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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과 글을 보는 내 눈

신문의 날 표어를 읽다가

by 이우기, yiwoogi 2017. 4. 7.

47일 오늘은 신문의 날이다. 보통 사람들은 잘 모르는 날이다. 어떤 달력에는 보건의 날향토예비군의 날만 적혀 있고 어떤 달력에는 신문의 날까지 적혀 있다. 신문과 관련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신문의 날이라고 하루 쉬는 곳도 있고(올해는 금요일이어서 대부분 신문사는 쉬겠다), 신문의 날이니 더 열심히 일하자는 곳도 있을 것이다.

 

한국신문협회에서는 해마다 이날을 기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표어, 포스터를 공모한다. 올해 선정된 신문의 날 표어(대상)신문을 펴는 즐거움, 정보를 향한 설레임이다. 참 잘 지었다. 우수상도 있는데 진실을 담아 독자곁으로, 꿈을 담아 세상속으로신문은 국민을 읽고, 국민은 신문을 읽습니다가 뽑혔다고 한다. 역시 잘 지었다. 내가 보기엔 우수상을 받은 작품 두 개가 더 멋지다. 어떤 기념일을 맞이하여 표어를 공모하는 건 요즘은 많이 없어진 듯한데, 이렇게 간략한 문장으로 신문의 중요성과 필요성, 신문의 역할과 기능 등을 보여주는 건 좋다고 생각한다.

 

나도 <경남일보>에 근무할 적에 신문의 날 표어를 제출했다. 내가 제출한 표어는 신문 산업에서 언론 운동으로였다. 당연히 뽑히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신문협회가 이런 표어를 신문의 날 표어로 선정할 정도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신문의 날을 맞이하여 올해 대상으로 뽑힌 표어를 보면서 참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설레임이라는 말 때문이다. 이 말에 대하여 시비를 걸어 본다. ‘설레임은 얼음과자의 이름이기도 하고, 노래 가사 등 여기 저기 널리 쓰이는 말이다. 낯선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적으면 안된다. 기본형이 설레다이므로 명사형으로 만들려면 설렘으로 적어야 한다. ‘설레임이라고 쓰면 틀렸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이 설레이다설레다의 북한어라고 풀이해 놓았다. 경상대 임규홍 교수는 틀리기 쉬운 국어문법 어문규정 공공언어 강의에서 우리말에서 기본형을 잘못 알아 동사 활용을 틀리게 하는 경우가 있다. 그 가운데 흔히 마음이 가라앉지 아니하고 들떠서 두근거리다의 뜻으로 쓰이는 설레다가 있다. 이것을 설레이다로 잘못 알아 설레이고’, ‘설레이니’, ‘설레여서등으로 잘못 활용하여 쓰는 경우가 많다. 이 말은 설레고’, ‘설레니’, ‘설레어’, ‘설레등과 같이 활용된다. 명사형은 설레임이 아니라 설렘이 맞다.”고 밝혔다.

 

한국신문협회라면 신문 발행인들의 모임이다. 명색 신문이라면 국민들이 말과 글을 올바르게 쓸 수 있도록 이끄는 구실을 해야 한다. 한글 맞춤법과 표준어 규정, 외래어 표기법,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같은 규정에 맞게 쓸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많은 신문은 지면에 말글과 관련한 기사를 다루기도 한다. 그런데도, 올해 신문의 날 표어를 보면 뭔가 나사 하나가 빠진 듯한 기분이 든다. 이건 아니지 않은가 하는 게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본다. 우리가 나날살이에서 설렘을 많이 쓰는지 아니면 설레임을 많이 쓰는지 생각해 본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아마 설레임을 더 많이 쓸 것 같다. 아니, 최소한 거의 비슷하게 쓸 것 같다. 롯데제과에서 만들어 파는 얼음과자 설레임이 여름철에 불티나게 팔려나가는 것을 우리는 안다. 노래 가사에서도 설렘보다는 설레임이 더 많이 쓰인다. 일일이 확인하지는 못하였다. “설레이며 말 못하는 나의 마음을 용기 없는 못난이라 놀리는가봐.”라는 노래 가사가 생각난다.



설레이다라는 말에는 가락이 들어 있어 말맛이 살아나는데 설레다는 숨구멍이 막히는 듯한 느낌이 있다. 이것을 명사형으로 바꾼 설레임설렘은 더욱 그러하다. 이런 까닭으로 롯데제과에서 얼음과자 이름을 정할 때 표준어규정에 어긋나는 줄 뻔히 알면서도 설레임으로 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오뚜기오뚝이로 적어야 하지만, 그런 줄 알면서도 오랫동안 써 온 것을 버리지 못하듯이. 그리고 그것이 무조건 잘못된 것이라고 몰아세울 수는 없듯이.

 

설레다가 표준어로 된 것은 어째서일까. 국립국어원은 발음이 비슷한 형태 여럿이 아무런 의미 차이가 없이 함께 쓰일 때에는, 그중 널리 쓰이는 한 가지 형태만을 표준어로 삼도록 규정한 표준어 규정2장 제4절 제17항과 관련 있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설레이다보다 설레다가 널리 쓰인다는 것이다. 표준어 규정을 제정할 당시에는 그랬는지 모르지만, 만약 지금 다시 조사하면 사뭇 다른 결론을 얻을 것 같다.

 

설레이다를 비표준어로 내버려두고 설레다를 표준어로 삼는 근거에 객관성이 좀 떨어지는 것 같다. ‘더 널리 쓰이는객관적인 증거를 찾아야 할 필요성이 생긴다. 한국신문협회에서 이런 것까지 생각하며 표어 대상을 결정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은연중 설레다가 밀려나고 설레이다가 득세하는 것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해 본다.

 

이런 보기는 제법 많다. 목메다/목메이다, 잠그다/잠구다, 담그다/담구다, 치르다/치루다 따위가 그런 것 같다. 한번 정해놓은 규정을 제대로 지키려고 하는 쪽은 공문서 작성자, 언론 종사자, 교사 등일 테고, 그런 것에 개의치 않고 그냥 생각나는 대로, 편한 대로 말글살이를 해나가는 사람은 언중(또는 대중, 국민)이다. 지키려는 쪽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하여 지키려고 하여도 결국 언중이 다른 것을 더 많이 쓰면 규정을 바꾸게 된다. 자장면/짜장면이 대표적인 보기이다.

 

신문의 날 아침에 신문의 날 표어를 읽다가 문득 생각한 바를 적어 놓는다. 모든 신문 종사자들이 오늘 하루만이라도 평안하기를, 즐겁기를 빈다.

 

2017. 4.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