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 이 말이 나왔다. 대강 알 만했다. 육, 즉 몸을 베고, 골, 즉 뼈를 끊는다. 무시무시한 말이다. 대단한 각오를 보여주는 말이다. 처음엔 ‘자신의’ 몸을 베고 자신의 뼈를 끊는다는 뜻인 줄 알았다. 그만큼 다부진 각오를 다진다는 말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자신의' 살을 내주고 '상대의' 뼈를 끊는다는 말이라고 한다. 내가 작은 고통을 참고 있다가 상대를 아예 보내버리겠다는 전략이다. 그러니 무시무시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2015년 5월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혁신을 강조하며 이 말을 썼다. "저 자신부터 기득권을 내려놓고 '육참골단'의 각오로 임하겠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고 한다.
들머리(포털) 사이트 '다음'(daum) 질문-답변하는 곳에 이렇게 나와 있다.
"살을 베어내고 뼈를 끊는다는 말이다. 일본의 전설적 사무라이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藏)가 필살기술 중의 하나로 갈파했다고 한다. (일부러)자신의 살을 베이면서 상대방의 뼈를 끊어버린다는 의미다. 평생 수많은 고수와 목숨을 건 대결을 했지만 단 한번도 패하지 않았다는 무서운 칼잡이의 집념과 독기를 느낄 수 있겠다."
2015년 5월 <연합뉴스> 기사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자신의 살을 베어내 주고 상대의 뼈를 끊는다'는 뜻의 사자성어로 보이지만, 한국이나 중국 고전에는 나오지 않는 말이다.
한문학자인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는 "우리 고전은 물론 중국 고전에도 등장하지 않는 표현"이라고 말했다. 안 교수는 한문의 의미를 살리려면 '참육단골'(斬肉斷骨)이 맞을 것 같다며 "'육참골단'은 일본식 표현인 것 같다"고 추정했다.
실제로 일본의 권위 있는 일본어사전인 '고지엔(廣辭苑)'에는 '니쿠오키라세테호네오타쓰'(肉を斬らせて骨を斷つ)라는 표현이 나온다. 의미는 '스스로 상당한 정도의 고통을 받더라도 적에게 그 이상의 타격을 안겨서 이긴다'는 것. 일본 국립국어연구소 관계자는 "확실한 유래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18세기 무사 야마모토 조초(山本常朝, 1659∼1719)의 말을 기록한 책 '하가쿠레'(葉隱)에 나오는 비슷한 표현('피부를 베어내 뼈를 끊는다')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했다."
7월 3일 자유한국당 새 대표로 선출된 홍준표 전 경남지사는 이렇게 말했다.
"육참골단의 각오로 스스로를 혁신해야 한다. 한국당을 바로 세우고 대한민국의 보수우파를 재건하는 대장정을 시작하겠다.”
육참골단이라는 말 참 무섭다. 정치판이 이렇게 무서워진 것이다.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내 살을 잘라 내는 고통을 참았다가 상대의 뼈를 잘라버릴 정도로 죽기살기로 싸운다. 지금 정치판이 서로 화기애애하게 웃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은 안다. 정권을 빼앗은 쪽과 뺏긴 쪽이 서로 으르렁거리는 건 당연할지 모른다. 하지만 육참골단이라는 말을 내세워 결기를 드러내는 것은 정말 무섭다. 앞으로 어떤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 모르겠다. 2015년 5월이나 2017년 7월이나, 당시 야당이나 지금 야당이나 마찬가지다. 무서운 말이 오가면 그 뒤끝도 끔찍해지기 쉬운 법이다.
2017. 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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