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엔(tvN)에서 금요일 저녁마다 방송하는 ‘알쓸신잡’이라는 게 있다. ‘알쓸신잡’이라는 말은 우리말도 아니요 미국말도 아니요 일본말도 아니요 중국말도 아니다. 내가 보기엔 (미안하지만) 아프리카 어느 부족 말 같다. 이게 뭐야? 그렇지만 풀어놓고 보면 한편으로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의 준말이란다. 내용을 보지 않아도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질지 대강 짐작할 수 있다. ‘1박2일’, ‘삼시세끼’, ‘신서유기’ 같은 프로그램으로 이름을 널리 알린 나영석이 연출한다.
나오는 사람도 화려하다. 달리 설명할 필요 없는, 유시민, 황교익, 김영하, 유희열, 정재승이다. 이들은 첫 방송이던 지난 주(6.2.)에는 통영에서, 오늘(6.9.)은 순천에서 자기들이 알고 있는 온갖 잡다한 지식과 농담을 주고받았다. 동서고금 잡다한 지식은 총출동되는 것 같다. 어떤 건 그런대로 유익하고 어떤 건 그나마 들어줄 만하고 또 어떤 건 왜 저런 이야기까지 하는가 싶기도 하다. 그래도 정말 쓰잘데기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다른 많은 프로그램보다야 낫다고 생각한다.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라는 말은 말이 되는가, 나는 이것부터 눈여겨 본다. 유명한 분들이 나오는 방송이고 피디 또한 내로라하는 사람인데 문제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 언어감각으로는 좀 이상하다. 나라면 ‘알아둬도 쓸데없는’이라고 썼을 것이다. ‘알아도 쓸데없는’, ‘알아둔다고 해봤자 쓸데없는’, ‘알아둔다고 하여도 쓸데없는’, ‘알아둔댔자 쓸데없는’, ‘알아둬봐야 쓸데없는’ 이렇게 썼을 것이다. 뒤에 오는 ‘쓸데없는’이라는 말은 그 앞에 올 말에 제한을 두는 것 같다. 그런데도 ‘알아두면 쓸데없는’이라고 썼다.
‘알아두면 쓸데없는’에서 ‘알아두면’을 살리려면 뒤에 긍정적인 말이 와야 한다. ‘알아두면 몸에 좋은’, ‘알아두면 꼭 쓸 데 있는’, ‘알아두면 반드시 도움 되는’, ‘알아두면 무조건 이로운’, ‘알아두면 돈 버는’ 이렇게 연결되는 게 맞다고 본다. 그런데도 텔레비전에서는 ‘알아두면 쓸데없는’이라고 했다. 이해하기 어렵다. 내 언어감각이 맞다고 우길 필요는 없겠다. 다른 분들은 이 말이 어색하게 받아들여지는지 어떤지 궁금하다. 이런 것 시비 거는 사람도 거의 없겠지만.
스스로 내 생각이 맞다고 여기고 나니, 이해하기 어려운 게 있다. 지난 주 방송에서 유시민은 통영시 어디어디에 적혀 있는 안내글을 보고는 맞춤법이 틀린 것, 문장이 어색한 것 들을 지적했다. 거북선, 이순신을 설명하는 글이었다. 탁월한 작가의 눈썰미와 지식에 나는 무릎을 쳤다. 이 방송이 그런 것까지 내보낼 정도인데 스스로 자기 프로그램의 제목을 말이 안 되게 지었을까 싶은 것이다. 그리고 첫회 자막에서는 ‘姓’이라고 써야 할 한자를 ‘性’이라고 쓴 것 같고(휙 지나가는 바람에 자세히 못 봤지만), ‘치르다’라고 쓸 데 ‘치루다’로 두 번이나 썼다(다음에 재방송할 때 다시 눈여겨봐야겠다). 재미있고 알아두면 쓸 데 있을 것 같은 잡다한 게 많이 나오지만,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나만 그런가...
2017.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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