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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깨진 밥그릇

by 이우기, yiwoogi 2017. 6. 28.

약간 취한 건 인정한다. 소맥으로 대여섯 잔은 마셨으니. 그래도 택시 타지 않고 버스 타고 들어갈 정도는 되었다, 그것도 한번 갈아타면서. 개숫대에 설거지 거리가 제법 있었다. 아침은 늘 바쁘니까. 수세미에 퐁퐁을 묻혀 그릇, 접시, 숟가락, 젓가락 순으로 닦아 나갔다. 뽀득뽀득 소리가 나지는 않았지만 나름 성의를 다했다. 그중 밥그릇 하나가 문제였다. 아침에 묻은 밥풀이 딱딱하게 굳어 붙어 있는데 닦이지 않았고 떨어지지 않았다. 그냥 물을 부어 놓고 내버려두면 다음날 아침엔 쉽게 씻을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술김이었을까. 오기가 발동했다. 어쨌든 닦아내겠다 작정하고 양손에 힘을 좀 주었는데 그릇이 미끄덩하며 공중으로 부양하고 말았다. 술을 마시지 않았더라면 그것을 잽싸게 잡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엊저녁엔 그것이 불가능했다. 공중회전을 멋지게 하던 밥그릇은 거실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사기 그릇이었다. 연한파란색, 에메랄드 빛이라고 할까, 아무튼 빛깔이 제법 예쁜 것이었다. 꼭 누구 그릇이라고 정해 놓고 밥을 퍼는 건 아니지만 그건 대체로 내 밥그릇이었다. 쨍그랑도 아니고 뎅거렁도 아니고 퍽도 아닌 괴상한 소리를 내며 그릇은 박살났다. 3초간 멍하니 서 있었다. 수만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이윽고 그릇 조각을 주워 모았다. 우선 큰 것부터 하나하나 주워 모았다. 손 다치지 않게 발도 다치지 않게 조심조심했다. 그러고 나서 청소기를 갖다댔다. 파편들을 어느 정도 치웠다 할 때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요사이 보시기나 그릇, 접시 들에 흠집이 난 건 죄다 내 탓이라는 사실이 새삼 떠올랐기 때문이다. 다시 생각해 보니 대개 술 취한 상태에서 설거지를 했거나 많이 취한 다음날 주방에 섰거나 아무튼 그런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앞으로는 설거지를 하지 말아야지, 또는 술 마신 때는 주방 근처 얼씬도 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할 내가 아니다. 밥그릇, 국그릇, 접시 따위를 일부러 깨어 없애는 건 못된 짓이니까 그렇겐 못하겠고, 이렇게 어쩌다 실수로 그릇 한두 개 깨고 나면 새로운 모양과 빛깔의 그릇이 밥상에 자리하게 되니까 기분전환도 되고 분위기 상승에도 좋을 일이다. 그릇 장수도 먹고 살아야 할 것 아닌가. 결혼 19년쯤 되면 신혼 때 산 그릇이 천덕꾸러기처럼 그대로 왔다 갔다 하는 것보다는 몇 가지라도 바뀌어 있는 게 훨씬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한다.

 

2017.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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