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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말티고개를 넘다

by 이우기, yiwoogi 2017. 5. 31.

말티고개를 걸어서 넘어가기로 한 건 나름 까닭이 있었다. 어머니 아버지는 오십 리 떨어진 미천면 안간에서 수레 가득 나무를 싣고 진주 중앙시장에까지 와서 팔았다. 아버지는 앞에서 힘껏 당기고 어머니는 뒤에서 안간힘을 다하여 밀었다. 장딴지가 빳빳해졌을 것이다. 왕복 백리 길을 한번 왔다 가면 얼마나 벌었을까. 그 아까운 돈으로 점심이나 제대로 드셨을까. 말티고개를 요즘은 자동차로 쌩쌩 넘어 다닌다. 고향 갈 때, 아버지 산소 갈 때, 큰형 집에 갈 때 말티고개를 지난다. 몇 해 전 걸어서 넘어간 적이 한 번 있다.


 

초전동 청구아파트 앞 거제도횟집에서 약속이 생겼다. 좀 걷고 싶어졌다. 마침 구름이 조금 끼어 있어서 그다지 덥지는 않았다. 어디서부터 걸을까 궁리하다가 알맞은 거리를 계산해 냈다. 여유 시간은 한 시간 삼십 분이었다. 일단 평거동 평화교회 앞에서 120번 버스를 타고 가다 옛 제일은행(지금은 외국계 은행이 앉아 있는데 이름을 잘 모르겠다. 영어로 쓰여 있다) 앞에서 내렸다. 시내에서 볼일을 보고 시외(진주시이긴 마찬가지지만)로 가려는 할매들이 버스정류장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눈매가 선하다.

 

옛 마이크로버스 주차장을 지나 옥봉삼거리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차들은 쌩쌩 달린다. 나도 이 길을 자주 다닌다. 본가 근처이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할머니 들이 모여앉아 놀고 있는 정자가 보였다. 아버지는 그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본가로 갈 때면 자동으로 눈길이 간다. 중절모를 쓴 할아버지가 보이면 눈이 번쩍 뜨인다. 돌아가신 지가 벌써 몇 해인데, 아직도 눈길 먼저 가는 걸 어쩔 수 없다. 은열공 강민첨 장군 사당을 지나 옥봉삼거리에 다다른다. 심호흡을 한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말티고개는 예전에 견주면 길이 많이 좋아졌다. 구절양장 같던 길이 제법 펴졌고 너비도 넓어졌다. 그러니 차 속도도 덩달아 높아졌다. 그러니 차 뒤꽁무니에서 내뿜는 배기가스 냄새가 지독할 수밖에 없다. 오르막을 박차고 오르는 힘센 차들의 행진을 보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반대로 내리막를 내닫는 차들은 브레이크에서 소음과 먼지를 내뱉는다. ‘잘못 판단했구나퍼뜩 뒤통수를 때리는 생각에 아찔해졌다. 그렇다고 언제 올지 모르는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리기도 그렇고 택시를 부르기에도 그랬다. ‘에헤라, 갈 데까지 가보자하는 오기가 생겼다. 어차피 그런 게 인생 아니던가. 버스 정류장을 알리는 작은 팻말 아래에 선, 모자 쓴 젊은 사람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봉래초등학교 뒷산과 선학산을 잇는 봉황교는 말티고개의 꼭대기다. 비봉산 살리기 사업을 한다는 안내 표지판이 보이고 건너편에는 사람이 사는지 살지 않는지 도무지 판단되지 않는 건물이 외로이 섰다. 허리 굽은 노인네가 왔다 갔다 한다. ‘출입금지라고 쓴 팻말도 보인다. 평소 차 타고 넘어갈 땐 보이지 않던 것들이다. 화분, 분재 같은 게 보인다. 길 쪽으로 내놓고 팔던 때도 있었다. 그렇게 기억한다.

 

이제부터 내리막이다. 생각이 많아서인지, 휴대폰으로 듣는 뉴스공장이 진지해서인지 힘든 건 전혀 느끼지 못했다. 한두 명 겨우 지나갈 만한 인도가 그나마 가지런히 마련돼 있어서 걷기에 불편함은 없다. 진주공설화장장으로 이어지는 길을 지난다. , 추석 때면 참 많은 차들과 사람들이 이곳에 머문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을 느끼기는 할까. 문득 뒤돌아본다. 봉황교는 보이지 않고 대숲과 뽕나무와, 그리고 차들뿐이다. 여섯 시를 넘긴 시각, 그들은 그리운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내달리는 것일까 반가운 술벗들이 기다리는 술집으로 달려가는 것일까.

 

귀신집이라는 소문이 났던 식당 언저리를 지난다. 어린이집도 있다. 거기서부터 은행나무집까지 길은 난장판이다. 인도와 차도와 인도옆 관목숲에는 쓰레기 천지다. 휴지, 아이스크림 비닐 껍질은 기본이다. ‘테이크아웃하는 커피 잔도 지천으로 늘렸다. 심지어 집에서 작정하고 싸온 듯한 쓰레기 봉지도 보인다. 먹다 버린 빵도 보인다. 무엇을 어디에다 어떻게 버렸는지 퀴퀴한 냄새가 진동한다. 괜히 걸었구나 하는 후회가 지진해일같이 밀려든다. 욕도 나온다. 도대체 누가 왜 이런 곳에다 쓰레기를 갖다 버릴까. 환경미화원들의 발길조차 닿지 않는 곳에 쓰레기를 마구 버리면 어쩌자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기분이 몹시 나빴다.

 

몇 번 가본 적 있는 정원꼬리곰탕, 은행나무 한우촌을 지난다. 큰형 집에서 시켜먹곤 하는 말티고개 족발집도 지난다. 지금 갤러리아 백화점 자리에 있다가 이사간 금성초등학교 앞을 지난다. 나와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부부 한 쌍과 그냥 배 나오고 이마 벗겨진 중년 신사 한 명이 운동장을 돌고 있다. 운동장은 좁다. 이 운동장에서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많은 학생들이 체육수업을 하고 점심시간을 놀고 운동회를 하겠구나, 싶다. 그들에게 주어진 운동장의 면적은 터무니없이 좁은 게 아닌가. 그들은 이 세상을 운동장 크기 만하다고 여기지는 않겠지. 그러기를 바라며 고개를 드니 문득 횟집 앞이다. 너무 빨리 걸었다. 일곱 시까지 도착하려던 것인데 여섯 시 사십 분도 안 됐다.


 

말티고개 한 번 걸어 넘으면서 오만 가지 생각과 걱정과 짜증을 다 했다. 다시는 이 길을 걷지 않으리라는 다짐이라도 얻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겠다. 횟집에서 만난 다정한 벗들과 맛난 반찬과 술, 그리고 회가 있었으므로 나는 참기로 했다. 오십 년 전쯤 아버지 어머니는 수레에 나무를 가득 싣고 말티고개를 넘었다. 상봉서동 가마못재를 넘기도 했다고 했다. 그런 시절을 상상으로나마 추억할 수 있었던 것도 다행이다. 고맙다, 말티고개야.


 

2017.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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