기 시작했다. 거북정의 역사는 쾌청한 기분으로만 다가갈 수 없는 그 무엇이었기 때문일까. 잘 닦아 놓은 고속도로 위에서 자동차 바퀴는 미끄러지듯 했지만 침을 꿀꺽 삼키지 않으면 안 될 듯했다. 안개마저 자욱하여 밤인지 낮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음울하지만 깊은 울림이 있을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율포해수욕장 근처에서 먹을 거리를 챙기고 드디어 목적지에 당도했다. 진주에서 모일 땐 뒷집에 사는 친구 부르듯 향진아, 너도 올래?”라고 물었다. 직접 가본 뒤부터는 그런 말을 못하겠다. “향진아, 네가 진주로 올 때 미리 전화해! 우리가 모일게.”라고 말하는 게 예의에 맞겠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도로에도 논밭에도 기와 지붕에도 비는 내렸다. 빗물은 고이기도 하고 흐르기도 했다. 사랑채 앞 한반도 모양 연못에 내린 빗물은 동심원을 그리며 옆으로 퍼져나갔다. 그러면서 뒷산에서 흘러와 연못을 지나가는 계곡물과 뒤섞였다. 뒤섞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조선의 역사와 오늘의 역사가 만난다는 뜻일까. 정의의 역사와 불의의 역사가 만난다는 뜻일까. 그렇게 만나 무엇을 하겠다는 것일까. 뒤섞여 구분하기 어려워진 빗물과 계곡물은 제주도 밑 배수구를 통하여 빠져나가 득량만에서 다시 바닷물과 뒤섞인다. 우주와 우주가 만나는 것이다. 그 연못을 하루 종일 바라보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을 위치에 우리가 묵을 사랑채가 있다. 우주의 희롱을 우리는 보고 있는 것이다. 역사의 희롱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채 대청에 앉아 차부터 끓인다. 문밖으로 내다보이는 연못과 담벼락과 소나무와 바다와 안개가 선경(仙境)이다. 자리를 옮겨 숯을 피우고 고기를 익혀 술을 마신다. 향진이는 텃밭에서 상추, 오이, 고추, 방울토마토를 따 온다. 먼 우주에서 날아온 빗물은 유리 천장에 낙하하며 울고 뒷산 일림산 대밭에서 날아온 호랑지빠귀는 팽나무 가지에 앉아 운다. 서럽게 들리기도 하고 맹랑하게 들리기도 한다. 역사란 그런 것 아닌가 묻는 듯하다. 향나무 장작으로 만든 숯불의 냄새가 밴 목살과 소시지, 시금하고 달근한 김치들, 짠 듯하면서도 고소한 된장, 전라도 대표 명주 잎새주, 그리고 우리들의 시시껄렁한 농담과 진담들이 밤을 깨웠다.

 

향진이는 이 정씨고택 관리하는 일 외에도 몇 가지 재미있는 일을 한다. 이 재미있는 일이, 날로 커가는 아들 둘을 바라보고 있는 향진에게 큰돈을 안겨줘야 할 텐데, 어떤지 모르겠다. 그가 만드는 상품은 석과지몽이다. 향진이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석과불식, 희망의 언어입니다. 씨과일은 먹지 않는다는 주역에서 인용된 것입니다. 고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에서 희망의 언어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석과는 큰과일, 다음해 농사에 씨로 사용할 과일이라는 의미입니다. 석과지몽은 이 시대의 석과를 꿈꾸는 터, 가까운 미래에는 공동체 마을을 만들어 갈 것입니다. 부족하지만 석과라 불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석과가 꿈꾸는 세상, 석과지몽입니다.”

 

그는 명약 중에 명약인 경옥고를 전통방식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인연이 있어 아흔 되신 노스님께 고맙게 배웠다고 한다. 그에겐 참 고마운 인연이 많다. 석과지몽 생산물은, 친환경 유기재배를 기본으로 하며, 자연에 가까운 맛을 추구하고 있다. 밭에서 생산되는 모든 농산물은 유용한 미생물(EM)을 활용하여 재배하고 있다. 석과지몽 주요 생산물은 완제품(경옥고, 칡꽃차, 칡차, 고욤(), 된장, 국간장, 각종 효소(송순, 머루) 농산물(로메인, 방울토마토, 부추, 고추, 울금, 은행) 생활 제품(천연비누, 천연염색 손수건, 스카프) 등이다. 소문 듣고 한번 주문한 사람은 반드시 다시 찾게 되어 있단다.

 

아무튼 향진이는 그렇게 산다. 연암공과대학교 나와서 사천에서 환경운동연합, 사천여성회 일을 하다가 2015년 느닷없이 전남 보성으로 훌쩍 떠났고(본인은 치밀하게 검토하고 고민하고 생각하여 결정한 것이겠지만) 다시 정씨 고택의 지킴이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가 만드는 석과지몽을 나는 아직 잘 모른다. 하지만 향진이가 걸어온 길을 반추하다 보면 그의 정직함과 옹골참이 석과지몽을 낳는 벼리는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가 거북정을 지키고 있는 동안 온나라, 아니 전 세계에서 아름다운 인연들이 자꾸자꾸 찾아와 역사도 배우고 물소리도 배우게 되길 바라 본다.

 

한 자리에서 한 종류 술로 아홉 시까지만 놀기를 자처하던 내가 새벽 두 시까지 술잔을 바라보고 있었다면 그것은 분명 대단한 일이다. 안주 없이 들이켠 술만도 몇 잔이랴. 하지만 밤새도록 쿵쾅쿵쾅 흐르는 연못 물소리가 자꾸만 귀를 간지럽혀 쉬 잠을 잘 수 없던 것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침잠마저 물소리가 깨운다. 여섯 시 즈음, 슬몃 일어나 동네를 짧게 한 바퀴 돈다. 사진기에 풍경 몇 장면을 담는다. 안채도 찍고 사랑채도 찍고 문간채도 찍고 담벼락도 찍었다. 멀찍이 떨어져서 예술적으로 구부러져 올라간 소나무와 고택과 뒷산을 모두 한 구도에 넣어보기도 한다. 아침안개는 비켜주지도 않고 나서지도 않은 채 넌지시 정씨 고택을 감싸고 있다. 새들은 지저귀고 물들은 속삭이고 잠든 영혼들은 말이 없다.

 

2017.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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