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각 방송사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후보들의 정책과 인물 됨됨이를 점검하기 위한 토론회를 여러 차례 열었다. 모두 열다섯 명이 후보로 나선 가운데, 국민들의 지지를 더 많이 받는 다섯 명이 한 자리에 모여 나라를 발전시키고 국민을 안심시킬 여러 가지 생각을 쏟아냈다. 토론회 진행 방식을 놓고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았지만 제18대 대통령 선거 때 견주면 훨씬 나은 모양새가 됐다. 그때 후보로 나섰다가 결국 대통령에 당선하였던, 지금은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는 박근혜는 토론회라는 후보 검증 과정을 아주 우습게 알았었다.
대통령 후보자 토론회를 생방송으로 진행하다 보니 각 후보가 내뱉는 질문과 답변 내용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확인하기 어렵다. 가령 홍 아무개 후보는 3차 토론회에서 “위키리크스에 폭로가 돼 있습니다. 왜 김승규 국정원장이 7개 그룹을 수사하려고 하는데 관련자들이 전부 386 운동권의 문 후보 진영의 사람이 많아서 (수사를 못하게 했다는데…)”라고 하였고, 이에 문재인 후보는 “그야말로 가짜뉴스 같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 토론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누가 사실을 말하는지 잘 모를 수밖에 없다.
제이티비시(JTBC) 방송 ‘팩트체크 팀’은 “홍 아무개 후보가 언급한 외교 전문을 찾아본 결과 문재인 그룹 관련 언급은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고 보도했다. 제이티비시는 이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그러니까 홍 아무개 후보가 사실을 의도적으로 왜곡했거나 아니면 전혀 모르면서 방송에서 자기 마음대로 내뱉은 것이다. 책임져야 할 부분이다. 이 방송국은 토론회 여섯 번이 진행되는 동안 모두 107회에 걸쳐 후보 발언을 확인했다고 한다. 홍 아무개가 34회로 가장 많고, 문재인, 심상정, 유승민, 안철수 후보 순이었다고 한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팩트체크’는 아주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 후보자가 뭐라고 떠들면 그대로 받아서 보도하는 게 아니라 사실을 확인하고 이를 국민들에게 성실하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대충 넘겨 짚어 말하거나 없는 사실을 지어내거나 의도적으로 사실을 왜곡하여 말했다간 언론의 검증 과정을 통과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선거에서 또는 선거 토론회에서 가히 혁명적 변화라고 생각한다. 그런 검증 과정이 있기 때문에 유권자인 국민들은 텔레비전 토론회를 더 열심히, 더 재미있게 챙겨보는 것 같다.
제이티비시 말고도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등 학계와 언론사들이 협업한 ‘SNU 팩트체크’가 등장했다고 한다. 이들은 공적 관심사에 관한 검증을 하고 그 결과를 언론을 통하여 발표하곤 했다. 이들은 대선 후보자들의 발언이나 정당의 주장을 ‘팩트체크’하여 ‘거짓/대체로 거짓/사실 반 거짓 반/대체로 사실/사실’ 다섯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고 한다. 거짓말로 상대방을 곤경에 빠뜨리거나 유권자의 이목을 현혹하는 일은 상당히 줄어들 수밖에 없게 되었다.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제이티비시는 매일 저녁에 방송하는 뉴스룸 시간에도 ‘팩트체크’를 내보내고 있다. 그날 일어난 여러 가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뉴스 가운데 사실 확인이 필요한 것을 끄집어내어 놓고 과연 사실인지 아닌지를 면밀하게 조사하고 검증하여 보도하는 것이다. 이 방송국 팩트체크 팀은, 방송한 내용을 책으로 묶어 펴내기도 했다. 현재 '종합편'과 ‘정치ㆍ사회 편’, ‘경제ㆍ상식 편’ 세 권이 나와 있는 것으로 안다. 나는 뉴스룸을 볼 때 이 팩트체크와 앵커브리핑을 가장 열심히 챙겨 보는 편이다. 아무튼 제이티비시는 우리 사회에서, 특히 언론 보도 분야에서 팩트체크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공로가 아주 크다.
하지만 나는 아쉬움을 감출 길 없다. 바로 ‘팩트체크’라는 말 때문이다. 팩트는 무엇인가. 팩트(fack)는 ‘① (허구ㆍ의견 등에 대한) 사실 ② 사실 ③ (보통 facts) (남이 말하는) 사실 ④ (the fact) (종종 facts) (사건·상황의) 사실’이라는 말이다. 한마디로 간단히 말하면 그냥 ‘사실’이다. 체크는 무엇인가. 체크(check)는 ‘① 점검하거나 대조하다 ② 사물의 상태를 점검하거나 대조함’이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점검 또는 대조다. 점검하고 대조하는 것은 곧 확인하는 과정이므로 그냥 확인이라고 해도 되겠다. ‘팩트체크’는 ‘사실 확인’이다. ‘사실 검증’ 또는 ‘사실과 대조’라고 해도 되겠으나 ‘사실 확인’ 하나면 충분할 듯하다.
맨 처음 이런 종류의 방송 꼭지를 만들 때 ‘팩트체크’라고 하지 말고 ‘사실 확인’이라고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면 영어를 배운 사람도 배우지 않은 사람도 이 말을 잘 알 것 아닌가. 77살 우리 어머니도 대번에 알아듣고 눈을 부릅뜨고 귀를 쫑긋 세울 것 아닌가. 팩트체크라고 하니 무슨 말인지 잘 못 알아듣고 말 것 아닌가. 왜 우리말 ‘사실 확인’을 쓰지 않고 어려운 외국어 ‘팩트체크’를 쓰기 시작했을까. 그 까닭을 모르겠다. 좀 있어 보이려고?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없던 것을 새롭게 시작하므로 그것을 가리키는 명칭도 좀 새로워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무엇을 새롭게 시작하니 새로운 명칭을 붙이고자 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것이 굳이 영어여야만 했을까.
이제 대통령 선거는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여론조사 결과만으로 볼 때는 당선할 만한 사람이 눈에 보인다. 하지만 나머지 네 후보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있고 심지어 막판에 판세를 뒤집을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뒤집어질지 아닐지 확인하는 것도 이제 사나흘 뒤면 알 수 있다. 그러나 나는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고 싶다. 선거가 끝나 당선하든 떨어지든 관계없이 그들이 공적인 자리에서 내뱉은 수많은 주장과 공약들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고 본다. 선거 기간은 피 튀기는 전쟁과 같으므로 무엇이든 씨부려 놓고 선거 끝나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행태는 바뀌어야 할 것이다.
팩트체크, 아니 사실 확인은 선거가 끝나더라도 계속돼야 한다. 그리하여 그럴듯한 거짓말로 국민을 속여 권좌에 앉으려는 사람, 사실은 잘 모르면서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지어내어 국민을 현혹하는 사람은 다시는 국민 앞에 나서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전문가 집단이나 언론사에서 이 일을 좀 맡아 주면 좋겠다. 이번에 후보로 나와서 거짓말한 사람은 다음 선거에도 나오지 못하도록 이마에 빨간 딱지를 하나 붙여주면 좋겠다. ‘사실’의 위대함, ‘사실 확인’의 엄중함을 모든 사람이 알도록 해주면 정말 좋겠다.
2017.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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