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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사랑하는 아들 다을에게

by 이우기, yiwoogi 2017. 3. 9.

사랑하는 아들 다을에게.

 

온 세상에 봄 기운이 가득하구나. 봄이라는 말은, 겨울 내내 볼 수 없던 꽃, , 아지랑이, 나비 같은 것을 많이 볼 수 있게 된다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하지. 참 강남 갔던 제비도 돌아오겠구나. 보이는 게 많은 세상, 보고 싶은 게 많은 세상, 참 아름답지 않니? 다을이는 지금 인생이라는 계절에서 아주 이른봄을 지나고 있겠네. 참 좋은 시절이란다.

 

벌써 고등학교 2학년이구나. 1학년 겨울방학 시작할 즈음 편지를 한번 쓸까 생각했는데 이렇게 늦어졌구나. 먼저, 무사히 2학년에 진급한 것을 축하한다. 지난 1년 동안 인문계 고등학교 1학년 학생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놀고, 살아낸 것에 대하여 감사한다. 특히 최근의 교통사고나 독감으로 링거 한 대 맞은 것을 제외하면 크게 아픈 적 없이 건강하게 지나온 것이 참 고맙다.

 

고등학교 2학년은 1학년 때보다 몇 배는 더 어렵겠다. 3학년에 가까워지기 때문이겠지. 대학 진학이라는 큰 언덕을 마주하며 달려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도 머리도 무거워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별로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학교 다니고, 학원 다니는 아들을 보면 대견하게 생각한다.

 

225일 일어난 교통사고. 한마디로 마음이 아프다. 어쩌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가 일어나고 말았으니 더욱 안타깝다. 그러면서도 아버지는 그 속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처음 사고 나서 복음병원 응급실에서 만났을 때는 아버지도 마음이 떨리고 다을이도 눈물을 흘렸는데,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 평정심을 되찾고 농담도 하게 되더라는 것이지. 기왕 사고는 난 것이고 잘잘못을 따지고 슬퍼하고 안타까워하기만 해서는 달라질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챈 것 아닐까. 또 그만큼 우리 아들이 성숙해졌다고 할까, 어른스러워졌다고 할까.

 

아무튼 사고의 상황을 생각하면 그만하길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운이 좋았다. 사고가 나서 운이 나쁜 게 아니라, 사고가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더 크게 다칠 뻔했는데도 그만한 건 정말 운이 좋은 것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앞으로 긴긴 인생에서 다시는 이 같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매사에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는 소중한 교훈을 얻은 것으로 치자. 특히 자전거오토바이는 되도록 이용하지 않는 게 좋고 만약 이용하더라도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사랑하는 우리 아들 다을아!

반장 선거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고 싶구나. 다을이는 반장을 뽑는 과정 또는 절차가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어쩌겠니. 그 절차를 정하는 것까지 모든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했더라면 좋았겠지만 그것까지 기대하는 건 무리였나 보다. 하지만 방법이나 절차에 문제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모든 후보에게 똑같이 유리하게 또는 불리하게 작용하였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여러 명 후보 가운데 반장이나 부반장이 되었더라면 좋았을지 모르지만, 안 되었다고 해서 특별히 나빠질 것도 없다.

 

그것보다 아버지는 우리 아들이 다른 친구들을 위하여 희생과 봉사할 마음을 갖고 있었다는 게 더 놀랍고 고마울 따름이다. 아버지는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 중에서 유일하게 반장을 한번 했었다. 초등학교 4학년이었지. 그때 있었던 일화를 짧게 한번 쓴 적이 있는데 아버지 블로그(http://blog.daum.net/yiwoogi/13417077)에 가서 반장으로 검색해 보면 알 수 있단다.

 

내가 말해주었듯이 반장이라는 자리는 친구들 앞에서 서서 지도하고 이끌어 나가는 것이라기보다는 봉사하고 희생하고 도와주는 자리라고 보는 게 맞다. 선생님과 학생들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기도 하고. 그러자면 자연히 자기 공부나 자기 시간을 많이 뺏기게 되지. 서로 경쟁하고 눈치보기보다는 협력하고 소통하는 힘을 가져야 하고, 그러한 힘을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친구들을 위해서 쓸 줄 알아야 하는 자리이다. 그런 반장을 하겠다고 나선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 어머니는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서른 몇 명 반 친구 가운데 반장이나 부반장에 출사표를 던진 친구가 여섯 명이었다면, 나는 우리 아들이 여섯 번째로 높은 인격과 품성을 갖추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으로도 충분하고 만족한다. 너희 반 반장 선거와 관련하여 절차나 방법,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하여 못마땅하고 불만인 점이 있더라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게 남자답고 그게 반장을 하겠다고 나선 사람의 올바른 태도이다. 한 가지 더 말하자면, 반장에 떨어졌다고 학급의 일을 외면하고 도외시하지 말고 무슨 부장이라도 맡을 수 있다면 더 열심히 희생하고 봉사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단다. 그런 것까지 보여줄 수 있다면, 아마 3학년이 되어서는 반장 아니라 전교 회장도 할 수 있는 그릇이 되지 않을까 싶다.

 

다을아.

또한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 하고 싶은 일 가운데 하나가 학교에 일본어 동아리를 만들어 열심히 활동해 보는 것이었지. 역시 생각만큼 쉽지 않은 것 같이 보인다. 우선 회원을 모집해야 하고, 지도 선생님을 초빙해야 하고, 앞으로 어떻게 운영해 나갈지 계획을 세워야 하고. 할 일이 많을 것이다. 가뜩이나 바쁜 새학기에 말이다.

 

아버지는 처음 다을이가 일본어 동아리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깜짝 놀랐구나. 초등학교 때 히포 활동하면서 일본어를 좀 배우고 일본에 두어 번 갔다 왔지만, 그렇게 깊이 생각하고 있는 줄은 몰랐거든. 그리고 그것을 꾸준히 잘 이어가 나중에 일본어 교사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는 더욱 놀랍고 고마웠지. 그만한 나이에 자신의 장래 희망 직업까지 구체적으로 결정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거든. 그리고 그 꿈은 가끔 바뀌기도 하지.

 

아무튼 일본어 동아리를 만들고 활동하는 데 아버지나 어머니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무엇이든 말하거라. 가능하면 너희 친구들 스스로 결정하고 추진하고 비판하고 반성하고 한단계 도약하는 그런 동아리가 되기를 바라면서,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만 보고 있겠지만, 혹시 지원이 필요하면 서슴지 말고 이야기하거라.

 

두 가지 더 언급하자면 수년 전에 배운 일본어 실력이 아직 남아 있을지 모르니까 지금부터라도 좀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다른 과목보다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고, 또 일본어를 가르치는 담당 선생님을 자주 찾아뵙고 구체적으로 의논해 가면서 일을 진행하기를 바란다. 응원한다. 파이팅~!

 

한두 가지 더 말하고자 한다.

짐작하겠지만 컴퓨터 게임과 관련하여서이다. 나는 예전에도, 지금도 게임 같은 걸 잘 하지 않는 편이라서 게임에 열중하는 사람들 마음을 잘 모른다. 아예 게임을 하지 않은 건 아닌데 테트리스나 지뢰 찾기, 고스톱 게임을 조금씩 해본 적이 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도대체 이게 나에게 무슨 의미인가, 내가 지금 살아가고 앞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무슨 도움이 되는가 하는 회의가 생기더라. 물론 다을이가 아버지의 이 마음을 다 알 수는 없겠지.

 

그래도 고등학교 2학년인 지금 이 시점에 한번 고민해 보기를 바란다. 그리고 게임을 하더라도 토, 일요일 한두 시간 정도 또는 평일에 삼십 분 정도 하는 것은 스트레스를 풀고 머리를 식히기 위한 과정이라고 봐줄 수 있겠지만, 숫제 새벽 두세 시까지 게임을 하고 앉아 있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주말에도 밥만 먹고 나면 게임을 하는데 그것도 좀 못마땅하다. 또 게임 내용도 즐기는 것보다 서로 죽고 죽이는 것이어서 더욱 권할 만한 일이 못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아예 컴퓨터를 없앨 수는 없는 노릇이고, 스트레스 받는 고등학생이 그 정도 탈출구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좀 많이 지나친 것 같다. 나중에 세월이 흐른 뒤 다을이가 그때 게임할 시간에 (소설)책을 더 읽고, 신문을 더 읽고, 공부를 더 했더라면 좋았을걸이라며 후회라는 날이 올지 모르겠어서 하는 말이다.

 

사랑하는 우리 아들 다을아.

아버지, 어머니는 우리 아들이 무엇에서든 성공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자기가 원하는 목표를 잘 이루어내고 성공하는 삶은 참 좋긴 하겠지만 그런 삶이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어떤 목표를 두고 열심히 노력했지만 실패했을 때 그것을 딛고 일어서는 슬기와 용기를 가진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라는 말을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는 우리 아들이 자신의 삶과 자기 주변만 챙기는 사람이기를 바라지 않는다. 내가 어렵고 힘들더라도 주위 친구를 한번 더 돌아보고 서로 이해하고 위로하고 소통하고 협력하는 그런 멋진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진정 바란다. 그런 의식과 정신이 반장이라는 자리를 통해서든, 일본어 동아리를 통해서든 조금씩 성장해 나가기를 바란단다.

 

내일 39일은 아마 모의고사 시험 치르는 날이겠지. 2학년 올라간 지 며칠 됐다고 또 시험인지 모르겠구나. 어쩌면 인생은 시험의 연속이 아닐까 싶기도 하구나. 거부할 수 없고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했다. 높은 점수를 취득하기 위해 아등바등하기보다는 시험 자체를 즐겨 보렴. 모르던 문제를 풀었을 때의 희열, 실수한 문제를 다시 되풀이하여 실수하지 않기 위해 메모해두는 습관, 성적이 아주 조금이라도 올랐을 때의 보람, 혹시 성적이 내려가더라도 놀라거나 짜증내지 않는 의연함, 이런 것을 키워보는 기회로 생각해 보렴.

 

심호흡 크게 한번 하고 나서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고개를 들고 장딴지에 힘을 준 뒤 씩씩하고 당당하게 걸어 보렴. 모든 것이 다르게 보일 것이고 모든 것이 더 좋아 보이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우리 아들 다을에게 아버지가 해줄 말이 너무 많구나. 눈 아프겠다. 이 한마디 한마디들을 너를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으로 이해해 주면 더욱 좋겠다. 조만간 시간 내어 봄옷 한 벌 사러 가자꾸나. 사랑하는 우리 아들을 늘 믿고 응원한다. 사랑해, 우리 아들!

 

2017. 3. 8.

아버지 이우기 쓰다.